문밖에 있던 심지안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쓸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성수광은 기침 몇 번을 하며 말했다.“됐어, 마음대로 해. 하지만 말해두는데, 만일 그 아이가 너희 두 사람 관계에 영향을 준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지안 씨는 이미 동의 했어요. 지안 씨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성수광은 성연신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마음이 넓은 게 아니야, 너를 사랑하니까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는 거야.!”“지안 씨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두 배로 더 잘해 줄 겁니다.”성연신은 수려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저희에게도 아이가 생길 거니까 두 아이에게 서로 친구가 생기는 것도 좋은 일이지 않습니까.”성수광은 손을 흔들며 그에게 나가라고 했다.“지안이를 불러.”성연신은 이에 응했고 방문을 열자마자 밖에 있던 심지안과 눈이 마주쳤다.그를 바라보는 심지안의 눈빛은 차가웠고 얼굴에는 불쾌한 감정이 가득했다.그녀는 이복형제를 싫어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괜찮겠지만 커서 세상에 대해 알게 되면 자연스레 총애를 다투는 일이 생길 것이다.심지안은 자기가 임시연의 아이를 성심성의껏 보살피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안아, 이리 오거라.”심수광이 그녀를 향해 손을 저으며 인자하게 말했다.“너에게 줄 물건이 있어.”심지안은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허리를 곧게 펴고는 성연신을 지나 싱글벙글 웃으면서 들어섰다.그리고 쾅 하고 힘껏 문을 닫았다.거센 바람이 성연신의 얼굴로 불었는데 마치 소리 없는 따귀 같았다.성연신은 어두운 낯빛으로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굳게 닫힌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성수광이 노랗게 바랜 편지를 건네며 말했다.“저놈 아비가 남긴 유서야. 이제 너한테 줄 때가 된 것 같구나. 난 기껏해야 몇 년만 더 살다 갈 것 같다.”장기 노화는 좋은 의사를 찾으면 나아질 수도 있지만 원래대로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할아버지께서는 또 연세가 있으셔서 큰 상관이 없었다.“할아버지... 그런 말씀 하지
심지안이 물었다.“내가 어렸을 때 제일 궁금했던 게 뭔지 아세요?”성연신이 움찔했다.“네?”“왜 나는 심연아와 아빠를 공유하고 있지?”그녀는 창가에 서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창밖의 밤하늘을 보며 말했다.심전웅의 무관심, 심연아의 괴롭힘, 은옥매의 겉과 속이 다른 모습.시간이 흘러도 심지안에게는 여전히 그날들이 눈에 선했다.그녀의 아이도 그녀와 같은 운명이어야 하는 건가.성연신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말했다.“아이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심지안은 그를 밀어내며 물었다.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알면 어때요. 임시연은 그 아이를 키울 기회를 놓쳤고, 당신에게는 감사하게 생각할 텐데.”임시연이 그런 더러운 일들을 벌이지 않았다면 아이를 그녀에게 맡겨서 키우게 했을 것이다.하지만 임시연은 그럴 자격이 없었다.“그건 그저 당신의 생각이에요.”“약속할게요. 임시연의 아이가 당신을 거역하는 일도 없을 거고 우리의 아이를 괴롭히는 일도 없을 거예요.”“하지만 제가 싫어요!”심지안은 눈살을 찌푸렸다.“다른 사람의 새엄마가 되기 싫다고요.”성연신이 말했다.“새엄마가 아니에요. 당신은 그 애의 엄마예요. 전에 약속 했잖아요.”심지안은 그를 노려보다 힘이 빠져 유서를 건네며 말했다.“알겠어요. 유서나 빨리 확인해요.”성연신도 더는 싸우고 싶지 않아 편지봉투를 건네받았다.글씨체는 힘이 있었고 편지지는 노랗게 바랬으며 접힌 자국도 선명했다.심지안은 성수광이 이 편지를 몇 번이나 열어보며 읽어봤다는 것을 편지를 건네받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장담하건데, 어르신도 아들의 죽음을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성연신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읽기 시작했다.「2020년 1월 5일, 송석훈은 내가 사랑하는 남하영을 빼앗아 갔다. 남편으로서 아내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로서 아이의 엄마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나는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실패한 사람이다. 가정을 지키지 못한 나는 가족을 볼 면목도,
심지안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할아버지께서는 당신을 많이 사랑하세요. 혼자서 오랫동안 참으셨을 거예요.”중년 시절에 아들을 잃고 아내를 떠나보냈으며 둘째 아들도 열심히 하려 하지 않아 홀로 매일을 쓸쓸히 보내야만 했다.남하영 일로 아들이 죽음을 선택했기에 성씨 집안의 후계자 자리는 공석이었다.성수광은 하는 수 없이 모든 정력을 성연신에게 쏟아부었고 할아버지로서 아버지처럼 그를 정성껏 키웠다. 성연신 또한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하필 이때 송씨 가문 사람들이 남하영이 살아있다는 소식과 함께 나타났다.이러니 성수광이 어떻게 유서를 성연신한테 넘기겠는가?하지만 요 며칠 동안 그는 생각에 잠겼다. 송씨 가문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성수광은 나이가 많으니 성연신을 도와줄 수 없었기에 그냥 그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기로 했다.성연신은 있는 힘껏 유서를 손에 쥐었고 눈 밑은 퀭해졌다.그와 그의 가족이 겪은 고통을 그대로 송씨 집안 사람들에게 갚고 싶었다.송석훈. 송준.새로운 게임이 시작되었다. 준비는 돼 있겠지?지금부터 반격의 시간이다....이틀 동안 회사의 여러 잡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프랑스를 갈 날이 되었다.그녀는 비행기에 타 핸드폰을 껐다.흐린 날이라 먹구름이 가득했고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비행기 창문에 빗물이 뚝뚝 떨어져 시야가 흐려졌는데 마치 그녀의 미래처럼 캄캄하고 종잡을 수 없었다.심지안은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신현아는 그녀의 옆에 앉아 동경의 시선으로 프랑스 잡지를 보고 있었다.심지안은 한눈에 신현아의 생각을 알아차렸다.“가고 싶어요?”“아니요.““그럼 뭐 보고 있어요?”신현아의 얼굴에는 보기 드문 수줍음이 묻어 있었다.“전 친구가 별로 없어서 쉬는 날에는 집에서 드라마나 보거든요. 주로 프랑스 드라마를 좋아해요. 뭔가 아름답고 사람들 감정표현도 과감하고 열정적이라서 좋아할 수밖에 없더라고요.”심지안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
“서백호 아저씨는 대표님의 본부대로 평소 장 의사로부터 약을 처방 받았습니다. 경력이 오래된 한의사님께 보여드렸는데 지안 아가씨께서 드시는 건 그냥 단순한 기혈 조절제라고 하셨습니다. 한번 마셔보고 효과를 지켜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성형찬은 송준한테 속았습니다. 송준이 공수표를 그에게 줬다고 합니다.”그렇게 말한 정욱은 살짝 존경하는 시선으로 성연신을 쳐다보았다.“대표님께서 송씨 가문 사람들이 손을 쓸 줄 알고 미리 금고에 있던 서류를 바꿔치기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성원 그룹이 하루 아침에 망할 수도 있었습니다.”바꿔치기 한 성연신의 수법은 대단했다.성연신은 눈을 뜨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성씨 가문 쪽에서 성형찬을 위해 사정하는 사람이 있었나?”“아니요, 성여광이 한번 오긴 했는데 백호 아저씨한테 쫓겨났다고 합니다.”그는 눈썹을 치켜들며 말했다.“이번 일을 일찍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성여광의 공이 커.”성여광이 투자했던 연구소. 성여광의 머리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운 좋게 하늘에서 떡이 떨어진다던가.그게 아니면 사기를 당한다던가. 국내에서 칩을 연구하는 곳은 적었기에 손만 쓰면 그 배후를 알 수 있었다.송씨 가문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성씨 가문에 불만을 가지고 있어도 직접 그들의 일에 손을 쓸 정도로 담이 큰 사람은 거의 없다.정욱이 고민하다가 물었다.“그럼 성여광한테 경고를 하지 않으실 겁니까?”“양쪽이 죽이 이렇게 잘 맞는데 내가 말릴 이유가 없지. 내가 성여광에게 투자를 철회하라고 얘기해도 그놈은 절대 내 말을 듣지 않을 거야.”“하지만 성여광이 함정에 빠진 것을 알게 되면 어르신도 마음 아파하실 것 같은데요.”이미 성형찬은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에게 아량을 베푸는 건 자기를 해치는 일이야. 송준의 목적이 단지 성여광, 그놈일 뿐일까?”정욱은 성연신의 조언에 크게 깨달았다.“설마 성여광의 손을 빌려 대표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겁니까?”성연신은 부정하지
정욱은 임시연을 보고 턱에 힘을 꽉 주었다. 그녀의 의도는 너무 뻔해서 이미 읽어낼 수 있었다. 정욱은 어이가 없었다.심지안이 떠나자마자 임시연이 오다니.무슨 목적으로 온 것인지, 눈만 있으면 읽어낼 수 있었다.“연신이를 만나게 해줘요.”임시연은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그 기세는 다소 강압적이었다.“성 대표님은 분주하신 분입니다.”그 말인즉,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임시연은 눈을 약간 치켜뜨고 차갑게 웃으며 얘기했다.“얘기를 드리러 가지도 않고요?”“성 대표님은 일할 때 방해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정욱도 물러서지 않았다.“내가 왔는데도요?”“심지안 씨만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정욱은 일부러 임시연을 쫓아내기 위해 이렇게 얘기했으나 여기에서 물러날 임시연이 아니었다.임시연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욱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정욱은 바로 손을 뻗어 임시연을 말리려고 했다. 팔이 임시연에게 닿자마자 임시연은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정욱을 보며 얘기했다.“전 그저 몇 마디 했을 뿐인데, 고작 그 이유로 절 밀어요?!”“???”정욱은 가슴에 손을 얹고 아까 임시연을 밀지 않았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임시연의 목소리는 작지 않았기에 성연신도 듣게 되었다. 사무실 문을 연 성연신은 그저 미간을 찌푸리고 두 사람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 대표님, 임시연 씨가 성 대표님을 뵙고 싶다고 왔습니다. 성 대표님께서 바쁘시다고 알려드렸는데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시니 가볍게 막아 나섰을 뿐입니다.”임시연은 연약한 모습을 보이며 일어서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얘기했다.“맞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내가 실수한 거야.”본인이 실수한 게 맞으면서, 마치 정욱이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얘기한다.“...”그래, 여우 짓하는 임시연을 정욱이 어떻게 이기겠는가.성연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임시연을 쳐다보았다. 정욱을 질책하지 않고 바로 물었다.“무슨 일로 왔어.”“사실
성연신의 시선이 임시연을 훑더니 정욱에게 멈춰 섰다.“네 말이 맞아. 그렇게 해.”임시연은 겨우 지켜오던 이미지를 잃기 직전이었다. 겨우 웃음을 짜내며 얘기했다.“장난치지 마. 아기를 속이면 안 돼.”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성연신의 차가운 뒷모습과 사무실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임시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구겨졌다. 하지만 악독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임시연은 책을 정욱에게 던져주며 얘기했다.“오늘 밤, 수고해 줘요.”정욱은 오히려 놀랐다.“진심입니까?”이렇게까지 연기할 필요가 있나?“당신이 읽는 거라면 전 여기 올 필요가 없죠. 집에 돌아가서 통화로 해요. 당신이 이 책을 다 읽으면 돼요.”임시연은 목소리를 깔고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얘기했다.“그러게 왜 자꾸 끼어들어서.”정욱은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손에 쥔 두꺼운 책을 흔들며 물었다.“제가 밤을 새우는 걸 원합니까?”임시연은 스카프를 매고 얘기했다.“그것뿐일까요. 내가 만족할 때까지 읽어야 해요.”말을 마친 그녀가 우아하게 떠났다.정욱은 유아용 책을 한편으로 밀어버렸다. 이런 저급한 수에 말려들 그가 아니었다.정욱이 읽지 않는다고 해서 임시연이 성연신을 찾아와 고자질이라도 하겠는가?만약 고자질을 한다면 정욱은 심지안의 뒤에 숨을 생각이었다.심지안이 정욱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성연신은 무조건 정욱을 벌하지 않을 것이다.정욱이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성연신의 다음 달 일정표를 작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진유진이 물었다.“어디예요? 회사? 집?”“회사요. 무슨 일이죠?”“별일 아니에요. 지안이 대신 검사하는 거죠.”진유진이 머뭇거리다가 물었다.“임시연, 그년이 찾아오지는 않았어요?”“음... 뭐랄까요...”“빨리 말해요!”“왔어요. 이미 갔고요.”“헐, 정말 낯짝이 시멘트보다 두꺼운 여자 같으니라고! 정말 뻔뻔하네요!”진유진이 욕설을 퍼붓고 또 물었다.“성연신 씨는 어떻게 했어요?”심지안이 해외로 가자마자 딱 찾아오
성연신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한참 고민하다가 검은 눈으로 심지안을 쳐다보았다. “솔직한 대답을 원해요?”그 순간, 심지안은 이미 그의 대답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심지안은 여전히 고집스러웠다.“네. 솔직하게 대답해 줘요. 연신 씨의 생각을.”“임시연은 지금 몸이 좋지 않아요. 게다가 임신 6개월이 되었으니 애를 지울 수도 없죠. 만약 나의 애면 버릴 수도 없죠. 어릴 때 부모님이 안 계셔서 힘들게 자랐거든요. 그래서 내 아이는 그렇게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고독하게 살지 않았으면 해요. 좋은 아빠가 되고 싶거든요. 지안 씨, 내 뜻 이해해요?”심지안은 살짝 화가 났다.“임시연 씨의 애한테 좋은 아빠가 되면, 나중에 우리의 애는 어떻게 생각하겠어요.”“우리가 얘기하지 않으면 모를 거예요.”“연신 씨!”심지안은 화가 났다.“우리 애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애를 속일 생각이에요?”그 명석한 두뇌로 자기 애를 속일 생각을 하다니.성연신은 이마를 짚었다.“그날이에요? 왜 그렇게 예민해요.”성연신은 예전의 귀엽고 활발한 심지안인 그리웠다. 매일 그의 주변을 맴돌면서 식사를 차려주고 그의 기분을 풀어주던 귀여운 바보 같은 여자 말이다.“그래요, 나 예민해요!”심지안은 화가 나서 통화를 끊어버렸다. 물론 성연신의 입장에서 보면 맞는 말이었다.하지만 심지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다.그 때문인지 심지안은 결국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다가 겨우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악몽을 꾸고 말았다. 악몽 속에서, 임시연은 성연신과 한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두 사람 사이에는 아기까지 있었다. 세 사람은 화목한 한 가족 같았다.그러더니 임시연이 갑자기 눈을 뜨고 꽃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심지안에게 다가와 얘기했다.“그거 봐요, 성연신은 내 것이에요. 성씨 가문의 안주인도 내 자리고. 당신은 그저 남자 하나 제대로 붙잡지 못한 루저예요. 그러니 이만 꺼져요.”“아니, 난...”잠에 든 성연신을 깨우려고 소리를 지르고
고청민의 시선은 노트북에서 천천히 심지안의 얼굴로 옮겨졌다.정교하게 빚어진 것 같은 이목구비와 투명하게 밝은 피부, 긴 속눈썹이 드리워진 눈. 이 모든 것이 너무 귀여웠다.오늘 심지안은 성숙하게 입었다. 하지만 사이즈가 큰 옷으로 일부러 배를 감추느라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시작하죠.”고청민이 몸을 뒤로 젖히더니 얘기했다.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옆방에서 걸어 나와 심지안을 데리고 옆 방으로 갔다.방안에는 준비해 놓은 초음파 기계를 포함한 수많은 의료 기계가 있었다. 그들은 능수능란하게 심지안의 몸을 검사하고 있었다.“이제 양수를 채취할 수 있어요.”“좋아요.”고청민은 잠시 멈칫했다.“깨난 후에 주사 자국을 발견하지는 않겠죠?”“그럴 일은 없습니다. 우리 A 국에서는 임신 기간의 검사들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마취한 후 쓰는 바늘은 아주 가는 바늘이기에 눈으로 봐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고청민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일을 진행하게 했다.홍지윤이 그의 옆에 서서 얘기했다.“비행기는 준비됐어요? 우리는 양수를 가지고 저녁이 되기 전에 제경으로 돌아가야 해요. 임시연은 오후 다섯 시에 유전자 검사를 하니까 시간을 잘 맞춰야 해요. 일 초라도 어긋나서는 안 돼요.”그렇지 않으면 일이 틀어진다. 이미 임시연의 유전자 검사를 맡은 의사를 매수했지만 진짜는 진짜고, 가짜는 가짜니까.심지안의 양수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린다.“비행기는 위층에 있어요. 지안 씨는 언제 깨어날 수 있죠?”의사가 고개를 돌려 얘기했다.“반 시간이면 됩니다.”고청민은 사무실로 돌아와 창문을 열고 환기해 냄새를 없애고 다시 닫았다.반 시간 후, 천천히 눈을 뜬 심지안은 고청민과 눈이 마주쳤다.“깼어요?”심지안은 멋쩍어하며 얘기했다.“죄송해요. 왜 이러지... 저도 모르게 피곤해서 잠이 들었네요.”“괜찮아요. 나도 잠시 눈 붙었어요.”고청민은 테이블 위의 향초를 들어서 보여주며 얘기했다.“숙면에 좋은 거라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