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는 자신에게도 불똥이 튀다니 심지안은 어이가 없었다.“아내도 있고 애인도 있고 생활이 다채로운 삼촌과는 비교할 수 없죠.”성연신은 얇은 입술에 조롱을 머금고 한 마디 한 마디 독한 말을 내뱉었다.성형찬은 옆에 있던 성수광의 실망한 눈빛을 느끼고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성연신은 성형찬과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 서백호에게 분부하고는 심지안과 함께 자리를 떴다.성연신이 가자 성형찬은 뻔뻔스럽게 성수광에게 말했다.“아버지, 여기서 편안히 치료받으세요. 병원비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내드릴게요.”“이 병원의 절반은 내 것인데 네가 필요하겠니?”“아버지, 저 지금 효도하려는 거잖아요. 최근 아버지 건강도 안 좋으신데 저에게 따지지 마세요. 저도 밖에서 다른 여자 만나는 건 잘못된 일이란 거 알아요. 잘못했어요.”성수광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백연이와는 이혼했어?”“아니에요. 20년 지기 부부인데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이혼하겠어요.”성형찬은 겉으로는 옛정을 생각하는 척하지만 사실상 그는 백연과 이혼하기 싫은 게 아니라 백연에게 재산분할을 해주기 싫었다.“내연녀와는 연락 끊었어?”“네. 끊었어요.”“네가 그래도 너무 멍청하지는 않구나. 백연에게 잘 사과하고 앞으로 착실하게 살아.”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 이혼하면 양쪽 모두 다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이득도 얻을 것이 없었다.“네, 아버지 말씀이 맞아요.”성형찬은 어느 정도 상황이 나아진 듯하자 멋쩍게 입을 열었다.“아버지, 아버지 명의의 펀드 부동산을 저에게 맡겨주세요. 제가 잘 관리할 테니 아버지는 안심하고 병 치료나 하세요.”성수광은 숨이 막혀 쓰러질 것 같았다.“이게 네가 오늘 온 목적이냐?”성형찬은 성수광의 눈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피했다.“아버지, 아버지의 병이 날로 심해지고 있어요. 마지막에 유산으로 남기는 것보다 지금 저에게 줘서 이윤 가치를 최대로 발휘하는 것이 낫죠.”“썩 꺼져. 콜록콜록콜록.”성수광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오장육
총경리 사무실에는 제일 먼저 성수광이 앉았다가 후에는 성연신의 아버지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였고 지금은 성연신이 관리하고 있었다.조상 대대로 내려왔지만, 성형찬이 앉게 되는 일을 하루도 없었다.성연신은 보광 그룹을 인수한 뒤로부터는 이곳에 거의 오지 않았다.그런데도 성수광은 여전히 성연신을 믿고 총경리 자리를 성형찬에게 넘겨주지 않았다.능력이 안 된다고 해도 참을 수 있었다. 그도 그렇게 큰 야심은 없었다. 성원 그룹을 지킬 수 있고 그는 이사회에서 발언할 권리만 있으면 됐다.하지만 성연신은 욕심을 부리며 먼저 성여광을 내쫓았고 이어서 성형찬도 내쫓았다.이건 분명히 그들 가족을 죽이려는 게 아니고 뭐겠는가!더 참으면 그는 호구가 되는 것이다.총경리 사무실은 이중 비번으로 되어있었는데 그는 모두 알고 있었다. 성연신이 바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형찬은 한번 시도해 보자는 마음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했다.“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그는 눈앞에 열린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안에는 불을 켜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귀신이라도 숨어있을 것 같았지만 일단 발을 들여놓았으니 뺄 수가 없었다.성형찬은 문 앞에 몇 초 정도 서 있다가 발을 내디디고 안으로 들어갔다.이 모든 것은 성연신이 자초한 일이다. 그가 잘 살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도 잘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다.금고 비번도 그는 알고 있었다. 성연신의 아버지가 자살한 뒤 성수광이 그에게 잠시 관리를 맡기며 그에게 알려줬었다. 성형찬은 순조롭게 금고 안에 있던 서류들을 손에 넣었다.연말에 발표될 프로젝트 칩 및 각종 기밀 데이터가 있었다.성형찬은 성연신이 이렇게 방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의기양양 해했다.칩은 가져갈 수도 없고 인쇄할 수도 없었기에 그는 재빨리 USB에 복사했다. 그러고는 개발팀의 성과 데이터를 가지고 나가서 송준에게 문자를 보냈다.“손에 넣었어요.”다음 날 아침. 성원 그룹의 비서는 총경리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사용한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상
성연신은 웃긴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뭘 그렇게 깜짝 놀라요? 우리 결혼식 끝나고도 중정원에서 사는 줄 알았어요?”“왜 안 돼요?”심지안이 발가락을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중정원도 살기에 아주 편해요.”“중정원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괜찮지만, 부근에 학교가 없고 앞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학교 다니기에 불편해요.”심지안은 입을 살짝 벌리며 이내 깨달은 듯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성연신을 쳐다봤다.“임시연 씨 아이를 위해서 구매하신 거예요?”“그녀는 아직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았어요.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나의 아이라고 할 수 없어요.”성연신은 생존욕이 충만했다.“그럼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만약 연신 씨 아이라면 지금 장식하는 건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아기방도 몇 칸을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는데.”심지안은 참지 못하고 비웃었다. 그녀는 그가 짜놓은 아름다운 미래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항상 그들 사이의 위기를 똑똑히 인식해야 했다. 임시연이 요 며칠 동안 잠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임시연의 존재를 잊을 수 없었다.성연신은 그녀의 말속에 말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그래요. 지안 씨말대로 할게요. 그때 가서 지안 씨가 몇 개의 어린이 방을 만들고 싶으면 만들면 돼요.”심지안이 대답했다.“… 고마워요.”“아니에요. 지안 씨가 기뻐하면 됐어요.”성연신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민첩한 그라도 여자를 달래는 데는 둔했다.그는 신혼집에 대해 원래 아무 느낌도 없었다. 아무리 큰 집이라고 해도 잠자는 곳이라고 생각했다.조용하고, 편안하고 이 두 가지로 충분했지만, 그는 자신의 여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심지안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고 그는 간섭하지 않으려 했다.심지안은 겉으로 웃어 보이며 자신의 손을 빼려고 했지만 성연신이 깍지를 끼고 있어서 빼기 어려웠다.‘미치겠네. 이 남자는 나의 말속에 말을 이해 못 하는 건가?’성연신의 커다란 몸이 갑자기 다가왔다. 그는 그녀의 몸
성연신은 가볍게 눈썹을 치켜뜨며 슬리퍼를 그녀의 발 옆에 놓았다.“가서 세수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아침 먹어요. 다 먹으면 회사에 데려다줄게요. 저 내일 성남시에 한 번 다녀와야 해요. 신현아가 퇴원했어요. 요 며칠간에 지안씨를 찾아갈 거예요.”심지안이 “네.”하고 대답하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입술을 오므렸다. “며칠 뒤에 저도 프랑스로 출장을 갈 수도 있어요. 가서 봐야 할 프로젝트가 있어요.”“며칠 가 있어요?”“두 주일 정도요.”그녀는 성연신이 동의하지 않을까 봐 일부러 기간을 짧게 말하며 몰래 그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성연신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그렇게나 오래 있어요?”“네… 조금 오래 있어요. 하지만 프로젝트 투자를 하려면 잘 고찰해야 해요. 저도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왔다 갔다 하는데 지체하는 시간이 좀 길 뿐이죠.”이 말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고찰과 학습은 진실이다. 배가 커지면 매일 얼굴 보는데 분명히 들킬 것이다. 고청민의 말이 맞았다. 차라리 이 기회를 틈타 나가서 한동안 있는 것이 나았다. 임시연이 유전자 검사를 마친 후 대답을 듣고 돌아가도 늦지 않았기에 떨어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일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정말 끝내야 한다면 그렇게 괴롭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신현아와 함께 가요. 전 여기 일을 다 끝내고 프랑스로 갈게요.”성연신은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선진 그룹은 설립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현재의 시장 발전 속도에 따르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곧 도태될 것이다.발전하고 강해지려면 학습 경험이 없어서는 안 된다.“연신 씨는 올 필요 없어요. 저도 연신 씨가 해야 할 일이 많은 거 알아요. 그리고 임시연도 곧 유전자 검사를 하는데 연신 씨는 여기 남아서 결과가 나오면 제일 먼저 저에게 알려줘요.”게다가 그녀가 잔꾀를 부리며 못된 짓을 하는 것을 방지해야 했다.성연신의 눈빛이 변했다.“그러면 신현아를 데려가요. 그녀가 보호해 줄 거예요.”“걔 프랑스어
김광은 서명한 수표를 성형찬에게 건네주었다.“USB 말고 다른 데이터들은요?”성형찬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제가 은행에 가서 돈을 빼면 기밀문서를 드릴게요.”김광은 표정을 싹 바꾸며 송준을 쳐다봤다.송준은 손을 흔들며 상관없다는 듯이 얼굴에 웃음을 띠며 묘하게 기괴한 표정으로 말했다.“급할 거 없어요. 가서 확인해 봐요.”그는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네. 그럼 이렇게 하죠.”성연신과는 다르게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에 성형찬은 만족했다.송준은 USB를 들고 차를 타고 사라졌다.성형찬이 가려고 할 때 갑자기 많은 기자가 몰려들었다. 무수한 플래시가 눈이 부실 정도로 그를 향해 터졌다.성형찬이 욕을 내뱉기도 전에 그의 손목은 차가운 무언가에 고정됐다.아래를 내려다본 그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누가 내게 수갑을 채운 거야!”“우리는 제경 경찰청 경찰입니다. 절도 혐의로 지금 당신을 체포합니다.”반대편에서 수갑을 든 경찰이 간신히 기자 더미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누가 절도했어. 난 아니야. 내가 너를 명예 훼손죄로 신고할 수도 있어!”“성연신 씨가 성원 그룹에 몰래 잠입한 CCTV 영상을 저희한테 제출했습니다.”성형찬은 위축된 채로 자신이 왜 들켰는지 몰랐다.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건 제집이에요. 제가 제집에 들어가도 문제가 되나요?”경찰은 근거를 쥐고 말했다.“형찬 씨는 이미 일주일 전부터 성원 그룹의 일원이 아니었습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그것도 절도 행위입니다.”성형찬은 말문이 막혔다.곧이어 다른 경찰 몇 명이 연달아 도착해서 기자들을 밖으로 내쫓고 성형찬을 경찰차에 태웠다.성형찬은 수표를 꼭 쥐었다. 그는 상황이 복잡한 틈을 타서 수표를 테이블 아래에 끼워 넣었다.뒤이어 성여광이 경찰의 통지를 받고 경찰청에 도착했다.성형찬은 수표를 숨긴 위치를 몰래 성여광에게 알려주고는 작은 목소리로 자백했다.“전부 꺼내 달러로 바꿔서 스위스 은행에 입금하고 할아버지한테 말해서 날 꺼내 달라고 해.”성여광
금호그룹 대표사무실.송준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부자들이 기밀문서를 빼돌린 성형찬에게 빈정대는 말들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있었다.입가에 웃음을 지은 그는 통쾌하기 그지없었다.김광이 USB를 들고 들어왔다.“송 대표님, 방금 개발팀에서 USB에 있던 내용들을 검토했습니다. 그쪽 말로는 계획서가 완벽하지 않고 조금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창의력도 좋고 실용적이어서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만 우리의 것으로 녹여내면 다음 달 시에서 승인하는 프로젝트는 우리 금호의 것이 될 겁니다.”송준은 상당히 만족했다. 성연신의 사업 재능은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아래 직원들한테 진도를 맞추라고 해.”“네.”“성형찬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감옥에 있는 놈들이 보살펴 줄 테니까.”“알겠습니다. 아, 대표님. 그 의사가 어제 전화를 하고 온 것 같습니다. 성수광 씨를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들킬 뻔했습니다. 성연신이 벌써 의심하기 시작한 것 같고요.”송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깟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 못 하는 놈. 한 달만 더 시간을 줘. 늙은이를 죽이지 못하면 아내와 아이를 만날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해.”그 시각, 병원.장 의사는 김광이 내린 마지막 통지를 받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성수광의 처방에 약을 더 많이 쓰고 간호사에게 주었다.간호사는 머리를 저었다.“성수광 어르신은 이미 퇴원했어요. 백호 아저씨께서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장 의사는 삽시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뭐... 뭐라고...”“집에 일이 있어서 당분간은 병원에서 지내기 어려우시대요. 그래서 앞으로 어르신께서 드실 약은 저택으로 보내달라고 하셨습니다.”“그게 다야?”“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안색이 안 좋아요.”그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괜찮아...”...심지안은 프랑스에 가기로 결정했고 고청민과 얘기해 이틀 후의 비행기표를 샀다.고청민은 학교에 수업이 있어서 이틀 늦춰서 가야 했다.저녁에 본가에서 밥을 먹는데 성여광이 왔다
문밖에 있던 심지안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쓸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성수광은 기침 몇 번을 하며 말했다.“됐어, 마음대로 해. 하지만 말해두는데, 만일 그 아이가 너희 두 사람 관계에 영향을 준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지안 씨는 이미 동의 했어요. 지안 씨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성수광은 성연신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마음이 넓은 게 아니야, 너를 사랑하니까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는 거야.!”“지안 씨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두 배로 더 잘해 줄 겁니다.”성연신은 수려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저희에게도 아이가 생길 거니까 두 아이에게 서로 친구가 생기는 것도 좋은 일이지 않습니까.”성수광은 손을 흔들며 그에게 나가라고 했다.“지안이를 불러.”성연신은 이에 응했고 방문을 열자마자 밖에 있던 심지안과 눈이 마주쳤다.그를 바라보는 심지안의 눈빛은 차가웠고 얼굴에는 불쾌한 감정이 가득했다.그녀는 이복형제를 싫어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괜찮겠지만 커서 세상에 대해 알게 되면 자연스레 총애를 다투는 일이 생길 것이다.심지안은 자기가 임시연의 아이를 성심성의껏 보살피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안아, 이리 오거라.”심수광이 그녀를 향해 손을 저으며 인자하게 말했다.“너에게 줄 물건이 있어.”심지안은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허리를 곧게 펴고는 성연신을 지나 싱글벙글 웃으면서 들어섰다.그리고 쾅 하고 힘껏 문을 닫았다.거센 바람이 성연신의 얼굴로 불었는데 마치 소리 없는 따귀 같았다.성연신은 어두운 낯빛으로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굳게 닫힌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성수광이 노랗게 바랜 편지를 건네며 말했다.“저놈 아비가 남긴 유서야. 이제 너한테 줄 때가 된 것 같구나. 난 기껏해야 몇 년만 더 살다 갈 것 같다.”장기 노화는 좋은 의사를 찾으면 나아질 수도 있지만 원래대로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할아버지께서는 또 연세가 있으셔서 큰 상관이 없었다.“할아버지... 그런 말씀 하지
심지안이 물었다.“내가 어렸을 때 제일 궁금했던 게 뭔지 아세요?”성연신이 움찔했다.“네?”“왜 나는 심연아와 아빠를 공유하고 있지?”그녀는 창가에 서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창밖의 밤하늘을 보며 말했다.심전웅의 무관심, 심연아의 괴롭힘, 은옥매의 겉과 속이 다른 모습.시간이 흘러도 심지안에게는 여전히 그날들이 눈에 선했다.그녀의 아이도 그녀와 같은 운명이어야 하는 건가.성연신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말했다.“아이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심지안은 그를 밀어내며 물었다.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알면 어때요. 임시연은 그 아이를 키울 기회를 놓쳤고, 당신에게는 감사하게 생각할 텐데.”임시연이 그런 더러운 일들을 벌이지 않았다면 아이를 그녀에게 맡겨서 키우게 했을 것이다.하지만 임시연은 그럴 자격이 없었다.“그건 그저 당신의 생각이에요.”“약속할게요. 임시연의 아이가 당신을 거역하는 일도 없을 거고 우리의 아이를 괴롭히는 일도 없을 거예요.”“하지만 제가 싫어요!”심지안은 눈살을 찌푸렸다.“다른 사람의 새엄마가 되기 싫다고요.”성연신이 말했다.“새엄마가 아니에요. 당신은 그 애의 엄마예요. 전에 약속 했잖아요.”심지안은 그를 노려보다 힘이 빠져 유서를 건네며 말했다.“알겠어요. 유서나 빨리 확인해요.”성연신도 더는 싸우고 싶지 않아 편지봉투를 건네받았다.글씨체는 힘이 있었고 편지지는 노랗게 바랬으며 접힌 자국도 선명했다.심지안은 성수광이 이 편지를 몇 번이나 열어보며 읽어봤다는 것을 편지를 건네받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장담하건데, 어르신도 아들의 죽음을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성연신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읽기 시작했다.「2020년 1월 5일, 송석훈은 내가 사랑하는 남하영을 빼앗아 갔다. 남편으로서 아내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로서 아이의 엄마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나는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실패한 사람이다. 가정을 지키지 못한 나는 가족을 볼 면목도,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