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나 혼자가 아니라 유진이하고 같이 갔어요.”그녀는 앞뒤 가리지 않고 아프면 병원부터 달려갔다.여기서 문제는 성연신이 예리하다는 것이다. 그녀가 방금 1초라도 머뭇거렸다면 그는 분명 이상함을 눈치 챘을 것이다.“진유진하고 함께 갔다고요?”“네 네. 유진이가 생리불순이라 병원에 같이 가달라고 해서요.”심지안은 약간 죄책감이 들어 코를 만지며 말했다.“아까는 유진이가 옆에 있어서요. 알잖아요. 여자들은 그런거 민망해 하잖아요. 프라이버신데 내가 마음대로 남자한테 말하는 것도 좀 그렇고.”성연신이 눈살을 찌푸렸다.“생리불순?”“네네.”‘유진아 미안해. 베프가 어려운데 이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한동안 말없이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밖에는 마지막 석양이 지고 있었다. 집안은 어두컴컴했다. 성연신은 어둠속에 갖힌듯이 온몸에 온기가 하나도 없는 것같았다.심지안은 안절부절못하며 그의 눈을 똑바라 바라볼 수 없었다.“나 먼저 가서 샤워할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겁에 질려 도망쳤다.심지안은 성연신이 자기를 쉽게 놓아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평소와 다른 행동이 묘하게 불안했다.샤워를 절반쯤 했을 때 심자안은 문득 핸드폰을 현관에 두고 가져오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그녀는 서둘러 몸을 닦은 뒤 밖으로 나갔다.하지만 결국 한발 늦었다. 성연신이 이미 현관에서 손에 그녀의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심지안은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본능적으로 뛰어가서 핸드폰을 뺏었다.화면에 고청민과 5분 동안 통화한 기록이 떠 있었다.고청민이 그녀에게 전화했는데 그것을 성연신이 받았다.살려주세요. 어떻게 이런 우연히!심지안은 급하게 설명했다.“고청민이 아마 내가 말한 쥬얼리 제작 문제 때문에 전화한 걸 거예요. 다른 이야기는 나눈 적 없어요.”“고청민이 오늘 오후에 같이 있었다고 하던데요.”성연신이 차갑게 말했다.“네? 불가능해요. 그럴 리가 없어요.”심지안의 마음속에서 고청민은 겸손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심지안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긴 속눈썹이 눈빛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서 웃음을 터트렸다.이것이 그녀가 선택한 것이니 견뎌야 했다.힘든 하루였고 그녀도 지쳐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었다.잠을 자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것이다.다행히 이번 달이 마지막이다.생각하다가 짧은 안도감을 느낀 뒤 더 깊은 고민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성연신은 미친 듯이 차를 몰고 성원그룹에 도착했다.마침 비서가 하반기 기업 프로젝트 계획서를 갖고왔다.성연신은 감히 진성태의 회사가 신청한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성연신은 크게 화를 내며 만년필로 진성태의 이름에 X자를 쳤다.그의 힘이 너무 강해서 종이가 찢어졌다.“지시 사항 통지하세요. 지금부터 성원그룹에서 진성태는 블랙리스트에 넣습니다. 현재 진성태와 협력하고 있는 회사들도 성원그룹과 협력할 기회는 없을 겁니다.”비서는 깜짝 놀랐다. 대표님은 지금 비틀거리는 진성태를 아예 무너뜨리겠다는 것이었다.진씨 가문은 이제 제경에서 살아남기를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이다.성연신은 비서를 올려다보았다.“이해가 안 됩니까?”“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짧은 시간 안에 진성태의 회사는 수많은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을 것이다.직원 전원이 그 자리에서 해고 되었고 실업난에 빠졌다.진성태는 엉망이 된 회사를 보더니 휘청하며 바닥에 쓰러졌다.성연신은 어떻게 이렇게 독할 수 있을까? 수천억을 손해 보게 만든 것으로 모자라 아예 사지로 내몰았다.진성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성원그룹으로 가서 따져보기로 했다.아쉽게도 맞은편에서 오는 트럭에 치여 사고가 났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구급차에서 생명이 위험하다는 통보를 받았다.성연신은 이 소식을 이진우의 모델하우스에서 들었다.연어회를 먹던 장학수는 큰소리로 웃었다.“쯧, 인과응보야. 벌을 빨리도 받았네.”하지만 그도 변호사가 된 이후로 최소한의 기준도 없는 사건들을 많이 맡았다.다음 날 절에 가서
성연신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장학수에게 말했다.“끊어 버려.”“응.”장학수는 1초도 더 낭비하지 않고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그런 다음 핸드폰은 소파에 던졌다.“넌 녹음 펜이 바꿔치기 당했다고 생각하는 거야?”이진우는 궁금해서 물었다.오늘 진희수에게 그런 일이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기에 모두 영문을 몰랐다.“죽은 자는 말할 수 없어. 확실하지 않아.”성연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런 소식도 없는 핸드폰을 보니 짜증이 났다.‘바보 멍청이 밤새도록 나를 찾지도 않고 많이 컸네.’손남영은 그의 기분이 안 좋은 것을 눈치채고서 술잔을 들고 그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우리가 1년에 몇 번이나 이렇게 다 모이겠어? 기분 좋게 마시면서 놀자.”성연신의 머릿속엔 온통 심지안 뿐이었다. 애초에 손남영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닥쳐.”“여자 때문에 이럴래?”이진우는 어이가 없었다. 예쁘장한 잘생긴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자기의 좋은 친구가 왜 이렇게 변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는 아직 심지안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하지만 예쁘장한 외모에 분위기는 괜찮아 보였다.고로 여자는 옷과 같고 친구는 손과 발 같은 존재라는 것이 네 명의 공통적인 좌우명 아니었나?성연신은 도도한 태도를 바꾸며 진지하게 말했다.“너희는 몰라. 결혼을 해봐야 알지. 집안엔 여자가 있어야 해.”“아무튼 난 결혼 안 할 건데. 그렇지, 학수야?”이진우가 타트를 던지고 있는 남자에게 눈썹을 치켜 올렸다.“우리 둘이 파트너 한 명만 찾으면 되지.”몸이 필요할 때 데리고 놀면 된다.“꺼져. 난 게이가 되고 싶지 않아.”“지안 씨가 그렇게 신경 쓰이면 전화해 봐.”손남영이 보다못해 말했다.“고개만 숙이면 해결은 문제도 아니야.”성연신의 눈썹이 꿈틀했다.“내일 지안이가 병원에 가서 대체 뭘 했는지 알아봐야겠어.”“너 지안 씨 감시하니?”‘감시’ 두 글자가 너무 날카로워 성연신은 눈살을 찌푸렸다.“아니.”“그럼, 그러지 마. 지안 씨도 거짓말
성형찬은 세차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는 증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난 성원에서 버려진 적 없어요. 봐요. 아직도 성원의 별장에서 살고 있잖아요. 전 주식도 있다고요.”성형찬의 말에 남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주식이요? 그건 성연신이 당신을 모욕하는 거예요. 그렇게 자신을 속이면 재미없죠.”일반인에게 성원 그룹의 주식 1%는 한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성형찬에게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과 같았다. 이번 생은 더 이상 일어날 기회가 없었다. “성연신과 성원을 하나로 보면 안 돼요. 전 성원을 배신하지 않을 거예요.”성형찬은 거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성연신을 발밑에 두고 싶었다. 하지만 성원을 망치려는 것은 아니었다. ‘성원은 내꺼야.’성여광에게는 지금 몇천억이 있었다. 아직 성원을 팔아먹을 수준까지는 아니란 소리였다. 남자는 여유롭게 명함을 남겼다.“급할 건 없어요. 필요할 거라 믿어요.”남자는 몸을 일으켜 차에 앉아 자리를 벗어났다. 성형찬은 명함에 쓰인 송준이라는 글자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서랍에 넣었다. 이때, 백연이 성수광을 데리고 기세등등하게 걸어들어왔다. “아버님, 저 어떡해요. 제가 이 집에 시집와서 며느리로 열심히 20여 년을 살았어요. 형찬 씨는 새살림을 차린 것도 모자라 저와 이혼하겠대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백연은 성형찬과 진희수가 호텔에 간 사진을 받은 후, 단서를 따라 성형찬이 몇 년간 여대생을 스폰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형찬이 처음 여대생과 관계를 맺었을 때, 여대생은 고작 고1이었다. 성여광보다도 한 살 어린 나이였다. ‘짐승 같은 자식!’성수광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 말이 다 사실이냐?”“제가 이혼하려는 건 백연이 밤 중에 식칼로 하마터면 절 죽일 뻔했기 때문이에요.”성형찬은 분노로 몸을 덜덜 떨었다. “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죽을 뻔했다고요. 백연은 신경 쓰지 마세요. 이혼 꼭 할 거니까.”“해야지, 꼭.”성수광이 호통쳤다
늘어지게 낮잠을 잔 심지안은 일어나 토스트와 따뜻한 우유를 마셨다. 그녀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제 싸운 후 지금까지, 성연신은 그녀에게 연락 한 통 없었다. 심지안은 섭섭한 기분이 들었지만 성연신을 탓하진 않았다. 어쨌든 그녀가 먼저 거짓말을 한 거니까. ‘회사로 찾아갈까?’‘내가 먼저 사과할까?’‘예전처럼 달래볼까?’심지안이 한참 머리를 굴리던 중, 벨이 울렸다. 심지안은 성연신이 찾아온 줄 알고 눈을 반짝이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심지안 씨 되시죠?”문 앞엔 정정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네. 누구시죠?”“대표님께서 심지안 씨 맥을 짚어보라고 하셔서요. 이건 제 자격증이에요. 그리고 여긴 주민등록증. 확인하시고 문제없으면 시작할게요.”심지안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연신 씨가 선생님께 저를 진찰해 달라고 했다는 건가요?”“네. 괜찮아요. 생리불순은 한약 몇 첩 마시면서 관리만 잘하면 돼요. 전혀 긴장할 거 없어요.”눈을 깜박이던 심지안은 드디어 이해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인간이, 생리불순이 진유진이 아니라, 나라고 생각하는 거야?’‘내가 얘기하기 뻘쭘해서 자기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그래서 따로 의사 선생님을 집으로 부른 거고?’의심이 확신이 되자 심지안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진찰 안 하셔도 돼요. 전 아무 문제가 없거든요. 돌아가세요.”진찰을 받으면 모든 것을 다 알게 될 텐데. 심지안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건 안 돼요. 전 이미 돈을 받았거든요.”“괜찮아요. 제가 연신 씨에게 얘기할게요.”의사는 심지안의 말에 반신반의했다. 본인이 진맥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의사를 돌려보낸 심지안은 고청민에게 연락했다. 고청민은 수업 중인 듯 교수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말했다. “지안 씨, 무슨 일이에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지금 바빠요? 제가
정욱은 빨라진 성연신의 걸음을 따라 최대한 그의 뒤를 따라갔다. 문 앞에 다다르자,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발신자가 진유진이라는 것을 확인한 정욱은 발걸음을 멈추고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대표님, 저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시면 불러주세요. 문 앞에 있을게요.”성연신은 정욱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문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심지안을 향했다. 심지안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열심히 데이터를 보고 있었다. 살짝 찌푸린 미간이 그녀가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보여줬다. 그녀의 예쁜 옆선과 작고 오뚝한 콧날은 완벽한 라인을 형성했다. 젤리처럼 탱탱한 빨간 입술은 유혹적인 매력이 흘러넘쳤다. 성연신이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몇 시간 못 본 사이, 더 예뻐진 것 같았다. ‘그래도 양심은 있네. 찾아올 줄도 알고.’인기척을 느낀 심지안이 고개를 들어 성연신을 쳐다보았다. “일 끝났어요?”“네.”사실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늘 회의는 2시간 이상이 걸리는 큰 회의였지만 성연신이 일찍 끝낸 것이었다. 심지안은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전부에요?”“말은 똑바로 하죠. 거짓말한 건 제가 아니라 지안 씨예요.”“알아요.”심지안은 회사로 오는 길에 이미 핑곗거리를 전부 생각해 뒀다. “인정할게요. 생리불순은 진유진이 아니라 저예요. 제가 뻘쭘해서 얘기하지 못한 거예요.”심지안의 말에 성연신은 사르르 마음이 풀렸다. 그가 말했다. “제가 지안 씨에게 보낸 한의사는요? 안 갔어요?”“왔었어요. 제가 병원에서 이미 처방받아서요. 약을 더 먹을 수도 없어서, 돌아가라고 했어요.”“그 한의사님 유명하신 분이에요. 일단은 그분 말씀대로 하고, 효과가 없으면 병원 가요.”“이미 약을 먹기 시작해서요. 마저 먹으면서 효과가 있는지 확인할게요.”심지안은 더 이상 이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어젯밤 청민 씨가 전화 와서 무슨 말 했어요?”성연신이 냉소
성연신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증거가 없이는 확신할 수 없잖아요.”성연신은 임시연과 오랜 시간 함께였다. 그는 그녀의 대인관계, 그녀의 친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전에도 아랫사람에게 조사하게 시켰지만, 아무런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하지 못했다. 어렸을 적 저질렀던 ‘연애사’만 제외하면 말이다. “가끔 여자의 직감은 그 어떤 증거보다 정확하다고요.”심지안은 울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성연신이 임시연을 감싸는 거로 생각했다. 심지안은 자기가 이곳으로 온 목적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똑똑똑.”노크 소리에 두 사람은 다툼을 멈추었다. “들어와.”정욱이 문을 열고 들어와 심지안을 쳐다보더니 어색해하며 성연신에게 말했다.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얘기해.”“그 대표님... 저 반차 써도 될까요?”성연신이 고개를 들었다. 가늘고 날카로운 두 눈이 정욱을 살펴보았다. “며칠 전에 이미 연차 다 썼잖아. 이번엔 왜?”몇 년 차 직장인인 심정안이 정욱을 공감해줬다. “쓰게 해요. 회사에 급한 일 있으면 제가 도와줄게요. 정 비서님도 연신 씨 옆에서 계속 긴장 상태잖아요. 가끔 반차 쓰는 게 뭐 큰일이라고.”“어떤 프로젝트는 정 비서가 맡고 있어요. 만약 문제가 생겨서 처리하려면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요.”“대표님, 저 멀리 가지 않을 겁니다. 금관성 내에 있을 거예요.”정욱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감출수록 성연신은 더 꼬치꼬치 캐물었다. 정욱의 가족과 친구는 모두 금관성에 없었다. 유일한 인간관계라곤 보광 중신의 사람들뿐이었다. “...진유진 씨가 남자친구 대역을 부탁해서요.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려야 한다고.”정욱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어 사정을 얘기했다. 그의 거무스름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당황하던 성연신은 심지안과 눈을 마주쳤다. 잠시 멍해졌던 심지안은 눈에 띄게 흥분했다. “정 비서님과 유진이가 언제부터?”전에도 두 사람이 썸 타는 분위기를 풍긴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빨리
심지안의 싸늘한 눈빛이 임시연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경 쓰지 마.”“하지만 보기만 해도 열불이 터지는걸.”진유진이 주먹을 움켜쥐며 당장이라도 임시연에게 다가가 싸울 것처럼 굴었다. “괜히 일 만들지 마. 조용한 게 나아. 이젠 더 이상 싸우고 싶지도 않아. 재미없어.”마지막 한 달이었다. 굳이 일을 만들어 임시연에게 기회를 줄 필요는 없었다. “하... 그래. 네 말대로 할게.”진유진이 실망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모님. 신생아 옷은 많이 사지 않으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아기들은 성장하는 속도가 빨라서 태어나자마자 입었던 옷은 2달쯤 지나면 더 이상 입을 수가 없거든요.”아기용품의 직원이 진심을 담아 건의했다. “이런 옷은 하늘색이든 초록색이든 전부 예쁘지만, 하나만 사셔도 충분해요. 고민되시면 아기 아빠에게 물어보세요.”손을 뻗어 조그만 아기 옷을 만지던 임시연은 무심코 쳐다본 척 가게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물어봐야겠어요.”그리고 그 말은 심지안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자리를 피하려던 심지안의 발은 바닥에 박혀버리기라도 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임시연은 점원 앞에서 전화한 것이 아니라 휴게실로 걸어가며 휴대폰을 들어 전화하는 척했다. 진유진이 입을 삐죽였다. “지안아 너도 연신 씨에게 전화해. 연신 씨가 설마 임시연을 거들떠나 보겠어?”심지안은 무슨 생각에선지 진유진의 제안을 동의했다. 그녀는 성연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딱딱한 안내 멘트는 마치 망치처럼 심지안의 가슴을 내리쳤다. 이때, 임시연은 휴게실에서 나오며 초록색 신생아 옷을 가리켰다. “이걸로 할게요. 포장해 주세요.”“네, 잠시만 기다리세요.”진유진은 충격에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젠장, 연신 씨가 임시연 전화를 받다니.”심지안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기 일이니까, 받는 것도 당연한 거지.”진유진은 말로 하기 어려운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