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신은 심지안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고청민을 훑어보았다.그 무거운 기운이 그들을 내리누르는 기분이었다.고청민의 피부는 매우 하얗고 기품과 몸짓은 다 우아했다.“여성은 사회적으로 약자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존중해 주고 보호해 줘야 하는 게 아닙니까?”성연신의 표정은 마치 눈 내리는 날처럼 차가웠다. 고청민의 화려한 입담에 넘어갈 그가 아니었다. 심지안은 이렇게 어색한 상황 속에서 화가 났지만 그대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심지안 뿐만이 아니라 고청민도 어색해질 것이다.심지안은 입술을 꽉 깨물고 약한 목소리로 얘기했다.“저 배고파요, 나가서 같이 밥부터 먹어요.”성연신은 심지안을 흘깃 쳐다보았다. 차가운 시선이 얼어붙어 있었다.심지안은 조금 겁이 났지만 그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다행인 것은 성연신이 반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본 고청민의 얼굴에는 온화함이 점점 사라졌다.심지안은 매우 힘들어 보였다.보아하니 그의 계획을 앞당겨야 할 것 같았다. ...심지안과 성연신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레스토랑으로 돌아왔다.진유진이 선을 보고 있을 때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지금 와서 배가 고팠다.음식이 올라오자 심지안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성연신은 심지안을 바라보며 화가 나기는커녕 웃음이 나왔다.‘밥은 잘 먹네.’테이블에는 채소볶음이 있었는데 꽤 맛있는 모양인지 심지안은 많이 먹었다.그리고 심지안이 또 그 채소볶음을 짚으려고 할 때, 성연신은 갑자기 그 음식을 자기 앞에 놓았다.음식에 손이 닿을 수 없었던 그녀는 그냥 다른 음식을 먹었다.성연신이 입술을 달싹이며 물었다.“보디가드는 어디 있어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한 채 반응하지 못했다.“방에 지안 씨랑 고청민 씨 빼고 보디가드 한 명 더 있지 않아요?”“있었는데, 일이 있다고 나갔어요.”성연신은 차갑게 웃음을 흘렸다. 하필 마침 성연신이 왔을 때 보디가드가 사라지다니. 심지안은 성연신을 보면서 천천히 젓가락을
성연신은 겨우 침착하고 채소볶음을 다시 앞으로 밀어주었다.“배불러요.”성연신은 눈썹을 까딱였다.“그러면 돌아가서 잘 거예요, 아니면 산책이라도 할 거예요?”“열 시가 넘었어요. 씻고 누우면 열한 시예요. 돌아가서 잘래요.”내일 아침 일찍 나가 놀아도 늦지 않았다.“네.”자갈이 가득 놓인 작은 길 위에는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가로등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는 점점 늘어졌다.“맞다, 백연 씨가 임시연 씨를 데리고 이곳에 온 거 알아요?”심지안이 갑자기 생각나서 성연신에세 물었다. 성연신은 귀찮아하며 대답했다.“지금 당장 떠나라고 할게요.”심지안은 확실히 그 두 사람이 보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지금은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 내일 얘기해 봐요.”“그럼 내일로 할게요.”기분 좋은 날,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그리고 자갈이 가득 깔린 길의 모퉁이에서 임시연이 걸어 나왔다.주먹을 꽉 쥔 그녀의 얼굴에는 악독한 표정이었다. 심지안이 착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다.뒤에서 몰라 성연신에게 고발하고 그를 이용하다니.임시연은 제자리에 서서 고민했다. 내일이면 바로 이곳에서 쫓겨날지도 몰랐다.이런 일을, 임시연은 막을 수 없었다. 백연은 아직 성연신과 싸울 능력이 되지 않는다.눈을 대굴대굴 굴리던 임시연에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백연이 얘기하기를, 성수광은 매주 금요일마다 습관처럼 친구들과 모인다고 한다. 임시연은 홍지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계획을 알려주었다.성연신에게 다가갈 방법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이번에야말로 성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할 것이다.홍지윤이 S에게 묻고 다시 결정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통쾌히 승낙했다.임시연은 의아해하면서 물었다.“안 물어봐도 돼요?”“괜찮아요. 성수광 씨는 항상 당신이 성씨 가문에 시집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인데 그냥 죽여버리는 것도 좋죠. 남겨두면 앞으로 곤란해질 거예요.”임시연이 나지막
심지안은 고개를 저었다.“됐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성연신은 그저 존재만으로도, 그 잘생긴 얼굴로 그녀를 기쁘게 해줬다.미모만 있다면 다른 부분에서 조금 모자라도 괜찮다. 성연신은 잠시 흠칫하더니 소매를 걷고 정욱 옆에 앉았다.“내가 할게.”정욱과 심지안은 모두 놀라서 굳어버렸다. 고귀한 남자가 이곳에서 새우를 까고 있다니, 어색했다.성연신은 남에게 새우를 까주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꽤 빠르게 까주었다. 첫 번째 새우는 모습이 처참했지만 두 번째 새우는 꽤 나아졌고 세 번째 새우는 완벽한 예술품 같았다.진유진은 제자를 가르치듯 미소를 지었다. 성연신에 대한 호감도가 살짝 올랐다.보아하니 심지안을 향한 마음은 진심인 것 같았다.심지안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릇에 놓인 새우들을 보고 노란 지폐 두 장을 꺼내며 얘기했다.“팁이에요!”성연신은 눈썹을 까딱거리다가 손을 뻗어 그 돈을 받았다.“감사합니다, 하지만 조금 적네요. 한 마리 당 20만 원이거든요.”표정이 굳어버린 심지안이 얘기했다.“차라리 가서 강도질해요!”“글쎄, 은행에 있는 돈이 다 내 거인데, 굳이 그럴 필요는...”“...”역시 부자의 삶은 부러웠다.“저기, 안녕하세요. 저도 새우를 까달라고 하고 싶은데 가격이 어떻게 되죠?”옆 테이블의 여자가 걸어와 부끄러워하며 성연신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게 뻔했다.정욱이 막아 나서며 얘기했디.“우리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놀란 여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다른 서비스라면 더욱 좋아요.”“???”성연신이 그런 서비스를 제공할 사람으로 보이나?심지안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죄송해요. 이미 제 사람이라서.”표정이 변한 여자는 심지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젊고 예뻤으며 입은 옷은 브랜드를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우라가 우아했다. 게다가 이런 최상의 남자를 산 여자라면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닐 것이다.여자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갔다.진유진은 크게 소리
심지안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성연신의 반응을 보려고 했다.성연신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임시연은 어딨습니까?”“안에서 검사받고 있어. 팔을 다친 모양이야.”“물건이 떨어진 게 우연입니까, 인위적인 원인입니까?”서백호가 다가와 대답했다.“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습니다. 사람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주변의 CCTV를 찾아보고 목격자를 찾아보니 한 일꾼이 의심됩니다. 인위적인 사고일 수도 있어요.”심지안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차라리 우연인 사고였으면 했다.“그 일꾼은 찾았어요?”“사람을 시켜 찾고 있습니다.”서백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임시연은 의사의 부축을 받고 나왔다. 그녀의 팔에는 커다란 멍이 들었다.“다행히 비켜 맞아서 큰 문제는 없습니다. 골절도 없고요. 아이스팩으로 얼음찜질을 해주면 됩니다.”임시연은 하얀 긴 원피스를 입고 또 하얗고 청순가련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정말 국민 첫사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표정이 어두워진 심지안은 시선을 내려 감정을 감추려고 했다.성연신은 바로 물었다.“네가 왜 을지로에 있어.”임시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살짝 억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정욱 씨가 나와 사모님께 통지하고 난 후, 우리는 각자 알아서 갈 길을 갔어. 내가 을지로에 간 건 이곳에 연주회가 있어서야.”그리고 그녀는 가방에서 연주회의 입장권을 꺼냈다. 성연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억울함과 원망이 섞여 있었다.마치 금방 싸운 커플 같았다. 여자가 남자를 원망하고 있는 듯했다.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심지안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임시연이 특별한 얘기를 한 것도 아니지만 이런 이상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싫었다.성연신은 그녀 손에 있는 연주회 입장권을 보고 형식적으로 대답했다.“잘 쉬어. 치료비는 성씨 가문에서 다 내줄 테니까.”임시연은 목이 막혀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나...”“정욱.”성연신이 임시연의 말을 끊었다.“성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백호 아저씨를 도와 그 일꾼을 찾아.”“알
성연신은 들어가다가 무언가를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 심지안을 향해 손을 저었다.“이리 와요.”예쁜 심지안의 눈은 별을 담은 것처럼 반짝였다. 몇 걸음 달려간 심지안은 손을 성연신에게 주었다.성연신이 심지안을 기다릴 사이에, 임시연은 혼자 앞으로 걸어가게 되었다.이곳이 익숙하지 않은 그녀는 어느 문으로 가야 화원에 가는지도 몰랐다.조금 어색해진 그녀였지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물었다.“오레오는 어디 있어? 연신아, 날 데리고 가줄래?”다른 사람이 입을 열기 전에 정욱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임시연은 겨우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얘기했다.“고마워요, 부탁해요.”정욱은 이상하게 임시연을 쳐다보았다. 성연신이 없을 때 임시연의 말투는 절대 이렇지 않았다.임시연이 떠나자마자 서백호가 돌아왔다.“일꾼을 찾았습니다. 바로 옆에 대기시켜 놨어요.”서백호는 잠시 멈칫하다가 또 얘기했다.“백연 님의 차가 들어오는 것을 봤습니다.”성연신은 귀찮아서 대답했다.“백연을 먼저 보내고 일꾼을 들여보내요.”“아버님, 제 편을 들어주셔야죠!”백연의 목소리가 먼저 저택을 울렸다.일부러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얘기하는 백연을 보면 정말 하늘이 무너진 줄로 알 것이다. 성수광은 귀를 가볍게 긁으며 성연신과 똑같이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나 아직 안 죽었다. 제사 지내는 것처럼 울지 마.”들어온 백연은 성연신을 보고 굳어버리더니 더욱 크게 울었다.“성씨 가문의 리조트가 개업해서 응원도 할 겸 갔더니 방을 남겨주지도 않고 사람을 시켜서 저를 쫓아냈어요! 이게 가족끼리 할 짓입니까?! 아버님, 여광이 일로 제게 화를 내면 안 되죠. 게다가 여광이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아요. 이제 집도 다시 찾아왔으니 피해 본 것은 없어요. 그래도 용서를 해줘야죠!”성연신은 차갑게 웃으며 사실을 또박또박 말해주었다.“사업을 응원하러 갔다면서 첫째, 돈은 하나도 내지 않고 둘째, 일부러 프런트의 직원을 난감하게 만들어서 리조트에 좋
백연의 소리는 매우 커서 화원에 있던 임시연까지 대화의 내용을 듣게 되었다. 백연이 떠나는 것을 들은 후에야 임시연은 화원에서 나왔다.성연신은 가볍게 임시연을 훑고 얘기했다.“백호 아저씨, 일꾼을 데려오세요.”임시연이 의아해했다.“무슨 일꾼?”“철통을 일부러 던진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요.”심지안이 임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임시연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발이 바닥에 붙은 듯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하지만 그 한순간일 뿐이었고 임시연은 빠르게 진정했다.홍지윤이 직접 나섰든지 아니면 사람을 시켰든지, 임시연은 나선 적이 없었다. 이 일을 아는 사람은 홍지윤 외에 없었다.임시연은 그저 마침 지나가던 행인이자 피해자였다.일꾼을 찾아온다고 해도 임시연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평소 같은 표정을 한 임시연이 부드러운 말투로 얘기했다.“일꾼이라면 배상금을 받지 말고 그냥 풀어줘요. 저는 마음이 약해서 다른 사람이 힘든 것은 못 보거든요.”심지안은 시선을 돌리고 입꼬리를 올렸다. 무슨 부처님 행세도 아니고. 그렇게 착하면 왜 굳이 와서 심지안과 성연신을 빼앗으려고 들겠는가.“돈을 배상하는 건 다른 문제야. 중요한 건 저 일꾼이 철통을 던진 것인지, 실수인지 고의인지 알아보는 거야. 불쌍하다고 풀어주기에 세상에는 저 사람보다 불쌍한 사람이 더 많아. 그럴 거면 자선 기금회를 만드는 게 나아.”성연신은 넓은 소파에 앉아 임시연의 말을 바로 반박했다.“네가 무슨 성모 마리아도 아니고.”임시연은 화가 나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수많은 고용인 앞에서 면박을 주다니, 앞으로 어떻게 이 저택에서 안주인 노릇을 하겠는가. 하지만 그녀의 실수도 있었다. 성연신은 약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그러니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심지안은 턱을 괴고 성연신을 향해 긍정의 시선을 보냈다. 이런 태도만 유지하면 되는데. 성수광도 꽤 만족스러웠다. 다음에는 이진우를 불러 같이 밥이나 한 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일꾼은 서백호를 따라 들어왔다.
심지안은 성연신과 시선을 맞추고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성수광은 가면을 쓴 여자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저 의심스레 그들을 보며 궁금해했다.“왜, 두 사람 아는 거라도 있어? 그러면 말이라도 해.”“아니에요.”성연신이 서백호를 향해 얘기했다.“할아버님을 모시고 휴식하세요.”서백호는 그렇게 했다. 성수광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저 부부간의 비밀인 줄 알았다.심지안과 성연신은 같이 방에 들어갔고 임시연은 혼자 그곳에 남아 식은땀만 줄줄 흘리다가 길게 한숨을 뱉었다.홍지윤은 너무 일 처리를 대충 했다. 목격자가 있으면 그대로 죽여버리지, 왜 살려둬서는....“내일 토지 경매가 있어요. 금호 그룹의 송준도 온다고 하니 내가 직접 가보려고요.”심지안은 그제야 알았다. “송준이 비밀 조직과 한패인가요?”성연신은 그저 심지안을 쳐다보았다.심지안은 의아해하며 얼굴을 만졌다.“왜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아니요, 그저 이제는 당신을 바보라고 못할 것 같아서요.”성연신의 차가운 눈에는 심지안을 향한 사랑이 가득했다.“이렇게 총명한데.”비밀 조직과 금호 그룹의 관계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심지안은 추측해냈다.역시 성연신의 여자였다.심지안은 입을 삐죽였다.“뭐래요, 난 원래 총명했어요. 저도 내일 나가요.”“네? 안 무서워요?”“그 사람들이 나를 계속 해치려고 드는데, 나는 나갈 용기조차 없으면 너무 찌질해 보이잖아요.”“찌질해도 괜찮아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만지며 얘기했다.“내가 지켜줄 거니까요.”심지안은 열심히 얘기했다.“혼자서 만나볼 게요. 연신 씨는 가끔 도와주면 돼요.”“내 아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성연신의 입꼬리가 말아졌다. 잘생긴 그의 눈은 심지안을 향한 편애가 가득했다.점심에 병원에서, 임시연은 본가 저택에 가서 오레오를 보고 싶다고 했다. 심지안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동의했다. 그리고 성연신도 그걸 알았다. 심지안은 성연신이 이러는 모습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글거려
심지안은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뒤늦게 알아채고 얼굴을 붉혔다.이 남자는 요새 머릿속이 온통 그런 일밖에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성연신은 그저 장난으로 놀리는 것이었다. 훤히 밝은 대낮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 날이 추워져 심지안 긴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널찍한 옷이 그녀의 몸매를 가려주었다.심지안은 임신한 것이 크게 알리지도 않았고 입덧도 많이 하지 않았다.샤워를 할 때, 나체 상태에서는 배가 조금 나온 것이 알리지만 옷을 입으면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지금 성연신과 같은 침대에 누워있지만 그가 발견하지 못할 정도다.성연신은 낮잠을 자는 습관이 없었지만 품에 따스하고 포근한 여자를 안고 있으니 마치 천연 수면제를 곁에 둔 기분이었고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화원에서 서백호는 고용인에게 당부했다.“어르신의 약이 곧 떨어지니 월요일에 병원에 가서 장 의사를 찾아 약을 가져와.”“네.”대답한 고용인의 시선은 가만히 서 있는 임시연에게로 향했다. 서백호도 임시연을 보고 불쾌한 어투로 얘기했다.“무슨 일이죠? 임시연 아가씨에게 차를 준비해 드리지 않았던가요?”임시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서백호가 얘기했다.“이런, 죄송합니다. 본가 쪽에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아서요. 제가 일이 너무 많아 소홀했습니다. 고용인들도 눈치가 빠르지 못했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찾아 보내 드리겠습니다.”임시연은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백호가 이렇게까지 얘기했으니 떠나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그저 억지로 웃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감사합니다.”서백호는 운전기사를 불러 임시연을 저택 정문까지 바래다주었다. 뒷짐을 쥐고 떠나는 임시연을 보며 경멸의 표정을 지었다.이 여자는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말하지 않았다면 성씨 저택에 눌어붙을 생각일지도 모른다.차에 앉은 임시연은 백미러로 서백호를 보면서 머리를 굴렸다.월요일에 약을 가지러 간다...그렇다면 약에 손을 써서 성수광을 해치워 버려도 된다!오후, 성연신은 전화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