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키스는 다다미에서 침대까지 이어졌다. 방 안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고 심지안은 몸이 나른해진 채 성연신을 밀어냈다. “오늘 어디 갔었어요?”“오지석이랑 성남시에 다녀왔어요. 당신 사진 올린 사람 찾았고 사진도 지웠어요.”심지안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 사람 누구예요?”“가면을 쓴 여자와 한패였어요. 하지만 밑에 있는 사람이라 아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심지안은 입술을 오므린 채 그를 쳐다보았다.“나한테 화났으면서 왜 날 도와준 거예요?”“화난 건 화난 거고 도와주는 거랑 상관없는데.”그녀는 마음이 복잡해졌다.“근데 난 왜 여기 가두어 둔 거예요?”“당신을 여기에 가둔 건 당신이 잘못을 반성하길 바라서였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왜 제일 먼저 나한테 말하지 않아요? 난 지안 씨 남자예요. 당신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의무가 있고 당신을 지켜줄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고요.”성연신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날 속인 것도 모자라 오지석에게도 날 속이라고 하다니. 심지안 씨, 당신 진짜 대단한 재주가 있네요.”심지안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 때문에 화난 거예요? 내가 진현수 씨랑 같이 사진이 찍혀서 화난 게 아니라?”“당신 생각에는 그래 보여요?”자신의 여자가 속옷만 입은 채 다른 남자와 껴안고 있는 걸 보았는데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그 가면을 쓴 여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잠시 후, 방 안은 조용해졌다.심지안은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가 화난 이유를 알게 된 그녀는 오해가 풀리자 먼저 다가가 그를 껴안았다. “다음에는 꼭 당신한테 제일 먼저 말할게요.”“다음은 없어요!”성연신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진현수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니까. “노력해 볼게요. 하지만 가면을 쓴 여자가 또다시 날 괴롭힐지도 몰라요.”그녀는 가면을 쓴 여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왜 자신을 노리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말을 듣고 성연신은 미간을 찌푸렸다.“새로 경호
진유진은 눈을 흘기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난 앞으로 전업주부가 될 마음이 없어요. 우리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차승원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나이가 들어도 난 싫어하지 않을 거니까. 여자들이라면 다 그렇게 되겠죠. 늙으면 못생겨지는 거 아닌가요?”심지안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자신이 자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자상하지 않아요?” 차승원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떤 남자가 어리고 예쁜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바람을 피우지 않겠다는 건 가정에 충성해서 그런 거예요.” “필요 없어요. 저 한 달에 4백만 원 이상 벌거든요. 연말에 배당금까지 나오면 연봉이 1억 가까이 돼요. 일 포기 할 생각 없어요. 남자가 날 먹여 살릴 일도 없고요. 차승원 씨, 여기까지만 얘기해요.”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진유진은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만약 엄마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두 집안끼리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그에게 사람이 되는 법부터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바로 이때,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고 차승원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일단 저녁부터 먹어요. 진유진 씨가 일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안 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진유진 씨 월급으로 가사도우미를 불러야 할 거예요. 우리 부모님은 연세가 있으셔서 아이를 돌봐줄 수 없어요.”“그럼 당신 월급은 어떻게 쓸 건데요?”“당연히 우리 부모님께 효도해야죠.”그 말에 진유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아이를 키우는 데 다 내 월급을 사용한단 말이에요?”‘이런 인간한테 아이는 무슨? 꿈이나 깨!’차승원은 턱을 치켜들고는 오만하게 굴었다.“난 학교 선생님이에요. 나중에 퇴직하면 퇴직금도 많이 받을 수 있다고요. 온 가족이 모두 나한테 의지해야 해요.”“180만 원으로 아이 하나 키우지 못하는데 나중은 무슨? 그리고 퇴직하고 몇 년 더 살 것 같아요? 그렇게 따지면 내 친구가 그쪽 40년 동안 먹여 살려야 하는
정욱은 코를 만지며 대답했다.“네.”...“유진 씨가 자꾸만 대표님한테 나쁜 남자라고 해서 불만이 많았어요.”심지안은 이해가 안 됐다. 불만이 많았다던 사람이 진유진을 난처하게 만들기는커녕 그녀를 도와줬으니 말이다. 성연신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한 두 시간쯤 늦는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녀는 기다리는 동안 진유진과 함께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곳에 가보기로 했고 얼마 안 돼서 고청민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그를 발견하고 눈빛을 반짝거렸다.“마침 볼일이 있었는데 잘됐네요.”고청민은 깨끗하고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봄바람처럼 잔잔한 웃음을 짓고 있어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말해요.”심지안은 진지하게 일의 자초지종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 주얼리들은 엄마가 나한테 남겨주신 거예요. 나한테는 아주 중요한 물건이에요. 당신이 날 도와 찾아줬으면 해요.”고청민은 눈빛을 반짝거리더니 청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매달 정기적으로 수거하는 주얼리가 너무 많아요. 전부 다 한데 보관해 두거든요. 전당포 이름 말고 주얼리 사진 갖고 있어요?”“아니요. 하지만 그릴 수 있어요.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고 있거든요.”“그래요. 그럼 그려서 줘요. 직원들한테 찾아보라고 할게요.”“청민 씨, 정말 고마워요!”심지안은 감정이 북받쳐 올라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고 얼굴에는 기쁨과 기대로 가득 찼다. 반면, 고청민은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아쉽지만 주얼리는 찾을 수 없을 거예요.’적어도 지금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심지안이 성씨 가문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그땐 생각해 볼 것이다. “여기 며칠 동안 있을 거예요. 내 방에 펜과 종이가 있으니까 시간 되면 와서 그려요. 인상이 있는 물건인지 한번 확인해 보죠.”심지안은 잠시 머뭇거렸다.‘남녀가 둘이 호텔 방에 있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녀의 생각을 눈치챈 고청민이 한마디 내뱉었다.“경호원도 있어요.”“그래요. 정욱 씨, 유
옆의 심지안은 구경거리를 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성연신은 리조트가 표면상으로는 보광 중신과 세움 주얼리의 공동 사업이지만 투자 금액을 보면 세움 주얼리에서 투자한 것이 더욱 많다고 했다. 백연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성연신에게 먹칠하는 것과 같았다.백연은 고청민을 보고 마른기침을 했다. 밖에서 체면이 깎이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목을 빼 들고 얘기했다.“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이 두 개밖에 없다니. 왜 몇 개 더 만들지 않았대?!”“이건 우리의 일입니다. 만약 사업에 참여하고 싶다면 주식을 사는 게 빠를 겁니다.”백연에게 주식을 살 돈은 없었다. 표정을 굳힌 백연이 얘기했다.“의견 하나 제출하는 것도 안 돼?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말 배우려는 마음이 없다니까. 어른들 말을 들을 생각이 하나도 없어보여.”“누구신데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제가 왜 모르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고청민은 날카로운 말투로 얘기했다.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심지안도 처음 보는 표정이었고 화를 감추고 있는 듯했다.오가는 사람이 많아지자 임시연은 점점 부끄러워졌다. 게다가 고청민과는 껄끄러운 사이었기에 임시연은 낮은 소리로 백연에게 얘기했다.“카운터에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휴게실에서 조금 기다려 보라고 하네요. 연신이가 걱정하겠어요. 괜히 트러블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괜히 먼저 고발이라도 하면 안 되잖아요.”심장이 덜컹 내려앉은 백연이 차갑게 심지안을 바라보며 임시연과 함께 휴게실로 갔다.심지안은 백연의 시선을 마주하며 억울함을 느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심지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그냥 구경을 한 것도 죄인가? 심지안은 고청민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들어섰다. 그러다 고청민의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쓸데없는 강박증이 도져서 저 흰 머리카락을 뽑고 싶었다.고청민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왜요?”“흰머리가 있어서요.”“그럼 뽑아줘요.”그렇게 얘기하며 고청민은 심지안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성연신은 일
성연신은 심지안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고청민을 훑어보았다.그 무거운 기운이 그들을 내리누르는 기분이었다.고청민의 피부는 매우 하얗고 기품과 몸짓은 다 우아했다.“여성은 사회적으로 약자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존중해 주고 보호해 줘야 하는 게 아닙니까?”성연신의 표정은 마치 눈 내리는 날처럼 차가웠다. 고청민의 화려한 입담에 넘어갈 그가 아니었다. 심지안은 이렇게 어색한 상황 속에서 화가 났지만 그대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심지안 뿐만이 아니라 고청민도 어색해질 것이다.심지안은 입술을 꽉 깨물고 약한 목소리로 얘기했다.“저 배고파요, 나가서 같이 밥부터 먹어요.”성연신은 심지안을 흘깃 쳐다보았다. 차가운 시선이 얼어붙어 있었다.심지안은 조금 겁이 났지만 그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다행인 것은 성연신이 반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본 고청민의 얼굴에는 온화함이 점점 사라졌다.심지안은 매우 힘들어 보였다.보아하니 그의 계획을 앞당겨야 할 것 같았다. ...심지안과 성연신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레스토랑으로 돌아왔다.진유진이 선을 보고 있을 때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지금 와서 배가 고팠다.음식이 올라오자 심지안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성연신은 심지안을 바라보며 화가 나기는커녕 웃음이 나왔다.‘밥은 잘 먹네.’테이블에는 채소볶음이 있었는데 꽤 맛있는 모양인지 심지안은 많이 먹었다.그리고 심지안이 또 그 채소볶음을 짚으려고 할 때, 성연신은 갑자기 그 음식을 자기 앞에 놓았다.음식에 손이 닿을 수 없었던 그녀는 그냥 다른 음식을 먹었다.성연신이 입술을 달싹이며 물었다.“보디가드는 어디 있어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한 채 반응하지 못했다.“방에 지안 씨랑 고청민 씨 빼고 보디가드 한 명 더 있지 않아요?”“있었는데, 일이 있다고 나갔어요.”성연신은 차갑게 웃음을 흘렸다. 하필 마침 성연신이 왔을 때 보디가드가 사라지다니. 심지안은 성연신을 보면서 천천히 젓가락을
성연신은 겨우 침착하고 채소볶음을 다시 앞으로 밀어주었다.“배불러요.”성연신은 눈썹을 까딱였다.“그러면 돌아가서 잘 거예요, 아니면 산책이라도 할 거예요?”“열 시가 넘었어요. 씻고 누우면 열한 시예요. 돌아가서 잘래요.”내일 아침 일찍 나가 놀아도 늦지 않았다.“네.”자갈이 가득 놓인 작은 길 위에는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가로등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는 점점 늘어졌다.“맞다, 백연 씨가 임시연 씨를 데리고 이곳에 온 거 알아요?”심지안이 갑자기 생각나서 성연신에세 물었다. 성연신은 귀찮아하며 대답했다.“지금 당장 떠나라고 할게요.”심지안은 확실히 그 두 사람이 보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지금은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 내일 얘기해 봐요.”“그럼 내일로 할게요.”기분 좋은 날,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그리고 자갈이 가득 깔린 길의 모퉁이에서 임시연이 걸어 나왔다.주먹을 꽉 쥔 그녀의 얼굴에는 악독한 표정이었다. 심지안이 착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다.뒤에서 몰라 성연신에게 고발하고 그를 이용하다니.임시연은 제자리에 서서 고민했다. 내일이면 바로 이곳에서 쫓겨날지도 몰랐다.이런 일을, 임시연은 막을 수 없었다. 백연은 아직 성연신과 싸울 능력이 되지 않는다.눈을 대굴대굴 굴리던 임시연에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백연이 얘기하기를, 성수광은 매주 금요일마다 습관처럼 친구들과 모인다고 한다. 임시연은 홍지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계획을 알려주었다.성연신에게 다가갈 방법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이번에야말로 성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할 것이다.홍지윤이 S에게 묻고 다시 결정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통쾌히 승낙했다.임시연은 의아해하면서 물었다.“안 물어봐도 돼요?”“괜찮아요. 성수광 씨는 항상 당신이 성씨 가문에 시집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인데 그냥 죽여버리는 것도 좋죠. 남겨두면 앞으로 곤란해질 거예요.”임시연이 나지막
심지안은 고개를 저었다.“됐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성연신은 그저 존재만으로도, 그 잘생긴 얼굴로 그녀를 기쁘게 해줬다.미모만 있다면 다른 부분에서 조금 모자라도 괜찮다. 성연신은 잠시 흠칫하더니 소매를 걷고 정욱 옆에 앉았다.“내가 할게.”정욱과 심지안은 모두 놀라서 굳어버렸다. 고귀한 남자가 이곳에서 새우를 까고 있다니, 어색했다.성연신은 남에게 새우를 까주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꽤 빠르게 까주었다. 첫 번째 새우는 모습이 처참했지만 두 번째 새우는 꽤 나아졌고 세 번째 새우는 완벽한 예술품 같았다.진유진은 제자를 가르치듯 미소를 지었다. 성연신에 대한 호감도가 살짝 올랐다.보아하니 심지안을 향한 마음은 진심인 것 같았다.심지안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릇에 놓인 새우들을 보고 노란 지폐 두 장을 꺼내며 얘기했다.“팁이에요!”성연신은 눈썹을 까딱거리다가 손을 뻗어 그 돈을 받았다.“감사합니다, 하지만 조금 적네요. 한 마리 당 20만 원이거든요.”표정이 굳어버린 심지안이 얘기했다.“차라리 가서 강도질해요!”“글쎄, 은행에 있는 돈이 다 내 거인데, 굳이 그럴 필요는...”“...”역시 부자의 삶은 부러웠다.“저기, 안녕하세요. 저도 새우를 까달라고 하고 싶은데 가격이 어떻게 되죠?”옆 테이블의 여자가 걸어와 부끄러워하며 성연신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게 뻔했다.정욱이 막아 나서며 얘기했디.“우리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놀란 여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다른 서비스라면 더욱 좋아요.”“???”성연신이 그런 서비스를 제공할 사람으로 보이나?심지안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죄송해요. 이미 제 사람이라서.”표정이 변한 여자는 심지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젊고 예뻤으며 입은 옷은 브랜드를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우라가 우아했다. 게다가 이런 최상의 남자를 산 여자라면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닐 것이다.여자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갔다.진유진은 크게 소리
심지안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성연신의 반응을 보려고 했다.성연신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임시연은 어딨습니까?”“안에서 검사받고 있어. 팔을 다친 모양이야.”“물건이 떨어진 게 우연입니까, 인위적인 원인입니까?”서백호가 다가와 대답했다.“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습니다. 사람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주변의 CCTV를 찾아보고 목격자를 찾아보니 한 일꾼이 의심됩니다. 인위적인 사고일 수도 있어요.”심지안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차라리 우연인 사고였으면 했다.“그 일꾼은 찾았어요?”“사람을 시켜 찾고 있습니다.”서백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임시연은 의사의 부축을 받고 나왔다. 그녀의 팔에는 커다란 멍이 들었다.“다행히 비켜 맞아서 큰 문제는 없습니다. 골절도 없고요. 아이스팩으로 얼음찜질을 해주면 됩니다.”임시연은 하얀 긴 원피스를 입고 또 하얗고 청순가련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정말 국민 첫사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표정이 어두워진 심지안은 시선을 내려 감정을 감추려고 했다.성연신은 바로 물었다.“네가 왜 을지로에 있어.”임시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살짝 억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정욱 씨가 나와 사모님께 통지하고 난 후, 우리는 각자 알아서 갈 길을 갔어. 내가 을지로에 간 건 이곳에 연주회가 있어서야.”그리고 그녀는 가방에서 연주회의 입장권을 꺼냈다. 성연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억울함과 원망이 섞여 있었다.마치 금방 싸운 커플 같았다. 여자가 남자를 원망하고 있는 듯했다.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심지안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임시연이 특별한 얘기를 한 것도 아니지만 이런 이상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싫었다.성연신은 그녀 손에 있는 연주회 입장권을 보고 형식적으로 대답했다.“잘 쉬어. 치료비는 성씨 가문에서 다 내줄 테니까.”임시연은 목이 막혀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나...”“정욱.”성연신이 임시연의 말을 끊었다.“성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백호 아저씨를 도와 그 일꾼을 찾아.”“알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