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올리자고요. 결혼. 다시는 지안 씨를 슬프게 만들지 않을게요.”다른 여자가 있는 건 심지안에게도 있어야 한다. 성연신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 아주 성대하고 로맨틱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결혼식을 올릴 것이다.심지안은 갑자기 마음이 떨렸다.“우리가 결혼할 거라고요?”“물론 지금은 서로 시간을 갖는 기간이긴 하지만, 저는 확신해요, 우리는 다시 함께할 거라고. 그리고 화해를 하면 결혼을 해야죠. 처음에 했던 가짜 결혼은 없던 걸로 해요. 제대로 결혼식을 올려요.”심지안은 그 말을 들으며 눈이 보석처럼 반짝였다.모든 여자들은 다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있다. 심지안도 마찬가지다.“알겠어요. 그렇게 해요.”성연신이 하는 대로 따를 생각이다. 나중에 헤어지게 되더라도, 한 번쯤은 그의 신부가 되고 싶었다....임시연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나오자마자 성연신과 심지안이 웨딩 사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서 주민등록증을 구겨버리고 싶은 생각이었다.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임시연이 나타났다.“연신아, 나 주민등록증 챙겼어. 이제 가자.”성연신은 그녀를 보고 악취를 맡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어?”“할아버지께서 매번 검사를 꼬박 받으라고 하셨어. 그리고 유전자 검사는 할아버지가 지정한 병원에서 하도록... 그리고 다른 일도...”임시연은 애써 웃으며 얘기했다.“웃어른으로서 얘기해 주시는 것이 많았어.”임시연은 무엇을 암시하듯 얘기했지만 성연신은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노인네 성격을 네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응, 알아.”“오빠!”정원 입구에 서 있던 오정연은 작은 팔을 흔들며 성연신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고연희도 있었다.서백호가 내려와서 임시연을 부를 때, 두 사람은 서백호에게 한 소리를 들을까 봐 도망쳐 나왔었다.임시연은 오정연을 보자마자 표정이 굳어버렸다. 하지만 빠르게 평정심을 찾고 모르는 척 물었다.“연신아, 네 여동생이야?”“응.”임시연은
성연신의 차가운 얼굴에는 평소에 보지 못할 미소가 드러났다.“넌 지안 씨에게 정말 잘 대해주는구나.”오정연은 집안의 유일한 아이로서 오냐오냐 자랐기에 오만한 성격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베푸는 적이 드문 아이가 자신의 피규어를 선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오정연은 성연신을 안고 울먹이며 얘기했다.“지안 언니가 불쌍해요... 지안 언니는 돌아올 수도 없고...”다 저 나쁜 여자 때문이다!성연신은 오정연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다시 물었다.“뭐라고?”“아니에요...”임시연은 성연신이 심지안을 편애한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눈에는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다들 임시연을 괴롭히니, 임시연도 심지안을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임시연은 핸드폰을 꺼내 홍지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근처에 있죠? 지금 와줄 수 있어요? 사진 몇 장 찍어줘요.”그날 저녁, 연예 신문사에서는 익명의 메일을 받았다.안에는 성연신과 임시연이 성씨 본가 저택에서 걸어 나오는 사진이 있었고 두 사람이 오 년 전에 사귀었다는 얘기도 있었다.기자는 임시연이 저번에 라이브 방송으로 자살하려던 바이올리니스트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날 밤, 실시간 검색어가 눈에 확 띄었다.성씨 가문 후계자가 이미 임신한 여자친구를 데리고 상견례를 한 것으로 보인다. 역시 남자의 첫사랑은 잊지 못하는 건가? 네티즌들이 그 소식을 보고 댓글을 달았다.“축하해요!”“헐, 전에도 둘이 사귀었었다고?”“역시, 남자들은 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나 봐.”“임신을 이용한 건 아니고?”“임신을 이용한 게 뭐가 어때서? 돈 많은 사람이니까 책임을 져야지!”“임시연이 돈 주고 기사를 내보낸 거 아니야?!”진유진이 이를 악물고 댓글을 적었다. 그리고 바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욕했다.“지안아, 실시간 검색어 봤어? 이 여자 정말 보통이 아니야. 다 짜고 치는 연극인 거야!”라이브 방송에서 자살하겠다고 하고, 임신 소식을 밝혔으며 지금은 같이 성씨 본가 저택으로 가다니.이 순서대로
심지안은 성연신의 손을 잡고 2층으로 향했다. 성연신은 적합한 자리를 찾아 심지안의 어깨를 가볍게 누르며 얘기했다. “앉아요.”심지안은 그 말을 듣고 앉았다. 1층을 내려다보니 성수광이 정장을 입고 여유롭게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었다.“첫째, 임시연은 성씨 가문에 발을 들일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사건이 궁금하다면 임시연에게 물어보도록 하세요. 둘째, 심지안은 불륜녀가 아닙니다. 심지안이야말로 내가 인정한 손자며느리입니다. 지금은 두 사람이 이혼했지만 내가 인정한 사람은 심지안이 유일합니다. 셋째, 누군가가 계속해서 심지안의 명예를 추실 시키려고 든다면 나는 공개적으로 그 사람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지안이는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내 나이가 얼마인데, 내가 겪어온 사람들은 당신들이 먹은 밥보다 많을 겁니다. 그러니 사람 보는 눈은 틀림없어요. 가문의 일로 소란을 일으켜 죄송합니다. 하지만 성씨 가문의 애라면 끝까지 책임질 것이라고 약속하겠습니다. 아이에게는 죄가 없으니까요.”심지안은 눈가가 젖어 들었다. 성수광은 여전히 얘기하고 있었지만 심지안은 계속 들을 자신이 없었다.할아버지가 공개 기자회견에서 심지안을 감싸다니...이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하는가. 심지안은 가짜 결혼으로 성씨 가문에 들어섰지만 성수광은 화도 내지 않고 여전히 그녀를 따뜻하게 대해줬다.성연신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만족해요?”심지안은 코끝이 시큰거리고 눈이 붉어졌다.“만족해요.”“그만 울어요. 너무 못생겨서 못 봐주겠네요.”성연신은 가볍게 웃었다. 차갑던 그의 시선이 따뜻하게 녹았고 날카롭던 그의 얼굴은 전보다 많이 온화해졌다.“오늘은 본가 저택으로 가서 할아버지와 함께 식사해요.”앞으로 본가 저택에 갈 수 있을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좋아요.”성연신은 부드럽게 심지안의 입술에 키스했다.“지안 씨 말에 따를게요.”심지안은 얼굴을 붉히며 성연신을 밀어냈다. “아래 기자들도 많은데... 이러지 마요.”“어차피 보지도 못하잖
심지안은 행동을 멈추고 물었다.“뭔데요?”“아이도 생명이다. 이 세상에 왔으니 우리가 다시 돌려보낼 수 없어. 만약 아이가 성씨 가문의 핏줄이라면 우리는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해.”심지안은 시선을 내리고 서운한 기색을 감추며 대답했다.“네.”“하지만 성씨 가문의 손자며느리가 낳은 애가 아니니 앞으로 성씨 가문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도,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없다. 오직 네 아이만 성씨 가문의 재산을 가질 수 있어. 이게 내가 생각한 방법이다.”성씨 가문은 그 아이를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은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예전부터 적자와 서자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 않았던가.솔직하게 말하면 임시연은 첩도 아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의 손을 꼭 잡고 얘기했다.“어쨌든, 우리의 아이는 유일한 상속자일 겁니다. 남자든지, 여자든지.”심지안은 성연신을 보며 이 말이 진심이기를 바랐다.성연신은 현재 심지안을 사랑한다.하지만 인생은 길고 마음은 변한다. 심전웅은 마음이 변해도 결국은 첫사랑을 잊지 못했다.어머니가 돌아가시다마자 은옥매는 심연아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고 세 사람이 한 식구인 것처럼, 심지안을 밀어냈다.다른 사람과 같은 사람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20년 동안 그렇게 살아온 심지안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니 심지안은 자기의 애가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으면 했다.“왜 말이 없어요?”성연신은 가볍게 심지안의 볼을 꼬집고 불안해하며 물었다.이건 성연신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대우였다.“아니에요.”심지안은 복잡한 심경을 거두고 얘기했다.“임시연이 유전자 검사를 마치고 나서 다시 말해요. 급하지 않으니까.”성연신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더는 심지안을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말을 꺼낼 수 없었다....제경 세움 주얼리.고청민은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사인해야 할 서류들을 확인했다.직원 사무실에서는 야근 중인 직원들이 같이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실시간
성연신이 비싼 차에서 내려 차 열쇠를 심지안 손에 쥐어주었다.“시도해 봐요.”심지안은 검은 눈을 반짝이며 차를 쳐다보았다. 은백색의 차는 꽤 예쁘게 생겼는데 여자들이 좋아할 스타일이었다.차량 번호판을 보니 조금 기억이 있었다. 아마 억 단위의 번호일 것이다.하지만 그런 돈은 성연신에게 먼지와도 같았다. 입꼬리를 말아 올린 심지안이 새하얀 이를 살짝 드러내면서 웃었다.“연신 씨, 고마워요,”성연신은 심지안 뒤의 벽을 손으로 짚었다. 그러자 커다란 그림자가 심지안을 덮었다. 성연신은 부족하다는 듯 물었다.“입으로만요?”심지안은 심장이 펑펑 뛰었다. 커다란 기운에 눌린 기분에 그녀는 얼굴을 붉히다가 결국 성연신의 입술에 가볍게 뽀뽀를 했다.성연신의 차갑던 눈에 온기가 돌았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성연신이 얘기했다.“오늘은 내 운전기사를 해요. 내가 조수석에 앉을게요.”심지안은 입을 딱 벌렸다.“이렇게 주얼리 전시회를 간다고요? 가는 데만 반 시간이 걸려요. 목숨이 장난은 아니잖아요. 정말 나를 그렇게 믿어요?”성연신은 이미 조수석에 앉아 시트를 뒤로 약간 젖혔다.“난 지안 씨 거니까, 내 목숨도 지안 씨 거죠.”“손남영 씨가 알려준 거죠?”“어떻게 알았어요?”“항상 독설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달콤한 말을 하니까요.”성연신은 어두운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달콤한 말이 뭐.”성연신은 손남영보다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손남영이 배운 것을 성연신은 더욱 쉽게 마스터 할 수 있다.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말들이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지금은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었다....심지안은 성연신의 지도하에 거북이 같은 속도로 무사히 전시회에 도착했다.들어서자마자 성연신은 아는 얼굴을 만났다.심지안은 성연신이 자기 일을 볼 수 있도록 놔두고 백스테이지로 가서 메이크업을 받았다. 성연신이 고개를 끄덕였다.“일이 끝나면 전화해요.”“네.”두 사람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하지만 걸어가던 심지안은 초
성연신의 시선은 한 번도 심지안에게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가느다랗게 뜬 눈에는 소유욕이 잔뜩 묻어났다.성연신은 심지안인 예쁘게 생긴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관객의 눈을 다 파버리고 싶었다.심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앞에 있는 고청민을 보고 있었다.왜 자신을 초청한 것일까. 심지안의 잘난 모습을 보라고?고청민은 그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임시연을 보고 입꼬리를 작게 올리더니 백스테이지로 걸어갔다.그리고 임시연은 낯선 번호의 메시지를 받았다.“따라와요.”몇 초간 멈칫거린 임시연이 고청민의 뒤를 따라갔다.복도에서.고청민은 김민수의 핸드폰을 꺼내 웃으며 물었다.“익숙하지 않아요?”임시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리하게 질렸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김민수의 핸드폰이 왜 여기에...!”“주웠으니까요.”임시연은 그 말을 믿지 않고 경계심을 세우고 물었다.“뭘 하고 싶은 거예요?”“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시연 씨가 한 거죠?”“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네요!”“지안 씨와 성연신을 갈라놓으려고 하는 건 상관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지안 씨를 다치게 하면 안 되죠.”임시연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고청민의 말뜻을 알아차렸다.“심지안을 좋아해요?”“그런 건 알 필요 없어요.”“그럼 제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하죠?”고청민이 시선을 들어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김민수의 핸드폰을 열어 녹음을 들려주었다.“시연아, 나 너무 추워. 너랑 우리 아기도 빨리 와서 나랑 같이 있자... 시연아...”김민수가 말끝을 늘리자 마치 저승길 동무를 찾는 귀신 같았다. 그 목소리가 텅 빈 복도에서 울려 퍼지니 더욱 무서웠다.파리하게 질린 임시연이 입술을 떨면서 말했다.“날 속일 생각 하지 말아요. 김민수는 진작 죽었어요.”“글쎄요. 사람은 죽었지만 남길 수 있는 것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당신 배 속의 아이라거나.”임시연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그녀는 밖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적이 적었다. 하지만 고청민을 만난 두 번, 모두 다
심지안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심지안은 어쩔 수 없이 그 남자를 따라 나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꿇어앉았다.밖은 정말 아수라장이었다.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때를 틈타 도망쳤고 일부분 사람들은 강도들에 의해 제압되었는데 그중에는 고청민과 신현아도 있었다.신현아는 유일하게 다친 사람이었다. 그녀는 얼굴에도 멍이 들었고 다리에 총상까지 있었다. 아마도 이들과 싸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무기도 없는 그녀가 총을 든 남자를 이길 수는 없었다.제압당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경찰은 협상을 제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당장 차를 준비해. 3분 준다. 1분이 넘어갈 때마다 한 명씩 죽어 나갈 줄 알아!”우두머리는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는 총을 심지안의 이마에 대고 으스대며 얘기했다.“성연신에게 얘기해. 현금 100억을 준비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이 여자의 머리통이 날아가게 될 거야.”오지석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며 일단 차를 준비시키라고 했다.고청민은 억지로 끌려가는 심지안을 보며 갑자기 일어섰다.“그 사람을 놓아줘요. 내가 인질이 될게요. 난 세움의 후계자여서 그 사람보다 더욱 몸값이 비싸요.”심지안은 복잡한 심경으로 고청민을 바라보며 굳어버렸다.이게 무슨 일인가.성연신과 함께 달려온 성동철은 그 말을 듣고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고청민에게 입을 열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옆에서 염라대왕처럼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는 성연신을 보고 말을 할 수 없었다.오지석은 성연신이 충동적으로 행동할까 봐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했다.“차에 위치추적기를 달 거야. 일단 이 상황부터 모면해야지.”성연신은 대답을 하지않고 심지안만 노려보았다. 담담해 보이는 그였지만 사실 옷이 흠뻑 젖을 만큼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손가락은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남자는 이상한 시선으로 고청민을 쳐다보았다.“너 이 새끼, 죽는 게 안 무서워? 인질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고청민은 몸에 들고 다니는 비수를 만져보고 얘기했다.“무섭지만 다른 사람이 죽
심지안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우두머리는 남자에게 칼을 던져주며 얘기했다.“총알이 바닥났어. 이걸로 처리해.”남자는 칼을 들고 심지안을 향해 걸어갔다.심지안은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대문이 잠겨있으니 도망갈 곳은 없었다.그녀는 큰 소리로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려고 했다.“살려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발 도와주세요!”“그만 소리 질러. 여기는 사는 사람이 없는 폐가야. 우리 빼고는 사람이 없어.”심지안은 얼음물에 빠진 것 같았다. 아무리 살려달라고 빌어봐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자 눈에는 절망이 가득했다.남자는 예쁘장하게 생긴 심지안을 보며 조금 동정심을 가졌다.“말 좀 들어. 반항하지 말고. 내가 빠르게 단칼에 죽여줄게. 아프지 않을 거야.”심지안은 구석에 놓인 벽돌을 보고 한번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승산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죽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 심지안은 남자의 시선 속에서 젖은 눈으로 바닥에 놓인 맥주를 바라보았다.“저기요, 저 맥주라도 마실 수 있게 해주면 안 돼요? 술에 취하면 덜 무서울 것 같아요.”남자는 살짝 멈칫하더니 웃으면서 우두머리를 쳐다보았다.“형님 술에 눈독을 들이는데요?”우두머리는 맥주를 던져주며 얘기했다.“아가씨, 우리를 탓하지는 마. 이게 다 아가씨 운명인 거야. 이것만 다 마시면 죽여줄게.”심지안은 맥주를 가지고 구석으로 갔다.그리고 맥주를 마시는 척하면서 벽돌을 발아래에 깔았다. 그녀는 긴 코트를 입고 발을 가렸기에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을 보아내지 못했다.맥주를 반병 마신 후, 그녀는 술에 취한 것처럼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자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앞으로 걸어갔다.심지안은 그와 눈을 마주쳤다. 공포심 뒤로 강렬한 생존 욕구가 일었다.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 그녀의 아기는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가느다란 목을 향해 대동맥을 바로 찌르려고 비수를 들었다. 칼이 심지안의 목을 찌르려던 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