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에 꽤 익숙했던 그녀는 이번에는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노려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래요. 알았어요. 당신을 떠나지 않을 테니까 이것 좀 놓고 얘기해요. 아파요.”성연신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고 턱을 놔주기는커녕 더 세게 잡았다. 아래턱에서 전해진 통증을 느낀 심지안은 두 손을 그의 가슴에 대고 그를 밀어내려고 했다.“나 정말 아파요. 자꾸 이러면... 우웁!”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 그의 키스는 전혀 부드럽지 않았고 거칠게만 느껴졌다. 그는 그녀의 입안을 빈틈없이 헤집고 다니며 그녀를 집어삼킬 듯했다. 심지안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아 그를 피했고 그때마다 그는 더 미친 듯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강력한 손이 그녀의 뒤통수를 잡아당겼고 그녀가 피하지 못하도록 힘을 주고 있었다. 심지안은 감히 피하지 못하고 그의 키스에 반응했다. 그녀의 반응을 느낀 성연신은 그제야 조금 부드러워졌다. 심지안은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쌌고 점점 더 키스에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점점 그의 키스는 더 부드러워졌고 그가 달콤한 그녀의 입술을 맛보았다. 심지안은 그제야 숨 쉴 틈이 생겼지만 그의 뜨거운 욕망에 포위되어 호흡조차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그의 거친 손길이 그녀의 허리춤으로 다가가더니 이내 가볍게 그녀의 옷 속으로 파고들어 그녀의 섬세한 피부를 어루만졌다. “우읍... 하지 말아요.”심지안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단호하게 거절했다. 성연신은 그제야 행동을 멈추었다. 길가에 세워진 차 안에서의 섹스는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는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대며 그녀를 그윽하게 쳐다보았다.“나 속이지 말아요.”심지안은 가슴이 아팠다.“네.”식사를 마친 후, 그녀는 회사로 돌아가서 직원들과 회의하고 일에 전념했다. 퇴근할 때까지 계속 바빴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고 오후에 진현수에
성연신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성동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성민하라고 하는데, 아십니까?”성동철은 고개를 젓고 바로 대답했다.“모른다.”성연신의 눈에 실망감이 언뜻 내비쳤다. 그리고 얼른 화제를 돌려 이 일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다.한 시간 후, 성연신은 성동철의 저택에서 떠났다.입구까지 걸어 나오자 저택으로 돌아온 고청민과 만나게 되었다.고청민은 급한 걸음으로 뛰어 들어왔는데 표정은 평소와 달리 매우 긴박해 보였다. 성연신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안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본 고청민은 갑자기 심장이 조여들었다. “성연신 씨가 여기까지 걸음 하시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성연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청민의 콧잔등 위에 작게 맺힌 땀방울을 보며 웃을락 말락 한 표정으로 얘기했다.“어른들이 하는 얘기니 어린이는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급하게 왔나 봐요?”“성연신 씨가 할아버지께 제가 지안 씨를 유혹한다고 고자질을 할까 봐 걱정되어서요.”“제 여자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성연신은 자신만만한 말투로 얘기했다.고청민은 작게 미소 지으며 얘기했다.“글쎄요,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나요.”“흠.”성연신이 말꼬리를 늘리며 입술을 끌어올렸다.“친구라는 이름으로 지안 씨에게 접근하고 본인 마음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골을 넣을 수 있을까요.”‘고작 너 같은 게?’고청민은 화를 내지 않고 순진한 눈을 반짝이며 얘기했다.“글쎄요, 지켜보면 알죠.”고청민은 보광 중신의 대표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제 자식처럼 키우는 장면을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아주 재밌는 장면이 될 것이다.성연신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고청민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차를 몰고 멀리 떠나버렸다.고청민이 걸어 들어가 고용인에게 물었다.“성연신 씨와 할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나눴나요?”“별거 없었습니다. 성연신 님이 인테리어를 바꾸려는데 와서 저택을 참고하겠다고 하셨어요.’고청민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할아버지 방에 들어갔어요
“참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당연히 알려줘야지! 네가 그 사람의 애를 임신했다고!”“연신 씨가 이 아이를 갖겠다고 해도, 나한테 낳으라고 해도, 나는 내 아이랑 임시연의 애가 같은 아빠를 두고 있는 것을 용납 못 해.”진유진은 입을 삐죽였다.“임시연이 알아서 애를 키우게 하면 안 되는 거야?”“애는 아무 잘못이 없잖아.”“너도 아무 잘못이 없어.”진유진은 심지안을 안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내가 너랑 같이 네 아이의 엄마가 되어줄게. 같이 잘 키워줄 자신 있어. 하지만 난 네가 안쓰러워. 너처럼 착한 애가 어릴 때는 심전웅과 은옥매의 괴롭힘을 받고 그 두 사람이 드디어 죗값을 치르게 되니까 이제는 임시연이 나타나고. 하늘도 무심하지.”심지안은 진유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인생사가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나한테는 네가 있잖아. 그리고 예전보다 더욱 잘살고 있는걸.”성연신과의 감정이 아쉽기도 했지만 그것뿐이었다.“아직도 성연신 씨를 좋아해?”심지안은 솔직히 얘기했다.“바로 잊는 게 쉽지는 않지.”“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인데?”“두 달 정도 더 기다려 보려고. 임시연이 유전자 검사를 해서 연신 씨의 애가 맞는다고 하면 난 연신 씨와 완전히 갈라설 거야.”진유진이 미간을 찌푸렸다.“확실하게 끊어낼 수 있어?”“어쩔 수 없잖아. 다들 건드리면 안 되는 선이라는 게 있는 거야.”“그럼 성연신 씨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심지안은 시선을 내리깔았다.“모르겠어...”받아들일 수 없었으면 좋겠다가도 또 그가 받아들였으면 했다.“진현수 씨를 고려해 보는 건 어때? 그 사람도 나쁘지 않아.”“노력해 봤어. 하지만 감정이라는 건 일부러 밀어붙여도 안 되는 거더라.”“그래, 네 선택을 존중할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네 편이 되어줄게. 만약 나중에 네가 파산하게 되더라도 내가 책임지고 널 먹여 살릴 테니까 넌 집에서 아이만 열심히 키우면 돼. 아빠가 없는 게 뭔 대수라고. 내가 영원히 널 응원해 줄게
진유진의 눈이 밝게 빛났다.“원해!”“내가 카톡을 보내놓을게. 아무 핑계라도 대서 추가하면 돼.”“응!”두 사람의 대화 소리는 매우 낮았기에 고청민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는 그저 아침을 심지안에게 주고 바뀐 집안의 비싼 가구들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성연신이 고청민도 한남 더힐에 사는 것을 안다면 새 가구를 사주지 않았을 것이다.“먼저 드세요. 저는 오전에 수업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심지안은 갑자기 진유진을 앞으로 밀며 얘기했다.“너, 너도 출근해야 하잖아. 둘이 같이 나가.”“그, 그래!”진유진은 입속의 만두를 재빨리 삼키고 어색하게 고청민을 쳐다보았다. “같이 가요. 방향도 같은데.”“그래요.”두 사람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진유진은 애써 화제를 찾았다.“대학원 몇 학년이에요?”“전...”“요즘 취직이 어렵잖아요. 대학원생이면 나중에 취직하기 쉽겠네요?”“네, 하지만 저희 전공이 그렇게 인기 많은 전공은 아니라, 취직에는 크게 도움이 없을 거예요.”진유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그러면 왜 대학원에 들어간 거예요?”“흥미가 있거든요.”진유진은 감정이 복잡해졌다. 흥미 때문에 대학원에 들어가는 사람이라니... 설마 재벌 2세는 아니겠지?진유진과 고청민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헤어졌다. 그리고 그때 심지안이 마침 고청민의 카톡을 진유진에게 보내주었다.진유진이 먼저 물었다.「설마 재벌 2세야?」「맞아. 세움 주얼리의 상속자야. 그러니까 꼭 잡아!」「...갑자기 싫어졌어. 같은 급의 사람이 아니잖아. 추가 안 할래.」사실 고청민에게 한눈에 반할 정도로 빠진 것은 아니다. 그냥 잘생겼으니 조금 썸이라도 타고 싶었다.하지만 세움의 후계자라니. 진유진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사람이었다. 일단 두 사람의 급이 맞지도 않은 데다가 진유진은 부잣집에 시집갈 생각도 없었다.부잣집에 시집간다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일이니까.‘잠깐만.’진유진은 뭐가 갑자기 생각나서 빨리 심지안에게 문자를 보냈다
“맞아, 그러니까 이 장난감으로 벌을 주는 거야!”오정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장난감은 방귀 폭탄이었는데 냄새가 고약한 장난감이었다.오정연은 빠르게 정원으로 달려와 방귀 폭탄 세 개를 임시연에게 던져버렸다.임시연이 의아해하며 그 장난감을 바라볼 때, 포장지가 빠르게 부풀어 오르더니 ‘펑’ 소리와 함께 포장지가 터졌다. 하수구 같은 냄새가 공기 중에 퍼졌고 임시연은 마치 하수구에서 건져 올린 쥐가 된 기분이었다.“하하하, 냄새난대요, 더럽대요!”오정연이 임시연을 놀리기 시작했다.고연희는 점잖은 척하는 임시연이 꼴 보기 싫었다. 어차피 연기를 하는 거면서 굳이 진짜 부잣집 아가씨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니까. 지금 임시연의 이미지는 완전 바닥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그녀를 본다면 코를 막고 도망칠 정도였다.그 모습을 본 고연희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같이 코를 막고 얘기했다.“임시연, 너한테서 악취가 진동하는데, 도대체 몇 개월이나 샤워를 안 한 거야?!”“고연희, 난 지금 성씨 집안의 애를 임신했어. 그런 나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임시연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죽일 듯이 고연희를 노려보았다.이곳이 성씨 저택이 아니었다면, 임시연은 바로 고연희의 뺨을 갈길 것이다.“네가 나를 모함한 것은 너무한 게 아니야?!”고연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얘기했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야!”웅웅.핸드폰의 진동 소리가 고요함을 깨부쉈다.고연희는 의자 위에 놓인 외투를 바라보았다. 진동 소리는 거기서 울려 퍼진 것이었다.임시연은 빠르게 외투에서 핸드폰을 꺼냈다.그러자 고연희가 소리쳤다.“연신 오빠 핸드폰에 손대지 마!”임시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혹시 중요한 일이면 어떡하려고?”말을 마친 임시연이 고개를 숙여 핸드폰 위에 뜬 ‘심지안’, 세 글자를 확인했다.고연희도 그것을 보고 바로 핸드폰을 뺏으려고 했다.“받지 마! 지안 씨가 네 목소리르 들으면 분명 기분이 나빠질 거야!”임시연은 더 환
“결혼식을 올리자고요. 결혼. 다시는 지안 씨를 슬프게 만들지 않을게요.”다른 여자가 있는 건 심지안에게도 있어야 한다. 성연신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 아주 성대하고 로맨틱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결혼식을 올릴 것이다.심지안은 갑자기 마음이 떨렸다.“우리가 결혼할 거라고요?”“물론 지금은 서로 시간을 갖는 기간이긴 하지만, 저는 확신해요, 우리는 다시 함께할 거라고. 그리고 화해를 하면 결혼을 해야죠. 처음에 했던 가짜 결혼은 없던 걸로 해요. 제대로 결혼식을 올려요.”심지안은 그 말을 들으며 눈이 보석처럼 반짝였다.모든 여자들은 다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있다. 심지안도 마찬가지다.“알겠어요. 그렇게 해요.”성연신이 하는 대로 따를 생각이다. 나중에 헤어지게 되더라도, 한 번쯤은 그의 신부가 되고 싶었다....임시연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나오자마자 성연신과 심지안이 웨딩 사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서 주민등록증을 구겨버리고 싶은 생각이었다.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임시연이 나타났다.“연신아, 나 주민등록증 챙겼어. 이제 가자.”성연신은 그녀를 보고 악취를 맡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어?”“할아버지께서 매번 검사를 꼬박 받으라고 하셨어. 그리고 유전자 검사는 할아버지가 지정한 병원에서 하도록... 그리고 다른 일도...”임시연은 애써 웃으며 얘기했다.“웃어른으로서 얘기해 주시는 것이 많았어.”임시연은 무엇을 암시하듯 얘기했지만 성연신은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노인네 성격을 네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응, 알아.”“오빠!”정원 입구에 서 있던 오정연은 작은 팔을 흔들며 성연신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고연희도 있었다.서백호가 내려와서 임시연을 부를 때, 두 사람은 서백호에게 한 소리를 들을까 봐 도망쳐 나왔었다.임시연은 오정연을 보자마자 표정이 굳어버렸다. 하지만 빠르게 평정심을 찾고 모르는 척 물었다.“연신아, 네 여동생이야?”“응.”임시연은
성연신의 차가운 얼굴에는 평소에 보지 못할 미소가 드러났다.“넌 지안 씨에게 정말 잘 대해주는구나.”오정연은 집안의 유일한 아이로서 오냐오냐 자랐기에 오만한 성격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베푸는 적이 드문 아이가 자신의 피규어를 선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오정연은 성연신을 안고 울먹이며 얘기했다.“지안 언니가 불쌍해요... 지안 언니는 돌아올 수도 없고...”다 저 나쁜 여자 때문이다!성연신은 오정연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다시 물었다.“뭐라고?”“아니에요...”임시연은 성연신이 심지안을 편애한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눈에는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다들 임시연을 괴롭히니, 임시연도 심지안을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임시연은 핸드폰을 꺼내 홍지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근처에 있죠? 지금 와줄 수 있어요? 사진 몇 장 찍어줘요.”그날 저녁, 연예 신문사에서는 익명의 메일을 받았다.안에는 성연신과 임시연이 성씨 본가 저택에서 걸어 나오는 사진이 있었고 두 사람이 오 년 전에 사귀었다는 얘기도 있었다.기자는 임시연이 저번에 라이브 방송으로 자살하려던 바이올리니스트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날 밤, 실시간 검색어가 눈에 확 띄었다.성씨 가문 후계자가 이미 임신한 여자친구를 데리고 상견례를 한 것으로 보인다. 역시 남자의 첫사랑은 잊지 못하는 건가? 네티즌들이 그 소식을 보고 댓글을 달았다.“축하해요!”“헐, 전에도 둘이 사귀었었다고?”“역시, 남자들은 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나 봐.”“임신을 이용한 건 아니고?”“임신을 이용한 게 뭐가 어때서? 돈 많은 사람이니까 책임을 져야지!”“임시연이 돈 주고 기사를 내보낸 거 아니야?!”진유진이 이를 악물고 댓글을 적었다. 그리고 바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욕했다.“지안아, 실시간 검색어 봤어? 이 여자 정말 보통이 아니야. 다 짜고 치는 연극인 거야!”라이브 방송에서 자살하겠다고 하고, 임신 소식을 밝혔으며 지금은 같이 성씨 본가 저택으로 가다니.이 순서대로
심지안은 성연신의 손을 잡고 2층으로 향했다. 성연신은 적합한 자리를 찾아 심지안의 어깨를 가볍게 누르며 얘기했다. “앉아요.”심지안은 그 말을 듣고 앉았다. 1층을 내려다보니 성수광이 정장을 입고 여유롭게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었다.“첫째, 임시연은 성씨 가문에 발을 들일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사건이 궁금하다면 임시연에게 물어보도록 하세요. 둘째, 심지안은 불륜녀가 아닙니다. 심지안이야말로 내가 인정한 손자며느리입니다. 지금은 두 사람이 이혼했지만 내가 인정한 사람은 심지안이 유일합니다. 셋째, 누군가가 계속해서 심지안의 명예를 추실 시키려고 든다면 나는 공개적으로 그 사람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지안이는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내 나이가 얼마인데, 내가 겪어온 사람들은 당신들이 먹은 밥보다 많을 겁니다. 그러니 사람 보는 눈은 틀림없어요. 가문의 일로 소란을 일으켜 죄송합니다. 하지만 성씨 가문의 애라면 끝까지 책임질 것이라고 약속하겠습니다. 아이에게는 죄가 없으니까요.”심지안은 눈가가 젖어 들었다. 성수광은 여전히 얘기하고 있었지만 심지안은 계속 들을 자신이 없었다.할아버지가 공개 기자회견에서 심지안을 감싸다니...이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하는가. 심지안은 가짜 결혼으로 성씨 가문에 들어섰지만 성수광은 화도 내지 않고 여전히 그녀를 따뜻하게 대해줬다.성연신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만족해요?”심지안은 코끝이 시큰거리고 눈이 붉어졌다.“만족해요.”“그만 울어요. 너무 못생겨서 못 봐주겠네요.”성연신은 가볍게 웃었다. 차갑던 그의 시선이 따뜻하게 녹았고 날카롭던 그의 얼굴은 전보다 많이 온화해졌다.“오늘은 본가 저택으로 가서 할아버지와 함께 식사해요.”앞으로 본가 저택에 갈 수 있을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좋아요.”성연신은 부드럽게 심지안의 입술에 키스했다.“지안 씨 말에 따를게요.”심지안은 얼굴을 붉히며 성연신을 밀어냈다. “아래 기자들도 많은데... 이러지 마요.”“어차피 보지도 못하잖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