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신의 얼굴이 순간 어색하게 경직되었다. 마당을 등지고 있던 심지안도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2주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임시연이 돌연 나타난 것이다. 심지안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성연신은 이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연신아, 우리 오레오가 놀다가 차에 치었어. 방금 동물병원에 다녀왔는데 수혈을 받아야 한대. 원이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임시연은 걱정되는 마음에 너무 다급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성연신의 손을 잡았다.성연신이 조용히 손을 빼내고는 말했다.“내가 원이를 데리고 너와 함께 갈게.”성연신은 말을 마친 뒤 정원으로 원이를 찾으러 달려갔다. 자리에 서서 그를 기다리던 임시연이 그제야 심지안을 발견하고는 미안한 얼굴로 설명했다.“미안해요. 두 사람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지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연신이밖에 떠오르지 않아서요.”“괜찮아요.”심지안이 평온한 얼굴로 밥을 먹으며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키우는 강아지 이름이 오레오예요?”“네. 오레오와 원이는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예요. 당시 연신이가 원이를 데려갔고 전 오레오를 데려갔어요.”“아...”사실 심지안은 임시연의 강아지와 원이가 혈연관계로 이어져 있을 거라 예상했다. 아니면 혈액형이 일치할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성연신은 떠나기 전 심지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곧 돌아올게요.”“그래요. 가요.”심지안의 덤덤한 반응에 임시연은 깜짝 놀랐다.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숨겼다.심지안은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임시연에게 애교를 부리고 있는 원이를 보니 그녀를 알 뿐만 아니라 꽤나 짙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그녀는 마음을 담아 오랫동안 기른 강아지를 하루아침에 주인에게 빼앗겨버린 허탈하고도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두 시간 뒤.성연신이 원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원이는 많이 피곤한지 축 늘어져 있었다. 아마 피를 많이 뽑아낸 모양이다.심지안은 마음이 아파 원이를 품에 끌어안고
휴게실은 텅 비어 있었다.심지안은 성연신에게 전화를 걸면서 슬그머니 녹음 버튼을 누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내부 인터뷰를 보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대기실에는 왜 왔어요?”한수군은 문을 잠그고 심지안에게 달려들었다.“인터뷰예요, 내부 인터뷰.”심지안은 미리 준비했기에 몸을 옆으로 비켜서며 당황하지 않았다.“경은 씨가 얼마를 주고 설득했어요?”한수군은 어리둥절해진 채, 그녀가 이렇게 빨리 짐작한 것을 의아해하더니 쌀쌀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미 알아챘으니 숨기지 않을게요. 얼마 안 줬어요. 몇백 만 원을 줬죠.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예요. 중요한 것은 내가 그녀를 도와 당신을 혼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거예요.”심지안은 두 손으로 팔짱을 끼고, 그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하더니 웃으며 순수함과 섹시함이 동시에 보여주며 말했다.“나를 혼내주려고요? 그럼 뭘 더 기다려요, 어서 와요.”한수군은 만났던 여자가 많았음에도, 그녀가 이렇게 일부러 유혹하니 당해낼 수 없었다. 그는 즉시 그녀를 짓밟고 싶어졌다.“기다려요, 내가 당신을 어떻게 혼내 줄지 기대해요.”한수군은 말하면서 급히 옷을 벗었다.마지막 한 벌을 벗자 누군가 문이 걷어찼다.성연신이 빛을 거슬러 서 있었는데 부드러운 빛이 몸을 감쌌다. 키가 훤칠하고, 눈매가 늠름한 모습이 온몸을 금빛으로 둘러싼 것 같았으며, 마치 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 같았다.미리 계획된 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심지안은 잠깐 그에게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정말 멋졌다.이목구비며 몸매가 정말 기가 막혔다!성연신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한수군을 노려보며 혐오감이 눈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입고 있던 양복을 벗어 심지안의 머리 위를 덮어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한수군은 안색이 급변하여 주요부위를 가린 채 옷을 주워 입으려고 했지만, 눈치 빠른 정욱이 발로 땅 위의 옷을 문밖으로 걷어찼다.그는 당황한 나머지 성연신에게 아부하며 웃었다.“성 대표님, 이게 무슨 짓이에요. 저와 지안 씨는 서로
한수군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문득 아픔을 잊고 놀란 얼굴로 성연신을 바라보다가, 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심지안을 바라보았다.이 두 사람은 단순한 상사와 부하 사이가 아니다!경은 씨 이 바보가 그를 해친 거다. 예전에 보광의 데이터를 훔쳤어도 아무 일 없었는데, 이번에 성연신이 직접 나선 것은, 심지안과 한통속이었기 때문이다!한수군은 절망하여, 인생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이 일은 성연신의 힘으로 인해, 박용의 악랄하고 비열한 행위가 금융계에 널리 알려졌으며, 많은 회사가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부용의 주식시장도 곤두박질쳐서, 파산에 이를 뻔했다!경은은 이 소식을 들었는지, 며칠째 출근하지 않았다.그동안 김인정이 전화를 걸어와 무슨 상황인지 물었고 심지안은 자세히 설명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경은 씨에게 실망한 것 같았다. 어쨌거나 자신이 키워낸 사람이니 말이다.이날 심지안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동료들과 점심을 먹다가 임시연이 손에 가방을 들고 보광 중신의 빌딩 앞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심지안은 그녀가 성연신을 기다린다고 생각하고 자기도 모르게 눈을 뒤집었다. 역시 여신은 여신이었다. 성연신이 아무리 변명해도, 그의 마음속에서의 여신 자리를 넘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칠 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이 또 만나기로 했다니.심지안이 성연신을 원망하는 동안 임시연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하더니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심지안 씨.”심지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옆에 있는 동료에게 먼저 밥을 먹으라고 했다.“심지안 씨, 이건 제가 직접 만든 간식이에요. 그날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정말 누구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요.”“당신이 감사해야 할 사람은 성연신 씨예요.”임시연의 두 눈에 이상한 눈빛이 스쳤다.“연신이랑 결혼한 거 아니에요? 왜 이렇게 거리감 있게 들리죠...”그녀의 말에 심지안은 허리를 곧게 펴고 나서야 자신의 역할을 바로잡았다.
임시연은 표정이 굳어있지만, 뼛속까지 수양이 넘치는 사람이라 곧 평소와 같은 눈빛으로 돌아왔다."연신이는 위장이 안 좋아요, 당신이 만든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은 당신의 요리 솜씨가 높다는 것을 의미해요. 앞으로 연신이를 잘 돌봐주세요.”그녀의 어투는 공손하지만, 자세히 들으면 마치 성연신을 돌볼 수 있는 것이 당신의 복이니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심지안은 그녀가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았어요.”이 남자를 3년 동안 돌봤을 뿐이다. 그녀도 계약에 따라 일을 처리하면 되는 일이다.임시연은 싱긋 웃으며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예술가였는데 이미지가 말할 것도 없이 온화하고 우아했다. 이렇게 조용히 있어도 여기에서 많은 남자가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게 했다.심지안은 배가 몹시 고팠다.“그럼 맘대로 하세요, 저는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떠나려고 발걸음을 돌리자 임시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심지안 씨, 저와 연신이는 이미 끝났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들의 감정에 영향을 줄 이유가 없어요. 다만 금관성에 아는 친구가 연신이 한 명뿐이라서 가끔 연신이를 찾아가 옛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심지안 씨도 그를 난처하게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그리고 저는 연신이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그가 어떤 모임에 참석하고, 어떤 친구를 사귀었는지, 저는 다 알고 있어요. 심지연 씨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저에게 물어보세요.”처음엔 남몰래 도발했다면 지금은 아예 불을 지르고 있는 격이었다.심지안은 화를 내지 않고, 그냥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직감적으로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순수하고 해맑은 어조로 대답했다.“네, 고마워요.”“콜록... 심지안 씨, 왜 이렇게 공격적이세요? 저는 단지 연신이와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싶을 뿐이지, 당신들의 감정을 깨뜨리려고 한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꼭 이렇게 듣기 싫은 말을
성연신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친구인데 괜찮아요?”"가족이면 좋을 텐데요.”“그녀는 금관성에 가족이 없어요.”“좋아요, 따라오세요.”“당신도 함께 와요, 와서 요금을 내세요.”간호사는 몇 장의 명세서를 가지고 심지안에게 말했다.그녀는 손을 뻗어 명세서를 받아들고 대답했다.“알았어요.”“1층에 가서 계산하시면 돼요.”의사는 성연신에게 진단서를 건네주며 말했다.“환자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지금은 치료 시기를 놓쳤어요.”성연신의 눈동자가 움찔했다.“네?”“최근 이 병원에서 병을 본 기록이 있는데 말씀 안 드렸어요?”“아니요...”“환자의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몸 전체에 감염이 발생하기 쉬우므로 그녀의 기분에 맞춰주는 게 좋아요. 감정 기복이 너무 크면 안 돼요. 기분이 좋아야 치료에 적극적으로 따라줄 거니깐요.”병실 안.임시연은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온화한 얼굴이 창백하고 불쌍했다.그녀는 성연신이 진단서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당황한 눈빛으로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말했다.“너... 다 알았어?”“그래.”그는 복잡한 감정을 누그러뜨렸다.“언제 발견했어?”“반년 전에...”임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자신은 분명 환자인데 굳이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외국 쪽 의사는 속수무책이라고 금관성에 가보라고 했어. 난 그냥 포기하려고 했어. 금관성에 가서 너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네가 심지안 씨와 이미... 미안,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그리고 방금은 내 탓이야, 심지안 씨를 탓하지 마. 그녀는 너를 좋아하니, 내가 너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당연해.”성연신은 미간을 찌푸리며 약간 짜증을 냈다.“먼저 몸조리 잘해. 도움이 필요하면 정욱에게 말하고.”그는 당연히 어리석은 이 여자가 자신을 좋아하고, 심지어 다른 이성들이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런 것에 대해 상관없었지만, 단지 어리석은 이 여자가 임시연을 기절시켰을 때,
심지안이 목소리를 따라 보니 임시연이 성연신의 손을 꼭 잡고 눈가에 반짝이며 기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성연신이 승낙한 걸까?그녀는 손바닥을 힘껏 꼬집으며 날카로운 통증으로 마음속으로 해서는 안 될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두 사람의 꼭 잡은 손은 마치 날카로운 가시처럼 그녀의 심장에 박혔다.그녀는 눈앞이 흐릿해져서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허겁지겁 도망쳤다.손남영도 이때 이곳에 오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익살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저 먼저 갈게요, 계속하세요?”임시연은 문을 열 때 갑자기 손을 잡은 것이다. 성연신은 다른 생각을 하다가 뒤늦게 깨닫고 손을 빼며 말했다.“너 쉬어, 나 먼저 갈게.”손남영은 눈짓하며 그를 끌어당겼다.“좀 더 얘기하죠? 방금 얘기 잘 나눴잖아요, 제가 여기 잘못 온 거 같아요.”성연신은 담담하게 그를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없이 성큼성큼 떠났다.손남영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시선을 임시연에게 돌리고 물었다.“화해했어요?”임시연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아니요, 많이 같이 있어 달라고 했는데 거절했어요.”손남영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아까 그렇게 즐겁게 울었던 이유가 뭐예요?”“연신이는 그때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난 나를 용서해 주었어요. 그래서 가슴을 짓누르던 큰 돌멩이를 마침내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그렇군요... 난 또...”그는 말끝을 흐리며 임시연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임시연은 온화한 눈매로 허탈한 기색을 지었는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손남영은 성연신이 심지안을 선택한 것을 의외라고 생각했다.심지안은 회사로 돌아가 오후 내내 임시연에 관한 일을 생각했다.퇴근할 때가 되자 그녀는 성연신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다.지하 차고.정욱이 앞줄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백미러에 비친 남자를 힐끗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성 대표님, 제가 오늘 돌아가서 보광 빌딩 밖 CCTV를 한 번 봤
“임시연 씨는 자기가 항암하고 있을 때 연신 씨랑 같이 있고 싶은 거겠죠.”심지안은 조용하게 얘기했다. 속으로 오후 내내 연습하던 말을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또박또박 얘기했다. “우리 앞으로 조금 떨어져서 거리를 둬요. 할아버지 앞에서는 잘 연기하도록 하고요. 만약 중정원을 떠나라고 하면 떠나줄게요. 하지만 갑자기 떠나라고 할 때면 제가 묵을 곳도 알아봐 줘야 해요.”심지안의 뜻을 이해한 성연신은 미간을 팍 찌푸리며 얘기했다. “임시연이 원한다면 나를 아예 놔주겠다는 뜻입니까?”전혀 빼앗으려고 하지도 않고? ‘심지안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가?’한숨을 푹 내쉰 심지안이 곧이곧대로 얘기했다.“난 구질구질해지고 싶지 않아요.”그에게 뻔뻔하게 굴었다가 오히려 외면당할까 봐 무서웠다. 전에는 전남친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차량 내부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차가운 공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쌌다.성연신이 심지안의 어깨를 잡았던 손의 힘을 풀고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사랑한다더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랑이네요.”그 말에 심지안의 표정이 순간 굳어버렸다. 그녀는 그저 얄팍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정욱은 놀라서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밖에서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보며 조용히 집에 도착할 수 있기를 빌었다.심지안이 말했다.“그럼, 저 중정원에 계속 있을까요... 아니면 밖에서 세를 맡을까요?”중정원이 작은 것은 아니지만 임시연이 자주 성연신을 찾으러 오게 된다면 여러모로 어색해질 것이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말아쥐고 물었다.“나갈 생각까지 해요?”“아니, 전 그냥 제가 불청객이 될까 봐...”화가 난 성연신은 마치 털을 곤두세운 짐승과도 같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을 박찬 성연신이 얘기했다.“그렇게 이사 가고 싶으면 지금 당장 짐 싸서 나가요.”밖의 하늘은 이미 검은 구름이 몰려왔고 보슬비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차가운 빗물이 차 안으로 튀어들어 와 심지안의
밤은 점점 깊어지는데 비는 전혀 그칠 생각이 없었다. 비바람이 부는 가운데 두 시간 동안 서 있었던 심지안은 이미 추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택시를 잡지 못하리라 생각한 심지안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성 대표님, 지안 아가씨가 걸어서 돌아가려는 모양입니다.”잘생긴 성연신의 얼굴이 무섭게 구겨졌다. 그에게 돌아와 빌 바에는 차라리 걸어가겠다? “따라가.”정욱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면서도 자존심을 굽히기 싫어한다. 이 길은 제경으로 향하는 길인데 지나가는 차들의 속도가 빨라서 물보라를 맞기 쉬웠다. 유독 한 흰 자동차가 매너 있게 속도를 줄여 심지안의 옆을 지나갔다. 하지만 심지안 본인은 입술이 파랗게 질린 채 추위에 떨고 있어 그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흰색 자동차가 그녀의 옆에서 멈추더니 차 창문을 내렸다. 한 남자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개울물처럼 맑고 청량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와드릴까요? 목적지까지 데려다줄게요.”빗물에 젖은 심지안의 속눈썹이 눈앞을 막아 시야를 가렸다. 눈앞의 남자는 주원재의 또래 같아 보였다. 깨끗한 피부와 부드러운 얼굴은 딱 봐도 잘사는 집의 도련님이었다.심지안은 갑자기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낯선 사람도 자기를 걱정해 주는데 성연신은 옆에서 바라만 보고 있다.숨을 들이쉰 심지안이 거절을 하기도 전에 쿨럭거리며 기침을 했다. 남자가 더욱 걱정하며 얘기했다.“차에 타요. 데려다줄게요. 나쁜 사람 아니니까 무서워하지 말아요.”“아니에요, 괜찮습니다.”겨우 기침이 멎은 심지안이 감사를 전하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남자는 잠깐 고민하는 눈빛으로 성연신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기사에게 얘기했다.“가서 우산이라도 줘요.”기사는 놀라서 멈칫하다가 명령을 따랐다.“아가씨, 이건 우리 도련님께서 드리는 우산입니다.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잠시라도 비를 피할 곳을 찾으세요.”기사는 우산은 심지안의 품속으로 넣어주고 총총걸음으로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