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신은 회의가 시작된 지 20분이 지난 뒤 간결하게 몇 마디 말하고는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그 후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뒷문으로 나가 회의장을 떠났다.그는 차에 오른 뒤 손목을 내려다보며 시간을 확인했다.7시가 훌쩍 넘어있었다.심지안이 집에 돌아올 시간이었다.그는 심지안이 오후 반차를 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무슨 선물을 사 올까.“정욱, 중정원으로 가.”“네. 대표님.”정욱이 엑셀을 밟았다가 곧바로 돌연 브레이크를 밟았다.홍교은이 두 팔을 벌리고 차 앞을 막아선 것이다. 그녀가 뒷좌석에 앉아있는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내려와. 너한테 할 말이 있어.”정욱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성연신을 힐끗 보고는 이마를 찌푸리며 차 창문을 내렸다.“홍교은 씨, 다음날 얘기하세요.”“안 돼요. 난 지금 말해야 해요.”“하지만 대표님께선 오늘 바쁘십니다...”“일보다 내가 더 중요해요.”“... 홍교은 씨, 저와 장난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대표님도 집에 돌아가셔야 해요.”홍교은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집에 가도 아무도 없을 텐데 가서 뭘 해요.”그때 성연신이 고개를 들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그게 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야. 내가 차에 타는 걸 허락해 주면 그 멍청한 년을 만나게 해줄게.”“올라와.”홍교은이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차에 올라타 그의 옆에 앉았다.“심지안 씨는 어디에 있어?”“일단 나랑 술 마시러 가자. 그럼 알려줄게.”성연신의 눈동자에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그가 정욱에게 명령을 내렸다.“그 사람한테 전화해.”그 사람이란, 당연히 심지안을 가리켰다.정욱이 핸드폰을 찾아 몇 번이나 전화를 해보았지만 모두 상대의 핸드폰이 꺼져있다는 신호음만 들려올 뿐이었다.“대표님,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성연신이 손가락 관절을 뒤틀며 차갑게 쏘아붙였다.“마지막 기회니까 말해. 어디에 있어?”“알 생각하지 마. 하루 동안 나와 함께
끝났다. 이제 그녀는 곧 죽는다.틀림없이 홍교은일 것이다.그야말로 미친 여자다.남자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다니.물이 차가움에도 불구하고 몸이 아직 얼어붙지 않은 걸 보니 물 안에 묶인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 이미 가슴까지 잠겼고 물이 차오르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만약 성연신이 빠른 시간 안에 그녀에게 변고가 생겼음을 알게 된다면 한 가닥의 살 희망이 생기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의심의 여지 없이 목숨을 잃게 된다.심지안은 한동안 울고 난 뒤 자신에게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애써 다그쳤다.마지막 순간이 오기까지 그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아직 더 살고 싶었다.심지안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살려주세요. 누구 없어요?”“저 물 안에 있어요. 이 소리가 들린다면 절 구해주세요!”“...”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이 흘렀다.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공허한 메아리 소리만 커다란 저수지에서 울려 퍼질 뿐이었다. 심지안은 고개를 숙이고 밑을 내려다볼 수도 없었다. 갑자기 물 안에서 무서운 괴물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그녀는 체온이 떨어져 얼굴이 창백해졌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그녀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멈추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짧디짧은 15분이라는 시간 동안 수위는 이미 목까지 차올랐다. 이따금 튀어 오르는 물보라는 숨까지 턱턱 막혀오게 만들었다.심지안은 이제 입술이 진보라색으로 물들었고 몸은 이미 얼어붙어 감각까지 사라져버렸다. 조금 전 깨어났던 의식이 또다시 짙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 것만 같았다.정말 이렇게 죽는 걸까?하지만... 그녀는 이틀 뒤면 재판을 진행하게 된다. 그녀는 아직 엄마가 남겨준 혼수를 가져오지 못했다. 설사 죽는다고 해도 심씨 집안이 이득을 보게 할 수는 없다.그리고 성연신이 그녀에게 찾아준 변호사... 그 드높은 변호사 비용을 아직 돌려주지도 못했다...그녀는 죽어서까지 그에게 빚지고
성연신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온몸이 흠뻑 젖어버린 심지안이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 준수한 눈썹에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녀의 미모엔 조금의 영향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청초함을 더 가미시켰다.성연신은 멍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순간 온몸을 경직시켰던 긴장의 끈이 드디어 느슨해졌고 심장을 파고들었던 공포감이 천천히 자취를 감추었다.살아있으면 됐어...그가 외투를 벗어 그녀를 감싸고는 더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도망쳐 나온 거예요?”심지안이 옆에 서 있는 홍자덕을 가리켰다.“저분이 절 구해줬어요.”홍교은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소리쳤다.“아빠, 대체 왜 제 계획을 망가뜨린 거예요!”“너 네가 무슨 한 건지나 알아?!”홍자덕이 분노했다.“저 사람이 오늘 정말 죽었다면 넌 살인범이 돼. 그럼 네 인생은 끝나는 거야!”그는 어젯밤 자신의 딸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무슨 일을 저지를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녀가 심지안을 익사시킬 계획을 하고 있었을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하지만 저년도 죽잖아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죠.”“네가 죽으면 나더러 어떻게 네 엄마한테 말하라는 거야? 그만하고 빨리 와서 심지안 씨한테 사과해!”“살인미수를 저질렀는데 사과만 하라니요. 아저씨, 제 아내의 목숨이 아저씨에겐 그 정도 가치밖에 되지 않는 건가요?”성연신의 두 눈에서 뼛속 깊은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험악한 분위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금이 저려오게 만들었다.홍자덕은 순간 얼굴이 굳어버렸다. 그 역시 물론 사건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그가 홍교은에게 소리쳤다.“무릎 꿇어!”존엄이란 때론 천금으로도 바꾸지 않을 만큼 중요하지만 때로는 만두 하나보다도 못할 정도로 그 가치가 형편없다.애석하게도 홍교은은 그 간단한 이치를 깨우치지 못했다.“싫어요. 죽지도 않았는데 제가 왜 사과해야 하는데요!”사랑하는 남자가 그녀의 눈앞에서 다른 여자를 두둔하고 보호하고 있다. 이 순간 가장 괴로운 건
성연신은 깜짝 놀라 입을 열었다.“날 위해 그렇게 할 필요 없어요.”“알아요. 하지만 나도 연신 씨를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어요.”성씨 가문을 도울 기회가 생긴다면 당연히 도와야 한다.성연신이 복잡한 얼굴로 그녀의 어깨에 팔을 감쌌다.홍자덕은 창백해진 얼굴로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딸의 미래와 비교한다면 그깟 돈이 뭐가 대수겠는가.심지안과 성연신은 이번 일을 성수광에게 알리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할아버지에겐 심장병이 있으니 자극을 받는 건 피해야 하니 말이다.“일단 병원에 가요. 열이 나면 안 되잖아요.”“그래요. 추웠다가 더웠다가 하는 것이 몸이 좀 불편한 것 같아요.”심지안이 연신 재채기를 하며 말했다. 머리도 조금 무거워진 듯한 느낌이었다.성연신이 그녀에게 눈길을 돌렸다. 창백한 얼굴에 이상한 붉은빛이 돌았고 목소리도 모두 잠긴 것이 독감 전조증상이 분명했다.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오늘 많이 힘들었죠?”심지안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그런 말도 할 줄 알아요?”참 쉽지 않은 일이다.자기밖에 모르는 남자가 그런 말을 내뱉다니.성연신의 입꼬리가 격렬한 경련을 일으켰다.“지안 씨 마음속에서 난 도대체 어떤 사람이에요?”“장난이에요. 당신은 내 마음속에서 가장 완벽하고, 따뜻하고, 멋있는 남자예요!”물론... 성격도 가장 더럽기도 하고요.심지안은 조용히 한마디 더 보탰다.성연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마음에 드네요.”“참, 수영 잘해요? 저수지에 뛰어들어 날 구하려고 했잖아요.”심지안이 진지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정말 많이 감동받았어요. 하지만 다음엔 그러지 말아요. 날 구하다가 오히려 당신 몸이 상할 수도 있잖아요.”“그 입 다물어요. 다음이란 없어요!”“맞아요. 다음은 없어야죠. 내가 괜한 말을 했네요.”“당신을 구하는 건 내가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이에요. 당신은 법률상 내 아내잖아요. 당연히 구해야죠.”심지안이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돌연 눈앞의 이 남
심지안은 깊은 밤이 되어서야 잠에서 깼다. 혼미한 정신의 그녀의 눈에 어렴풋이 간호사의 모습이 들어왔다.“고열이 지속되고 있어서 링거를 계속 맞아야 해요. 오늘은 일단 입원해 지켜봐요.”“몇 도인데요...”“39도요.”진유진이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며칠 동안 푹 쉬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그럼 회사 일은... 그리고 연신 씨의 생일, 내일 모레는 재판이 있는데...”“연신 씨가 보광 그룹의 대표인데 회사일 걱정은 왜 해. 그리고 생일은 이번 한 번 밖에 있는 거 아니잖아. 다음 기회에 잘 축하해 주면 돼. 선물은 내가 이미 전해줬어. 모레쯤이면 네 몸도 괜찮아질 테니까 재판엔 참석할 수 있을 거야.”“응... 연신 씨는?”“회사에 일이 있는 것 같았어. 조금 전에 갔어.”“내가 준 선물을 보고 좋아했어?”그에게는 너무나도 저렴한 선물이다. 너무 하찮은 물건이라 얼굴을 찌푸리진 않았을까...진유진이 선물을 받던 성연신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말했다.“표정은 평온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입이 귀에 걸렸던데?”심지안이 입을 삐죽거렸다.“홈웨어는 그다지 귀중한 물건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좋아했다고?”“맞아. 내 생각에 성연신 씨는 널 좋아하고 있어.”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반짝거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냥 할아버지가 날 좋아하니까 그것만으로 내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아니. 정말이야. 날 믿어.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좋아하는 건 확실해. 저수지에서 널 봤을 땐 어떤 반응이었어? 긴장한 모습이었어? 두려워하는 모습이었어?”“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어. 그냥 저수지에 뛰어들어 날 구하겠다는 말만 들었어.”진유진이 화들짝 놀라며 무릎을 탁 쳤다.“이건 좋아하는 것뿐만이 아니야. 이건 사랑이야.”“허튼소리 하지 마.”심지안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 사람이 날 사랑하는지 아닌지 내가 느끼지 못할 것 같아?”“때론 당사자보다 주위 사람의 눈에 더 잘 보
심지안은 입을 삐죽거렸다. 임시연이라는 이 여자는 글씨도 잘 쓰네.그녀는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사진을 찍어 성연신에게 보냈다.성연신은 오후가 되어서야 ‘알겠어요’라는 간단한 네 글자로 답장했다.심지안이 심통이 났다. 꿈에 그리던 여자가 편지를 보내왔는데 반응이 왜 이렇게 뜨뜻미지근하단 말인가?이럴 리가 없다.심지안은 처음 임시연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만큼 호기심이 생기진 않았다. 어찌 됐든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성연신과는 헤어지게 될 테니 말이다.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여자가 누구인지, 앞으로 누구와 결혼할지는 그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그저 마음이 조금 쓰라릴 뿐이다.함께 생활한 시간이 기니 감정이 생기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하물며 원이와도 감정이 생기지 않았던가.성연신의 오늘 퇴근 시간은 심지안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랐다.하지만 그와 함께 장학수도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연신아, 섭섭하게 왜 생일을 몰래 보내려고 그래. 우리 형제들을 모두 모아 함께 놀아야지.”“입 다물어.”성연신이 차가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장학수는 곧바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심지안이 난처한 얼굴로 그를 보며 말했다.“장 변호사님도 오시는 걸 알았다면 음식을 더 준비했을 텐데 지금은 다섯 개 요리밖에 차리지 못했어요. 부족할 것 같은데 몇 개 더 할까요?”장학수가 밥상을 슥 훑어보고는 말했다.“확실히 좀 부족하긴 하네요.”집에서 혼자 먹을 때에도 십여 개의 요리를 차려놓고 한 요리 당 두 번씩 집어먹는다.성연신은 그들 사이에서도 가장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었다.“너 돼지야?”성연신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요리가 다섯 개나 되는데 세 명이 먹기에 모자라다고? 너 위가 도대체 몇 개야?”심지안이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음식을 차렸는데 오자마자 투정이라니.장학수가 억울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난 돼지가 아니야...”“그럼 입 다물어. 먹기 싫으면 옆에서 기다리고.”“안 돼. 나 아직 밥 먹기 전이라 배고프단
심플한 디자인의 홈웨어를 입고 완벽한 몸매를 뽐내고 있는 그에게선 그 누구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성연신은 무언가를 느낀 듯 심지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두 쌍의 눈동자가 서로 마주쳤다.심지안은 순간 그의 깊은 눈동자에 깊이 빨려 들어갔다.돌연 정신을 차린 그녀는 어색하게 그의 시선을 피했다.“곽준위 씨한테 그렇게 함부로 했는데 가만히 있을까요?”“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요, 나한테 도전이라도 하겠어요?”성연신이 가소롭다는 듯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쳇.”심지안도 곽준위가 감히 성연신의 말에 토를 달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다만 무서워는 하겠지만 뒤로 무슨 짓을 꾸밀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이 합의서와 심전웅이 은행에서 자산과 보석을 꺼내온 기록이 모두 있으니 반드시 승소할 거예요. 심지안 씨가 감정에 휘둘려 마음이 약해지지만 않으면 돼요.”장학수가 당부했다.이건 증거를 찾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사건이 아니다. 가장 힘든 건 부녀 관계라는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다.“그러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과 저 사이에 이젠 감정 따위 없어요.”장학수는 단호한 그녀의 모습에 성연신의 선택에 대한 걱정의 마음이 피어올랐다. 설마 또다시 모두에게 버려진 가여운 사람이 되진 않겠지.“이 협의서의 내용에 의하면 엄마는 저에게 4억을 남겨주셨어요. 정말 이렇게 많아요?”십여 년 전의 4억은 적은 돈이 아니다. 작은 규모의 회사를 차리기에도 충분한 액수다.장학수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재판이 끝난 뒤 심전웅에게 가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봐요.”그 4억은 그녀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그들의 딸에게 남겨준 재산일 수도 있을 것이다.“그래요. 알겠어요.”한 시간 동안 더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덧 10시가 되었다. 장학수는 서류 봉투를 들고 집을 나섰다.심지안이 저도 모르게 탁자에 시선을 돌렸는데 위에 놓여 있던 편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아마 성연신이 침실로 가져갔을
“재판장님, 저흰 그런 적 없어요. 저 사람의 말은 믿으면 안 돼요.”심연아가 다급함에 소리쳤다.법관이 엄숙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럼 심지안 씨와 끝까지 재산 다툼을 하겠다는 건가요? 하지만 제가 이해한 정황으론 당신과 심지안 씨는 이복 자매예요. 심지안 씨의 생모가 남긴 재산을 가질 자격은 당신에게 없어요.”처음부터 끝까지 조목조목 일리 있는 말이었다.심연아가 창백하게 변한 얼굴로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뜻이 아니라... 전 그냥 제 아버지를 대신해 설명했을 뿐이에요.”“피고인 스스로 설명해야 합니다. 심연아 씨는 발언 차례가 오기 전엔 조용히 하세요.”법관이 심전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피고인, 발언해 보세요.”“전 이 재산의 일부 소유권을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저와 제 아내의 공동재산이었으니까요.”고민하는 듯한 법관의 모습에 심전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 패를 남겨둔 건 정말 천만다행이다.심지안이 입술을 꽉 깨물고 주먹을 힘껏 말아 쥐었다.“그 재산은 확실히 공동재산이에요. 저도 조사한 바 있어요.”장학수가 말했다.심전웅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맞아요. 그래서 제가 그 권리를 주장하는 건데 뭐 문제 있나요?”“정상적인 상황에선 문제없죠.”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씩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당신은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책임을 다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없는 거죠!”“아버지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 대체 어떻게 저만큼 자란 건데요?”심전웅이 덤덤하게 말했다.“젊은 사람이 억지가 심하네요.”장학수 역시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재판장님, 저한테 증거가 있습니다.”“제출하세요.”“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심지안 씨의 곁에서 지켜봐 온 친구분 몇 명을 모셔왔습니다. 그들은 과연 심전웅이라는 아버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들어보시죠.”“그렇게 하세요.”이어 진유진과 심지안의 대학 동기, 그리고 회사 동료가 안으로 들어왔다.심지안은 익숙한 얼굴들을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