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사연은 자신이 진서준에게 속았음을 곧 눈치챘다.“이 망할 놈!”진서준의 허벅지를 만지던 허사연의 손이 다시 한번 진서준을 힘껏 꼬집었다.“아이고!”진서준은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억울한 얼굴로 허사연을 바라봤다.“왜 또 꼬집는 거예요?”“내가 왜 꼬집는 것 같아요?”허사연은 이를 악물더니 진서준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양 뺨에 홍조가 피어올랐다.진서준은 뻔뻔하게 말했다.“자기 남자 친구 다리를 마사지해 주는 건 여자 친구로서 의무 아닌가요?”“누가 서준 씨 여자 친구예요? 조금 전에는 순수한 사이라고 하더니...”허사연은 팔짱을 두르며 고개를 홱 돌렸다.“우리는 순수한 사이가 맞죠. 하지만 사연 씨는 제 여자 친구기도 해요. 화내지 말아요. 내가 다리 주물러줄게요.”말하면서 진서준은 손을 뻗어 허사연의 허벅지를 주물렀다.허사연의 허벅지에는 군살이 없었다. 다리 전체가 부드럽고 매끈하여 손을 떼기가 아쉬웠다.진서준이 갑자기 허벅지를 만지자 허사연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마치 술을 한 병 마신 듯 얼굴 전체가 불긋불긋했다.하지만 허사연은 진서준의 얄궂은 손을 쳐내지는 않았다. 진서준이 만지고 있어 허사연은 다리가 찌릿찌릿하고 무척 편안했다.사람들은 진서준과 허사연의 애정행각을 견디기가 힘들었다.“민규 형, 형 다른 볼일 있지? 우린 먼저 가볼게. 서준 형님이랑 형수님 방해하지 말자...”하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우리는 먼저 가자.”허사연은 그제야 룸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 서둘러 진서준의 손을 쳐냈다. 그녀는 감히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서준 형님, 저희는 먼저 가볼게요. 형님이랑 형수님 얘기 나누시는데 방해하지 않을게요.”하민규는 웃으면서 그들을 데리고 떠났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가봐요.”조해영은 그들과 함께 갈 수 없었다. 혹시나 경비원을 시켜 진서준의 차를 박살 낸 것이 본인이라는 걸 그들이 알까 봐서 말이다.“다들 먼저 가요. 난 화장실 좀
조해영은 화장실에 한참을 숨어 있다가 하민규가 위치를 보내주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그러나 그녀가 호텔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경비원들이 단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얼른 저 여자를 붙잡아. 절대 저 여자가 도망치게 놔두지 마!”경비팀장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더니 조해영을 향해 달려들었다.조해영은 깜짝 놀라더니 몸을 돌려 위층으로 도망쳤다.그런데 그녀가 도망치기도 전에 경비원들이 그녀를 에워쌌다.“전부 당신 때문이에요. 우리는 돈도 못 받고 이젠 일자리까지 잃었어요!”“오늘 그 고객님의 돈을 배상하지 않는다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요!”“난 당신처럼 경우 없는 여자는 처음이에요. 정말 역겹네요!”조해영을 바라보는 경비원들의 눈동자에는 원망이 가득했다.그들은 지금 조해영이 죽도록 미웠다.만약 조해영이 아니었다면 일자리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이번 달 월급을 몰수당했다.조해영이 마이바흐 차주에게 배상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돈을 모아 배상해야 했다.경비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기에 5, 6명이 4억을 모으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뭐 하는 거예요? 다들 꺼져요. 컴플레인 걸기 전에!”조해영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경비원들이 겁을 먹고 도망치기를 바랐다.그러나 그들은 이미 호텔 매니저에 의해 잘렸다.“이미 잘린 마당에 어디에 컴플레인을 걸겠다는 거예요? 오늘 돈을 주지 않으면 여기서 못 떠날 줄 알아요!”경비팀장이 큰 목소리로 화를 내며 외쳤다.조해영은 흠칫하더니 이내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내 큰아버지는 조성우예요. 비키지 않는다면 큰아버지에게 연락할 거예요!”“조성우인지 뭔지 상관없어요. 오늘 당신이 누구를 부르든 반드시 배상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떠날 생각 하지 말아요!”경비원들은 이미 모든 걸 잃었기에 조해영과 싸우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경비원들이 강하게 밀어붙이자 조해영은 화가 났다.“좋아요. 그러면 지금 당장 큰아버지에게 연락하겠어요!
잠시 뒤 호텔 매니저가 로비에 도착해서 경비원과 대치하고 있는 조해영을 발견했다.“매니저님, 바로 이 여자가 우리에게 차를 부수라고 지시했습니다!”“세상에!”매니저는 조해영의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조금 전 하민규의 룸 안에 조해영도 있었다.설마 이 여자가 사장의 남자 친구와 사적인 원한이 있는 걸까?매니저가 자신을 알아보자 조해영은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날 알아봤으면 빨리 이 경비원들에게 비키라고 해요!”매니저는 고개를 저었다.“죄송합니다만 아직 떠나실 수 없습니다.”“무슨 뜻이에요? 우리 큰아버지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이거예요?”조해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우리 큰아버지는 조성우예요. 식견이 얕은 당신들이지만 설마 모르는 건 아니죠?”조성우라는 말에 호텔 매니저는 깜짝 놀랐다.그는 당연히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성우 본인이 이곳에 온다고 해도 호텔 매니저는 조해영을 이렇게 보내줄 수 없었다. 허사연이 책임을 묻는다면 호텔 매니저를 그만둬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압니다. 하지만 떠나실 수 없으세요.”매니저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조해영은 호텔 매니저가 말이 통하지 않자 화가 나다 못해 헛웃음을 쳤다.“그래요. 잠시 뒤에 우리 큰아버지가 와도 이렇게 당당할 수 있나 지켜보겠어요!”말을 마친 뒤 조해영은 거만하게 자신의 앞에 있던 경비원을 밀치고 소파를 향해 걸어가서 그 위에 앉았다.“여러분은 여기서 저 여자를 지켜보세요. 전 사장님을 모시고 내려올 겁니다.”매니저는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탔고 이내 하민규의 룸 앞에 도착했다.“사장님, 사장님!”진서준의 허벅지 위에 앉아있던 허사연은 깜짝 놀라서 서둘러 옷을 정리했다.“전부 당신 탓이에요!”허사연은 얼굴을 붉히더니 원망스러운 눈길로 진서준을 힐끗 보았다.“사연 씨 탓이죠. 사연 씨가 너무 매혹적인 걸요.”진서준은 자신의 입가를 핥았다. 허사연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애정이 가득했다.안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자 매니저는 노크를 했다.
진서준은 조해영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나 참회하는 기색이 전혀 없자 더욱 화가 났다.“왜 내 차를 부순 거죠? 내 차는 주차선에 맞춰 주차했는데요. 그 쪽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요!”진서준이 매섭게 따져 물었다.비록 조해영은 하민규의 친구이긴 했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하민규가 그의 차를 부쉈다고 해도 진서준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방해가 되지는 않았죠. 하지만 당신이 사람을 시켜 허머로 제 차를 막아놨죠!”조해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히려 진서준을 탓하기 시작했다.“만약 당신이 허머 세 대로 내 차를 막지 않았다면 내가 당신 차를 부쉈겠어요?”허사연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진서준이 왜 조해영의 차를 막는단 말인가?“우습네요. 당신이 자기 차를 내 차 뒤에 세워놓고 내 길을 막았죠. 내가 두 번이나 연락했는데도 당신은 차를 옮기려 내려오지 않았어요.”진서준은 드디어 조해영이 왜 자기 차를 부쉈는지 알게 되었다.조해영이 바로 그 마세라티 차주였다.“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사나이가 돼서 여자한테 양보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진서준은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났다. 그는 차갑게 조해영을 바라보았다."도리를 따지는 여자라면 당연히 양보해야죠. 하지만 당신 같은 사람에게는 절대 양보할 수 없어요!”어떤 사람들은 조금만 양보하면 사람을 만만하게 본다.그런 사람들에게는 강경한 태도를 보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어오르려 한다.“하하, 조금 전에 당신이 민규 오빠 친구인 걸 몰랐다면 당신은 이미 내게 맞았을 거예요!”조해영은 전혀 양보하지 않으며 차갑게 웃었다.이번에는 진서준의 곁에 서 있던 허사연이 분노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새도 없이 곧장 조해영의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뻔뻔하군요! 당신이 잘못해 놓고 감히 내 남자의 문제라고 하는 거예요? 당신 두 손 잘라버릴 줄 알아요!”허사연이 조해영을 향해 소리쳤다.기세등등한 허사연의 모습에 조해영은 조금 주눅 들었다.그러나 그녀는 이내 반박했다
조해영이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 그녀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지금까지 거만하게 살아온 조해영은 자기 큰아버지가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그러나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진서준을 대하는 하민규의 태도만 봐도 진서준의 신분이 범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민규는 서울시에서도 대단한 재벌가 자제였다.그가 정중하게 대하는 사람이라면 조성우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만약 하민규 일행이 먼저 떠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누군가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조해영을 걷어찼을 것이다.“그래요, 난 여기 있을게요. 당신 큰아버지가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거만한지 한 번 봐야겠어요.”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 그는 덤덤한 얼굴로 조해영의 큰아버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몇 분 뒤 플라잉 호텔 밖에 급히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검은색의 아우디 5, 6대가 호텔 문 앞에 도착했고 십여 명의 검은색 정장을 입은 장정들이 차에서 내려 두 줄로 섰다.마지막에 조성우가 차에서 내려 냉담한 눈빛으로 호텔을 바라보았다.5성급도 아닌 호텔이었기에 조성우는 그곳 사장이 안중에도 없었다.타다닥...일치한 발소리에 사람들은 머리털이 쭈뼛 섰다.모두 고개를 돌려 호텔 입구를 바라보았다. 십여 명의 건장한 몸집을 가진 장정들과 평범하지 않은 기세를 띤 정장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정장을 입은 남자들을 본 조해영은 구세주라도 본 듯 곧바로 달려갔다.“큰아버지, 드디어 오셨네요!”조해영은 경호원들 사이로 들어가서 눈물범벅인 얼굴로 조성우의 앞에 섰다.조해영의 얼굴에 남은 손바닥 자국을 본 조성우는 무척 분노했다.“어떤 간 큰 놈이 감히 네 뺨을 때린 거야?”“그 빌어먹을 놈들은 제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절 걷어찼어요!”조해영은 자기 복부를 가리켰다.“해영아, 오늘 큰아버지가 그 사람들 아주 혼쭐을 내줄게!”조해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조성우는 계속 조해영을 애지중지해서 조해영은
호텔 로비 안은 조용했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을 떡 벌렸다. 이 일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조성우는 기세가 남다른 경호원들 십여 명을 데리고 왔다.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러나 그는 조카의 뺨을 때리더니 그의 조카를 때린 사람에게 사과를 했다.이 상황이 가장 믿기지 않는 건 조해영이었다.그녀는 큰아버지가 왜 진서준을 향해 사과하는지 알 수 없었다. 피해자는 그녀가 아닌가!“조금 전에 조성우 씨 조카가 나랑 허사연 씨 손을 부러뜨리고 우리를 거지로 만들겠다고 하던데요.”진서준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덤덤한 눈길로 조성우를 바라보았다.“전...”조성우는 몸을 흠칫 떨면서 공포에 질렸다.조해영이 건드린 사람이 진서준이라는 걸 알고 있었더라면 이미 사죄했을 것이다. 이렇게 경호원들을 데리고 찾아왔을 리가 없었다.조성우의 겁에 질린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했다.“큰아버지, 저런 젊은이를 왜 두려워하는 거예요? 저 사람은 민규 오빠 친구일 뿐이에요! 그리고 저 여자는 5성급도 아닌 호텔의 가난한 주인일 뿐이에요!”조해영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아직도 뒤에서 화를 내고 있었다.조성우는 속으로 욕하고 있었다. 그가 진서준과 허사연의 진짜 신분을 모를 리가 없었다.“입 닥치라니까!”조성우는 고개를 돌려 화가 난 얼굴로 멍청한 조카를 노려보았다.진서준이 정말로 화를 낸다면 그뿐만 아니라 한지유의 회사까지 끝장이다.“큰아버지...”조해영은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었다. 그녀는 큰아버지가 이런 표정을 하는 걸 처음 봐서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정치인을 만날 때도 조성우는 이런 표정을 한 적이 없었다.“당장 여기로 와!”조성우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가득했다.만약 오늘 진서준과 허사연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다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조해영은 그 광경을 보더니 내키지 않는 얼굴로 걸어갔다. 조금 전의 거만함은 전
한지유는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사람을 시켜 차를 준비해서 플라잉 호텔로 향했다.진서준은 냉소를 점점 회복하는 조해영을 보더니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 정도 연기력이면 배우를 하지.”조해영은 진서준이 여전히 자신을 조롱하자 화를 내며 소리를 쳤다.“당신은 끝장이에요. 우리 큰어머니가 곧 올 거예요!”“네 큰어머니가 온다고 해도 넌 진서준 씨에게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해!”조성우는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말도 안 돼요. 큰어머니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예요!”조해영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자 조성우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진서준에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진서준 씨. 제가 평소에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이렇게 자란 겁니다...”진서준은 손을 들어 조성우의 사과를 끊었다.“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죠.”조성우는 심장이 철렁했지만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이내 한지유가 자기 경호원들을 데리고 호텔에 도착했다.“여보,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자기 조카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할 수 있어? 소문이라도 난다면 앞으로 해영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사람이 보이기도 전에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한지유의 목소리를 듣자 조해영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곧바로 한지유에게 달려갔다.“큰어머니, 드디어 왔네요!”조해영이 한지유의 앞으로 달려가서 억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네 뺨은 누가 때린 거야?”한지유는 조해영의 맞아서 붉게 부어오른 얼굴을 보더니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하나는 큰아버지가 때렸고 다른 하나는 저 여자가 때린 거예요.”조성우도 때렸다는 말에 한지유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조성우를 찾았다.조성우를 본 그녀는 화를 내며 말했다.“여보, 당신 친조카인데 어떻게 이렇게 심하게 때릴 수가 있어?”“걔가 누굴 건드렸는지 한 번 봐봐!”조성우가 불퉁하게 말했다.한지유는 조성우의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더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분노에 가득 찼던 한지유의 얼굴이 두려움과 당황함으로 물들여졌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해영이 두 무릎을 호텔 바닥에 꿇었다.호텔 로비가 정적에 잠겼다.“사과해!”조성우와 한지유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조해영은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마치 엄청난 굴욕을 당하는 것처럼 말이다.“죄송합니다... 진서준 씨!”진서준은 조해영이 여전히 내켜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내키지 않아 한들 뭘 어쩔 수 있겠는가?“거기, 이 여자 차 망가뜨려요!”진서준은 로비에 서 있던 경비원들을 향해 말했다.그 경비원들은 겁을 먹고 머리가 텅 빈 상태였다. 호텔 매니저가 그들을 불러서야 그들은 정신을 차렸다.“진서준 씨가 저 여자 차를 망가뜨리라고 하잖아요. 얼른 가요!”호텔 매니저가 날카롭게 말했다.“네...”그들은 헐레벌떡 호텔에서 달려 나가 조해영의 마세라티를 마구 부쉈다.이내 8억짜리 스포츠카가 만신창이가 되었다.상황을 알지 못하던 행인들은 그 광경에 가슴이 아팠다.“꺼져요. 앞으로 또 다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이렇게 끝나지 않을 줄 알아요!”한지유 부부가 김연아와 사이가 좋았기에 이렇게 쉽게 조해영을 봐준 것이다. 김연아의 체면을 고려한 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그렇지 않으면 조해영은 분명 톡톡히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얼른 진서준 씨께 감사하다고 해!”한지유가 옆에서 귀띔했다.스포츠카가 부서지고 무릎까지 꿇었는데 상대방에게 감사 인사까지 해야 하다니!조해영은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될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심지어 입술을 너무 짓씹어서 피가 흘렀다.“죽이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서준 씨!”조해영은 입가에서 흐르던 피를 삼키며 인생의 쓴맛을 느꼈다.“내키지 않는 건 알겠어요. 만약 실력이 있다면, 혹은 실력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면 얼마든지 복수해요!”진서준이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하지만 기회는 한 번뿐이에요!”조성우가 서둘러 말했다.“진서준 씨, 제 조카가 워낙 제멋대로여서 그렇습니다. 제가 돌아가서 잘 타이를 테니
“이장로님, 부탁은 했지만 이놈이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방금 내가 이놈을 존중하지 않았다며 트집을 잡더군요.”은청준은 여전히 진서준에게 책임을 떠넘겼다.하지만 이장로는 은청준을 잘 알고 있었다.이장로는 은청준이 거만한 태도로 행패를 부려서 진서준이 대답하지 않은 거라고 추측했다.“은청준,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장로는 살기가 섞인 표정으로 최종 통보를 내렸다.그 말을 듣자 은청준은 순간 멈칫하며 마음속에서 불만이 피어올랐다.“제가 방금 말투가 좀 거칠긴 했지만 이놈의 태도도 별로였습니다. 심지어 주동적으로 나가서 나랑 한 판 붙자고 하더군요.”은청준은 여전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일부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기고 있었다.“은청준, 이젠 하다 하다 장로인 나까지 속일 거야?”이장로는 분노를 터뜨렸다.“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지금 당장 김평안 씨에게 사과해!”은청준은 얼굴이 굳어졌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사과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우리 후배를 치료할 수 없다면 어떡하죠? 그럼 내가 당한 망신을 이 사람에게 그대로 돌려줘도 됩니까?”잠자코 지켜보던 진서준이 손을 들어 올리며 끼어들었다.“부탁이고 나발이고 그냥 없던 일로 해. 내가 뭐 하늘의 신이라도 돼? 난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만병을 고치는 능력도 없어.”이장로는 진서준이 은청준을 일부러 괴롭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은청준이 무슨 말을 하던 진서준은 반대로 대답하며 그를 괴롭히는 중이었다.물론 은청준을 괴롭히는 건 조금 전에 당했던 말도 안 되는 행패에 대한 복수였다.“김평안 씨, 걱정 마세요. 설령 슬기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더라도 이 자식이 김평안 씨와 따지지 않도록 약속하겠습니다.”이장로가 진심을 담아 진서준과 약속하자 진서준은 이장로를 흘끗 보고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말한 대로 하길 바랍니다.”“얼른 사과 안 해?
“그럼 그 여자를 구하고 싶은 사람에게 맡겨.”진서준은 이 말을 끝으로 바로 문을 닫았다.그 행동에 은청준 일행은 분노가 치솟았다.“당장 문 열어! 안 열면 후회할 줄 알아!”은청준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은청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다시 열렸다.진서준은 팔짱을 끼고 차가운 눈빛으로 은청준을 바라봤다.“너희가 어떤 불손한 짓을 하는지 한번 보자. 여기는 유씨 가문이지 너희 곤륜이 아니야. 너희가 멋대로 막 날뛸 수 있을 것 같아?”“유씨 가문이 뭐 어때? 사람 구하라고 하면 고분고분 구하기나 해. 이제 우리 종주님이 책임을 묻는다면 유씨 가문 가주라도 감당 못 할 거야.”은청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진서준과 눈을 맞추었다.은청준의 배후에는 곤륜이 있었기에 하찮은 서남 유씨 가문을 은청준이 공손한 태도로 대할 수 없었다.게다가 은청준은 경성 은씨 가문의 사람이기도 했다.어느 쪽 신분이든 모두 유씨 가문보다는 훨씬 더 고귀했기에 당연히 유씨 가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반면, 진서준의 신분은 단지 유씨 가문의 하찮은 경호원일 뿐이었다.은청준의 고함에 유기명이 놀라 달려왔다.“무슨 일이죠?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유기명이 급하게 소리 지르며 다가왔다.유기명은 진서준과 곤륜 사람들이 싸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왜냐하면 두 쪽 다 유기명이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가주님, 저는 이 집의 경호원에게 후배의 병을 부탁하려고 왔는데 이놈이 자존심을 세우며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네요.”방귀 낀 놈이 화낸다고 은청준은 먼저 이번 소란의 모든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겼다.그 말에 진서준은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곤륜에서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는 이렇게 고함을 지르라고 배웠어?”은청준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처음에는 좋게 좋게 말했잖아? 네가 괜한 자존심을 세우며 자초한 일이지.”“됐어요, 다들 그만합시다.”유기명이 끼어들며 중재했다.“은청준 씨가 직접 와서 모시는 걸 보면 조 아가씨가
이장로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참지 못하고 욕을 날렸다.“젠장!”가장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상황이 결국 발생했다.“이장로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신수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내공을 써서 슬기 체내 차가운 기운을 빨아낼 수밖에 없어.”이장로가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이 방법은 전에 곤륜산에서도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내공을 많이 소모하는 방식이었다.다행히도 그들 곤륜의 장로들과 종주는 내공이 꽤 깊었다.그렇지 않으면 슬기 목에 걸린 그 옥패 하나만으로는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저택에 이장로 하나만 있는지라 이 방법을 쓰는 게 별로 자신이 없었다.“이제 운에 맡길 수밖에 없어.”이장로는 이를 악물고 바닥에 앉아 두 손을 펼쳐 선천강기를 모은 후, 조슬기의 옆에 놓고 조슬기 체내 한독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그러나 막 시작하자마자 이장로의 얼굴은 빨려 나온 한독에 얼어붙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이 차가운 기운은 곤륜산이 내뿜는 기운보다 몇 배나 더 차가워 깊은 내공을 자랑하는 이장로조차 견디기 힘들어했다.그러니 지금 조슬기 같은 연약한 여자가 겪는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1분이 지나자마자 이장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즉시 한독 제거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안 되겠어.”이장로는 바로 일어나서 강기로 흡입된 한독을 체외로 밀어냈고 작은 얼음 조각 몇 개가 이내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차가운 기운이 얼음처럼 결빙된 것이다.조슬기의 상태는 이제 조금도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한 상태였다.“이장로님, 그 건방진 경호원을 한번 써보는 건 어떨까요?”은청준의 제안에 신수란은 순간 당황했다.“너 그 경호원이 치료하는 걸 결사코 반대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냐?”그러자 은청준은 천천히 자기 계획을 밝혔다.“우리 후배가 지금 위독한 상태인데 이제는 그놈에게 맡길 수밖에 없잖아. 그놈이 우리 후배를 기적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이
은청준은 조금 짜증이 났다.유기명 딸이 이해 못 한다고 쳐도 유씨 가문 가주인 사람이 상황을 파악할 줄 모르다니, 너무나 어이없었다.경호원이 사람을 치료하게 허락하는 건 금시초문이었다.“가주님, 지금 하신 말, 설마 진심입니까?”은청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이장로도 미간을 찌푸리며 심기가 불편한 티를 냈다.“제 목숨은 바로 김평안 씨가 구해준 겁니다. 그러니 김평안 씨 의술을 믿지 않을 수 없죠.”유기명은 곤륜 사람들의 표정에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가주님이 믿지만 우리는 전혀 믿을 수 없습니다.”은청준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들은 절대 진서준이 나서서 치료하게 놔둘 수 없었다.조슬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장로도 엄중한 처벌을 받을 터였다.현재로서는 성약당 장로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정 못 믿겠다면 저도 방법이 없네요. 조 아가씨가 진짜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건 다 당신들 책임일 겁니다.”유기명은 말을 끝내고 손을 휘저으며 나갔다.이장로의 표정도 급격히 어두워졌다.“너희는 여기서 슬기를 지켜.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나에게 알려.”이장로도 말을 마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은청준은 유기명의 말에 냉소를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하룻밤뿐인데, 하룻밤 동안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있나?”“너희 남자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얼른 다 나가!”신수란은 모두를 밖으로 내쫓았고 혼자서 조슬기 곁을 지켰다.진서준이 나오자 유기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동했고 유기명이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 조 아가씨 병을 치료할 방법이 있어?”“저 여자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체내에 찬 한독이 너무 많아서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하려면 하늘의 신이 내려와야 할 겁니다.”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그럼 넌 어떻게 생각해? 오늘 밤 조 아가씨 병이 악화할 확률이 높을 것 같아?”유기명이 다시 물었다.유기명은 조슬기에게 자기 집에서
그 말을 듣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곤륜 문주의 딸을 감히 죽이려고 하다니, 대체 어느 미친놈이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꾸민 거지?“두목은 장강훈이라는 놈인데 서남 지역에서 악명 높은 악당이에요.”신수란이 한마디 더 보탰다.“뭐라고요? 그놈을 만났다고요?”유기명이 깜짝 놀랐다.“아는 사람이에요?”신수란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유기명을 쳐다봤다.“들어본 적은 있죠. 얼마 전 내 동생 유기태가 국안부에서 그놈을 추적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놈이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행방이 오리무중이라 찾기가 어려웠죠.”유기명은 신수란을 보며 물었다.“그래서 아가씨들은 어떻게 그놈 손에서 빠져나온 거죠?”신수란은 순간 머뭇거리며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누군가 우리를 구해줬어요.”“네? 누가 아가씨를 구한 거죠? 내가 알기로 장강훈은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서남에서 그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유기명이 흥미를 보였다.서남 무도계의 강자들은 유기명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대다수가 유씨 가문에 초빙되어 가문의 귀빈으로 섬기고 있고 거절한 이들은 전부 세상과 연을 끊은 은둔 고수뿐이었다.설마 유기명이 모르는 강자가 더 있다는 건가?신수란이 곧 이름을 밝히려 하자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누가 됐든 간에 그 강도가 죽었다면 된 거죠.”갑작스러운 개입에 신수란은 기분이 언짢아졌다.유기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흘끗 쳐다보고는 진서준의 말투를 곱씹으며 속으로 추측했다.이 여자들을 구한 건 진서준이 틀림없을 것이다.“이장로님, 그놈들은 단순히 아가씨를 납치하려 했을 뿐,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어요.”신수란이 상황을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그렇다면 그놈들 뒤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거겠군.”이장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설상가상으로 슬기가 이번에 우리랑 함께 하산한 걸 아는 사람은 종문 내부 제자들뿐이야. 그런데 곤륜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소식이 그놈들 귀에 들어갔다고? 그렇다면..
이때의 조슬기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고 입술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조금만 가까이 가도 조슬기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신수란은 조슬기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바로 옆방으로 달려가 따뜻한 물로 자기 체온을 되찾으려 했다.조슬기를 업고 오는 내내 신수란 또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조슬기의 체온은 거의 0도에 가까웠고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고통에 신음하는 조슬기를 보며 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내가 일단 치료할게. 성약당 장로가 도착하려면 최소 내일 아침은 되어야 해.”“네가 치료한다고? 경호원 주제에 뭘 안다고 사람을 살린다고 지껄여?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 썩 꺼져. 네가 뭔데 이렇게 나대?”은청준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누가 경호원이라고 해서 사람을 못 구한다고 했죠?”유정이 즉각 반박했다.은청준이 지속적으로 진서준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영 거슬렸는데 이제는 대놓고 모욕까지 하니 유정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유 아가씨, 경호원이 사람을 못 구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전 그냥 저 사람이 자격이 없다고 했을 뿐입니다.”은청준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억누르며 말했다.유정이 유 가주의 딸만 아니었다면 유정에게 욕설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아까 진서준과 대련하려고 할 때에도 유정 때문에 망신당했는데 지금은 또 저 하찮은 경호원 따위를 위해 유정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니, 이러다간 정말 곤륜 차세대 천재 일인자인 자기 체면이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유씨 가문의 경호원이 자기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니 기막힌 일이었다.“김평안 오빠는 우리 유씨 가문을 여러 번 구한 의술이 뛰어난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 목숨도 이분이 살리셨죠. 그런 분이 왜 자격이 없다는 거죠?”유정은 전혀 기죽지 않고 은청준과 눈을 맞추며 쏘아붙였다.은청준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목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유 아가씨, 아가씨는 제 후배 신분을 아나요? 제 후배는 우리 종문 문주의 따님입니다.
하지만 두 검의 차이는 누가 봐도 너무나도 컸고 이건 진서준에게 손해 보는 장사였다.“이봐요, 은청준 씨, 곤륜 제자로서 이런 요구를 하는 건 곤륜 얼굴에 먹칠하는 게 아닌가요?”유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놓고 면박을 줬다.은청준도 유정이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는지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유 아가씨, 그 말은 좀 심한 거 아닌가요? 제 검도 희귀한 명검 중 하나입니다.”은청준은 굳은 얼굴로 즉시 반박했다.“상관없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하지.”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바로 시작하자.”은청준은 진서준의 말에 바로 반응하며 유정이 더 이상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이 참선검은 반드시 자기 손에 넣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규칙은 간단해. 검이 먼저 상대의 몸에 닿는 쪽이 승리야, 어때?”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가리는 대련이었다.“문제 없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막 대련이 시작되려던 그 순간, 갑자기 집사가 허겁지겁 뛰어왔다.“가주님! 조슬기 아가씨의 소식을 받았습니다!”“뭐라고? 아가씨가 어디 있어?”유기명이 즉시 반응하자 이장로가 손을 내저었다.“이 대련은 일단 여기까지 하고 먼저 슬기부터 찾자.”그 말을 듣자 은청준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일그러졌지만 이장로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었다.“김평안, 그 검 잘 보관해 둬라. 내가 반드시 가져갈 거니까.”은청준은 검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떠났다.“조슬기 아가씨가 이미 금도에 도착해서 우리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즉시 날 거기로 데려가 주세요.”이장로가 급히 말하자 유기명이 서둘러 제안했다.“이장로님, 제가 사람을 보내 아가씨를 모셔 오겠습니다. 여기서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겠습니다.”이장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거절했다.조슬기가 과연 무사한지 이장로는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알겠습니다. 이봐, 즉시 이장로님을 모시고 출발해.”
식사도 아직 하지 않았는데 분위기는 이미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유정은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고 그녀의 시선은 쭉 진서준에게 머물렀다.진서준이 이따가 대련 중에 다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유씨 가문에 머무르는 동안, 유정은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예를 들면 곤륜을 비롯한 4대 은세 종문에 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가장 오래 유지되어 온 은세 세력이었다.심지어 경성의 4대 가문조차도 이 4대 종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게다가 종문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천재였다.은청준이 곤륜의 차세대 중에서도 뛰어난 인재로 손꼽힌다면 그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 대단한 실력을 갖췄을 가능성이 컸다.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만약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반면 진서준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고 전혀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한 모습이었다.진서준의 여유로운 태도에 은청준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흥, 대련이 시작되면 네놈이 나와의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깨닫게 될 거야.’은청준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저녁 식사 내내 유기명과 이장로만 가끔 대화를 나눴다.곧 식사가 끝나자 곤륜의 다른 제자들도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몰려왔다.다들 유씨 가문 저택 뒤편의 넓은 공터에 모여 구경하기 시작했다.“저 녀석 미친 거 아냐? 감히 은 선배와 대련하겠다고? 살고 싶지 않은 건가?”“은 선배는 이미 사급 대종사야. 선배의 실력은 끔찍할 정도로 강해. 웬만한 사람은 상대도 안 되지.”“내기나 해볼까? 저 자식이 선배의 검을 몇 번이나 막아낼 수 있을지?”“난 한 방도 못 버틴다고 봐. 선배는 이미 검의를 깨우쳤잖아.”곤륜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진서준을 과소평가했다.다들 은청준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또래 중에서 아무도 은청준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었다.반면, 진서준은 겉보기에는 40대로 보였지만 전혀 강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이런 사람이 실력자라고 한다
“김평안 씨는 내가 엄청난 공을 들여서 모셔 온 분입니다.”유기명이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진서준을 자랑하기 시작했다.“겉보기엔 4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그 실력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어마어마하다고? 그럼 나랑 한번 붙어볼래?”은청준이 비웃으며 말했다.은청준은 스물여섯 살에 이미 사급 대종사가 되었는데 반면 이 경호원은 체내에 강기가 거의 없었다.아무래도 겨우 종사의 문턱을 밟은 무인인 것 같은데 이런 쓰레기가 세속에서는 강자로 불리는 건가?유기명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은청준 씨와는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김평안 씨 검술은 누구나 다 알아주는 실력입니다.”“마침 나도 검술이 특기인데, 한 번 겨뤄볼까?”은청준이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청준아,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무도는 남과 다투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이장로가 차분하게 말하자 은청준은 곧바로 태도를 고쳐잡고 공손하게 말했다.“이장로님, 저는 그냥 세속 무인과 가볍게 한 수 겨뤄볼 생각이었습니다.”이장로는 은청준을 흘긋 보았으나 그의 속마음을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은청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같은 종문 사람이니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진서준이 다시 강조하자 은청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봤다.이 녀석 왜 이렇게 말이 많지? 혹시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가?“은범은 내 사촌 동생이야. 네가 그 못난 동생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은청준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신농산에서 만난 적이 있어.”“뭐라고? 걔가 신농산에 갔다고?”이 말에 은청준은 흥미가 동했다.“그 녀석 실력으로는 신농산 테스트를 통과하기 힘들 텐데?”은청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은범이 어떤 인물인지 은청준은 잘 알고 있었다.애매한 실력과 어중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은범이 은씨 가문에서 빛을 볼 일은 없었다.은청준과 은범의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컸다.“그 녀석은 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