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원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경악에 찬 눈빛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세 사람은 고양시, 서울시의 지하 세력의 왕 같은 사람들이었다.이 세 사람이라면 서울시에서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토록 대단한 사람들이 지금 순순히 무릎을 꿇고 있다니 너무 이해가 안 되었다.황동원은 문득 아까 절에 있을 때 진서준의 덤덤한 모습이 떠올랐다.지금에 와서야 황동원은 그때 눈앞의 청년이 왜 그렇게 담담하고 자신만만했는지 알게 되었다.쿵!옆에 서 있던 경호원들도 모두 순순히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고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몸을 떨고 있었다.그들의 회장님까지 무릎 꿇고 있었는데 그들은 더욱 말할 것이 없었다.허사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무릎 꿇은 사람들을 쳐다보았다.이 세 사람은 그래도 꽤 똑똑한 편이었다. 진서준을 본 첫 반응이 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니 말이다.진서준은 와인 한 모금을 마신 후 강성철과 도진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아까 누군가가 저보고 무릎을 꿇어야 살려준다고 했어요.”진서준의 말에 세 사람은 등골이 오싹해지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강은우는 방금 자신의 경호원이 말하는 사람이 진 마스터일 줄은 전혀 몰랐다.원래 그는 진서준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려고 했다.하지만 지금은 여자는커녕 자기가 위험에 빠졌다.“진 마스터, 제발 살려주세요.”세 사람은 땅 위에 머리를 계속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그들의 이마에는 피가 났고 몸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오늘 만월호에서 진서준이 싸우는 모습을 본 강은우는 이미 진서준을 사람이 아닌 신명으로 받들고 있었다.게다가 전 남주성의 모든 명문 세가들도 진 마스터를 공손히 모셔야 했다.고양시에 지하 세력의 왕이라 해봤자 진서준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진서준의 말 한마디면 강은우는 바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강성철과 도진수의 머릿속에는 후회로 가득 찼다. 그들은 속으로 강은우를 원망하고 있었다.만약에 진 마스터를 화나게 한다면 그들
“회장님, 우리가 이 년을 잡았어요. 지금 어떻게 할까요?”강은우는 부하가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그러자 진서준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강은우를 쏘아보았다.진서준은 청각이 매우 예민했기 때문에 그들의 통화 내용을 전부 들었다.“혹시 사람을 시켜 그 여자를 잡으라 했어요?”진서준이 차갑게 말했다.“제가... 제가 당장 사람을 풀어주라고 할게요!”강은우는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풀어 주기만 하면 다예요? 나랑 같이 가서 사과해요.”진서준이 차갑게 말했다.“네...”진서준은 강은우보고 먼저 내려가서 차 안에서 기다리라 했다.“서준 씨가 저 사람들과 함께 가서 뭐 해요? 사과해야 할 건 저 사람들인데.”허사연은 진서준이 배수정과 만나는 걸 원치 않았다.혹시 배수정이 진서준에게 호감을 느낄까 봐 걱정했다.배수정이 진서준을 마음에 두게 되면 정말 골치 아플 것 같았다.“저 사람들만 가면 배수정 씨가 놀랄까 봐요.”진서준이 웃으며 설명했다.“설마 서준 씨가 그 배수정 씨를 만나고 싶은 건 아니겠죠?”허사연이 진서준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물론 아니죠!”진서준이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배수정이 아무리 이쁘다고 해도 지금 진서준의 마음속에는 허사연 한 여자뿐이었다.“제가 어떤 사람인지 사연 씨는 잘 알잖아요.”진서준이 말하며 미소를 짓자 허사연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너무 잘 알고 있는데 자꾸 다른 여자가 서준 씨를 꼬시잖아요.”그녀의 말에 진서준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그분은 대스타인데 어떻게 날 꼬실 수 있겠어요. 설마 꼬신다 해도 저는 사연 씨 한 사람뿐이에요.”허사연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알겠어요. 저도 그냥 해본 소리예요. 저 사람들과 사과하고 빨리 집에 돌아가세요. 어머님과 서라 씨가 걱정하겠어요.”“네!”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잠깐만요. 서준 씨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진서준이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할 때 허사연은 갑자기 그의 손을 잡았다.
배수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연예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도 줄곧 지조를 지켜왔다.유명한 영화감독들이나 작가들은 그녀에게 눈치를 주었으나 그녀는 전부 무시했다.하지만 오늘 강은우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질 것 같았다.“수정 씨, 제가 부탁할게요. 이따가 강 회장님이 뭘 시키면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아니면 우리 둘 다 죽어요!”박소진은 배수정에게 빌었다.박소진도 몇 년 전에 연예계에서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그러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매니저로 전업했다.만약에 오늘 밤에 강 회장의 미움을 사게 된다면 그녀의 가정과 사업은 모두 망가질 것이다.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들어온 사람을 보자 배수정과 박소진은 어리둥절해졌다.“서준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들어 온 사람이 진서준인 것을 본 배수정은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바로 사라졌다.“서준 씨, 빨리 이곳을 떠나세요. 강은우가 곧 올 거예요.”그러자 박소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여기에 남아야 해요. 이따가 오늘 절에서 있었던 일을 강 회장님께 직접 사과하세요!”박소진은 진서준을 희생양으로 삼고 싶었다.그녀는 강은우에게 오늘 일을 망친 사람이 바로 진서준이라고 알려줄 계획이었다.그러자 진서준은 차갑게 박소진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수정 씨, 매니저를 바꿀 때도 된 것 같아요.”배수정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말했다.“서준 씨, 지금은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에요.”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매니저를 바꾸든 말든 다 뒷얘기였다.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룸 안으로 들어왔다.“들어오세요.”배수정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입구 쪽을 보았다.곧이어 강은우가 안으로 걸어들어왔고 그가 입은 검은색 양복은 피로 물들어서 새빨개졌다.이 상황을 본 배수정과 박소진은 멍하니 서 있었다.더욱 믿기지 않는 것은 강은우가 심지어 허리를 굽혀 두 사람에게 공손히 사과했다.“수정 씨,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
배수정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은 하나뿐이었다. 눈앞의 청년은 과연 누구일까?“진서준이라고 합니다. 평범한 사람이에요.”진서준은 덤덤히 웃어 보였다.배수정은 쓴웃음을 지었다. 평범한 사람이 강은우 같은 거물을 벌벌 떨게 만들 수 있겠는가?진서준이 말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 배수정은 더 묻지 않았다.“감사해요, 진서준 씨. 절 또 한 번 구해주셨네요.”배수정은 진서준의 앞으로 걸어가서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별말씀을요.”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러면 쉬는 거 방해하지 않을게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진서준은 미련 없이 떠났다.진서준이 단호히 떠나자 배수정은 어쩐지 아쉬웠다.“수정아, 아까 언니는 널 위해서 그런 거야. 매니저를 다른 사람으로 바꿀 생각은 아니지?”박소진은 서둘러 사과하며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너도 알다시피 난 이미 결혼했어. 집안에 모셔야 할 집안 어른들도 있고 아이도 있어. 절대 이 일자리를 잃을 수는 없다고!”박소진은 배수정의 매니저를 하면서 매달 꽤 많은 월급을 받았다.만약 배수정이 매니저를 다른 사람으로 바꾼다면 월급 또한 확 줄어들 것이다.배수정은 박소진의 애원을 듣자 그녀가 혐오스러웠다.오늘 일을 통해 그녀는 박소진이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알게 되었다.박소진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배수정이 강은우와 잠자리를 가지게 하려 했으니 말이다.배수정은 이런 사람을 계속 자신의 곁에 둘 생각이 없었다.배수정은 지금 당장 박소진과 얼굴을 붉힐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회사로 돌아간 뒤 박소진을 내쫓을 생각이었다.“알겠어요. 걱정하지 말아요.”배수정이 말했다.배수정의 말에 박소진은 안도했다.그녀는 다시 잔머리를 굴렸다.“수정아, 너 진서준이라는 청년이랑 자주 연락하면서 그의 신분과 배경을 알아봐.”배수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알고 싶으면 언니가 직접 알아봐요.”“너도 참, 언니는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 네가 그 청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아침 다섯 시가 채 안 된 시각, 서울 병원 꼭대기 층 중환자실 밖 복도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새로 부임한 서울 병원 원장 우성환도 그곳에 있었다.우성환은 정운 병원의 원장이었었는데 저번에 진서준이 정운 병원에서 김명진을 구한 일로 김풍이 감사하다면서 서울 병원 원장을 시켜줬다.비록 같은 원장이지만 정운 병원 원장과 서울 병원 원장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만약 개인의 노력에만 기대려고 했다면 그는 아마 평생 서울 병원의 원장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왜 다들 말이 없죠? 방법이 없는 건가요?”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우성환은 조금 화가 났다.병실 안의 환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이 보낸 환자였다.만약 이 환자를 치료하지 못한다면 원장이 우성환이 책임을 져야 했다.“원장님,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유일한 희망은 부 선생님을 모셔 오는 것뿐입니다.”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입을 열었다.그가 말한 부 선생님은 강남 제일의 명의 부영권이었다.“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이 부영권 선생님께 부탁드려야겠군요.”우성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조용한 곳으로 가서 부영권에게 연락했다.부영권은 매일 아침 아주 일찍 깨어났다. 우성환이 그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마침 세수를 마쳤다.“우 원장님, 무슨 일이죠?”“선생님, 우리 병원에 치료하기 까다로운 환자가 한 명 왔습니다. 병원의 모든 의사가 속수무책이라 선생님께서 한 번 와주셨으면 합니다.”우성환은 정중하게 말했다.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였기에 부영권은 거절하지 않았다.“그래요. 지금 당장 가볼게요.”전화를 끊은 뒤 우성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부영권이 온다면 환자의 병이 반드시 나을 거로 생각했다.십여 분 뒤 부영권이 특별 병실에 도착했다.“부 선생님!”사람들은 부영권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부영권은 의학계에서 대단한 사람이었고 모든 의사가 그를 존경했다.“환자는 어디 있죠?”부영권은 그들과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곧바로
사람들은 부영권이 눈을 뜨자 그를 추켜세우기 시작했다.부영권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괜찮아졌습니다.”“선생님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제가 지금 당장 처장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우성환이 서둘러 반재윤 처장에게 연락했다.전화 건너편, 반재윤은 부영권이 환자를 살렸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말했다.“우 원장님, 부영권 선생님께 일단 떠나지 말라고 하세요. 다른 병원에 그 환자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있거든요.”우성환은 그 말을 듣자 얼이 빠졌다.“환자가 몇 명쯤 더 있는 거죠?”“최소 스무 명이요.”반재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 많다고요? 반재윤 선생님은 조금 전 진단할 때 독에 당한 거라고 하셨습니다.”우성환이 반재윤에게 설명했다.반재윤이 말했다.“그들 모두 같은 노인복지시설 노인들이에요...”우성환은 그 순간 왜 이렇게 많은 노인이 중독됐는지 깨달았다.범인은 그들의 밥이나 물에 독을 탔을 것이다.“부영권 선생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뒤 우성환은 서둘러 병실로 돌아가 조금 전 반재윤 처장에게서 들은 말을 부영권에게 전했다.부영권은 그의 말을 듣더니 미간을 구기며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스무 명이요? 지금 제 실력으로는 많아서 다섯 명밖에 더 구하지 못합니다.”부영권이 다섯 명밖에 더 구하지 못한다고 하자 우성환은 애가 탔다.그러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진 선생님에게 도와달라고 해야겠어요!”부영권은 그 말을 듣고 물었다.“진 선생님이라는 분 혹시 진서준 씨인가요?”“네, 설마 아는 분이십니까?”“하하, 신의인 진서준 씨가 있다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걱정하던 부영권은 곧바로 표정을 풀면서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다른 이들은 진서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부영권이 진서준을 신의라고 부르자 다들 궁금해졌다.“하지만 아직은 좀 이르군요. 진서준 씨께서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겁니다.”“그러면 잠시 뒤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환자들은 아직 상태가 괜찮거든
진서준은 말을 마친 뒤 곧바로 몸을 돌려 서울 병원으로 달려 들어갔다.차에 치여서 엉망이 된 마이바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대머리 남자는 진서준의 거만한 모습에 냉소를 금치 못했다.“성깔이 있네. 하지만 이렇게 성깔을 부릴 수 있을 정도의 뒷배경이 있을지는 모르겠어.”대머리 남자도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차에 탔다. 그는 조금 구겨진 차를 타고 사거리를 떠났다.몇 분 뒤 진서준은 서울 병원 입구에 도착했다.마침 병원 로비에 도착한 진서준은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을 마주쳤다. 여자는 진서준과 갈등이 있었던 왕나연이었다.저번에 강호걸에게 문제가 생긴 뒤로 왕나연은 더는 그와 연락하지 않았다.왕나연 곁의 청년은 그녀가 최근에 작업을 건 재벌 집 자제로 그의 아버지는 서울 병원 외과 교수였다.왕나연은 남자 친구의 인맥을 통해 서울 병원에서 실습을 하고, 졸업한 후 이곳에서 근무할 생각이었다.서울 병원은 문턱이 아주 높았다. 국내 명문대 졸업생이 아니거나 인맥이 없다면 들어갈 수가 없었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진서준,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진서준을 알아본 왕나연은 화가 난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진서준이 짜증스레 말했다.“네 병원도 아니고 내가 여기에 오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지?”“하하, 어이가 없네.”왕나연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곁에 있는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내 남자 친구 아버지가 이 병원 교수거든. 이 병원의 일들은 교수들 마음대로야.”평범한 차림새의 진서준을 본 윤서호의 눈동자에 경멸이 스쳤다.“나연아, 이 남자 누구야?”“예전에 나한테 고백했었는데 내가 거절했다고 사람들 앞에서 날 때렸어!”왕나연은 없는 말을 지어내며 윤서호의 손을 빌려 진서준에게 복수하려 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냉소를 머금었다. 그는 급하게 반박하지도 않았다.윤서호는 지금 왕나연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기에 진서준이 왕나연을 때린 적이 있다는 말을 듣자 그 자리에서 왕나연을 위해 복수할 생각이었다.
원장은 그들이 조금 전 내쫓은 젊은이에게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그 태도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을 봤을 때와 똑같았다.“조금 전 누가 진서준 씨를 내쫓으라고 한 거죠?”우성환은 경비원들의 앞에 서서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그게... 윤 교수님 아들이었습니다.”한 경비원이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그래요.”우성환은 억지로 화를 억눌렀다.“진서준 씨, 일단 환자부터 구해주세요. 이 일은 제가 꼭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우성환이 말했다.“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곧바로 꼭대기 층에 있는 중환자실에 도착했다.출근해야 하는 의사를 제외하고 다른 의사들은 전부 이곳에 있었다.원장의 뒤에 젊은이 한 명이 있는 걸 본 그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젊은이를 바라보았다.“저 청년은 누굴까요?”“원장님 친척 아닐까요? 아마 이 일을 빌려서 자기 친척을 우리 병원에서 근무시킬 생각이겠죠.”“쳇, 병원에서는 인맥 같은 거 이용하면 안 된다고 하더니 본인이 그러네요.”사람들이 수군덕대고 있을 때 진서준을 알아본 부영권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신의님!”경멸에 찬 표정이던 사람들의 입이 순간 떡 벌어졌다.‘신의라니? 이 청년이 신의라고? 거짓말이겠지!’부영권은 진서준의 앞에 서서 공손히 그와 악수했다.“부영권 선생님,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시면 돼요. 신의라고 부르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진서준은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는 신의라는 이름에 걸맞은 분이죠!”부영권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곧이어 그는 부끄러운 듯 말했다.“제가 무능하여 병실에 있는 환자들을 전부 구할 수는 없는지라 이렇게 신의님을 모시게 됐습니다.”부영권은 여전히 호칭을 바꾸지 않았고 진서준도 그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다.“환자는 어디 있죠? 안내해 주시죠.”진서준이 말했다.“여기 있습니다.”우성환과 부영권은 진서준을 데리고 아주 큰 병실로 들어갔다.병실 안에는 십여 명의 안색이 창백한 노인이 누워있었다.노인들은 전부 독에 당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
별장에서 황예은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옷이 거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상반신에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 속옷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이 속옷은 서지은이 가져온 속옷이었고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이었다.그리고 하반신에는 아까 진서준이 마사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여자는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예은의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지금 심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황예은은 자기 알몸을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사실 이번이 진서준에게 두 번째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순간이란 걸 몰랐다.“서준아, 왜 노크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어...”서지은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지은은 진서준이 약왕 이용진과 저녁 식사를 오래 하고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진서준이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다.“언제까지 더 볼 생각이야?”황예은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게.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날 불러.”진서준이 나간 뒤, 황예은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진서준이에요. 제 남자친구거든요.”서지은이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마디 보탰다.“예은 언니, 사실 언니 목숨도 진서준이 구한 거예요.”그 말을 듣자 황예은의 눈에서 뿜어나오던 냉기가 다소 누그러졌다.어쨌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너무 차가운 태도로 대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황예은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내 옷은 네가 벗긴 거야?”서지은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준이 언니를 치료할 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먼저 언니를 여기 데려온 거예요. 나도 여기 들어와 치료 과정을 볼 때 서준이 언니를 추행하는 줄 알았어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박씨 가문의 의도가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박씨 가문의 일은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진서준의 우선순위는 약재를 구하고 모든 정력을 간첩을 잡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호텔을 떠난 진서준은 이용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30여 분을 달린 끝에 진서준 일행은 마침내 이용진의 장원에 도착했다.이용진의 장원 면적은 서씨 가문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화려함만큼은 서씨 가문을 능가할 기세였다.각종 명인의 고화와 진귀한 보물들이 온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이 모든 보물은 하나하나가 최소 10억 이상의 진품이었고 적어도 진서준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조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보물들만 해도 자산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을 될 터였다.“용존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이용진이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난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군요...”이용진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돈을 통해 진서준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들고자 했던 이용진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진서준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나중에 치료를 부탁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이용진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약왕님 체내 내상이 다 나으면 매주 두 번씩 무도를 연마하고 한 달에 다른 사람과 한 번 실력을 겨루는 수준으로 수련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왕님 무도 실력도 늘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꼭 용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이용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많은 별장을 지나 진서준은 이용진을 따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냉장실로 들어갔다.냉장실 안에는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각 기둥 위에는 희귀한 약재들이 놓여 있었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다.진서준이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에 진열된 약재는 성약당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희귀성만큼은 성약당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 사람은 바로 어제 서울시에서 체포되었던 박운기였다.진서준 역시 이렇게 빨리 박운기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운기야, 저 사람 알아?”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박운기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바로 저놈이 사람들을 이끌고 내 계획을 망쳤습니다.”박운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만약 진서준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박운기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박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운 시선 대신 온갖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이번에 서울시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박운기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경쟁했다.모두가 보기에 이 임무는 그야말로 공을 세우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쉬운 임무를 박운기가 망쳐버렸다.망친 것도 모자라 박씨 가문은 관계를 동원해 박운기를 구출해야만 했다.공을 세워야 할 장사가 완전히 손해만 본 장사로 탈바꿈한 것이다.박씨 가문의 계획을 망친 장본인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 중년 남자는 진서준을 쓱 훑어보고는 냉랭하게 비웃었다.“전설 속의 용존님,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시는군요.”진서준은 그 남자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잠깐 스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약왕님은 언제부터 용존님과 친구가 되셨습니까?”중년 남자는 이용진을 발견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박재명, 분명히 말해두지. 용존님 일은 바로 내 일이야. 감히 용존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용진이 싸늘하게 대응했다.박재명은 박씨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그는 단지 박서명의 넷째 동생일 뿐이었다.그래서 이용진은 굳이 박재명을 깍듯하게 모시며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이용진의 말에 박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약왕님, 굳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박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이용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
이용진은 평생 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를 지키는 두 호위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아니, 심지어 방어할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당하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곽윤상 역시 진서준이 갑자기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약왕님, 이분은 바로 국안부 용존님이십니다.”곽윤상이 재빨리 이 틈을 이용해 설명했다.“뭐라고? 네가 바로 그 용존이라고?”이용진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용존이라는 이름은 이미 명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대다수 명주시 명문대가는 이 절세 천재를 돈으로라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진서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서준이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은 인물이니 앞으로 거의 3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서준과 겨뤄볼 만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심지어 4대 은거 문파조차도 진서준에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보시다시피 용존이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처음부터 용존이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이용진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나이에 육급 절정의 대종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이용진은 이제야 이 청년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용존님, 방금 제가 무례했던 점은 널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약왕 이용진은 몸을 약간 숙이며 진서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조금 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용진은 곽윤상이 명주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질책했었다.그런데 3분도 안 돼 본인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이용진은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약왕님, 앉으세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