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해도 돼요. 하지만 수정 씨가 번 돈의 열 배나 되는 위약금을 물어야 해요!”진서준은 그녀가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계약 내용이 이렇게 불공평할 줄은 몰랐다.허사연은 똑똑한 사업가로서 연예계의 내막을 알고 있었기에 진서준에게 말했다.“서준 씨,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은퇴하려면 뒷받침을 해주는 든든한 사람이 있어야 해요. 아니면 뼈가 빠질 때까지 일해야 돼요.”배수정은 진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어찌 됐든 오늘 정말 감사해요. 이건 제 명함이에요.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진서준은 명함을 받아 허사연에게 건네줬다.“네, 알겠어요.”...서울시 황성 술집의 룸 안.“성철 씨, 진수 씨, 앞으로 우리는 형제처럼 지내요. 이 강은우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만 해줘요.”40대 중반의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강성철과 도진수는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었고 그들 곁에는 예쁜 여자들로 에워쌌다.“강 회장하고 형제가 되다니, 우린 운이 참 좋네요.”강성철이 아첨하듯 말했다.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이 중년 남자는 다름 아닌 고양시 지하 세력의 왕이라 불리는 강은우였다.강은우도 오늘 만월호에 있었던 승부를 직접 보러 왔다.진서준이 권해철과의 승부에서 이겼고 심지어 유혁수까지 죽이자 강은우는 즉시 사람을 보내 진서준의 인간관계를 알아보았다.강성철과 도진수가 진서준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강은우는 직접 두 사람에게 찾아가 술자리를 가지자고 초대했다.예전 같으면 강성철과 도진수는 강은우와 함께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라곤 전혀 없었다.지금 그들이 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진서준의 덕이었다.강성철과 도진수도 이 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진서준을 더욱 고마워했다.세 사람이 술을 마시며 즐겁게 지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확 열어버렸다.“어느 새끼야, 죽고 싶어!”강성철이 언짢은 어조로 소리쳤다.강은우가 들어온 사람이 자기
강은우는 배수정을 무조건 손에 넣으려고 했다.“그 남자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면 즉시 나한테 알려!”“네!”강은우는 룸으로 돌아와 강성철과 도진수를 보며 말했다.“성철 씨, 진수 씨, 제가 진 마스터와 친하게 지낼 방법이 생각났는데, 혹시 들어보실래요?”강성철과 도진수가 이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배수정 그 여자 아시죠?”“티비에서 봤는데 꽤 예쁘게 생겼더군요.”강성철이 대답했다.배수정은 국내 최고의 스타였기에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그 여자가 지금 서울시에 있어요.”강은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그러자 강성철과 도진수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은우 형님,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 마스터는 여자 친구가 있어요.”허사연이 어떤 신분인지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진서준과 허사연이 어떤 사이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이 타이밍에 진서준에게 여자를 소개해 준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였다.“저는 진 마스터가 여자 친구가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바람을 피우지 않겠어요?”강은우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게다가 배수정은 슈퍼스타이기도 하고. 이런 여자를 품에 안는 것이 얼마나 많은 남자들의 로망이라고요!”“하지만... 저희가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볼게요.”강성철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좋아요. 잘 생각해 봐요. 이따가 제 부하가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낸 후에 바로 손을 쓸게요.”...진서준과 허사연은 금영사를 떠난 후에 차를 몰고 허씨 집안 호텔로 갔다.허사연은 일찍이 사람을 시켜 둘만의 파티를 준비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호텔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두 사람을 미행하던 경호원이 즉시 황동원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와 동시에 배수정을 미행하던 다른 경호원도 그녀의 위치를 알아냈다.이 소식을 들은 강은우는 강성철과 도진수에게 말했다.“주소는 이미 알아냈어요. 지금 바로 갈까요?”“
이때 진서준과 허사연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서로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기도 하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호텔 종업원들은 음식을 올리고 나서 전부 자리를 떠났다. 호텔 맨 위층에는 진서준과 허사연 두 사람뿐이었다.“서준 씨, 다음 주에 권해철이 말한 곳으로 갈 때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허사연이 와인 한 모금을 마시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권해철의 실력을 본 허사연은 그가 있었던 화령문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그녀는 권해철처럼 이렇게 대단한 인재를 양성한 종문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다.“그건 안 될 것 같아요.”진서준이 고개를 젓자 허사연은 입을 삐죽 내밀며 언짢은 듯 말했다.“왜요?”“권해철의 말에 의하면 그곳에는 산을 보호하는 진법이 있다고 해요. 그 진법 때문에 산으로 들어가는 게 몹시 어려울 거예요.”진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서준 씨, 그러면 위험하지 않아요?”허사연이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괜찮을 거예요. 별문제 없어요.”진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저를 데리고 가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서준 씨, 그것만 약속해요. 만약에 못 들어간다 해도 무리하지 말고 반드시 안전하게 돌아와 줘요!”“네! 약속할게요.”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분위기는 갑자기 야릇해졌다.바로 이 중요한 순간에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이 소리를 들은 두 사람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어느 눈치 없는 놈이야!”허사연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때마침 서준 씨와 스킨십 하려고 했는데, 어느 놈이야!’진서준도 화가 나서 언짢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걸어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선두에 선 사람이 황동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진서준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끓어올랐다.“또 이놈이네요. 아까 사연 씨와 저를 뒤따르던 그 사람은 아마도 이놈의 부하일 거예요.”방금 차를 몰고 오는 길에 진서준은 누군가가 그와 허사연을 미행하는 것을 발견했다.“어머, 촛불까지 켜고. 지랄 났네.”
황동원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경악에 찬 눈빛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세 사람은 고양시, 서울시의 지하 세력의 왕 같은 사람들이었다.이 세 사람이라면 서울시에서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토록 대단한 사람들이 지금 순순히 무릎을 꿇고 있다니 너무 이해가 안 되었다.황동원은 문득 아까 절에 있을 때 진서준의 덤덤한 모습이 떠올랐다.지금에 와서야 황동원은 그때 눈앞의 청년이 왜 그렇게 담담하고 자신만만했는지 알게 되었다.쿵!옆에 서 있던 경호원들도 모두 순순히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고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몸을 떨고 있었다.그들의 회장님까지 무릎 꿇고 있었는데 그들은 더욱 말할 것이 없었다.허사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무릎 꿇은 사람들을 쳐다보았다.이 세 사람은 그래도 꽤 똑똑한 편이었다. 진서준을 본 첫 반응이 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니 말이다.진서준은 와인 한 모금을 마신 후 강성철과 도진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아까 누군가가 저보고 무릎을 꿇어야 살려준다고 했어요.”진서준의 말에 세 사람은 등골이 오싹해지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강은우는 방금 자신의 경호원이 말하는 사람이 진 마스터일 줄은 전혀 몰랐다.원래 그는 진서준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려고 했다.하지만 지금은 여자는커녕 자기가 위험에 빠졌다.“진 마스터, 제발 살려주세요.”세 사람은 땅 위에 머리를 계속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그들의 이마에는 피가 났고 몸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오늘 만월호에서 진서준이 싸우는 모습을 본 강은우는 이미 진서준을 사람이 아닌 신명으로 받들고 있었다.게다가 전 남주성의 모든 명문 세가들도 진 마스터를 공손히 모셔야 했다.고양시에 지하 세력의 왕이라 해봤자 진서준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진서준의 말 한마디면 강은우는 바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강성철과 도진수의 머릿속에는 후회로 가득 찼다. 그들은 속으로 강은우를 원망하고 있었다.만약에 진 마스터를 화나게 한다면 그들
“회장님, 우리가 이 년을 잡았어요. 지금 어떻게 할까요?”강은우는 부하가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그러자 진서준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강은우를 쏘아보았다.진서준은 청각이 매우 예민했기 때문에 그들의 통화 내용을 전부 들었다.“혹시 사람을 시켜 그 여자를 잡으라 했어요?”진서준이 차갑게 말했다.“제가... 제가 당장 사람을 풀어주라고 할게요!”강은우는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풀어 주기만 하면 다예요? 나랑 같이 가서 사과해요.”진서준이 차갑게 말했다.“네...”진서준은 강은우보고 먼저 내려가서 차 안에서 기다리라 했다.“서준 씨가 저 사람들과 함께 가서 뭐 해요? 사과해야 할 건 저 사람들인데.”허사연은 진서준이 배수정과 만나는 걸 원치 않았다.혹시 배수정이 진서준에게 호감을 느낄까 봐 걱정했다.배수정이 진서준을 마음에 두게 되면 정말 골치 아플 것 같았다.“저 사람들만 가면 배수정 씨가 놀랄까 봐요.”진서준이 웃으며 설명했다.“설마 서준 씨가 그 배수정 씨를 만나고 싶은 건 아니겠죠?”허사연이 진서준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물론 아니죠!”진서준이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배수정이 아무리 이쁘다고 해도 지금 진서준의 마음속에는 허사연 한 여자뿐이었다.“제가 어떤 사람인지 사연 씨는 잘 알잖아요.”진서준이 말하며 미소를 짓자 허사연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너무 잘 알고 있는데 자꾸 다른 여자가 서준 씨를 꼬시잖아요.”그녀의 말에 진서준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그분은 대스타인데 어떻게 날 꼬실 수 있겠어요. 설마 꼬신다 해도 저는 사연 씨 한 사람뿐이에요.”허사연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알겠어요. 저도 그냥 해본 소리예요. 저 사람들과 사과하고 빨리 집에 돌아가세요. 어머님과 서라 씨가 걱정하겠어요.”“네!”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잠깐만요. 서준 씨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진서준이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할 때 허사연은 갑자기 그의 손을 잡았다.
배수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연예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도 줄곧 지조를 지켜왔다.유명한 영화감독들이나 작가들은 그녀에게 눈치를 주었으나 그녀는 전부 무시했다.하지만 오늘 강은우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질 것 같았다.“수정 씨, 제가 부탁할게요. 이따가 강 회장님이 뭘 시키면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아니면 우리 둘 다 죽어요!”박소진은 배수정에게 빌었다.박소진도 몇 년 전에 연예계에서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그러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매니저로 전업했다.만약에 오늘 밤에 강 회장의 미움을 사게 된다면 그녀의 가정과 사업은 모두 망가질 것이다.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들어온 사람을 보자 배수정과 박소진은 어리둥절해졌다.“서준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들어 온 사람이 진서준인 것을 본 배수정은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바로 사라졌다.“서준 씨, 빨리 이곳을 떠나세요. 강은우가 곧 올 거예요.”그러자 박소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여기에 남아야 해요. 이따가 오늘 절에서 있었던 일을 강 회장님께 직접 사과하세요!”박소진은 진서준을 희생양으로 삼고 싶었다.그녀는 강은우에게 오늘 일을 망친 사람이 바로 진서준이라고 알려줄 계획이었다.그러자 진서준은 차갑게 박소진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수정 씨, 매니저를 바꿀 때도 된 것 같아요.”배수정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말했다.“서준 씨, 지금은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에요.”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매니저를 바꾸든 말든 다 뒷얘기였다.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룸 안으로 들어왔다.“들어오세요.”배수정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입구 쪽을 보았다.곧이어 강은우가 안으로 걸어들어왔고 그가 입은 검은색 양복은 피로 물들어서 새빨개졌다.이 상황을 본 배수정과 박소진은 멍하니 서 있었다.더욱 믿기지 않는 것은 강은우가 심지어 허리를 굽혀 두 사람에게 공손히 사과했다.“수정 씨,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
배수정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은 하나뿐이었다. 눈앞의 청년은 과연 누구일까?“진서준이라고 합니다. 평범한 사람이에요.”진서준은 덤덤히 웃어 보였다.배수정은 쓴웃음을 지었다. 평범한 사람이 강은우 같은 거물을 벌벌 떨게 만들 수 있겠는가?진서준이 말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 배수정은 더 묻지 않았다.“감사해요, 진서준 씨. 절 또 한 번 구해주셨네요.”배수정은 진서준의 앞으로 걸어가서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별말씀을요.”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러면 쉬는 거 방해하지 않을게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진서준은 미련 없이 떠났다.진서준이 단호히 떠나자 배수정은 어쩐지 아쉬웠다.“수정아, 아까 언니는 널 위해서 그런 거야. 매니저를 다른 사람으로 바꿀 생각은 아니지?”박소진은 서둘러 사과하며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너도 알다시피 난 이미 결혼했어. 집안에 모셔야 할 집안 어른들도 있고 아이도 있어. 절대 이 일자리를 잃을 수는 없다고!”박소진은 배수정의 매니저를 하면서 매달 꽤 많은 월급을 받았다.만약 배수정이 매니저를 다른 사람으로 바꾼다면 월급 또한 확 줄어들 것이다.배수정은 박소진의 애원을 듣자 그녀가 혐오스러웠다.오늘 일을 통해 그녀는 박소진이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알게 되었다.박소진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배수정이 강은우와 잠자리를 가지게 하려 했으니 말이다.배수정은 이런 사람을 계속 자신의 곁에 둘 생각이 없었다.배수정은 지금 당장 박소진과 얼굴을 붉힐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회사로 돌아간 뒤 박소진을 내쫓을 생각이었다.“알겠어요. 걱정하지 말아요.”배수정이 말했다.배수정의 말에 박소진은 안도했다.그녀는 다시 잔머리를 굴렸다.“수정아, 너 진서준이라는 청년이랑 자주 연락하면서 그의 신분과 배경을 알아봐.”배수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알고 싶으면 언니가 직접 알아봐요.”“너도 참, 언니는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 네가 그 청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아침 다섯 시가 채 안 된 시각, 서울 병원 꼭대기 층 중환자실 밖 복도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새로 부임한 서울 병원 원장 우성환도 그곳에 있었다.우성환은 정운 병원의 원장이었었는데 저번에 진서준이 정운 병원에서 김명진을 구한 일로 김풍이 감사하다면서 서울 병원 원장을 시켜줬다.비록 같은 원장이지만 정운 병원 원장과 서울 병원 원장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만약 개인의 노력에만 기대려고 했다면 그는 아마 평생 서울 병원의 원장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왜 다들 말이 없죠? 방법이 없는 건가요?”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우성환은 조금 화가 났다.병실 안의 환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이 보낸 환자였다.만약 이 환자를 치료하지 못한다면 원장이 우성환이 책임을 져야 했다.“원장님,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유일한 희망은 부 선생님을 모셔 오는 것뿐입니다.”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입을 열었다.그가 말한 부 선생님은 강남 제일의 명의 부영권이었다.“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이 부영권 선생님께 부탁드려야겠군요.”우성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조용한 곳으로 가서 부영권에게 연락했다.부영권은 매일 아침 아주 일찍 깨어났다. 우성환이 그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마침 세수를 마쳤다.“우 원장님, 무슨 일이죠?”“선생님, 우리 병원에 치료하기 까다로운 환자가 한 명 왔습니다. 병원의 모든 의사가 속수무책이라 선생님께서 한 번 와주셨으면 합니다.”우성환은 정중하게 말했다.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였기에 부영권은 거절하지 않았다.“그래요. 지금 당장 가볼게요.”전화를 끊은 뒤 우성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부영권이 온다면 환자의 병이 반드시 나을 거로 생각했다.십여 분 뒤 부영권이 특별 병실에 도착했다.“부 선생님!”사람들은 부영권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부영권은 의학계에서 대단한 사람이었고 모든 의사가 그를 존경했다.“환자는 어디 있죠?”부영권은 그들과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곧바로
“그럼 됐네요.”정장 남자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흥, 우리 아버지한테 개기는 놈은 죽는 길밖에 없어.”하지만 정장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누군가가 공중을 가르며 정장 남자의 옆으로 날아가더니 벽에 거칠게 처박혔다.“뭐지?”조호 부자가 급히 뒤를 돌아보자 방금 날아간 게 귀도파 정예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지금 그 정예는 죽은 개처럼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뭐야, 이게?”조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조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연이어 비명이 울려 퍼졌다.조금 전까지 우쭐대며 다가가던 정예들이 전부 바닥에 나뒹굴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반면, 진서준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이 광경을 본 조호의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몇 초 만에 자기 정예 부하들이 전부 나가떨어졌다.진서준이 설마 이렇게 강력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네 부하들, 영 쓸모가 없는데?”진서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네 차례인가?”조호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이곳 르벨의 고수들은 죄다 알고 있는 조호였지만 이 청년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설마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와 귀도파와 시비를 걸려는 놈인가?“대체 넌 누구야?”조호가 쌀쌀하게 물었다.“지금에서야 내 신분이 궁금해졌어? 늦어도 한참 늦었어.”진서준이 여유롭게 대답했다.“경고하지. 르벨 동부 구역은 내 구역이야. 설령 네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해도 내 구역에서 깽판 치면 살아 나가지 못할 거야.”조호가 굳은 얼굴로 위협했다.“그래? 그럼 네가 어떻게 날 못 나가게 하는지 한번 보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었다.조호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네가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총알은 못 피하겠지?”옆에서 정장 남자도 한숨을 돌리며 비웃었다.“방금까지 그렇게 까불더니 총 앞에서도 한번 까불어 봐.”지금 시대에서 총을 손에 쥔 자가 곧 생사를 결정하는 법이다.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일반인은 총알 한 방이면 끝장
“문 닫아, 전원 퇴장시켜.”조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즉시 움직였다.순식간에 유흥업소에서 즐기던 사람들이 전부 나갔고 유흥업소 전체가 텅 비었다.감시 카메라는 전부 끊겼고 유흥업소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다.이유도 모른 채 쫓겨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웅성거렸다.“대체 누가 호랑이 구역에서 깽판 친 거야?”“호랑이가 모든 사람을 내쫓으면 그건 누군가 죽는다는 뜻인데?”“조용히 살면 안 돼? 왜 하필 호랑이를 잘못 건드려서...”사람들은 몇 마디 수군거리고 이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이봐 청년, 생각보다 꽤 침착해 보이네.”조호가 진서준을 보며 의외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바지에 지렸을 텐데 이 녀석은 소파에 편하게 앉아 꼼짝도 안 했다.“하지만 오늘이 네 제삿날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조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제삿날이라고? 나한테 하는 소리 맞아?”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우리 아버지가 자기한테 하는 소리라도 된다는 거야?”정장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아까 그렇게 잘난 척했잖아. 지금도 그렇게 까불어 봐.”진서준은 정장 남자를 한번 쓱 보더니 진지하게 경고했다.“입단속 잘해. 안 그러면 조금 있다가 평생 말할 수 없게 될 거니까.”그 말에 조호의 눈이 가늘어졌다.“이 자식이 정말 건방지네. 좋아, 네 오만함을 봐서 특별히 기회를 주지. 스스로 팔 하나 자르고 무릎 꿇고 사과해. 그럼 네 숨통을 끊어놓지 않을게.”조호가 칼을 꺼내 진서준 앞에 던졌다.그런데 진서준은 가볍게 웃더니 주머니에서 천기각 각주의 옥패를 꺼냈다.“이거 본 적 있어?”“그냥 싸구려 옥패 아니야? 뭐야, 돈으로 해결하려는 거야? 늦었다, 이 자식아.”정장 남자가 실소를 터뜨렸다.조호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자 진서준은 옥패를 집어넣었다.이 무리는 천기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그렇겠지. 애초에 그 노인네가 지하 세계를 누빈 것도 아닌데 이런 조폭들을 천기각에 끌어들이진
“됐어, 다들 그만 좀 해.”이때 엄승현이 나서서 중재하기 시작했다.“다들 아까 일 때문에 민감해진 것 같은데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하자.”“엄승현, 너 인맥 넓잖아? 아까 그 사람 구해낼 수 있어?”도민수가 갑자기 물었다.“뭐? 무슨 소리야? 나보고 호랑이 손아귀에서 사람을 빼내라고?”엄승현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이 녀석이 호랑이의 아들을 때려놓고 이제 와서 엄승현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사실 방금 엄승현이 자기 목숨 건진 것도 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민수야, 그럴 필요 없어. 진서준은 괜찮을 거야.”도지아가 조용히 말했다.“헛소리 마. 상대는 호랑이라고. 동부 구역에서 호랑이는 그야말로 지하의 황제야.”도민수는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분한테 찍히면 대단한 사람이 나서지 않는 이상 무조건 죽는다고.”자기 동생이 아직도 착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아채자 도지아는 가슴이 뭉클했다.“내가 왜 나서야 하는데? 나랑 아무 상관도 없잖아.”엄승현이 싸늘하게 말했다.사실 도와주고 싶어도 도무지 도울 수 없었다.호랑이가 마음만 먹으면 엄씨 가문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적어도 저 사람은 우리를 구해줬어.”도민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팩트를 말했다.“내가 구해달라고 했어? 애초에 저놈이 괜히 주먹을 휘둘러서 일이 이렇게 커진 거잖아. 저놈이 흥분하지만 않았다면 우린 진작에 저기서 나왔어.”엄승현이 뻔뻔하게 말했다.“맞아, 자기가 영웅이라도 된 줄 아나 봐? 이제 곧 처맞을 텐데 아주 꼴좋네.”단발머리 여자가 대놓고 비웃었다.그들의 차가운 태도에 도민수는 분노가 치밀었다.“민수야, 넌 나를 못 믿는 거야? 내가 진서준이 무사할 거라고 분명히 말했잖아.”도지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누나를 믿으라고?”도민수가 코웃음을 쳤다.“내가 어떻게 누나를 믿어? 며칠 전 일은 벌써 잊었어?”도지아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연히 잊지 않았어. 근데 결국 다들 무사히 돌아왔잖아.”“무사히 돌아왔다고?”
진서준이 호랑이의 아들까지 후려치는 걸 보자 사람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너 미쳤어? 조 도련님은 호랑이 아들이라고. 이분을 때린 건 곧 호랑이의 얼굴에 뺨을 때린 거랑 다름없다고.”엄승현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조 도련님, 복수할 대상을 잘못 찾으면 안 됩니다. 문제를 일으킨 건 저 사람들이지 우린 아무 상관 없습니다.”“맞아요, 조 도련님. 저희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정장 남자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이 쪽팔린 놈들아, 다 꺼져.”정장 남자가 침을 뱉으며 욕설을 내뱉었다.이렇게까지 비굴한 놈들은 정장 남자도 처음 봤다.“어서 가자, 다들 서둘러.”사람들은 구세주를 만난 듯 기쁨에 찬 얼굴로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너희도 가. 여긴 나 혼자로도 충분해.”진서준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그래도...”도지아는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여기 남아봐야 나한테 짐만 돼. 그냥 가.”진서준이 단호하게 다시 축객령을 내렸다.그 말에 은근히 기분이 상한 도지아는 진서준을 살짝 째려봤다.“알겠어. 조심해. 가자, 민수야. 여긴 진서준한테 맡기자.”도지아는 도민수의 팔을 끌며 방을 나섰다.같은 시각, 정장 남자도 전화를 마쳤다.정장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진서준을 노려봤다.“어디 한번 보자. 네가 얼마나 배짱 좋은 놈인지. 우리 아버지가 오시면 그때도 지금처럼 잘난 척할 수 있길 바랄게.”진서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 조호가 오기를 기다렸다.한편, 엄승현 일행은 유흥업소 건너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그들은 창문을 통해 건물 앞에 줄지어 선 승합차들을 확인했다.그 차에서 강철로 된 칼을 든 건장한 남자들이 쏟아져 나와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어휴, 빨리 도망쳐서 다행이야. 조금만 늦었다면 우린 꼼짝없이 죽었어.”그 광경을 보며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아까 정장 남자가 엄승현 일행을 놔주지 않았다면 저 방에서 영영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야, 도민수. 그냥 네 누나한테 조 도련님이랑 한 달만 있으라고 해. 그럼 우린 다 여기서 나갈 수 있잖아.”“그래, 네 누나가 조 도련님이랑 잘 되면 넌 조 도련님 처남이 되는 거야. 그건 일반 신분이 아니야.”“맞아, 너희 집안이 이 기회를 잡고 르벨에서 우뚝 서는 거야.”다들 자기 안전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민수를 설득하려 했다.“너희들 인간 맞아? 우리 누나를 희생해서 너희 목숨을 구하겠다고?”도민수는 눈을 부릅뜨고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자기 친구들이 이 정도로 역겨운 사람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이 일 애초에 너 때문에 일어난 거잖아. 네가 조 도련님을 때리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 꼴 났겠어?”정장 남자가 엉덩이를 만졌던 여자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아까 저놈이 네 엉덩이 만졌을 때, 네가 먼저 성추행이라고 소리쳤잖아?”도민수는 어이가 없었다.아까 기껏 도와줬더니 지금 와서 오히려 자기를 원망하고 있었다.정말 배은망덕하긴 짝이 없었다.“그때 저 사람이 조 도련님인 줄 알았으면 난 절대 그런 말 안 했어.”여자가 당당하게 반박했다.“너희들 정말 대박이다.”도민수는 분통이 터져 미칠 것 같았다.“너희랑 같은 학교 다녔다는 게 진짜 내 인생 최대의 수치야.”“조 도련님, 우리 모두 도민수 누나가 조 도련님을 모시는 걸로 동의했어요. 그러니 제발 우리를 풀어주세요.”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도지아 역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고 이 사람들이 역겨워 토할 것만 같았다.“진서준, 부탁할게.”도지아는 진서준을 바라봤다.“알았어. 넌 먼저 동생을 데리고 나가 있어.”진서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도민수의 병을 봐주는 거였는데 주먹을 또 휘두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 여자는 못 건드려.”진서준은 무심한 말투로 정장 남자에게 경고했다.“넌 또 뭐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정장 남자는 진서준의 건방진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정장 남자의 정체가 밝혀지자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혔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들먹거리던 엄승현은 정장 남자의 따귀를 맞고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그 이유는 단 하나, 정장 남자의 아버지가 바로 호랑이였기 때문이었다.호랑이는 르벨 동부 지역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인물이었다.엄승현의 집이 좀 잘사는 건 맞지만 호랑이 앞에서는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지금 이 순간, 이렇게 공개적으로 뺨을 맞았음에도 엄승현은 감히 화를 낼 수도 없고 그저 비굴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조 도련님, 방금은 제가 많이 실례했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하겠습니다.”엄승현은 황급히 와인 한 병을 따더니 단숨에 들이켰다.술이 모두 넘어가자 엄승현의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조 도련님, 우리 아버지와 도련님 아버지는 오랜 사업 파트너입니다. 제 아버지를 봐서라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 주실 수 없겠습니까? 제가 나중에 호텔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어 다시 한번 정식으로 사죄하겠습니다.”그러나 정장 남자는 엄승현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내가 네 술 한 잔 얻어먹자고 이러는 줄 알아?”엄승현은 그 말에 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조 도련님,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간단하지. 네 아버지랑 우리 아버지가 아는 사이니까 네가 와인 한 병 더 마시면 그냥 보내주지. 하지만 이놈들은 여기 남아야 해.”정장 남자는 도지아를 비롯한 일행을 가리키며 비열하게 웃었다.그 말을 듣자 모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여자들은 공포에 질려 몸을 벌벌 떨며 엄승현 뒤로 숨었다.“승현 오빠, 제발 구해주세요.”여자들은 울먹이며 엄승현에게 도움을 청했다.눈물 그렁그렁한 얼굴들이 엄승현의 동정을 자아냈다.엄승현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정장 남자에게 부탁했다.“조 도련님, 제발 이 애들은 봐주십시오. 다들 제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이 한 잔씩 올리는 걸로 그냥 넘어가 주실 수 없겠습니까?”말이 끝나자마자 정장 남자는 다짜고짜 손을 들어 그
“나도 너 같은 외지인들 많이 봤거든. 기를 쓰고 우리 도시에 자리 잡으려 하는 놈들 말이야.”갑자기 김칫국을 마시기 시작하는 엄승현을 보며 진서준은 질린다는 듯이 눈을 부라렸다.‘이놈 정신 상태가 이상하네.'그때, 도민수가 나서서 말했다.“형, 우리 그냥 딴 데로 갈까요?”“왜 딴 데로 가려고 해?”조금 전 진서준에게 밀린 탓인지 엄승현의 말투가 사뭇 날카로웠다.“여긴 귀도파 구역인지라 싸움이 금지되어 있잖아요. 아까 그놈 패버렸는데 혹시 그놈이 귀도파에 일러바치면 우리도 곤란해질 수 있어요.”도민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귀띔했다.이 말을 들은 도민수 일행도 슬슬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르벨은 동서남북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중 동부 지역을 장악한 최대 조직이 바로 귀도파였다.귀도파 조직원은 수천 명이었고 하나같이 잔혹한 놈뿐이라 감히 건드릴 자가 없었다.게다가 여기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대학생 신분인지라 괜히 귀도파를 건드렸다가 진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하지만 엄승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걱정 마. 우리 아버지가 귀도파 두목 호랑이와 친구거든.”“대박, 승현 오빠 인맥이 대단하네요.”“역시 우리 학교를 대표하는 남자다워요. 귀도파 두목이랑 친분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우리 다 함께 승현 오빠를 위해 한잔하자.”모두가 잔을 들며 엄승현에게 한 잔을 권하자 엄승현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엄승현은 이때다 싶어 슬쩍 도지아를 바라봤다.자기를 보고 감탄하는 줄 알았는데 도지아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바로 이때, 누군가 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곧이어 아까 엄승현에게 얻어맞았던 정장 남자가 불같이 뛰어들었다.그리고 남자 뒤에는 칼을 든 건장한 사내들이 잔뜩 따라왔다.이 광경에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순식간에 엄승현 뒤로 숨어들었다.“너 진짜 지원군 데려왔네?”엄승현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겁먹은 기색은 없었다.“군자는 복수를 하루라도 미루지 않는 법이야. 네가 아까 날 때린
“승현 오빠, 시원하게 잘 팼어요. 저 개자식 확실하게 밟아버리세요.”“우리 승현 오빠 앞에서 감히 까불어? 죽지 못해 안달이 났구나.”“흥, 승현 오빠는 우리 헬스팀 에이스야. 감히 이런 분을 건드려? 주제 파악이 안 돼?”도민수 일행은 정장 남자가 피범벅이 된 걸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이 분위기에 엄승현도 한껏 고무되었다.“지금 당장 꺼져. 안 그럼 넌 오늘 병원 중환자실 예약이야.”엄승현이 또 술병을 들어 정장 남자를 협박했다.“너 독한 건 인정하지.”정장 남자는 상황이 불리해지자 이를 악물고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말 똑바로 해. 그리고 우리 친구들한테 제대로 사과해.”엄승현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차기를 날렸고 정장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미안해.”정장 남자가 이를 갈며 억지로 사과했다.“성의가 없잖아, 다시 제대로 해.”엄승현이 또다시 발차기를 날렸다.“죄송합니다!”정장 남자가 억지로 분을 삭이며 다시 외쳤다.“그래, 그 정도는 돼야지.”엄승현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이제 꺼져. 다음에 또 마주치면 알아서 자리를 피해. 또 쓸데없이 까불다간 진짜 뼈를 바스러뜨릴 줄 알아.”정장 남자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더니 떠나기 전 엄승현을 빤히 쏘아봤다.“승현 오빠 최고예요!”“승현 오빠는 저놈 사과를 받아낼 정도로 대단하네요.”“승현 오빠 아직 여자친구 없다면서요? 혹시 우리한테도 기회가 있는 거 아닌가요?”몇몇 여학생은 얼굴을 붉히며 설레는 마음으로 엄승현을 바라봤다.팽팽한 분위기가 풀리자 도지아가 다가와 도민수를 설득했다.“민수야, 이제 누나랑 같이 집에 가자.”“나 안 가. 갈 거면 누나 혼자 가. 나 귀찮게 하지 마.”도민수가 짜증 섞인 말투로 도지아를 밀쳐냈다.“야, 너 누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엄승현이 곧바로 다가와 얼굴을 굳히며 도민수를 꾸짖었다.그러곤 다시 다정한 눈빛으로 도지아를 바라보았다.“지아 누나, 괜찮아요?”“응, 난 괜찮아.”도지아가 예의 바르게
“그만해!”도지아가 황급히 외치며 도민수의 앞을 막아섰다.“이봐요, 말로 해결합시다. 손찌검은 하지 말고요.”“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도민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누나를 전혀 반가워하지 않았다.“어이쿠, 여기 또 미녀 한 분이 오셨네? 이런 풍경은 흔치 않은데?”정장 남자가 도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도지아는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역겨움을 억누르며 말했다.“이봐요, 제 동생이 당신한테 어떤 짓을 했나요?”“이놈이 내 얼굴을 때렸거든. 이걸 어쩌면 좋을까?”양복남이 쌀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네가 내 친구 엉덩이를 만졌잖아. 한 대 맞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도민수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반박했다.“내가 그년 엉덩이를 만진 건 영광인 줄 알아야지. 게다가 그년은 왜 그렇게 야하게 입고 다니는데? 남자 꼬시겠다는 거 아니야?”정장 남자가 억지 논리를 내세웠다.그 말을 듣자마자 도지아는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이 인간이 도민수의 친구를 성추행했고 도민수가 그걸 못 참아 주먹을 날린 거였다.“이봐요, 당신이 먼저 잘못했으니까 제 동생이 참지 못한 거죠.”도지아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웃기고 자빠졌네. 내가 뭘 잘못했는데?”양복남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아가씨, 이놈 누나 맞지? 그럼 내가 화해할 방법을 알려 줄게. 오늘 밤 아가씨가 나랑 즐겁게 놀아주면 아가씨 동생이 날 때린 일은 없던 일로 해주지.”그 순간, 도민수의 눈에서 분노의 불꽃이 튀었다.“이 개자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너 그 입 다시 놀려 봐? 진짜 네 머리 터지고 싶어?”정장 남자의 선을 넘는 말에 도지아의 얼굴도 차갑게 식었다.“지금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누가 옳고 그른지 경찰이 판단하게 하자.”“경찰? 여기가 누구 구역인지 알고 개소리하는 거야? 그놈들이 감히 날 잡아갈 수 있을 것 같아?”양복남은 코웃음을 치며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내 일은 내가 해결해. 넌 빠져.”도민수가 도지아를 옆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