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혁수는 피를 뒤집어쓴 채로 호수 위에 서 있었는데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것이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 같았다.진서준이 차갑게 말했다.“당신과 난 아무런 원한도 없을 텐데.”“그래. 그런데 내가 너 같은 천재를 죽이는 걸 좋아해서 말이야.”유혁수는 눈알이 벌게진 채로 미친 듯이 웃었다.“진서준, 오늘 넌 반드시 죽어야 해!”미친놈.정신이 나간 듯한 유혁수를 본 사람들의 머릿속에 미친놈 세 글자가 떠올랐다.아무런 원한도 없으면서 진서준을 죽이려 하는 이유는 그의 변태적인 취향 때문이었다.“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는 아무도 몰라.”진서준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유혁수를 바라보았다.그에게 있어 유혁수는 이미 죽은 자와 다름없었다.비록 진서준은 체내의 영기를 꽤 많이 소모했지만 만월호의 영기가 워낙 왕성한 탓에 이런 자연적인 영기를 이용하여 유혁수를 죽일 수 있었다.진서준이 천문검을 거두어들이자 유혁수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투항하려는 건가? 투항한다고 해도 난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진서준이 덤덤히 말했다.“당신을 죽이는 데 검까지 필요 없어.”진서준의 비아냥에 유혁수는 냉소했다. 그는 두 다리를 힘껏 굴렀고, 그 순간 폭탄이 터진 듯 발아래 호숫물이 사방으로 튀었다.기세등등한 유혁수를 본 진서준은 두 손을 서서히 들었다.다음 순간, 호수 전체가 눈에 보이는 속도로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흰 안개가 진서준의 앞에 모였다.“농간을 부리는군!”유혁수가 차갑게 말했다.눈 깜짝할 사이, 유혁수가 진서준의 앞에 섰다.그는 가까이 다가가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두 주먹을 휘둘렀다.아무도 유혁수가 주먹을 몇 번 휘둘렀는지 보지 못했다. 강건한 기운들로 뭉친 매의 머리와 늑대의 머리가 진서준 앞의 흰 안개를 강타했다.공기가 찢어발겨지는 것 같았다. 무시무시한 장면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멈췄다.“이건 환기권이야!”무인들은 유혁수의 환기권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환기권은 유혁수가 20여 년간 열심히 연구하여 만든 권법인데,
호숫가에 서 있던 사람들은 수면이 잠잠해졌을 때야 정신을 차렸다.누군가는 유혁수가 떨어진 곳을 바라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끝난 거 아닐까요?”“대성 종사와 술법 천사가 번갈아 싸웠는데도 진서준 씨 상대가 되지 못했네요.”“진서준 씨 정말 대단하네요. 혼자서 둘을 상대했는데도 털끝조차 다치지 않았어요!”진서준의 신과 같은 모습을 바라보는 손승호의 눈동자에는 불만과 증오가 가득했다.“내 복수는 정말 가망이 없는 걸까?”대성 종사마저 진서준을 죽이지 못했으니 누가 그를 죽일 수 있겠는가?감옥에서 3년을 보낸 폐인에게 이런 큰 변화가 있다니, 설마 감옥에서 대단한 사람이라도 만난 걸까?달갑지 않아 하는 손승호와 달리 공규석은 두려움이 더 컸다.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유혁수와 공규석이 함께 온 걸 모두 보았다.유혁수가 진서준을 공격한 건 분명 공규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도망가지 못하게 해!”하규천은 공규석이 도망가려고 하자 곧바로 자신이 데려온 무인들더러 공규석을 막게 했다.“뭐 하는 거예요? 이거 놔요!”두 무인에게 붙잡힌 공규석은 겁에 질려서 두 다리를 덜덜 떨었다.“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혈운의 종사를 데려와서 진서준을 기습하다니, 오늘 넌 끝장이야!”하규천은 차가운 눈길로 공규석을 바라보았다. 마치 죽은 사람을 보듯 말이다.공규석이 낙담에 빠졌을 때 고요하던 호수에 갑자기 폭발이 일었다.“어떻게 된 거죠? 설마 유혁수 씨가 죽지 않은 걸까요?”“그럴 리가요. 조금 전 그가 떨어졌던 곳이 전부 빨간색으로 물들었는데 죽지 않았을 리가 있겠어요?”호수 위 진서준은 폭발한 곳을 바라보며 눈빛이 차가워졌다.“죽지 않은 건가?”유혁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가슴 쪽 상처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렀다.그의 얼굴은 수척했고, 음산한 눈동자에는 핏발이 섰다.이때 유혁수는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혈운의 대성 종사이자 종사 킬러이며 환기권을 창조한 그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자신이 패배했다는 걸 인정할 수가 없
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덤덤히 웃었다.그의 머릿속에는 처방전이 셀 수 없이 많았다.그중 일부는 아무런 부정적인 영향 없이 단기간에 실력을 향상할 수 있었다.유혁수가 먹은 단약은 진서준에게 있어 가장 낮은 수준의 약이었다.진서준이 유혁수를 막을 생각이 없어 보이자 권해철은 조금 허무했다.“넌 죽었어!”폭원단을 먹은 유혁수는 상반신을 살짝 구부정하게 하고 야수처럼 으르렁거렸는데 그 모습이 마치 맹수 같았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사람을 불안케 했다.동시에 유혁수는 눈에 보이는 속도로 빠르게 늙어갔다. 검은 머리카락이 끊임없이 빠지면서 백발이 되었다.그러나 그의 기세는 예전보다 훨씬 더 강했다.예전의 유혁수는 그와 같은 경지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그와 대적할 사람이 많지 않았다.지금은 아마 일반적인 선천 대종사도 그를 제압하기 어려울 것이다.절망에 빠졌던 공규석은 그 광경을 보자 곧바로 폭소를 터뜨렸다.“유혁수 종사님은 죽지 않았어. 이거 놔. 진서준 저 자식이 죽으면 당신들이 다음 차례가 될 수도 있어.”하규천의 안색이 흐려졌다.호숫가에 있던 사람들은 호수 위 유혁수가 조금 전과 완전히 다르다는 걸 똑똑히 느꼈다.진서준에게 여력이 얼마나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우선 놔줘.”하규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풀려난 공규석은 냉소했다.“진서준, 넌 오늘 틀림없이 죽을 거야!”짐승 같은 유혁수의 모습에도 진서준은 평온했다. 유혁수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전혀 놀라지 않은 듯했다.“후!”유혁수는 소리를 지르더니 수면을 밟으며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이 빠르게 움직였다.그가 지나간 곳에는 20미터 높이의 물기둥이 솟구쳤다.진서준은 유혁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그딴 약으로 날 죽이려 하다니, 날 너무 얕본 거 아니야?”유혁수가 다가오자 진서준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다음 순간, 진서준에게서 무지막지한 기세가 느껴졌다. 이때 권해철에게 진서준은 신처럼 보였다.진서준의 손바닥이 파랗게 변했고 자주색의 번개 빛이
진서준이 그렇게 말하자 하규천은 부하에게 공규석을 끌고 가라고 했다.애원하는 공규석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승자만이 정의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만약 조금 전 유혁수가 습격에 성공했더라면 상황은 또 달랐을 것이다.“내가 걱정시켰네요.”진서준은 허사연에게로 다가가서 그녀의 보드라운 손을 잡았다.“서준 씨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허사연은 애틋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황보식은 허성태의 곁으로 걸어가더니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성태 씨, 성태 씨 딸 출세했네요.”허성태 또한 웃으며 말했다.“우리 사연이가 복이 많죠.”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이들도 진서준과 허사연을 칭찬했다.주위에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은 허사연은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손을 거두어들일 생각이었지만 진서준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얼른 놔요. 보는 사람도 많은데!”허사연이 쑥스러운 듯 말했다.“왜 쑥스러워해요? 사연 씨는 내 여자 친구잖아요. 여자 친구 손 좀 잡는 게 뭐 어때서요?”진서준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러나 그와 반대로 허사연은 쑥스러움이 많은 성격이었다. 그래서 진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공원 바깥쪽으로 향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손을 잡고 떠나자 다른 가문의 가주들은 허성태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축하드립니다, 허성태 씨. 정말 훌륭한 사위를 얻으셨네요!”“휴, 제 딸이 조금 더 일찍 진서준 씨를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요.”“앞으로 허씨 집안은 틀림없이 승승장구할 겁니다. 어쩌면 서울 최고의 가문이 될지도 몰라요!”누군가는 허성태를 부러워했고 누군가는 그를 질투했다.그러나 아무리 질투가 심해도 감히 허씨 일가 사업에 손을 댈 수는 없었다. 그저 최대한 허씨 일가와 협력하여 진서준 앞에서 좋은 얘기라도 몇 마디 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그러면 앞으로 그들의 가문에 골치 아픈 일이 생길 때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이때 만월호는 아직도 기관에서 통제 중이라 누구도 함부로
“눈 똑바로 뜨고 봐요!”나지혜의 무례한 말투에 진서준과 허사연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사람이 참 무례하군요.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죠? 제가 그쪽 부모님 대신 예의가 뭔지 가르쳐줄까요?”나지혜는 팔짱을 두른 채로 같잖다는 듯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날 가르치겠다고요?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요? 경고하는데 내 남자 친구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에요!”옆에 있던 황성윤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허사연을 훑어보았다.황성윤은 고등학교 때 가족들에 의해 해외로 보내졌고 귀국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올해 해외에서 졸업하고 돌아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기에, 아직 허사연을 알지 못했다.진서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려다.“당장 꺼져요.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까 그냥 봐주는 거예요.”“자기야, 저 사람 나한테 막 소리 질러. 심지어 나한테 꺼지라고 했어!”나지혜는 황성윤의 손을 잡더니 그의 팔에 자신의 가슴을 가져다 댔다.팔뚝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정신을 차린 황성윤은 오만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이 자식, 지금 당장 내 여자 친구에게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오늘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아!”진서준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쳤다.“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내 남자 친구가 전화 한 통 하면 경호원 몇십 명을 불러올 수 있거든요!”나지혜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지난번에 누군가 나지혜를 희롱했을 때, 황성윤은 전화 한 통으로 20여 명의 경호원을 불러왔다. 나지혜를 희롱한 그 남자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나지혜에게 사죄했다.진서준은 두 사람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모처럼 쉬는 날이었기에 허사연과 데이트할 생각이었다.두 사람은 놀이공원에 갔다가 저녁쯤 금영사에 가볼 생각이었다.허사연은 금영사에 아주 신통한 나무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나무에 대고 소원을 빌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어요. 하나는 지금 당장 꺼지든가, 아니면 나한테 맞고 꺼지든가 해요.
황성윤은 난생처음 이렇게 비참하게 맞았다.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도 그를 이렇게 때린 적이 없었다.피투성이가 된 황성윤은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는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면서 흉악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노려봤다.전화가 통하자 황성윤은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5분 내로 만월호 입구로 와. 5분 내로 못 오면 다들 잘릴 줄 알아!”전화를 끊은 뒤 나지혜는 진서준에게 맞아 빨개진 얼굴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자기야, 저 자식 얼굴이 퉁퉁 부을 정도로 때려줘!”문가에 서 있던 공무원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서둘러 그들에게 경고했다.“원한이 있으면 다른 곳에 가서 해결해요. 여기서 싸우지 말고!”만약 이들이 만월호 공원에 있는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면, 그저 문지기인 그들은 그 책임을 질 수 없었다.“내가 여기서 싸우겠다면 당신이 뭘 어쩔 수 있는데? 난 황정식 손자야!”황성윤이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황씨 집안은 정계 쪽에도 인맥이 있었고 황정식은 꽤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황정식 손자라는 말에 공무원의 미간이 좁혀졌다.“황정식 어르신은 지금 공원에 계십니다.”할아버지가 만월호 공원에 있다는 말에 황성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지금 당장 우리 할아버지를 불러줘!”공무원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고 그중 한 명이 빠르게 만월호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할아버지가 공원에 있다는 생각에 황성윤은 더욱더 자신만만해졌다.그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이 자식, 넌 오늘 죽었어. 우리 할아버지가 네가 날 때렸다는 걸 알게 된다면 넌 물고기 밥이 될 거야! 그리고 네 옆에 있는 여자는...”황성윤은 허사연을 바라보면서 눈을 반짝였다.“네가 죽으면 내가 대신 돌봐줄게.”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성윤의 발밑에서 갑자기 한기가 솟아올랐다.그의 앞에 서 있던 진서준이 갑자기 무섭게 변했다. 죽음의 기운이 황성윤을 감쌌고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목을 졸랐다.“죽으려고!”진서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는 황성윤이라는 청년에게 살의가 생겼
옆에 있던 황은비가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가볼게요. 성윤이는 귀국한 지 얼마 안돼서 아직 정신 못 차렸을 거예요.”“그래, 네가 가보거라.”황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입구로 가던 길에 황은비가 물었다.“제 사촌 동생이랑 시비가 붙은 사람은 누구죠?”“모르겠습니다. 막 공원에서 나온 것 같았어요.”‘공원에서 나왔다고?’황은비는 움찔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조금 전 만월호를 떠난 사람은 진서준과 허사연 두 사람뿐이었다.“여자 한 명이랑 남자 한 명인가요?”“네.”“망했네!”황은비는 하이힐을 신은 채로 미친 듯이 입구를 향해 뛰어갔다.그녀가 공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경호원들이 진서준을 에워싸고 있었다.“멈춰!”분노에 찬 황은비는 사력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그녀의 목소리에 경호원과 황성윤 모두 당황했다.사촌 누나인 황은비를 본 황성윤은 마치 구세주를 본 것처럼 헐레벌떡 그녀에게 달려갔다.“누나, 이 자식이 내 뺨을 때렸어!”진서준과 허사연은 황은비를 보자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황은비는 몇 번 심호흡하며 마음속의 분노와 두려움을 내리눌렀다.나지혜도 황은비에게 달려가서 호소했다.“언니, 제 얼굴 좀 보세요. 저 빌어먹을 놈에게 뺨을 맞아서 얼굴이 부었어요!”나지혜가 진서준을 욕하자 황은비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넌 뭐야?”“저... 전 성윤 씨 여자 친구예요.”나지혜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 저 사람이 네 뺨을 때렸다고?”“네, 네!”나지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황은비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얼굴 좀 가까이 대봐.”나지혜는 고민 없이 황은비 쪽으로 얼굴을 가져다 댔다.짝 소리와 함께 나지혜의 뺨 위로 붉은 손바닥 자국이 하나 더 생겼다.원래도 빨갛게 부었던 얼굴이 더욱 심하게 부었다.황은비는 뺨 한 대에서 그치지 않고 넋이 나간 나지혜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짝짝짝...나지혜가 바닥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할 때가 돼서야 멈췄다.“누나... 왜
황성윤은 누나가 왜 진서준에게 존칭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비록 황성윤은 황은비와 오래 알고 지낸 건 아니지만, 황은비가 매우 도도한 여자라는 건 알았다.황성윤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 앞에서도 황은비는 자신을 너무 낮추지 않았다.그러나 황성윤은 현재 분노에 사로잡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누나, 나이 먹더니 멍청해지기라도 한 거야? 기껏해야 누나 또래인 것 같은데 왜 그렇게 깍듯이 대해?”황성윤은 노발대발했다.황성윤이 눈치 없이 고함을 지르자 황은비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넌 죽었어.’진서준이 덤덤히 말했다.“할아버지라면 그를 다룰 수 있나요?”“네, 지금 할아버지께 연락드릴게요.”황은비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황정식에게 연락했다.황은비는 황정식이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할아버지, 지금 바로 공원으로 오셔야겠어요.”“왜? 네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냐?”황정식이 물었다.황은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아버지 손자가 진서준 씨의 심기를 건드렸어요.”황정식은 침묵했다. 무려 3분이 지난 뒤에야 황정식은 정신을 차렸다.“그 자식 죽고 싶어 환장했다니? 은비야, 걔 잘 감시하고 있어. 내가 지금 당장 가마.”말을 마친 뒤 황정식은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사람들을 데리고 공원 입구로 달려갔다.황은비는 험악한 표정의 황성윤을 바라보면서 평온하게 말했다.“이 일은 그냥 이렇게 끝날 수도 있었는데 너 스스로 무덤을 판 거야.”“내가 내 무덤을 팠다고?”황성윤은 크게 웃었다.“누나, 누나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황씨 일가에서 황성윤은 황은비보다도 더 많이 사랑을 받았다. 황성윤이 황씨 일가의 장손이었기 때문이다.그래서 황성윤이 오만방자한 성격이 된 것이다.“할아버지께서 곧 오실 거야.”황은비는 차갑게 한 마디 던진 뒤 더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할아버지가 오시면 제대로 설명해야 할 거야. 왜 다른 사람의 편을 들면서 날 때렸는지 말이야!”황성윤은 팔짱을 끼면서 냉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