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소리를 듣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서 백 미터 정도 떨어진 호수 중심에는 깨알만 한 크기의 사람이 서 있었다.그 사람은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갈수록 커졌다.그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을 때, 모두 아연실색했다.흰색의 긴 옷을 입은 권해철이 뒷짐을 진 채로 호수 위를 평지처럼 걷고 있었다.“세상에, 저분이 바로 권해철 씨인가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네요!”“맙소사, 호수 위를 걸을 수 있다니 인간 맞대요? 얼른 휴대전화로 찍어야겠어요!”“권해철 씨 그동안 실력이 더 늘었나 봐요. 진서준이라는 사람 틀림없이 지겠네요!”허사연 부녀는 그 모습을 보자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았다.눈앞의 권해철은 기운도, 실력도 그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진서준이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권해철과 비교하면 많이 부족했다.주변 사람들은 허씨 가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연민의 눈빛으로, 누군가는 업신여기는 눈빛으로, 또 누군가는 탐욕적인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그들은 진서준이 틀림없이 패배할 거라고 여겼다.권해철은 빠르게 호숫가에 도착해서 걸음을 멈추었다.그가 팔 하나를 뻗어 손을 살짝 움직이자 그의 앞에 있던 호숫물이 솟아오르며 의자로 변했다.뒤이어 그는 덤덤하게 호숫물로 된 의자에 앉아 눈을 살짝 감은 채 진서준이 오기를 기다렸다.권해철의 실력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다시금 놀랐다.“아버지, 저는 권해철 씨를 스승님으로 모실래요!”“잠시 뒤에 권해철 씨가 진서준이라는 놈을 혼쭐내준 뒤에 권해철 씨에게 완벽한 인상을 남겨야겠어요!”공규석의 눈동자에도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중년 남성에게 물었다.“유혁수 종사님, 종사님과 권해철 씨를 비교했을 때 누가 더 강한가요?”중년 남성은 숨기는 기색 없이 솔직히 말했다.“권해철 씨가 저보다 더 강합니다!”공규석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중년 남성의 말을 들으니 역시나 놀라웠다.유혁수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공규석은 그가 손으로 총알을 막는 걸 두 눈
진서준의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차에서 내린 진서준을 본 이들은 전부 멍해졌다.“이럴 수가. 무능력한 진서준이 이 대결의 주인공이라고?”휠체어에 앉아있던 손승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만약 진서준을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손승호는 자신이 얕잡아보던 진서준이 이 대결의 주인공이라는 걸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다른 지방의 권력가들과 무인들도 얼굴에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저 사람이 바로 진서준이라고요? 장난하는 거 아니겠죠?”“외모를 보니 서른도 되지 않은 듯한데요?”“서른이요? 제가 보기엔 기껏해야 스물다섯인 듯한데요?”“스물다섯에 종사라고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공규석 곁의 유혁수는 실눈을 뜨고 차가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저 사람이 바로 진서준인가요?”“맞습니다!”공규석은 원망스러운 눈길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는 재가 되어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진서준의 얼굴을 잊지 않을 것이다.“어린 나이에 종사라니, 혹시 경성 어느 가문의 자제인가?”유혁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사색에 잠겼다.그러다 갑자기 뭔가 떠올린 건지 안색이 돌변했다.“경성 4대 가문 중 진씨 가문이 두 번째인데. 설마 진씨 일가의 자제인가?”유혁수는 여러 해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며 많은 가문과 종사를 만났다.가장 젊은 종사는 강남의 첫째가는 가문의 자제였다.그는 겨우 서른의 나이에 종사가 되었고 같은 경지에 있는 10명의 종사들을 제쳤다.그런데 눈앞의 진서준은 겨우 25 정도 돼 보이는데 기세를 거두어들일 줄 알았다. 유혁수조차 그의 진짜 실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이런 무시무시한 괴물을 키울 수 있는 곳은 경성 4대 가문과 자취를 감춘 파벌을 제외하고 다른 세력은 떠오르지 않았다.“진서준 씨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나요?”유혁수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의 신분은 일찌감치 조사해 봤습니다. 얼마 전 출소했고 다리가 부러진 어머니와 여동생이 한 명 있어요. 허씨 집안과 황보식 씨가 없었
기운을 조종하여 천둥을 만든 것이다.엄청난 실력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헛숨을 들이켰다.진서준이 파티에서 만들어냈던 것보다도 더욱 무시무시했다.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속으로 결론을 냈다.진서준이 틀림없이 패배할 거라고 말이다.무시무시한 24개의 뇌검을 마주하게 된 진서준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재능이 별로 없네요. 다섯 수 안에 당신은 패배할 겁니다.”짧은 말이었지만 권해철은 큰 충격을 받았다.호숫가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미친놈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권해철 씨를 보고 재능이 없다고 하다니, 미친 거 아닐까요?”“자기한테 하는 말 아니었을까요? 본인이 재능이 없는 거겠죠!”“다섯 수라고요? 진서준이라는 사람 참 건방지네요. 그가 권해철 씨의 뇌검들을 상대할 수 있다면 실력을 인정해 주겠어요.”적지 않은 사람들이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가 큰소리를 친다고 생각해 콧방귀를 뀌었다.허사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참, 사람이 좀 겸손해야 하는 법인데.”허윤진은 작게 중얼거리면서 두 손으로 자신의 옷깃을 꽉 잡았다. 조금 전처럼 여유롭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70세 고령인 권해철은 진서준의 말에 화가 나 가슴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그래요. 어디 한번 그 대단한 실력 좀 확인해 보자고요!”권해철의 안색이 흐려졌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서 진서준을 향해 식지를 튕겼다.다음 순간, 뇌검 하나가 공기를 가르면서 진서준을 향해 날아들었다.눈 깜짝할 사이, 뇌검은 이미 진서준의 앞에 나타났다.사람들은 그 순간 숨을 참고 긴장한 채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별 볼 일 없는 수작이군요. 당신의 도전장보다 살짝 더 나은 수준이네요.”진서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피식 웃었다.진서준은 권해철이 만월호를 선택한 이유를 깨달았다.만월호는 기운이 좋았고 호수 속의 영기는 아주 짙었다.권해철이 이곳에서 진서준과 싸우기를 선택한 이유는 지리적인 우세
“무능력한 놈이 어떻게 대사일 수가 있지?”손승호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진서준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진서준이 진 대사라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권해철과 실력이 엇비슷하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만약 권해철마저 진서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복수해야 한단 말인가?그의 뒤에 서 있던 손지헌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일찍 잘못을 인정해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아주 비참하게 끝났을 거야...”공규석도 손승호처럼 인정할 수 없었다.그는 복수를 위해 공씨 집안 재산 중 반을 썼고, 심지어 부모님을 죽이기까지 했다.조금 전 유혁수는 본인의 실력이 권해철보다 못하다고 했다.진서준이 권해철과 맞붙을 수 있다는 건 유혁수가 진서준보다 약하다는 걸 의미했다.다른 지방의 권력가들과 무인들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서울은 그동안 잠잠했는데 갑자기 대단한 인재가 나타났다.만약 진서준이 패배하지 않는다면 남주성 전체를 장악할 수 있었다.“겨우 권해철의 공격을 한 번 막은 것뿐이에요. 이기는 건 그렇게 쉽지 않을 거예요.”유혁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유혁수의 말을 들은 누군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혹시 권해철 씨에게 다른 수단이 있는 건가요?”“눈에 좀 익은 것 같은데, 어디선가 만난 적 있는 것 같네요...”“저 사람 혈운 조직의 유혁수 종사 아닌가요?”혈운이라는 두 글자에 사람들의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 그들은 두려운 눈빛으로 유혁수를 바라보았다.혈운 조직은 대한민국 무도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직 중 한 곳이었다.인원이 많은 건 아니지만 전부 종사였고 그들 모두 종사를 죽인 적이 있었다.혈운 조직에 가입하려면 반드시 종사를 죽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혈운 조직에 들어갈 수 없었다.유혁수는 세 명의 종사를 죽인 적이 있었고 그의 손에 죽은 내경 무인은 셀 수 없이 많았다.“권해철 씨가 선보인 뇌검은 비록 겉보기에는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저 도술일 뿐 풍수살술이
검기가 마치 무지개 같았다.풍수살술 진법 중에 서 있는 권해철은 죽음의 기운을 느꼈다.그 검기 앞에서는 모든 것이 얇은 종이처럼 부질없을 것 같았다.권해철은 바짝 긴장했다. 체내의 진기가 미친 듯이 움직였고 세 개의 바다 요괴가 그의 앞에 나타나 진서준의 검을 막으려고 했다.쿠구궁...흰 안개 속에서 끊임없이 소리가 났고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애가 탔다.“언니, 진서준 씨 괜찮겠지...”허윤진의 목소리가 떨렸다.그녀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허성태를 제외하고 다른 남자를 이렇게 걱정한 적은 없었다.허사연 또한 초조해 보였다.“분명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허윤진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기도 했다.권해철은 너무 강했다. 그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다.멀지 않은 곳, 손승호와 공규석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진서준, 같잖은 놈. 넌 반드시 이곳에서 죽을 거야!”두 사람은 진서준의 시체가 호수로 쓰러진 걸 눈으로 보는 것만 같았다.그러나 다음 순간, 다들 깜짝 놀랐다.하늘과 땅을 울리는 검의 소리가 흰 안개 속에서 울려 퍼졌다.그 순간, 마치 미사일에 폭격당한 것처럼 만월호에 100미터 높이의 물보라가 일었다.그와 동시에 자욱하던 안개가 사라졌다.호수 위 두 사람이 다시금 사람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중 한 명은 무릎을 반쯤 꿇고 있었다.진서준과 권해철 사이에 2미터 넓이에 20미터 깊이의 골짜기 생겼다. 양쪽에서 호숫물이 끊임없이 골짜기를 향해 흘러들었다.신선처럼 보이던 권해철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모습이었다.이 광경에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이럴 수가! 단칼에 권해철 씨의 풍수살술 진법을 파괴했어요!”“풍수살술 진법뿐만이 아니라 권해철 씨까지 다친 것 같아요!”“세상에, 정말 20대 초반이 맞을까요? 정말 말도 안 돼요!”진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무인들은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이렇
승복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당장 죽임당할 것 같았다.기개도 중요하지만 목숨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승복한다니 다행이네요. 죽이지는 않을게요. 대신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진서준이 평온하게 말했다.그러자 권해철은 정중하게 대답했다.“물어보세요.”“당신의 제자가 말하길, 당신은 영골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 하던데 정말인가요?”진서준의 목소리가 엄숙해졌다.오늘 이 대결은 영골을 위해서였다.만약 권해철이 영골의 위치를 모른다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될 것이다.권해철은 흠칫하더니 쓴웃음을 지었다.그의 표정을 본 진서준은 순간 기분이 가라앉았다.“영골의 위치는 알고 있지만...”“알고 있어요?”진서준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알긴 알지만 영골은 제 사문의 금지 구역에 있습니다. 영골을 얻으려면 우선 제 사문을 찾아가야 합니다.”권해철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솔직히 얘기하자면 제가 속세로 돌아온 이유가 어린 시절 사부님께 쫓겨났기 때문입니다.”진서준은 낙심해서 달갑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그렇다면 그곳이 어딘지 기억합니까?”“압니다. 하지만 저희 사문의 산 아래에는 산을 보호하는 각종 진법이 있습니다. 영패 없이 들어가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예요.”권해철은 한숨을 쉬었다.“전 천사 경지에 이른 다음날 그 산에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제 실력이라면 진법을 파괴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하마터면 그곳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며칠 전 그 산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린 권해철은 두려워졌다.권해철의 사부님은 그 산에 쳐진 진법은 500년 전 세 명의 영선 경지의 장로들이 연합해서 만든 것이라고 했었다.영선 경지는 천사 경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였지만 둘의 실력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권해철의 설명을 들은 진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권해철에게 중상을 입힌 진법이라면 위력이 보통이 아닐 것이다.그러나 어머니의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서라
주위는 온통 고요했다. 숨 쉬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호숫가에 갑자기 나타난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다름 아닌 모두가 두려워하는 유혁수였다.혈운 조직의 대성 종사인 그가 이때 갑자기 진서준을 기습할 줄은 몰랐다.유혁수를 데려온 공규석도 아주 의아한 얼굴이었다.그는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매우 흥분했다.진서준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그는 혼자였다.권해철과의 싸움에서 그는 체력을 소진했을 것이다.그러니 지금은 진서준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한편, 유혁수는 세상에 이렇게 대단한 존재가 나타나는 걸 원하지 않았다.이런 천재가 자신의 손에 죽으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진서준 씨, 조심하세요!”권해철이 외쳤다.권해철은 진서준을 기습한 사람도 대성 종사임을 발견했다.대성 종사가 갑자기 상대를 기습하다니, 소문이라도 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유혁수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진서준도 등 뒤에서 서늘한 살기를 느꼈다.“죽으려고!”진서준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몸을 홱 돌려서 들고 있던 천문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둘렀다.실낱같은 검광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이런 실낱같은 검광에 유혁수의 마음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검의!”노련한 종사로서 유혁수는 당연히 대한민국의 무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무도에서 수련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검도였다.유혁수가 아는 정보에 따르면 진서준을 제외하고 가장 처음 검의를 깨달은 사람은 동북 조씨 가문의 천재였다.그러나 그 천재도 40대에 들어서야 검의를 깨달았다.눈앞의 진서준은 겨우 25살인데 대성 종사인 데다가 검의를 깨달았으며 술법 천사였다.세 개의 신분 중 어느 것이 알려지든 대한민국 무도계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또 검을 휘두를 수는 없겠지!”노련한 종사 유혁수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그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번뜩였다. 곧이어 체내의 내력이 응집되어 강건한 기운이 되었
유혁수는 피를 뒤집어쓴 채로 호수 위에 서 있었는데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것이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 같았다.진서준이 차갑게 말했다.“당신과 난 아무런 원한도 없을 텐데.”“그래. 그런데 내가 너 같은 천재를 죽이는 걸 좋아해서 말이야.”유혁수는 눈알이 벌게진 채로 미친 듯이 웃었다.“진서준, 오늘 넌 반드시 죽어야 해!”미친놈.정신이 나간 듯한 유혁수를 본 사람들의 머릿속에 미친놈 세 글자가 떠올랐다.아무런 원한도 없으면서 진서준을 죽이려 하는 이유는 그의 변태적인 취향 때문이었다.“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는 아무도 몰라.”진서준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유혁수를 바라보았다.그에게 있어 유혁수는 이미 죽은 자와 다름없었다.비록 진서준은 체내의 영기를 꽤 많이 소모했지만 만월호의 영기가 워낙 왕성한 탓에 이런 자연적인 영기를 이용하여 유혁수를 죽일 수 있었다.진서준이 천문검을 거두어들이자 유혁수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투항하려는 건가? 투항한다고 해도 난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진서준이 덤덤히 말했다.“당신을 죽이는 데 검까지 필요 없어.”진서준의 비아냥에 유혁수는 냉소했다. 그는 두 다리를 힘껏 굴렀고, 그 순간 폭탄이 터진 듯 발아래 호숫물이 사방으로 튀었다.기세등등한 유혁수를 본 진서준은 두 손을 서서히 들었다.다음 순간, 호수 전체가 눈에 보이는 속도로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흰 안개가 진서준의 앞에 모였다.“농간을 부리는군!”유혁수가 차갑게 말했다.눈 깜짝할 사이, 유혁수가 진서준의 앞에 섰다.그는 가까이 다가가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두 주먹을 휘둘렀다.아무도 유혁수가 주먹을 몇 번 휘둘렀는지 보지 못했다. 강건한 기운들로 뭉친 매의 머리와 늑대의 머리가 진서준 앞의 흰 안개를 강타했다.공기가 찢어발겨지는 것 같았다. 무시무시한 장면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멈췄다.“이건 환기권이야!”무인들은 유혁수의 환기권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환기권은 유혁수가 20여 년간 열심히 연구하여 만든 권법인데,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
이용진은 평생 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를 지키는 두 호위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아니, 심지어 방어할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당하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곽윤상 역시 진서준이 갑자기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약왕님, 이분은 바로 국안부 용존님이십니다.”곽윤상이 재빨리 이 틈을 이용해 설명했다.“뭐라고? 네가 바로 그 용존이라고?”이용진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용존이라는 이름은 이미 명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대다수 명주시 명문대가는 이 절세 천재를 돈으로라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진서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서준이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은 인물이니 앞으로 거의 3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서준과 겨뤄볼 만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심지어 4대 은거 문파조차도 진서준에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보시다시피 용존이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처음부터 용존이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이용진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나이에 육급 절정의 대종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이용진은 이제야 이 청년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용존님, 방금 제가 무례했던 점은 널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약왕 이용진은 몸을 약간 숙이며 진서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조금 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용진은 곽윤상이 명주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질책했었다.그런데 3분도 안 돼 본인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이용진은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약왕님, 앉으세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
진서준과 곽윤상은 약속된 호텔을 향해 차를 몰았다.가는 길에 곽윤상이 말문을 열었다.“진 마스터님이 황씨 가문 따님을 데리고 떠난 직후, 경찰청과 군부 사람들이 모두 몰려왔습니다.”그 총격 사건에 관련된 총잡이들은 물론, 사건 현장과 가까웠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경찰서로 끌려가 진술을 받았다.하지만 진서준이 사람을 구할 당시 주변엔 이미 아무도 없었기에 누가 황예은을 구했는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아마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할 겁니다.”진서준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저쪽에서 고용한 사람은 대부분 죽음의 수행자입니다. 이런 더러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자들이죠.”아까 진서준이 그 총잡이들을 처리하면서 그들이 이미 중독된 상태란 걸 알아챘다.그 독은 독성이 맹렬한 독이었고 섭취 후 12시간 안에 즉사하게 되어 있었다.이를 통해 배후의 진짜 범인은 상당히 잔혹한 수단을 사용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곽윤상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명문대가로 불리는 가문들은 흔히 이런 죽음의 수행자들을 양성한다.이 죽음의 수행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이 명령만 내리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었다.“명주시에서 이런 죽음의 수행자를 양성할 능력이 있는 가문이 어느 가문인지 알아요?”진서준의 질문에 곽윤상은 멈칫하다가 되물었다.“진 마스터님은 이 사건을 조사하려는 겁니까? 황씨 가문 따님과 친구 사이신가요?”“친구는 아니지만 내가 조사 중인 다른 일이 오늘 밤 사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진서준이 답했다.간첩 문제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가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다.황씨 가문의 실권을 장악한 황예은이 확보한 자료 중에 진서준이 필요한 단서가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명주시에서 황씨 가문과 박씨 가문 외에도 이런 죽음의 수행자를 양성할 능력이 있는 가문이 열 곳은 넘습니다.”곽윤상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명주시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지만 이곳은 땅값이 금값입니
잠시 후, 황예은이 엎드린 채 갑자기 구토하기 시작했다.검은색의 악취 나는 물질들이 황예은의 입에서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하지만 진서준은 이 상황을 보며 여전히 긴장하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황예은이 이물질을 다 토해낸 후, 진서준은 그녀의 몸에서 침을 뽑아냈다.그러고는 입가의 검은 물질을 닦아내고 황예은을 소파에 똑바로 눕혔다.“실례할게요.”말을 마친 진서준의 두 손이 황예은의 쭉쭉빵빵한 몸 위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진서준은 일부러 황예은이 의식이 없는 틈을 타 뭔가를 시도하려는 게 아니었다. 황예은이 중독된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침 치료만으로는 독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고 탐운19수라는 특별한 마사지 기법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이 치료는 진서준에게도 고역이었다.의사 앞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사실 현실은 달랐다.특히 이렇게 절세 미녀인 황예은 앞에서라면 어느 남자 의사라도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웠다.그때 갑자기 대문이 벌컥 열렸다.올기가 서지은을 집 안으로 들어보내고 곽윤상은 문밖에서 대기하게 했다.거실에 들어온 서지은은 알몸으로 누워 있는 황예은과 그녀의 몸을 만지고 있는 진서준을 보고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서준아, 너... 너 어떻게 예은 언니가 기절한 틈을 타 성추행할 수 있어?”서지은은 화난 표정으로 빠르게 다가왔다.“그건 오해야. 난 지금 이 여자 체내 독을 제거하는 중이야.”진서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상황을 설명했다.서지은은 아무 말 없이 진서준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바닥에 있는 이 검은 물질은 전부 독이야. 이 여자가 방금 토한 거거든.”진서준이 바닥을 가리키며 한마디 덧붙였다.서지은도 바닥에 가득한 물질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았다.“다른 방법으로 치료할 순 없었어?”“나도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야. 이따가 곽 선생님과 함께 약왕을 만나러 가야 하거든. 그 사람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어.”진서준은 이 수단을 사용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도시의 도로를 가로지르며 검은 그림자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존재가 있었다.주변 사람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할 새도 없이, 그 그림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진서준은 황예은을 등에 업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자기와 서지은이 머무는 별장으로 돌아왔다.별장에 들어가자 진서준은 서둘러 불을 켜고 황예은을 소파에 눕혔다.이때 황예은은 아직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몸에 묻은 핏자국은 이미 바람에 말라 피비린내가 거의 다 사라졌다.황예은의 몸에는 몇 군데 총상 자국이 있었고 꽤나 참혹한 상태였지만 다행히 주요 부위는 피해 가서 치명상은 아니었다.“넌 밖에 나가서 별장을 지켜.”진서준은 어깨에 앉아 있던 올기를 향해 말했다.올기는 순순히 밖으로 날아가 진서준을 위해 문을 지켰다.올기가 떠난 후, 진서준은 황예은의 몸에 남은 옷을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예술 작품처럼 완벽한 몸매가 진서준의 눈앞에 드러났다.비록 여자의 몸을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진서준은 자연스럽게 동작을 멈춘 채 멍하니 서 있었다.핏자국이 없었다면 황예은의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몸매만으로도 진서준의 피를 끓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다.진서준은 마음을 다잡고 손바닥을 황예은의 몸에 놓았다.진서준 체내의 영기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이내 황예은의 온몸에 퍼져나갔다.치료가 거의 다 끝나자 진서준은 손을 살짝 떨었다.그러자 황예은 몸 안에 흩어진 영기가 터진 풍선처럼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속 총알을 튕겨냈다.총알은 무려 다섯 개나 체내에 있었다.여자는 고사하고 건장한 남자라고 해도 총알 다섯 발을 맞고 살아남는 건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체내의 총알이 빠져나간 후, 진서준은 바로 젖은 수건으로 황예은 몸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몇 군데 피가 황예은의 허벅지 안쪽에 흘러내렸다.“이건 다 널 살리기 위한 거야...”진서준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황예은의 피를 닦아내는 데만 해도 수건 세 개가 전부 붉은색으로 물들어 버렸다.황예은의 몸에
게다가 지금 황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그룹은 황예은이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황예은이 죽으면 황씨 가문는 크게 요동치며 무너질 가능성도 있었다.그때는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큰 일이 될 수 있었다.진서준은 급히 황예은을 부축해 차에서 끌어냈고 영기를 그녀의 몸에 주입해 출혈로 인한 상처를 치유했다.“주인님, 제가 도와드릴까요?”올기가 급히 물었다.“괜찮아, 여긴 보는 눈이 많아 넌 그냥 조용히 있어.”진서준은 황예은을 안고 단 몇 걸음 만에 곽윤상의 차로 돌아갔다.진서준이 차 안으로 돌아오자 서지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봤다.하지만 진서준이 안고 있는 사람을 보자 서지은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예은 언니!”황예은이 온몸에 피를 흘리고 있는 걸 본 서지은은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서준아, 아까 공격받은 사람이 예은 언니였어?”진서준도 놀라며 되물었다.“너 이 여자 알아?”“명주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람입니다.”곽윤상이 대신 대답했다.“이 여자는 명주시 최고 재벌 황경영의 딸입니다. 지금 황씨 가문 실권도 이 여자가 꽉 쥐고 있고요.”보아하니 황예은은 명주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인 듯했다.“예은 언니와 난 같은 대학에 다녔고 언니는 내 선배였어. 우리는 학교에서 꽤 친하게 지냈어.”서지은은 진서준의 손을 꼭 잡으며 초조하게 말했다.“서준아, 제발 예은 언니를 살려줘.”“걱정 마, 이 여자를 죽게 두지 않을 거야.”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곽윤상에게 말했다.“곽 선생님, 오늘 약왕과의 만남은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여자를 치료하는 게 시급한 것 같아요.”“알겠습니다, 바로 약왕에게 연락할게요.”곽윤상은 곧바로 약왕에게 전화를 걸었다.약왕은 약속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자 불쾌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명주시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인 약왕은 누군가가 약속을 잡았다가 제멋대로 취소할 수 있는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곽윤상, 난 당신 스승 체면을 봐서 만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