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만함의 끝을 달리는구나!’호창정은 진서준의 오만함에 제대로 화가 났다.“좋습니다. 김평안 씨는 부디 본인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제가 만약 김평안 씨를 다치게 하더라도 제 탓은 하지 말기입니다!”호창정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졌고 두 눈동자는 한기가 잔뜩 서려 빛이 났다.진서준은 호창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팀장님, 살살하십시오. 그러다 진짜 저 사람이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걱정됩니다.”“내 생각에는 저 사람에게 따끔하게 교훈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앞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지금처럼 거만하게 굴다가 화를 자초하는 일이 없게 말이야!”“팀장님의 실력은 비록 약하지만 적어도 팀장님은 반보 대종사야. 동료 중에서도 팀장님의 전력을 다한 주먹을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어!”모든 이들이 진서준을 만만하게 보고 있었다.그들은 진서준이 고생을 찾아서 한다고 생각했다.다른 사람들은 재빨리 두 사람에게 충분한 공간을 내주었다.진서준은 호창정의 앞에 서서 호창정은 안중에도 없단 듯이 얼굴에 잔잔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김평안 씨는 아직 후회할 기회가 있습니다!”호창정은 마지막 경고를 하였다.“바로 시작하십시오, 팀장님.”진서준은 뒷짐을 진 채 여전히 평온한 태도로 말했다.“그럼 그렇게 합시다!”호창정은 온몸의 근육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대종사에 견줄만한 엄청난 위압감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그 위압감만으로도 주위의 몇몇 사람들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게 했다.“지금 팀장님의 실력으로 보아 올해 안에 대종사경에 도달할 수 있겠어!”“이 김평안이라는 녀석은 오늘 끝장났어...”“저 주먹이라면 한 대만으로 중상은 무리 없이 가능해!”다들 수군덕거리고 있을 때 호창정은 모든 강기를 주먹 끝에 모았다.엄청난 강기는 금빛의 찬란한 빛을 내며 호창정의 주먹을 감쌌다.“하!”호창정은 기합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는 소리를 동반한 주먹을 진서준에게 있는 힘껏 내리꽂았다.쿵...굉음과 함께 사방에 먼지가
도리대로라면 김평안처럼 천부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 명성이 없을 리 없었다.하지만 오늘까지 그들은 정말 김평안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은 게 없었다.상식을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황당무계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해석했다.“왜냐하면 저는 그동안 계속 산속에서 혼자 수련을 해왔기 때문입니다.”“이번에 교류전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도 현천진군께서 직접 저를 요청해주셨기 때문입니다.”“우리나라의 명예와 체면이 걸린 일인데 제가 어찌 감히 거절할 명분이 있겠습니까.”진서준의 말을 듣고 난 호창정을 비롯한 팀원들은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김평안이 재야의 고수였다니!그것도 나랏일에 책임감을 지닐 줄 아는 고수였다.“김 선생은 그동안 제가 만나왔던 본인을 은둔 고수라고 자칭하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십니다!”대한민국의 일부 재야의 고수들은 본인밖에 모르고 다른 사람, 심지어는 나라의 안위에 대해서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호창정은 그런 사람을 적지 않게 봐왔다.“과찬이십니다, 저도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걸 할 따름입니다.”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나라가 없어지면 제 한 몸 온전히 담글 곳도 사라지지 않겠습니까.”나라가 있어야 집이 있다는 기본적인 도리쯤은 어린아이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한평생을 수련에 몰두한 일부 사람들은 그 도리를 모른다.이 얼마나 슬프고 한탄스러운 사실이란 말인가!“그럼 이제 여러분들은 돌아가서 쉴 수 있는 겁니까?”진서준은 웃으며 호창정을 가리켰다.“팀장님,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습니다. 앞으로는 밤을 덜 새셔야겠습니다.”진서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야 왜 진서준이 자신들에게 다가와 겨루자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진서준은 팀원들이 일찍 쉬었으면 했기 때문이다.“김 선생, 우리는 방금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뜻을 멋대로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김 선생께서 저희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에서 깬 줄로 알았습니다...”호창정의 얼굴에는 머쓱함과 죄책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김 선생, 반드시 고필두 그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호창정이 진서준에게 주의하라고 하였다.“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뽑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었다.이번 교류전은 제비뽑기의 방식으로 진행된다.출전하는 나라가 모두 열세 개라는 뜻은 곧 한 나라는 반드시 공표를 뽑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공표를 뽑은 나라는 다른 나라들보다 한 경기 적게 출전하고 바로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매 경기는 3판 2선승제로 진행되며 중간에 선수를 교체할 수 있다.따라서 이번 교류전에 출전하는 각 나라는 적어도 일고여덟 명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어라? 김평안 이 녀석도 이번 교류전에 참가하는구나!”황현호가 차에서 금방 내린 진서준을 발견했다.원수를 만나면 유달리 눈에 핏발이 서기 마련이다.하지만 황현호는 무식하게 곧장 진서준을 찾아가 그의 앞에 대고 욕을 퍼붓진 않을 것이다.지금 진서준은 나라를 대표하여 다국적 교류전에 참가한 사람이니 말이다.만약 황현호가 진서준에게 욕을 하는 장면이 찍히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갑부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결코 좋은 영향이 있진 않을 것이다.“이 거만한 자식, 앞으로 딱 이틀만 그렇게 계속 거들먹거려라. 교류전이 끝나면 당장 죽청 부모님께 널 죽여달라고 부탁하마!”황현호는 이를 깨물고 낮게 중얼거렸다.계속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진서준은 고개를 돌려 시선이 느껴지던 곳을 보았다.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 시선의 주인이 황현호임을 확인한 진서준은 그저 황현호를 한번 흘겨보고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황현호처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가장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바로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이었다.만약 아까 진서준이 조금이라도 분노했다면, 혹은 냉소적인 웃음이라도 지어 보였다면 황현호는 적어도 상대방이 본인을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없었고 다만 황현호를 흘깃 보고 말았을 뿐이었다.무시당하는 듯한 느낌은 여태
진서준도 해리스가 자신을 보는 눈길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얼른 영기로 자신의 기세를 조절하여 더욱 사십 대의 중년 남자처럼 보이게 했다.해리스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까의 그 익숙한 느낌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뭐지? 설마 내 착각인가?”해리스는 낮게 중얼거렸다.엘리사는 해리스가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해 고개를 돌려 해리스에게 물었다.“해리스 씨, 방금 뭐라고 했어요?”“공주님, 방금 공주님과 대화를 나눈 그 사람이 저는 왠지 익숙합니다.”해리스는 몸을 살짝 숙여 엘리사에게 귓속말로 전해주었다.해리스의 말을 들은 엘리사의 안광이 빛났다.“해리스 씨도 익숙하죠? 진서준 씨와 많이 닮지 않았나요?”“네... 방금까지 꽤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딱히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엘리사는 작게 웃으며 해리스에게 물었다.“해리스 씨는 대한민국의 변검을 아나요?”“변검이요? 잘 모르겠습니다.”해리스는 대한민국의 문화에 대해 엘리사만큼 잘 알지 못했다.해리스는 용란 왕실에 있을 때 학교에 다니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간을 자신의 성안에서 보냈다.엘리사는 지루한 시간을 틈타 많은 나라의 전통문화를 연구했었다.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전통문화를 가장 많이 알게 되었다. 엘리사는 심지어 적지 않은 선생님들을 요청해 대한민국의 문화에 대한 강의도 들었었다.“잘 몰라도 괜찮아요.”엘리사는 미소를 짓고는 진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당신은 대체 진서준 씨입니까, 아니면 김평안 씨입니까?’진서준은 해리스와 엘리사의 대화를 모두 듣게 되었다.여인의 육감은 정말 무서웠다.하지만 아직은 엘리사도 실질적인 증거가 없다.동시에 이는 진서준에게 경종을 울려주었다. 김평안이라는 신분을 이용할 때만큼은 절대로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그 시각, 사회자는 이미 무대에 올라 장황한 발언을 시작했다.사람들은 30분 정도 듣더니 다들 졸린 기색이 역력해졌다.“다음은 각국의 대
호창정은 그들의 말에 상냥한 미소로 회답했다.“저는 제일 마지막에 뽑았는데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호창정의 말에 소안 대표팀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고는 분개하며 단상에서 내려왔다.호창정은 대표팀으로 돌아오자마자 진서준에게 속삭였다.“김 선생, 일단 1라운드는 쉬시지요. 만약 제 운이 따라준다면 다음 라운드도 쉴 수 있게 해주겠습니다!”1라운드에서 모두 열두 팀이 대결한다.그리고 그 중 여섯 팀만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데 1라운드에서 공표를 뽑은 대한민국 팀까지 합하면 전체 팀은 또 홀수가 된다.그래서 한 팀이 또 공표를 뽑게 된다.하지만 준결승전에서는 더는 공표를 뽑을 수 없다.“해리스 씨, 조심해요.”첫 번째 경기는 용란과 소안의 대결이다.해리스는 용란 대표팀의 팀장으로서 용란을 대표해 제일 첫 주자로 출전한다.몇몇 베테랑 무인들은 해리스를 알아보고 자기들끼리 조용히 토론했다.“난 저 용란 남자를 알고 있어. 용란 황실 친위대의 대장이야. 듣기로는 육급 대종사라고 하더군!”“이봐, 육급 대종사라고? 그럼 우리 대한민국 팀은 정말 이길 수 있는 희망조차도 없는 것 아닌가?”“이길 생각을 하다니. 사람이 죽지만 않으면 다행인 거야!”호창정 같은 사람은 그 작은 지방에서 그래도 나름 유명한 사람이었다.하지만 경성처럼 숨은 인재가 넘쳐나는 곳에 오면 그도 어디 가서 명함 한 장 못 내밀 수준에 불과했다.그러니 호창정 같은 사람들을 인정해주지 않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일부 가문에서는 내부 소식을 통해 국안부의 모든 인재가 대한민국의 국경에 파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곧 큰일이 일어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해리스가 경기장에 출전하자 소안 쪽에서도 한 사람이 출전했는데 그 사람은 피부가 검고 체구가 작은 남자였다.이 체구가 왜소한 남자가 해리스의 앞에 서자 둘의 엄청난 체형 차이 때문에 순식간에 많은 사람의 폭소를 불러일으켰다.해리스도 소안의 그 남자를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소안에는
체육관은 숨 막히는 침묵에 휩싸였다.소안의 일인자와 해리스 사이에는 분명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식간에 패배할 정도로 큰 차이는 아닌 게 정상이었다.소안 대표팀의 나머지 일고여덟 명은 검은 숯에 그은 사람처럼 굳은 얼굴에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소안의 최강자조차도 순식간에 무너졌으니 다른 사람들은 굳이 링에 오를 필요도 없었다.이 광경을 목격한 섬나라 대표팀의 팔자수염을 기른 중년 남자가 물었다.“필두야, 네가 해리스와 싸운다면 승률이 몇 퍼센트 정도나 돼?”팔자수염 옆에 앉은 고필두는 눈을 감고 침묵을 지키며 묵묵히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다.팔자수염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너도 겨우 50% 승률밖에 장담할 수 없단 말이야?”고필두는 섬나라 대표팀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고 섬나라 내부에서도 상위 10위 안에 드는 유명한 고수였다.그런 고수가 겨우 50% 승률밖에 보장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토론할 가치도 없었다.고필두는 팀장의 말을 듣고 서서히 눈을 뜨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였다.“50%라니, 농담하는 거야?”“너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잖아?”팔자수염 팀장이 고필두의 말에 놀라며 되물었다.손가락 다섯 개, 즉 50% 승률을 의미하는 뜻이 분명해 보였다.“내 말은 모든 상황이 내 손안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거야.”고필두는 자기 생각을 밝히며 쫙 펼친 다섯 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움켜잡았다.“음...”팔자수염 팀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거 참 다행이네. 이따가 링에 올라가면 죽일 수 있는 녀석은 다 죽이고 내려와. 여기서 똑똑히 지켜보겠어.”이번 섬나라의 방문은 사실 무도 교류보다는 살인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용멸 계획은 공식적으로 시작된 상태였다.동북, 서북, 서남, 그리고 동남 네 방향에서 이번 계획에 참여하는 해외 무인들이 거의 다 대한민국 변경에 도착했다.계획이 시작될 그날이 다가오면 네 방향의 해외 강자들이 동시
그 위압감은 천근의 산을 등에 지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고 무시무시했다.단순한 위압감 하나만으로도 몸이 부서질 정도라니, 진짜 대결이 벌어진다면 해리스의 한 방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온전한 시체도 찾지 못할 것 같았다.해리스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하늘색 눈동자에는 분노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하지만 해리스의 대종사급 위압감 앞에서도 진서준은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며 유유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꺼져...”진서준의 몸에서 한 줄기 영기가 방출되었고 이 영기는 날카로운 칼처럼 해리스의 위압감을 단번에 베어냈다.호창정 일행은 등에 지던 거대한 산이 사라진 것을 느끼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육급 대종사의 위압감조차 이렇게 거뜬하게 뚫어낼 수 있다니, 김평안의 실력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해리스의 눈에도 한순간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해리스의 놀라움은 곧 바람처럼 사라졌다.“넌 저 녀석들과 달리 좀 실력이 있군. 하지만 내 상대로 나서기엔 아직 턱없이 부족해.”해리스가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엘리사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해리스를 꾸짖었다.“해리스 씨, 김평안 씨에게 사과하세요. 저분은 내 생명의 은인 친구예요. 해리스 씨 이런 태도는 너무 무례해요.”해리스의 얼굴이 굳어졌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대꾸했다.“공주님, 저더러 진서준에게 사과하라고 하신다면 전혀 문제없습니다. 그분이 공주님을 구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자식에게 사과하라고 한다면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공주님의 호위뿐만 아니라 용란 황실 호위단의 명예를 대표하고 있습니다.”해리스가 진서준을 존중하는 이유는 진서준이 해리스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그 위에 있기 때문이었다.강자에겐 해리스가 존경과 경외심을 보이지만 약자에게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 성격이었다.엘리사도 해리스의 고집을 잘 알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진서준을 바라보며 대신 사과했다.“죄송합니다, 김평안 씨. 제
“방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모르겠어, 고필두가 방금 공격했나?”“나도 잘 못 봤어, 고필두는 사급 대종사 경지가 아닌가? 왜 육급 대종사보다 더 강해 보이지?”“우리 대한민국 검존이 고필두와 싸운다면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고필두의 뛰어난 실력을 목격한 사람들은 암암리에 고필두를 조기강과 비교하고 있었다.푸슉...바닥에 쓰러진 얼음나라 무인의 목에서 갑자기 대량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이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카메라가 가까이 비추자 사람들은 이 얼음나라 무인의 목에 나비 날개처럼 얇은 검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바로 이 미세한 검 자국이 얼음나라 무인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고필두가 무도 교류 대회에서 사람을 죽였다.교류 대회에서 명확히 상대방을 죽이지 말라는 규칙은 없었지만 참가자들은 저마다 암묵적인 규칙을 따랐고 다들 상대방을 죽이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방금 해리스도 소안의 일인자를 링에서 날려 보낸 것뿐이었고 그 일인자도 사실 크게 다치지도 않았다.하지만 고필두는 규칙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검을 휘둘러 사람을 죽인 것이었다.이건 분명 대한민국에 대한 도발이었다.대회 직원들이 얼음나라 무인의 시체를 치운 후, 고필두는 서툰 영어로 말했다.“다음 분.”얼음나라 대표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잠시 고민하던 얼음나라 대표팀의 팀장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우리는 대결을 포기하겠어.”“쫄보자식.”상대방의 포기 선언을 듣자 고필두는 차가운 말 한마디를 남기고 몸을 돌려 링에서 내려갔다.얼음나라 대표팀은 화가 나도 감히 불만을 터뜨릴 수 없었다.다른 나라 대표팀들도 모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고필두는 이 대회에 살인을 하러 온 게 분명해 보였다.이번 라운드에서 고필두와 대결하지 않아도 다음 라운드에서 고필두와 맞붙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고필두와 맞붙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면 어이없는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다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내 믿기
“두 분이 아니었으면 제 딸은 지금쯤...”유기명은 두 사람에게 연신 감사의 뜻을 표했다.“유정은 제 동생입니다. 제 동생이 독충 때문에 위독하다고 하니 당연히 최선을 다해 치료해야죠.”진서준은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주 신의님, 날도 어두워졌는데 오늘은 우리 집에 머무세요. 내일은 제가 두 분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열겠습니다.”유기명은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주두준에게 권유했다.“좋아요, 그럼 나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주두준은 유기명의 호의를 받아들였다.비록 유정의 병은 주두준이 치료한 게 아니지만 그의 독충 덕분에 진서준이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오빠, 어떻게 여기 왔어요?”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유정은 진서준을 보고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내가 오늘 안 왔으면 널 다시 볼 수 없었을 거야.”진서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유정을 보며 말했다.“너도 참 답답해, 독충 때문에 고통받는데 왜 더 빨리 내게 말하지 않았어?”“오빠에게 방해될까 봐 그랬어요...”유정은 진서준이 혹여 자기를 나무랄까 봐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네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진서준은 유정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넌 서라랑 똑같은 내 가족, 내 동생이야.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반드시 가장 빠른 속도로 내게 연락해야 해, 알겠어?”진서준의 부드러운 말투와 걱정 어린 말에 감동을 받은 유정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알겠어요, 오빠.”“좋아, 아직 몸이 좀 허약한 상태니까 일찍 쉬어.”“오빠, 내일 떠나지 않겠죠?”유정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유정은 자기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진서준이 사라지는 게 두려웠다.왜냐하면 유정은 너무 오랫동안 진서준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당연하지, 너희 집에서 좀 더 있을 거야.”“그렇다면 다행이에요.”진서준이 웃으며 대답하자 유정은 그제야 시름 놓고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유정이 잠든 후에야 진서준은 자리를 떠났다.유기명과 유기태는 문 앞에서 진서준을 기다
본래는 흰색이었던 그 독충이 진서준의 영결에 맞고 난 후 눈에 띄게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응? 이게 뭐지?”난생처음 보는 장면에 주두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해했다.진서준은 별다른 설명 없이 빨갛게 변한 독충을 유정의 입에 넣어주었다.유기명이 불안한 마음으로 물었다.“진서준, 확실히 치료할 수 있겠어?”방금 주두준이 두 번이나 실패한 걸 직접 목격한 유기명은 더 이상 희망을 품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사실 진서준이 치료한다고 해도 유기명은 확신이 없었다.주두준은 독충술에 대해 오랫동안 깊은 연구를 해온 사람이었다.진서준은 의술에 능했지만 독충술은 또 다른 문제였다.본래 서로 다른 분야는 격차가 심했고 특히 이 두 분야는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가 나는 두 분야였다.“확신이 없으면 저도 치료에 나서지 않을 겁니다.”진서준은 평온한 말투로 담담하게 말했다.진서준은 가족의 목숨을 갖고 장난칠 사람이 아니었다.비록 의동생이긴 하지만 진서준은 이미 유정을 친동생처럼 여기고 있었다.“좋아, 그럼 부탁할게.”유기명은 이를 악물며 부탁했다.“은침을 주세요.”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자 주두준은 본인의 은침을 진서준에게 건넸다.은침을 받은 진서준은 즉시 유정의 건리, 음교, 석문 세 곳에 정확하게 찔렀다.독충이 진서준이 원하는 자리에 도착했다고 추측한 진서준은 다시 영결을 그리기 시작했다.따뜻한 기운이 유정의 체내에서 흐르기 시작했다.3분이 채 지나지 않아 유정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눈에 띄게 빠져나갔다.조금 전까지 차갑기만 하던 유정의 몸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고 얼굴에 생기가 보이더니 호흡도 힘차졌다.주위 사람들의 경악이 가득한 시선 속에서 유정은 갑자기 눈을 떴다.“세상에... 이렇게 바로 깨어났다고?”다들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방금 신의 주두준이 유정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애썼지만 결국은 해내지 못했다.하지만 지금 이 청년이 단지 침술을 이용해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다.게다가 진
“유 가주님, 아까 말했듯이 가주님 따님은 이미 병이 몸에 너무 침투되어 회복 불가능합니다. 누구도 치료할 수 없을 겁니다.”주두준은 참지 못하고 냉랭하게 말했다.“주 신의님, 이분은 저희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천재입니다. 이분 의술은 성약당 당주도 감히 초월하지 못한다고 할 정도입니다.”유기명은 서둘러 진서준을 소개했다.“아이고, 그러세요?”주두준은 유기명의 말이 우스웠다.“이 사람 의술이 정말 가주님 말처럼 뛰어나다고 해도 가주님 따님을 구할 수 없을 겁니다. 가주님 따님이 걸린 건 독충입니다. 평범한 침술로는 어림도 없죠. 내가 기른 팔곡 독충도 이미 체내에서 죽었습니다. 그만큼 가주님 따님 체내 얼음 독충이 강력하다는 증거입니다.”이 말은 절대 주두준이 과장한 게 아니었다.유정의 체내에 있는 얼음 독충은 그 위력이 대단했다.주두준이 10여 년을 기른 팔곡 독충은 본래 묘강 지역에서 기르는 독충을 상대하기 위해 키운 것이다.그런데 이제 그 팔곡 독충마저 죽어버렸는데 이렇게 젊은 청년이 과연 뭘 할 수 있단 말인가?진서준은 주두준의 말을 무시하고 유정의 맥을 자세히 짚기 시작했다.시간이 지날수록 진서준의 표정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진서준, 어때? 유정을 구할 방법이 있겠어?”유기명은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어르신, 혹시 다른 독충이 더 있나요?”진서준은 대답 대신 주두준을 쳐다보며 물었다.진서준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주두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뭘 하려고 그러는데?”“독충이 필요합니다.”진서준은 간결하고 강력하게 답했다.“하나 더 있긴 해. 근데 이 독충은 가주님 따님 얼음 독충에 대항할 수 없을 거야.”주두준은 솔직하게 말했다.“그냥 제게 주세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진서준의 말에 주두준은 상당해 불쾌했다.“이봐, 네가 내놓으라고 하면 내가 반드시 줘야 해? 난 이 독충을 몇 년 동안 온갖 정성을 들여 키운 거야. 근데 지금 네가 내놓으라고 하면 내가 시원하게 넘겨줄 것 같아?”독충을 기
유정 체내의 독충이 묘주가 직접 기른 독충인지 아닌지 유기명이 알 리가 없었다.지금 유기명한테 중요한 건 딸을 과연 살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주 신의님, 지금 당장 제 딸을 구할 방법이 있습니까?”유기명이 가까스로 침착을 유지하며 물었다.“다시 시도해 보겠습니다.”주두준은 짧게 대답하며 은침을 들었다.그러고는 놀라운 속도로 유정의 족삼리, 용천, 명문 등 세 주요 혈 자리에 침을 놓았다.일련의 동작이 유려하게 이어져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역시 신의님은 남다르군요. 이런 침술은 제가 평생 배워도 못 따라가겠네요.”“주 신의님께서 나섰으니 유씨 가문 아가씨 병은 틀림없이 완치될 겁니다.”“맞습니다. 주 신의님도 못 치료한다면 세상에 치료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방 안의 의사들이 한결같이 주두준을 아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하지만 그들의 칭찬이 주두준은 그다지 기쁘게 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더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만약 이 여자를 살리지 못하면 주두준의 명성에 치명타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침 세 개가 들어가자 유정의 사지에서 실낱같은 냉기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마지막 침!”주두준은 은침을 들어 유정의 정수리에 찔렀다.그 순간, 유정의 입에서 대량의 냉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 냉기가 방을 가득 채우며 실내 온도를 급격히 떨어뜨렸다.“주 신의님? 이걸로 끝난 겁니까?”유기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유기명은 아까처럼 또다시 희망을 품다가 크게 실망하는 게 두려웠다.“내 독충이 나오는 걸 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주두준은 이번에는 아까처럼 자신감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침술을 하는 동안 주두준은 자기 독충이 반응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평소 같으면 독충이 반드시 반응을 보였을 텐데 이번에는 너무 조용했다.주두준의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주두준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1분이 지나도 독충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그때, 상태가 조금 좋아졌던 유정이 갑자기 격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주
“모든 게 우연이야. 이번에 내가 임무를 수행하러 나갔을 때 마침 주 신의님께서 현지의 갑부 한 명을 치료하고 계셨어.”“그랬구나!”유기명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감탄했다.“주 신의님, 제 딸의 병은 신의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유기명은 주두준을 향해 한껏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지금 주두준은 유정을 살릴 유일한 희망이었다.유씨 가문의 가주로서 유기명은 당연히 주두준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야 했다.주두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 마세요. 내가 있는 한, 따님은 반드시 무사할 겁니다.”그 말을 듣자 유기명은 드디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주두준은 곧장 다가가 유정의 맥을 짚기 시작했다.유정의 손목을 만지자마자 주두준은 한 줄기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30초 정도 지난 후, 주두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결론을 내렸다.“얼음 독충이군요.”“얼음 독충이 무엇이죠?”유기명이 서둘러 물었다.“이건 묘족 독충의 일종입니다. 이 독충에 걸린 사람은 온몸이 얼음처럼 차가워지죠. 근데 얼음 독충은 일반적인 독충과는 좀 다릅니다. 그 독충을 바로 죽여버리면 독에 걸린 환자가 한기가 일어나면서 즉시 얼어 죽게 되죠. 근데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환자 체내의 혈맥과 경맥이 조금씩 얼어붙게 될 겁니다. 지금 따님의 몸은 이미 3분의 2가 얼어붙은 상태입니다. 그 한기가 심장까지 퍼지면 설령 신선이 내려온다 해도 살릴 수 없을 겁니다.”주두준은 자세하게 유정의 독에 관해 설명했다.설명을 다 들은 유기명은 이를 악물며 분노에 차 말했다.“저 끔찍한 놈들! 이렇게 악랄한 짓을 하다니!”“유기철 그 자식은 정말 인간 말종이구나.”유기태 역시 냉정한 표정에 분노의 눈빛을 보였다.“주 신의님, 제 딸을 구할 방법이 있습니까?”유기명은 초조한 말투로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유정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조금 까다롭기는 하지만 내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닙니다. 곧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주두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자신감
금도, 유씨 가문 장원.병상에 누워 있는 유정의 얼굴은 종이처럼 창백했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기름이 다 떨어진 등불처럼 생명력이 다해가는 모습이었다.유기명은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하고 계속해서 유정 곁을 지키고 있었다.“유 아저씨, 잠시라도 쉬세요. 제가 유정을 돌볼게요.”진서라는 안타까운 마음에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잠이 오질 않아.”유기명은 고개를 저으며 비통한 얼굴로 대답했다.딸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인 유기명이 잠이 올 리가 없었다.“아저씨께서 건강을 챙기셔야 해요. 유정도 아저씨가 이렇게 지친 걸 보면 마음 아플 거예요.”진서라가 계속 설득했다.“내 딸이 너무 불쌍해!”유기명은 눈가가 붉어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20년 넘게 실종됐던 딸이 이제 유씨 가문으로 돌아온 지 1년도 안 됐는데 묘강의 독에 당했다.생각만 해도 유기명은 분노와 원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유기명은 그때 마음을 약하게 먹고 셋째 동생의 목숨을 살려줬던 걸 천추의 한으로 여겼다.그 실수 때문에 호랑이를 산에 풀어놓은 격이 되어 결국 유정을 위험에 빠뜨렸던 것이다.“서라야, 네 오빠에게 연락해야 할 것 같아.”유기명이 말문을 열자 진서라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전화해 봤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어요.”진서라는 유씨 가문에 처음 왔을 때, 유정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진서준에게 연락하려 했다.하지만 진서준이 위험한 임무를 수행 중이라는 걸 떠올리자 혹여나 방해가 될까 봐 연락을 포기한 것이다.그 뒤 유씨 가문은 성약당의 장로들을 초청했으나 장로들조차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심지어 성약당 당주까지도 두 손을 놓고 말았다.결국 유기명은 막다른 길에 몰려 진서준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하늘이 정말 내 딸을 버리려는 건가...”유기명은 손으로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주변에 서 있던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전부 고개를 숙이며 죄책감을 감추지 못했다.이들은 서남 각지에서 모인 유명한 의학 전문가였으나 그들
“제 의동생이 몹쓸 놈에게 중독되어 지금 당장 서남 지역으로 가서 독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제 제가 여유가 생기면 다시 여러분을 찾으러 오겠습니다.”진서준의 의동생이 중독되었다는 말을 듣자 병사들의 분노가 치솟았다.“어떤 미친놈이 진 교관님 의동생에게 독을 뿌린 겁니까? 우린 그놈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그 악당을 당장 처단해서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진 교관님이 짐을 싸러 가야 하니 다들 길을 열어드려. 진 교관님이 지금 당장 떠나야 해.”고인권이 큰 소리로 외치자 병사들은 즉시 길을 내주었다.특전대 내 소란스러운 소리가 허윤진의 귀에 닿았다.진서준이 돌아온 걸 본 허윤진은 신난 표정으로 달려왔다.“진서준, 돌아왔어?”허윤진은 기쁨에 찬 얼굴로 맞이했지만 진서준은 그리 밝지 않은 표정으로 무겁게 말했다.“윤진아, 짐 챙겨. 오늘 밤 바로 떠날 거야.”“뭐? 왜?”허윤진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유정이 큰일을 당했어. 지금 바로 서남 지역으로 가야 해.”진서준이 진지한 말투로 소식을 전했다.“뭐라고? 유정이 사고를 당했다고? 왜 언니들이 전화 한 통 안 했던 거야?”허윤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대자 진서준이 나름대로 추측했다.“내가 그 소식을 듣고 혼란스러워할까 봐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 같아.”“알겠어, 지금 바로 짐 챙길게.”두 사람은 각자 방으로 달려가 짐을 챙겼다.짐을 모두 챙기고 나서 진서준과 허윤진은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8대 특전대 병사 전원이 진서준을 배웅하기 위해 모였다.“진 교관님을 배웅합니다!”“진 교관님을 배웅합니다!”“진 교관님을 배웅합니다!”800여 명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기지에 울려 퍼졌다.이 강인하지만 귀여운 병사들을 바라보며 진서준은 헬기 문 앞에서 그들에게 거수경례했다.문이 닫히고 헬기는 천천히 상승해 서남쪽으로 향했다.“고인권, 우리도 진 교관님을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8대 특전대의 사령관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누군가가 제안했다.“독을 뿌린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리자 멀리서 헬리콥터가 한 대 날아왔다.진서준과 고인권이 헬리콥터에 탑승하자 고인권은 즉시 조종사에게 서둘러 설표 특전대 기지로 향하라고 재촉했다.그 시각, 설표 특전대 내부에는 다른 7대 특전대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다들 진서준이 설표 특전대에 가르쳐준 열풍권을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게다가 다들 진서준이 작성한 체질을 강화하는 처방전을 사용한 물에 몸을 담가 새롭게 거듭난 듯했다.모든 병사의 실력은 천지가 뒤바뀐 듯한 거대한 변화를 겪었다.이제 설표 특전대와 다시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지 정말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경쟁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현재 그들은 오직 강해지기를 바랄 뿐이며 전신전을 초월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었다.“이제야 너희 설표 특전대가 왜 진 교관님을 그토록 존경하는지 알 것 같아.”이상아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이상아도 진서준이 준 약제를 사용했는데, 직접 써보고 나서야 진서준의 대단함을 깨달았다.작은 약제 하나로 모두의 실력을 완전히 바꿔 놓다니,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이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진 교관님은 우리 설표 특전대의 신이나 다름없어요. 그분이 없었으면 지금의 설표 특전대도 없었을 거예요.”여성 종사 고소연이 경외심이 가득한 얼굴로 자랑스럽게 말했다.“앞으로 우리도 설표 특전대에서 함께 지낼 거야. 훈련장 반만 나눠 주면 돼.” 이상아가 갑자기 말했다.“꿈도 꾸지 마세요.”박준명이 단칼에 거절했다.“이 훈련장은 우리가 훈련하기에도 부족할 지경인데 어떻게 그쪽에 줄 수 있겠어요?”“다 같은 식구잖아, 그렇게 박하게 굴지 마.”이상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식구라도 안 됩니다. 우린 전신전 사람들을 따라잡겠다고 진 교관님께 약속드렸습니다.”박준명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전신전을 따라잡는 건 설표 특전대의 목표일 뿐만 아니라 다른 7대 특전대 전체의 목표이기도 했다.“진
두 사람이 산 아래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고인권은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며 가끔 산 위를 쳐다보다가 마침내 두 사람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두 사람이 진서준과 전원경임을 확인한 후 고인권은 급히 다가갔다.“진 교관님, 전 도사님!”두 사람의 몸에 피가 묻지 않은 것을 보고 고인권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두 분 다 괜찮으세요?”고인권이 긴장한 기색으로 묻자 진서준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우린 괜찮아요.”고인권은 한마디 더 하려다가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라 멈칫했다.고인권은 두 사람이 천년홍련 때문에 싸운 건 아니냐고 직접 묻기도 난감했다.“고 사령관, 오늘은 용존님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 용존님이 없었다면 난 살아서 고 사령관을 볼 수 없었을 거야.”전원경은 고인권이 난감해하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네? 그게 무슨 말이죠?”고인권은 전원경이 이상한 얘기를 하자 순간 멈칫했다.아까 오영수 일행에게서 들었는데 진서준과 전원경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 않은 것 같았다.그런데 지금 전원경은 왜 진서준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걸까?“아까 산에서 악귀를 만났는데 나 혼자서는 싸울 수 없었어. 근데 용존님이 날 그 악귀의 손에서 구해주셨어.”전원경의 설명을 듣자 고인권은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더욱 놀랐다.전원경의 이 말에는 다른 뜻이 숨어 있었다.즉, 전원경의 실력이 진서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전원경은 90세를 넘은 노인이었지만 동시에 동북 지역 최고의 술법 마스터이기도 했다.이런 대단한 인물이 본인의 실력이 진서준보다 못하다고 인정하는 건, 사실 큰 용기와 기량이 필요했다.또한 전원경이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진서준의 실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전원경이 굳이 이렇게 솔직해질 이유가 없었다.“진 교관님, 천년홍련을 찾았습니까?”고인권의 질문에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운 좋게 찾았으니 이제 돌아가면 됩니다.”“알겠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