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 반드시 고필두 그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호창정이 진서준에게 주의하라고 하였다.“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뽑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었다.이번 교류전은 제비뽑기의 방식으로 진행된다.출전하는 나라가 모두 열세 개라는 뜻은 곧 한 나라는 반드시 공표를 뽑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공표를 뽑은 나라는 다른 나라들보다 한 경기 적게 출전하고 바로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매 경기는 3판 2선승제로 진행되며 중간에 선수를 교체할 수 있다.따라서 이번 교류전에 출전하는 각 나라는 적어도 일고여덟 명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어라? 김평안 이 녀석도 이번 교류전에 참가하는구나!”황현호가 차에서 금방 내린 진서준을 발견했다.원수를 만나면 유달리 눈에 핏발이 서기 마련이다.하지만 황현호는 무식하게 곧장 진서준을 찾아가 그의 앞에 대고 욕을 퍼붓진 않을 것이다.지금 진서준은 나라를 대표하여 다국적 교류전에 참가한 사람이니 말이다.만약 황현호가 진서준에게 욕을 하는 장면이 찍히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갑부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결코 좋은 영향이 있진 않을 것이다.“이 거만한 자식, 앞으로 딱 이틀만 그렇게 계속 거들먹거려라. 교류전이 끝나면 당장 죽청 부모님께 널 죽여달라고 부탁하마!”황현호는 이를 깨물고 낮게 중얼거렸다.계속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진서준은 고개를 돌려 시선이 느껴지던 곳을 보았다.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 시선의 주인이 황현호임을 확인한 진서준은 그저 황현호를 한번 흘겨보고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황현호처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가장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바로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이었다.만약 아까 진서준이 조금이라도 분노했다면, 혹은 냉소적인 웃음이라도 지어 보였다면 황현호는 적어도 상대방이 본인을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없었고 다만 황현호를 흘깃 보고 말았을 뿐이었다.무시당하는 듯한 느낌은 여태
진서준도 해리스가 자신을 보는 눈길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얼른 영기로 자신의 기세를 조절하여 더욱 사십 대의 중년 남자처럼 보이게 했다.해리스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까의 그 익숙한 느낌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뭐지? 설마 내 착각인가?”해리스는 낮게 중얼거렸다.엘리사는 해리스가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해 고개를 돌려 해리스에게 물었다.“해리스 씨, 방금 뭐라고 했어요?”“공주님, 방금 공주님과 대화를 나눈 그 사람이 저는 왠지 익숙합니다.”해리스는 몸을 살짝 숙여 엘리사에게 귓속말로 전해주었다.해리스의 말을 들은 엘리사의 안광이 빛났다.“해리스 씨도 익숙하죠? 진서준 씨와 많이 닮지 않았나요?”“네... 방금까지 꽤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딱히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엘리사는 작게 웃으며 해리스에게 물었다.“해리스 씨는 대한민국의 변검을 아나요?”“변검이요? 잘 모르겠습니다.”해리스는 대한민국의 문화에 대해 엘리사만큼 잘 알지 못했다.해리스는 용란 왕실에 있을 때 학교에 다니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간을 자신의 성안에서 보냈다.엘리사는 지루한 시간을 틈타 많은 나라의 전통문화를 연구했었다.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전통문화를 가장 많이 알게 되었다. 엘리사는 심지어 적지 않은 선생님들을 요청해 대한민국의 문화에 대한 강의도 들었었다.“잘 몰라도 괜찮아요.”엘리사는 미소를 짓고는 진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당신은 대체 진서준 씨입니까, 아니면 김평안 씨입니까?’진서준은 해리스와 엘리사의 대화를 모두 듣게 되었다.여인의 육감은 정말 무서웠다.하지만 아직은 엘리사도 실질적인 증거가 없다.동시에 이는 진서준에게 경종을 울려주었다. 김평안이라는 신분을 이용할 때만큼은 절대로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그 시각, 사회자는 이미 무대에 올라 장황한 발언을 시작했다.사람들은 30분 정도 듣더니 다들 졸린 기색이 역력해졌다.“다음은 각국의 대
호창정은 그들의 말에 상냥한 미소로 회답했다.“저는 제일 마지막에 뽑았는데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호창정의 말에 소안 대표팀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고는 분개하며 단상에서 내려왔다.호창정은 대표팀으로 돌아오자마자 진서준에게 속삭였다.“김 선생, 일단 1라운드는 쉬시지요. 만약 제 운이 따라준다면 다음 라운드도 쉴 수 있게 해주겠습니다!”1라운드에서 모두 열두 팀이 대결한다.그리고 그 중 여섯 팀만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데 1라운드에서 공표를 뽑은 대한민국 팀까지 합하면 전체 팀은 또 홀수가 된다.그래서 한 팀이 또 공표를 뽑게 된다.하지만 준결승전에서는 더는 공표를 뽑을 수 없다.“해리스 씨, 조심해요.”첫 번째 경기는 용란과 소안의 대결이다.해리스는 용란 대표팀의 팀장으로서 용란을 대표해 제일 첫 주자로 출전한다.몇몇 베테랑 무인들은 해리스를 알아보고 자기들끼리 조용히 토론했다.“난 저 용란 남자를 알고 있어. 용란 황실 친위대의 대장이야. 듣기로는 육급 대종사라고 하더군!”“이봐, 육급 대종사라고? 그럼 우리 대한민국 팀은 정말 이길 수 있는 희망조차도 없는 것 아닌가?”“이길 생각을 하다니. 사람이 죽지만 않으면 다행인 거야!”호창정 같은 사람은 그 작은 지방에서 그래도 나름 유명한 사람이었다.하지만 경성처럼 숨은 인재가 넘쳐나는 곳에 오면 그도 어디 가서 명함 한 장 못 내밀 수준에 불과했다.그러니 호창정 같은 사람들을 인정해주지 않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일부 가문에서는 내부 소식을 통해 국안부의 모든 인재가 대한민국의 국경에 파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곧 큰일이 일어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해리스가 경기장에 출전하자 소안 쪽에서도 한 사람이 출전했는데 그 사람은 피부가 검고 체구가 작은 남자였다.이 체구가 왜소한 남자가 해리스의 앞에 서자 둘의 엄청난 체형 차이 때문에 순식간에 많은 사람의 폭소를 불러일으켰다.해리스도 소안의 그 남자를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소안에는
체육관은 숨 막히는 침묵에 휩싸였다.소안의 일인자와 해리스 사이에는 분명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식간에 패배할 정도로 큰 차이는 아닌 게 정상이었다.소안 대표팀의 나머지 일고여덟 명은 검은 숯에 그은 사람처럼 굳은 얼굴에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소안의 최강자조차도 순식간에 무너졌으니 다른 사람들은 굳이 링에 오를 필요도 없었다.이 광경을 목격한 섬나라 대표팀의 팔자수염을 기른 중년 남자가 물었다.“필두야, 네가 해리스와 싸운다면 승률이 몇 퍼센트 정도나 돼?”팔자수염 옆에 앉은 고필두는 눈을 감고 침묵을 지키며 묵묵히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다.팔자수염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너도 겨우 50% 승률밖에 장담할 수 없단 말이야?”고필두는 섬나라 대표팀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고 섬나라 내부에서도 상위 10위 안에 드는 유명한 고수였다.그런 고수가 겨우 50% 승률밖에 보장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토론할 가치도 없었다.고필두는 팀장의 말을 듣고 서서히 눈을 뜨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였다.“50%라니, 농담하는 거야?”“너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잖아?”팔자수염 팀장이 고필두의 말에 놀라며 되물었다.손가락 다섯 개, 즉 50% 승률을 의미하는 뜻이 분명해 보였다.“내 말은 모든 상황이 내 손안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거야.”고필두는 자기 생각을 밝히며 쫙 펼친 다섯 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움켜잡았다.“음...”팔자수염 팀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거 참 다행이네. 이따가 링에 올라가면 죽일 수 있는 녀석은 다 죽이고 내려와. 여기서 똑똑히 지켜보겠어.”이번 섬나라의 방문은 사실 무도 교류보다는 살인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용멸 계획은 공식적으로 시작된 상태였다.동북, 서북, 서남, 그리고 동남 네 방향에서 이번 계획에 참여하는 해외 무인들이 거의 다 대한민국 변경에 도착했다.계획이 시작될 그날이 다가오면 네 방향의 해외 강자들이 동시
그 위압감은 천근의 산을 등에 지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고 무시무시했다.단순한 위압감 하나만으로도 몸이 부서질 정도라니, 진짜 대결이 벌어진다면 해리스의 한 방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온전한 시체도 찾지 못할 것 같았다.해리스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하늘색 눈동자에는 분노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하지만 해리스의 대종사급 위압감 앞에서도 진서준은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며 유유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꺼져...”진서준의 몸에서 한 줄기 영기가 방출되었고 이 영기는 날카로운 칼처럼 해리스의 위압감을 단번에 베어냈다.호창정 일행은 등에 지던 거대한 산이 사라진 것을 느끼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육급 대종사의 위압감조차 이렇게 거뜬하게 뚫어낼 수 있다니, 김평안의 실력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해리스의 눈에도 한순간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해리스의 놀라움은 곧 바람처럼 사라졌다.“넌 저 녀석들과 달리 좀 실력이 있군. 하지만 내 상대로 나서기엔 아직 턱없이 부족해.”해리스가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엘리사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해리스를 꾸짖었다.“해리스 씨, 김평안 씨에게 사과하세요. 저분은 내 생명의 은인 친구예요. 해리스 씨 이런 태도는 너무 무례해요.”해리스의 얼굴이 굳어졌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대꾸했다.“공주님, 저더러 진서준에게 사과하라고 하신다면 전혀 문제없습니다. 그분이 공주님을 구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자식에게 사과하라고 한다면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공주님의 호위뿐만 아니라 용란 황실 호위단의 명예를 대표하고 있습니다.”해리스가 진서준을 존중하는 이유는 진서준이 해리스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그 위에 있기 때문이었다.강자에겐 해리스가 존경과 경외심을 보이지만 약자에게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 성격이었다.엘리사도 해리스의 고집을 잘 알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진서준을 바라보며 대신 사과했다.“죄송합니다, 김평안 씨. 제
“방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모르겠어, 고필두가 방금 공격했나?”“나도 잘 못 봤어, 고필두는 사급 대종사 경지가 아닌가? 왜 육급 대종사보다 더 강해 보이지?”“우리 대한민국 검존이 고필두와 싸운다면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고필두의 뛰어난 실력을 목격한 사람들은 암암리에 고필두를 조기강과 비교하고 있었다.푸슉...바닥에 쓰러진 얼음나라 무인의 목에서 갑자기 대량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이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카메라가 가까이 비추자 사람들은 이 얼음나라 무인의 목에 나비 날개처럼 얇은 검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바로 이 미세한 검 자국이 얼음나라 무인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고필두가 무도 교류 대회에서 사람을 죽였다.교류 대회에서 명확히 상대방을 죽이지 말라는 규칙은 없었지만 참가자들은 저마다 암묵적인 규칙을 따랐고 다들 상대방을 죽이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방금 해리스도 소안의 일인자를 링에서 날려 보낸 것뿐이었고 그 일인자도 사실 크게 다치지도 않았다.하지만 고필두는 규칙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검을 휘둘러 사람을 죽인 것이었다.이건 분명 대한민국에 대한 도발이었다.대회 직원들이 얼음나라 무인의 시체를 치운 후, 고필두는 서툰 영어로 말했다.“다음 분.”얼음나라 대표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잠시 고민하던 얼음나라 대표팀의 팀장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우리는 대결을 포기하겠어.”“쫄보자식.”상대방의 포기 선언을 듣자 고필두는 차가운 말 한마디를 남기고 몸을 돌려 링에서 내려갔다.얼음나라 대표팀은 화가 나도 감히 불만을 터뜨릴 수 없었다.다른 나라 대표팀들도 모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고필두는 이 대회에 살인을 하러 온 게 분명해 보였다.이번 라운드에서 고필두와 대결하지 않아도 다음 라운드에서 고필두와 맞붙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고필두와 맞붙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면 어이없는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다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내 믿기
“대한민국, 섬나라, 그리고 용란의 대표팀 팀장들은 올라와서 마지막 추첨을 진행해 주세요.”나머지 세 팀 중 두 팀이 대결하니 나머지 한 팀은 부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할 판이었다.호창정은 마음속으로 공석에 걸리기를 조용히 기도했다.동시에 해리스가 고필두를 이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야 진서준이 살아남을 희망이 있었다.추첨을 받은 순간, 호창정의 손은 바르르 떨렸고 심장이 두근거렸다.“음? 또 부전승이네.”3번을 뽑았을 때, 호창정은 기쁨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섬나라의 그 팔자수염 남자가 호창정의 3번 추첨을 보고 비웃었다.“너희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런 더러운 짓밖에 못 하나 보구나. 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우리는 결승에서 만날 거니까. 너희가 결승전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팔자수염의 말에 호창정은 얼굴이 화끈해졌고 목이 바짝 말랐다.“당신들 대한민국 운이 참 좋군요.”해리스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한판 대결도 안 치르고 그대로 결승에 진출하다니, 하늘이 선택한 운명의 인물이거나, 아니면 암암리에 어떤 뒷거래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어찌 됐든 해리스의 목표는 달성됐다.섬나라의 이 검존과 아무런 걱정도 없이 정식으로 대결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경성에는 10명 이상의 용란 황실 경호원이 지금 주둔하고 있다.해리스가 심하게 다치더라도 엘리사를 혈수사의 손에서 지킬 수 있었다.“김평안 씨, 또 부전승이에요, 대박이에요.”호창정이 자리로 돌아와 격앙된 어조로 외쳤다.진서준은 담담하게 미소 지을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해리스가 대결을 위해 링에 올라가려 할 때 진서준은 몸을 돌려 한마디 했다.“투항해야 할 때는 깔끔하게 투항해. 괜히 버티다가 목숨 잃는 짓 하지 마.”해리스는 그 말에 화를 내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건 무슨 말이야? 내가 고필두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똑똑히 잘 들어, 나 해리스 사전엔 투항이라는 두 글자는 존재하지 않아. 우리 용란 황실 경호대 명예에 내
모든 사람은 숨을 죽이고 링 위에 서 있는 해리스와 고필두를 주시하고 있었다.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두 사람의 대결 중 하이라이트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김평안 씨, 해리스가 정말 고필두의 상대가 될 수 없는 건가요?”호창정은 여전히 믿기 힘들어했다.해리스는 육급 대종사였고 반면에 고필두는 사급 대종사에 불과했다.검수는 강기를 수련한 무인보다 강하긴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두 단계 대종사라는 큰 격차가 있었다.이 두 단계의 차이는 그렇게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냥 조용히 지켜보면 알게 될 겁니다.”진서준은 추가 설명 없이 해리스와 고필두를 평온하게 바라보았다.사회자가 시작 신호를 알리자 두 사람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선공이 강하다는 말은 고수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수 사이의 대결에서 일반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자가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일단 빈틈이 보이면 패배할 확률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관중들이 슬슬 지루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날카로운 검 소리가 울려 퍼졌다.주위의 몇몇 검을 지닌 무인들은 자기 검이 방금 그 검 소리에 맞춰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고필두가 쥐고 있는 장검은 매미 날개처럼 얇았고 차갑고 섬뜩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고필두는 단순히 검을 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풍겼다.“삼촌, 삼촌이 이 섬나라 사람과 대결한다면 누구 검술이 더 강할까요?”관중석에서 조민영이 궁금한 눈빛으로 조기강을 바라보며 물었다.조태희와 함께 동북으로 돌아가야 했던 조민영은 조기강에게 국제 무도 교류 대회를 보러 가자고 발을 동동 구르며 부탁했다.조태희는 결국 조민영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대신 대회가 끝난 후 조기강과 함께 동북으로 돌아가기로 약속했다.“고필두 실력은 내 아래야.”조기강은 고필두를 바라보며 천천히 한마디를 내뱉었다.조기강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조민영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왜냐하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