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의 손이 아래쪽으로 뻗어가는 걸 느끼자 허사연은 허벅지를 급히 조였다.진서준은 잠시 멈칫하다가 어쩔 수 없이 손을 뺐다.“무슨 뜻인지 알겠어...”“근데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허사연은 말을 마치고 화끈하게 달아오른 얼굴이 거의 피가 나올 것처럼 빨개졌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오후에 진서준을 배웅할 때 김연아와 허윤진 두 사람은 말없이 침묵만 지켰다.이틀도 안 되는 시간만 같이 보내고 또 헤어져야 하니까 이 상황이 참 어이없고 답답했다.“그렇게 우울한 얼굴 하지 마, 난 볼일 다 보고 즉시 경성에 갈 거야. 너희는 먼저 경성에 가서 서라를 만나. 나중에 우리 경성에서 다시 만나자.”진서준이 두 사람에게 웃으며 말했다.“응... 그럼 빨리 와야 해, 진안에 가서 바람피우면 절대 안 돼.”허윤진이 주먹을 쥐고 진서준을 위협했다.“바람피우기만 해 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지한 일을 해결하러 가는 거야. 내가 뭐 여자 찾으러 가는 줄 알아?”점심을 먹은 후, 허사연은 관계를 가지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진서준을 여러 번 배출하게 했다.고로 진서준은 이미 현자 타임에 접어들어 지금 이가 나미가 진서준 앞에 나타나도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을 유지할 자신이 있었다.“네가 볼일 본다고 해놓고 심심풀이로 여자 하나쯤 찾을지 누가 알겠어...”허윤진 눈을 부라리며 투덜댔다.진서준은 그 말에 헛기침하며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고속열차에 타자마자 진서준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늦은 밤이 되어서야 고속열차는 진안시에 도착했다.진서준은 오기 전 이미 호텔을 예약해 두었고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허사연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했다.그런 다음 진서준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택시를 잡아 진산으로 출발했다.“이봐요 청년, 무슨 일을 하시는 거예요? 보통 사람이라면 다 출근하는 화요일에 이렇게 여행할 여유가 있다니 참 신기하네요.”택시 기사
진산은 대한민국 오악 중에서도 으뜸인 천하제일 산으로 불렸다!총면적이 20,000헥타르에 달할 정도로 매우 크며 주봉인 옥황정은 해발이 1,500미터가 되었기에 다 둘러보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렸다.그러나 진서준에게는 편하게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그는 도착하자마자 가짜 각주가 옥황정에 머물러 있다고 확신하고는 얼른 출발 준비를 했다.진서준이 일찍 온 덕에 관광지에는 사람이 없었고 정상까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평온한 눈빛으로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옥황정을 바라보던 진서준은 문득 가짜 각주로부터 유용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곧이어 그는 등산을 시작했고, 한걸음에 5미터씩 앞으로 나간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중턱에 도착할 수 있었다.그러나 정상까지 300미터도 남지 않았을 무렵, 그림자 하나가 그의 앞을 가로막더니 관헌 제복을 입은 한 중년 남자가 위풍당당하게 말했다.“거기 멈춰! 옥황정은 현재 관광 금지니까 다시 돌아가!”사실 며칠 동안 옥황정을 등반하려던 관광객들은 그에게 저지당해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고 관광지 측에 아무리 민원을 제기해도 당분간 관광 금지라서 협조해달라는 답변만 했다.강압적으로 올라가려던 사람들은 그 중년 남자한테 한바탕 두들겨 맞기도 했다.진서준은 그 중년 남자의 몸속에 진기가 출렁인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술법 영선이 문 앞을 지킨다고? 꽤 능력이 있는 놈인가 보네!’진서준이 무심하게 허리에 차고 있던 천기각 옥패를 꺼내서 보여주자, 그 중년 남자는 순식간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호통을 쳤다.“각주님의 옥패를 왜 네가 가지고 있어? 너 누구야?”그러나 진서준은 상대방의 반응에 가짜 각주가 옥황정에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면서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천기각의 주인이거든.”중년 남자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곧이어 실소를 터뜨렸다.“젊은이, 농담이 너무 지나치네! 천기각이 뭔지 알기는 해?”사실 진서준은 창욱 어르신한테서 천기각
매의 발톱 같은 중년 남자의 손이 진서준의 어깨를 향해 다가왔다.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바위를 부술 정도의 엄청난 힘을 소유한 그의 손아귀에 어깨가 부서졌겠지만, 진서준은 그의 공격을 무시하고 정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중년 남자는 곧장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곧이어 진서준의 앞을 가로막고 어깨를 움켜쥐려고 순간, 눈앞에는 잔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중년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뒤돌아보니 진서준은 어느새 10여 미터 앞에 있었다.“거기 서!”남자는 곧장 진서준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체내의 진기를 모으면서 쏜살같이 진서준을 향해 다가갔다.진서준도 질세라 중년 남자를 힐끗 쳐다보고는 손바닥으로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평범하기 그지없는 손바닥이었지만, 중년 남자는 마치 진산이 짓누르는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 남자의 몸에 있던 진기가 유리처럼 와장창 깨져버리더니 공중을 거꾸로 날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돌벽에 심하게 부딪히면서 먼지를 일으켰다.한편, 진서준은 아무 일 없었던 듯 뒷짐을 지고 태연하게 산 정상을 향해 걸어갔다!중년 남자는 입가에 피가 흐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놀란 눈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태성민, 4급 영선경 절정.지의방 제73위 고수!이 정도의 실력이면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태성민은 다른 가문의 사람들에게도 극진한 대접을 받던 자기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패배당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말도 안 돼!’태성민은 문득 중부 남주성의 용존이 나타났다는 무도계의 소문이 떠올랐다.작년 연말 봉호전에서 6연승을 거두며 당당히 용존의 칭호를 얻은 사람의 나이도 20대 초반이었다!그는 곧장 눈살을 약간 찌푸리더니 놀라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설마 당신이 정안부의 그 용존이란 말인가?”진서준은 산 정상을 향해 계속 나아가면서 간단하게 답했다.“그래.”태성민은 진서준이 인정하자, 쓴웃음을 지
창욱 어르신은 진서준에게 또 다른 제자가 있다고 말한 적이 없었기에 눈앞 청년의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그러나 상대방의 정체는 전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만약 창욱 어르신과 관계가 없었더라면, 그 청년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기 위해 속임수까지 써가면서 허세를 부리지 않았을 것이었다!진서준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고 눈빛은 호수처럼 고요했다.“난 당신이 창욱 어르신의 아들인 줄 알았어. 그런데 아들이 아니라니까 죽인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서 나로서는 오히려 더 좋은데.”진서라를 납치한 것만으로도 진서준에게는 그가 꼭 처리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그러나 청년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싱긋 웃으며 물었다.“내 이름이 뭔지는 알아?”진서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곧 죽을 사람의 이름까지 알아야 해?”구지범은 진서준을 바라보면서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허허허, 어르신의 능력을 많이 전수받지 못해도 오기는 잘 배웠나 보네! 그래도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 모르면 안 되니까 내 이름을 알려줄게. 잘 들어, 난 창욱 어르신의 양아들이자 수제자인 구지범이야.”구지범의 나이는 진서준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상상도 못 할 것이다.장철결의 절반을 수련한 덕에 20대 청년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그의 실제 나이는 110살이었다!구지범은 장철결을 전수받던 와중에 사문에서 쫓겨났기에 절반의 능력만 전수 받았고 그 이후로 여기저기서 많은 풍수술과 공법을 알아내서 장철결과 연결했다.그로 인해 그의 단전 내 영기는 많은 진기가 섞여 있어서 순수하지 않았다.진서준은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당신이 어르신의 제자라는 걸 믿어. 그런데 제자로서 온전한 능력도 전수받지 못했으니 너무 실패한 거 아닌가?”진서준은 구지범의 단전 내에 기괴한 영기와 진기들이 혼잡하게 섞여 있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그도 진기와 영기가 혼잡하게 섞인 사람은 난생처음이었지만, 이내 구지범이 모든 능력을 전수받지 못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곧이어 구지
진서준은 구지범이 어르신을 꺼려서 손을 쓰지 않았다는 생각에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졌다.“설마 어르신 때문이야? 그나저나 어르신은 지금 어디에 계시지?”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진서준에게 있어서 구지범의 은혜는 진산보다도 높았기에 만약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설 것이다!구지범도 진서준의 생각을 간파한 듯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 죽지 않고 잘 살아 있어. 어르신을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산 정상에는 국안부의 사람들도 없고 우리 둘뿐이야. 내가 널 죽인다고 해도 도망칠 구멍이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창욱 어르신이 무사하다는 말에 한숨을 돌리더니 담담하게 웃었다.“내가 도망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난 오늘 널 황천까지 바래다주러 온 거거든.”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기가 진서준의 단전에서 솟아 나와 온몸으로 퍼졌고 손바닥에 희미한 청색 빛이 나타나더니 옥골까지 선명하게 드러났다.구지범도 눈살을 찌푸리자, 갑자기 눈앞에 한 줄기의 청색 빛이 나타나더니 사자머리로 변해서는 진서준을 향해 달려들었다!진서준이 곧바로 손바닥으로 힘차게 내리치자, 사자머리가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두 동강 나더니 기운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주위의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휘어졌다!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진서준도 반 걸음 뒤로 물러서서야 멈추어 설 수 있었다.진서준은 그 짧은 싸움을 통해 구지범의 실력이 8품 대종사보다 더 높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어쩐지 나랑 단둘이서 싸우자고 하더라니! 내가 국안부의 호국장군을 모셔 와도 두렵지 않다는 거네!’한편, 구지범은 미간을 찌푸리는 진서준을 보고는 조롱 섞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1년도 안 지났는데 실력이 많이 늘었네. 이 또한 장철결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겠지? 장철결의 후반부를 내게 준다면 목숨은 살려줄게, 어때?”진서준은 구지범의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듣고 평온했던 얼굴에 비웃음을 지었다.“나를 죽이려는 건 핑계고, 장철결이 욕심났던 거네.”구
거대한 바위 위에 서 있던 구지범의 몸이 천천히 공중에 떠올랐다!이 광경을 지켜본 진서준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지선, 다른 말로는 육지 선인.오직 지선만이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공중 부양을 할 수 있었다!구지범이 아직도 선천 대종사인 줄로만 알고 있던 진서준은 그가 이미 지선이 되어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상황이 참 곤란하게 됐네!’진서준에게 있어서 8품 대종사도 상대하기 힘들었는데 육지 선인이라니, 정말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구지범은 진서준의 심각한 모습을 보고 오히려 입꼬리는 치켜올리며 비아냥거렸다.“왜, 이제야 겁이 나? 네가 무릎을 꿇고 삼천 번 절하면 내가 봐줄 수도 있는데.”진서준은 금세 찡그렸던 눈썹을 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지선이 뭔 대수라고, 누가 선천이 지선을 죽이지 못한다고 했지?”구지범은 선천이 지선을 죽인다는 말이 여태껏 들어본 것 중 가장 웃긴 농담이라고 생각하면서 소리 내어 웃었다.‘정말 미쳐서 날뛰네!’사실 지선이 신선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모든 육지에서 아무도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심지어 공중 폭격기, 대륙간탄도미사일과도 같이 엄청난 살상력을 가진 열병기라도 그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진서준, 네가 건방질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이 순진하네! 선천이 지선을 죽인다고?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어! 선천과 지선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거든. 이 벽은 네가 아무리 선법을 수련해도 결코 넘을 수 없어!”근 백 년 동안 힘들게 수련해 비로소 지선이 된 구지범은 진서준을 비웃으며 경멸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그도 지선이 되고 나서야, 지선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무서운지 알게 되었다!진서준은 담담하게 구지범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여태껏 그런 적이 없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지. 게다가 내가 널 죽이지 못할 거라고 장담하지 마!”진서준은 대종사의 명의로 구지범이라는 육지의 선인을 단번에 베어버릴 것처럼 차분한
이것이 바로 같은 경지에서 술법이 무도보다 강한 이유였다.술법과 수선은 천지의 힘을 빌려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인결이 완성되자 약 2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불 봉황이 화산 꼭대기에 나타났다.하늘에 있는 무시무시한 괴수를 쳐다보며 태성민의 얼굴은 점차 창백해졌고 마음속으로 경외감을 느꼈다.저것은 불 봉황으로 대한민국의 신룡과 나란히 언급되는 존재였고 신화 속에만 존재하는 신수였다.그런데 지금 그 신수가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불 봉황의 몸은 거대했고 중생을 내려다보는 한 쌍의 봉안은 변화무쌍했다.구지범은 냉소를 띠고 있었지만 원래 혈색 좋던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이 인결은 확실히 공포 적이지만 그만큼 그의 체내 진기도 많이 소모했다.그는 오만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짚었다. 곧 하늘의 불 봉황이 봉명을 울렸다.“지금부터 너와 내 차이가 얼마나 큰지 똑똑히 보여주마!”순식간에 하늘에서 불 봉황이 날아내려 왔고 날카로운 발톱은 주변을 갈기갈기 찢었다.불 봉황이 몸을 돌릴 때마다 주위의 나무들은 모조리 뽑혀나가며 산산이 부서졌다.진서준은 빠른 속도로 날아내려 오는 불 봉황을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네 불 봉황이 전부 영기로 이루어졌다면 나도 조금은 두려워했을 거야. 하지만 네 불 봉황은 절반이 진기잖아. 진기와 영기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이 불 봉황은 허울만 번지르르할 뿐이야.”구지범의 귓가에 진서준의 담담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비웃음을 지었다.“허울만 번지르르하다고? 그럼 먼저 이겨보시지 그래! 지금 네 실력으로는 이 불 봉황의 일격조차 막지 못할걸!”구지범의 비웃음이 진서준의 귀에 전해졌다.진서준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불 봉황을 바라보았다. 그의 체내에서 영기가 소용돌이쳤다.순간 진서준의 뒤에 두 마리의 거대한 용이 떠올랐다.청룡과 적룡이었다.두 마리 용은 천둥 같은 포효를 내지르더니 곧 진서준의 양쪽 팔로 흘러 들어갔다.곧이어 진서준은
진서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삼 년의 감옥 생활 동안 매일 아침, 이 목소리가 그를 깨웠고 이어서 고된 훈련을 시작했다.“어르신,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고개를 돌린 진서준의 차분한 눈빛이 금세 흥분으로 가득 찼다.구창욱은 진서준에게 있어서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그가 없었더라면 진서준은 이미 감옥에서 죽었을 것이다.“내가 오지 않았다면, 넌 이미 죽었을 거야.”구창욱의 은발은 여전히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흰색 두루마기는 그에게 신선 같은 고아한 기운을 더해주었다.그야말로 감옥에서의 지저분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진서준이 그의 목소리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어르신, 스타일이 바뀌셨네요?”진서준이 웃으며 물었다.감옥에 있을 때, 구창욱은 매일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어 미친 사람 같았다.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진서준이 수저를 그의 앞에 챙겨다 줘야 했다.하지만 그때도 구창욱은 몇 입밖에 먹지 않았다. 그래서 진서준은 구창욱이 굶어 죽지 않을까 유난히 걱정하곤 했었다.“나왔으니 당연히 멋 좀 내야지. 그러지 않으면 식당에서도 쫓겨나지 않겠냐?”구창욱은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난 어르신께서 조용한 곳을 찾아 은거할 줄 알았는데요!”진서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구창욱같이 실력 있는 재야고수라면 인적이 드문 곳에 은거할 거라고 생각했다.“내가 은거했으면 넌 벌써 저자의 손에 죽었을 거다.”구창욱은 흙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구지범을 바라보며 말했다.구지범은 온몸이 피로 범벅이었고 상반신의 옷은 너덜너덜 찢어져 단단한 근육이 드러났다.구창욱의 방금 일격이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았다는 걸 진서준은 알 수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구창욱의 실력으로 구지범의 머리를 박살 내기는 충분했다.“영감탱이, 당신이 나올 줄 알았어!”구지범은 입안의 피를 뱉어내며 살기 어린 눈으로 구창욱을 노려보았다.구지범이 구창욱에게 이토록 큰 살의를 품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