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바위 위에 서 있던 구지범의 몸이 천천히 공중에 떠올랐다!이 광경을 지켜본 진서준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지선, 다른 말로는 육지 선인.오직 지선만이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공중 부양을 할 수 있었다!구지범이 아직도 선천 대종사인 줄로만 알고 있던 진서준은 그가 이미 지선이 되어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상황이 참 곤란하게 됐네!’진서준에게 있어서 8품 대종사도 상대하기 힘들었는데 육지 선인이라니, 정말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구지범은 진서준의 심각한 모습을 보고 오히려 입꼬리는 치켜올리며 비아냥거렸다.“왜, 이제야 겁이 나? 네가 무릎을 꿇고 삼천 번 절하면 내가 봐줄 수도 있는데.”진서준은 금세 찡그렸던 눈썹을 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지선이 뭔 대수라고, 누가 선천이 지선을 죽이지 못한다고 했지?”구지범은 선천이 지선을 죽인다는 말이 여태껏 들어본 것 중 가장 웃긴 농담이라고 생각하면서 소리 내어 웃었다.‘정말 미쳐서 날뛰네!’사실 지선이 신선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모든 육지에서 아무도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심지어 공중 폭격기, 대륙간탄도미사일과도 같이 엄청난 살상력을 가진 열병기라도 그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진서준, 네가 건방질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이 순진하네! 선천이 지선을 죽인다고?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어! 선천과 지선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거든. 이 벽은 네가 아무리 선법을 수련해도 결코 넘을 수 없어!”근 백 년 동안 힘들게 수련해 비로소 지선이 된 구지범은 진서준을 비웃으며 경멸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그도 지선이 되고 나서야, 지선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무서운지 알게 되었다!진서준은 담담하게 구지범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여태껏 그런 적이 없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지. 게다가 내가 널 죽이지 못할 거라고 장담하지 마!”진서준은 대종사의 명의로 구지범이라는 육지의 선인을 단번에 베어버릴 것처럼 차분한
이것이 바로 같은 경지에서 술법이 무도보다 강한 이유였다.술법과 수선은 천지의 힘을 빌려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인결이 완성되자 약 2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불 봉황이 화산 꼭대기에 나타났다.하늘에 있는 무시무시한 괴수를 쳐다보며 태성민의 얼굴은 점차 창백해졌고 마음속으로 경외감을 느꼈다.저것은 불 봉황으로 대한민국의 신룡과 나란히 언급되는 존재였고 신화 속에만 존재하는 신수였다.그런데 지금 그 신수가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불 봉황의 몸은 거대했고 중생을 내려다보는 한 쌍의 봉안은 변화무쌍했다.구지범은 냉소를 띠고 있었지만 원래 혈색 좋던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이 인결은 확실히 공포 적이지만 그만큼 그의 체내 진기도 많이 소모했다.그는 오만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짚었다. 곧 하늘의 불 봉황이 봉명을 울렸다.“지금부터 너와 내 차이가 얼마나 큰지 똑똑히 보여주마!”순식간에 하늘에서 불 봉황이 날아내려 왔고 날카로운 발톱은 주변을 갈기갈기 찢었다.불 봉황이 몸을 돌릴 때마다 주위의 나무들은 모조리 뽑혀나가며 산산이 부서졌다.진서준은 빠른 속도로 날아내려 오는 불 봉황을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네 불 봉황이 전부 영기로 이루어졌다면 나도 조금은 두려워했을 거야. 하지만 네 불 봉황은 절반이 진기잖아. 진기와 영기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이 불 봉황은 허울만 번지르르할 뿐이야.”구지범의 귓가에 진서준의 담담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비웃음을 지었다.“허울만 번지르르하다고? 그럼 먼저 이겨보시지 그래! 지금 네 실력으로는 이 불 봉황의 일격조차 막지 못할걸!”구지범의 비웃음이 진서준의 귀에 전해졌다.진서준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불 봉황을 바라보았다. 그의 체내에서 영기가 소용돌이쳤다.순간 진서준의 뒤에 두 마리의 거대한 용이 떠올랐다.청룡과 적룡이었다.두 마리 용은 천둥 같은 포효를 내지르더니 곧 진서준의 양쪽 팔로 흘러 들어갔다.곧이어 진서준은
진서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삼 년의 감옥 생활 동안 매일 아침, 이 목소리가 그를 깨웠고 이어서 고된 훈련을 시작했다.“어르신,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고개를 돌린 진서준의 차분한 눈빛이 금세 흥분으로 가득 찼다.구창욱은 진서준에게 있어서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그가 없었더라면 진서준은 이미 감옥에서 죽었을 것이다.“내가 오지 않았다면, 넌 이미 죽었을 거야.”구창욱의 은발은 여전히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흰색 두루마기는 그에게 신선 같은 고아한 기운을 더해주었다.그야말로 감옥에서의 지저분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진서준이 그의 목소리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어르신, 스타일이 바뀌셨네요?”진서준이 웃으며 물었다.감옥에 있을 때, 구창욱은 매일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어 미친 사람 같았다.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진서준이 수저를 그의 앞에 챙겨다 줘야 했다.하지만 그때도 구창욱은 몇 입밖에 먹지 않았다. 그래서 진서준은 구창욱이 굶어 죽지 않을까 유난히 걱정하곤 했었다.“나왔으니 당연히 멋 좀 내야지. 그러지 않으면 식당에서도 쫓겨나지 않겠냐?”구창욱은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난 어르신께서 조용한 곳을 찾아 은거할 줄 알았는데요!”진서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구창욱같이 실력 있는 재야고수라면 인적이 드문 곳에 은거할 거라고 생각했다.“내가 은거했으면 넌 벌써 저자의 손에 죽었을 거다.”구창욱은 흙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구지범을 바라보며 말했다.구지범은 온몸이 피로 범벅이었고 상반신의 옷은 너덜너덜 찢어져 단단한 근육이 드러났다.구창욱의 방금 일격이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았다는 걸 진서준은 알 수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구창욱의 실력으로 구지범의 머리를 박살 내기는 충분했다.“영감탱이, 당신이 나올 줄 알았어!”구지범은 입안의 피를 뱉어내며 살기 어린 눈으로 구창욱을 노려보았다.구지범이 구창욱에게 이토록 큰 살의를 품고 있는
진서준까지 자신을 조롱하자 구지범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닥쳐. 넌 여기에 끼어들 자격이 없어! 이 영감탱이가 널 보호하지 않았다면 아까 그 한 방에 넌 이미 죽었을 거야!”현재 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너무 컸다.설사 진서준이 옥패의 힘을 사용한다고 해도 구지범에게 압도당할 뿐이었다.하지만 진서준이 조금만 더 강해져서 실력이 9급 대종사에 도달한다면 지선을 죽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실력이 구지범보다 못하다는 것을 진서준도 인정했다.“현재는 네가 한 수 위지만 너처럼 백 년 가까이 수련한다면, 그때 가서 네가 나에게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진서준이 차분하게 말했다.만약 그에게 백 년의 시간을 주어 수련하게 한다면 지선은 그의 눈에 그저 개미에 불과할 것이다.구지범의 얼굴은 푸르뎅뎅해졌다. 그는 진서준에게 그렇게 긴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아직 일 년도 안 되었는데 진서준의 성장은 너무 빨랐다.만약 그에게 조금 더 시간을 준다면 백 년이 아니라 삼오 년 후에는 지선인 그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구지범도 감히 먼저 진서준에게 덤비지 못할 것이다.“꺼져! 내 인내심도 한계가 있어.”구창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말투에는 싸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진서준은 구창욱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구지범이 계속 머무르면 구창욱은 진짜 손을 쓸 것이다.주먹을 움켜쥔 구지범의 손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고 눈에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좋아! 잘 보호하고 있어. 당신이 언제까지 이 녀석을 지켜주는지 두고 보겠어!”구창욱이 차갑게 말했다.“서준이가 지선에 도달했을 때 네가 죽이려고 한다면 난 막지 않을 것이다.”이 말에 구지범은 화가 나서 손등의 힘줄이 터질 듯했다.그가 수련하는 것은 위선법이지만 진서준은 진정한 선법을 익혔다!만약 진서준이 정말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른다면 구지범의 패배는 분명했다!이것이 바로 선법과 위선법의 차이로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영감탱이, 그게 사람이 할 얘기야? 그
“어르신,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요? 물어보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진서준은 텅 빈 주변을 둘러보며 무기력하게 외쳤다.그는 구지범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곧 죽게 될 자에 대해 진서준이 궁금해할 이유는 없었다.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 진요한에 관한 일이었다.구창욱이 과거에 아버지를 가르쳤던 만큼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터였다.그러나 구창욱은 진서준에게 진요한에 대해 알아갈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아까 소리 없이 왔던 것처럼 그는 지금 소리 없이 가버렸다.“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을 거야.”진서준은 한숨을 내쉬고 산 아래로 걸어갔다.정상에서 내려와 보니 태성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당신이... 살아서 내려오다니!”태성민은 진서준의 몸에 상처 하나 없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어떻게 이럴 수가.‘각주’는 지선 실력자가 아니었는가.그리고 방금 그 불 봉황도 각주가 거의 전력을 다했다는 증거였다.지선의 전력을 막아낼 수 있는 자라면 동급의 지선뿐이다.그렇다면 이 진 마스터도 지선이란 말인가?그런데 너무 어리지 않은가?국안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듯이 진 마스터는 겨우 스무 살 초반에 불과했다.세상에! 대박!대한민국에 드디어 용이 나왔구나!태성민은 진서준을 떨리는 눈동자로 바라보며 믿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진서준은 그의 앞에 가서 차분하게 말했다.“위에 있는 자는 가짜야. 천기각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나거든.”“네?!”태성민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자가... 가짜라고요? 그럼 그자는요?”진서준 혼자만 내려온 모습을 보며 태성민은 이상함을 느꼈다.혹시 진 마스터가 그를 처치한 건가?지선이 이렇게 죽을 수가?대한민국 전역을 통틀어 지선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귀한 존재였다.판다보다 더 귀할 정도로 말이다.진서준은 태성민의 경악한 표정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안 죽었어. 도망간 거야.”도망을 가?지선을 도망가게 했다고?이건 지선을 죽이
게다가 휴대폰과 같이 편리한 연락 수단을 누가 거부하겠는가?“각주님, 앞으로 어떤 지시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칼산과 불바다라 할지라도 저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을 겁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앞으로 내가 부탁하는 건 정말 칼산과 불바다일 수도 있어.”“괜찮습니다! 제 목숨은 옛 각주님께서 주신 거예요. 옛 각주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미 죽었을 겁니다!”태성민은 이 말을 듣고도 후회하는 기색이 없었다.“각주님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값진 일일 테죠!”태성민의 의리에 진서준은 속으로 기뻤다.구창욱의 안목으로 선택한 천기각의 인재들이니 인품이 나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구지범 그 인간은 왜 그렇게 악랄한 건지 진서준은 알 수 없었다.부친을 살해하는 것은 어떤 시대에도 용서받지 못할 큰 죄였다.하물며 구지범은 자신 아버지의 혈통을 위해 그런 짓을 했다니 너무나 잔인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그럼 먼저 가보겠다. 나중에 일이 생기면 연락하지.”“각주님, 제가 모셔다드릴게요!”태성민은 진서준을 산 아래까지 배웅했다.“참, 각주님. 앞으로 서북에 가시면 저에게 바로 연락하세요! 제가 서북에서는 어느 정도 지위가 있으니 반드시 만족스럽게 모셔드릴 겁니다!”태성민이 서북 출신이라는 말을 들은 진서준은 궁금한 것이 생겼다.“그럼 서북의 유씨 가문을 알아?”유연비에 대해 진서준은 아는 게 너무 적었다.하지만 그녀는 그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고 예전에는 그녀의 손에 꼼짝도 못 했다.“알죠. 서북에서 으뜸가는 세가입니다. 유씨 가문은 대대로 횡련을 수련해온 가문으로 그들 조상이 횡련 지선이라고 들었습니다.”태성민의 표정도 점차 심각해졌다.“유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나? 이를테면 젊은 세대 말이야.”진서준이 물었다.태성민은 멍해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잘 모릅니다. 저도 유씨 가문의 이전 세대와만 접촉해봐서요. 다만 젊은 후배인 유천효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그는 유
“수정 씨, 여행하러 온 거예요?”배수정이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서준은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지난 만남 이후로 진서준과 배수정은 4개월 가까이 서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그동안 진서준은 수련에 전념하느라 다른 일에는 시간을 쏟을 수 없었다.그 사이, 배수정은 진서준에게 카톡으로 수십 개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진서준은 하나도 확인하지 못했고 당연히 답장도 없었다.진서준이 이런 태도를 보이자 배수정은 깊은 상처를 받았고 진서준에 대한 마음을 접게 되었다.날씨가 따뜻해지자 배수정은 산을 오르며 여행을 통해 잠시 진서준을 잊어보려 했다.하지만 진산 기슭에서 진서준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했던 배수정이었지만 진서준을 보는 순간, 그녀의 가슴은 또다시 통제할 수 없이 심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맞아요, 친구들이랑 진산에 놀러 왔어요.”배수정은 선글라스를 벗고 진서준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배수정의 곁에는 남자 두 명과 여자 두 명, 총 네 명의 청년이 함께 있었다.청년들의 분위기와 외모는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하긴, 국내 최고 핫한 연예인 배수정의 친구들이 평범할 리는 없을 터였다.배수정과 가까운 거리에 있던 한 청년이 배수정이 진서준을 바라보는 시선을 감지하자 눈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그 청년의 이름은 양지천이었다. 양지천은 배수정의 추종자일 뿐만 아니라 경성 양씨 가문의 직계 자손이었다.양지천은 배수정을 오랫동안 따라다니며 추구해 왔지만 배수정이 이렇게 그윽한 눈빛으로 다른 사람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양지천이 눈앞의 이 진서준이라는 남자가 배수정과 각별한 사이임을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배수정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진서준은 어색하게 몸을 돌렸다.여러 여자의 관심을 받아본 적 있는 진서준이었기에 배수정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할 만큼 미련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진서준은 허사연과의 약속을 깨고 싶지 않았다.“친구들이랑 잘 놀아요, 난 이만 가볼게요.”진서
그런데 배수정의 결연하고 슬픈 표정을 보자 진서준의 마음도 괴로워졌다.“수정아, 좀 천천히 가, 같이 가자.”양지천 일행은 곧장 배수정을 따라잡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배수정은 점점 더 빨리 걸었고 한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양지천과 일행에게 들키지 않으려 했다.그러다 그만 발을 헛디뎌 발목을 삐었고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배수정의 신음에 떠나려던 진서준은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배수정이 바닥에 주저앉은 것을 본 진서준은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달려갔다.“수정아, 괜찮아? 혹시 너무 빨리 걸어서 발목을 삐었어?”양지천 일행도 서둘러 배수정의 곁으로 달려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아...”배수정은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괜찮긴 뭐가 괜찮아? 눈물까지 흘리면서.”배수정이 흘리는 눈물이 발목 때문이라고 착각한 양지천은 마음이 아파서 어쩔 줄 몰랐다.“무슨 일이죠?”진서준도 이때 다가와 배수정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발목을 다친 거예요? 내가 좀 볼게요.”진서준이 다가오자 양지천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이봐요, 당신은 그냥 당신 갈 길이나 가세요. 수정은 우리가 돌보면 됩니다.”배수정도 냉담하게 한마디 보탰다.“그냥 발목을 삔 거예요. 서준 씨, 얼른 가보세요. 괜히 이런 사소한 걸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요.”진서준은 배수정이 자기에게 단단히 화난 걸 눈치채고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어쨌든, 지난번 김연아 사건 때 배수정이 정보를 주며 도와준 덕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그 은혜를 갚지 못한 채 이렇게 떠나자니 내키지 않았다.그래서 배수정이 아무리 자기를 원망하더라도 진서준은 배수정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괜찮아요. 아직 경성행 비행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어요.”진서준은 태연하게 양지천과 일행을 밀어내고 배수정 앞으로 다가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양지천은 진서준의 행동을 보고 몹시 불쾌해하며 물었다.“뭐 하는 거야?”“당연히 발목을 치료해 주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