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삼 년의 감옥 생활 동안 매일 아침, 이 목소리가 그를 깨웠고 이어서 고된 훈련을 시작했다.“어르신,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고개를 돌린 진서준의 차분한 눈빛이 금세 흥분으로 가득 찼다.구창욱은 진서준에게 있어서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그가 없었더라면 진서준은 이미 감옥에서 죽었을 것이다.“내가 오지 않았다면, 넌 이미 죽었을 거야.”구창욱의 은발은 여전히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흰색 두루마기는 그에게 신선 같은 고아한 기운을 더해주었다.그야말로 감옥에서의 지저분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진서준이 그의 목소리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어르신, 스타일이 바뀌셨네요?”진서준이 웃으며 물었다.감옥에 있을 때, 구창욱은 매일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어 미친 사람 같았다.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진서준이 수저를 그의 앞에 챙겨다 줘야 했다.하지만 그때도 구창욱은 몇 입밖에 먹지 않았다. 그래서 진서준은 구창욱이 굶어 죽지 않을까 유난히 걱정하곤 했었다.“나왔으니 당연히 멋 좀 내야지. 그러지 않으면 식당에서도 쫓겨나지 않겠냐?”구창욱은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난 어르신께서 조용한 곳을 찾아 은거할 줄 알았는데요!”진서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구창욱같이 실력 있는 재야고수라면 인적이 드문 곳에 은거할 거라고 생각했다.“내가 은거했으면 넌 벌써 저자의 손에 죽었을 거다.”구창욱은 흙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구지범을 바라보며 말했다.구지범은 온몸이 피로 범벅이었고 상반신의 옷은 너덜너덜 찢어져 단단한 근육이 드러났다.구창욱의 방금 일격이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았다는 걸 진서준은 알 수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구창욱의 실력으로 구지범의 머리를 박살 내기는 충분했다.“영감탱이, 당신이 나올 줄 알았어!”구지범은 입안의 피를 뱉어내며 살기 어린 눈으로 구창욱을 노려보았다.구지범이 구창욱에게 이토록 큰 살의를 품고 있는
진서준까지 자신을 조롱하자 구지범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닥쳐. 넌 여기에 끼어들 자격이 없어! 이 영감탱이가 널 보호하지 않았다면 아까 그 한 방에 넌 이미 죽었을 거야!”현재 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너무 컸다.설사 진서준이 옥패의 힘을 사용한다고 해도 구지범에게 압도당할 뿐이었다.하지만 진서준이 조금만 더 강해져서 실력이 9급 대종사에 도달한다면 지선을 죽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실력이 구지범보다 못하다는 것을 진서준도 인정했다.“현재는 네가 한 수 위지만 너처럼 백 년 가까이 수련한다면, 그때 가서 네가 나에게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진서준이 차분하게 말했다.만약 그에게 백 년의 시간을 주어 수련하게 한다면 지선은 그의 눈에 그저 개미에 불과할 것이다.구지범의 얼굴은 푸르뎅뎅해졌다. 그는 진서준에게 그렇게 긴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아직 일 년도 안 되었는데 진서준의 성장은 너무 빨랐다.만약 그에게 조금 더 시간을 준다면 백 년이 아니라 삼오 년 후에는 지선인 그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구지범도 감히 먼저 진서준에게 덤비지 못할 것이다.“꺼져! 내 인내심도 한계가 있어.”구창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말투에는 싸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진서준은 구창욱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구지범이 계속 머무르면 구창욱은 진짜 손을 쓸 것이다.주먹을 움켜쥔 구지범의 손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고 눈에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좋아! 잘 보호하고 있어. 당신이 언제까지 이 녀석을 지켜주는지 두고 보겠어!”구창욱이 차갑게 말했다.“서준이가 지선에 도달했을 때 네가 죽이려고 한다면 난 막지 않을 것이다.”이 말에 구지범은 화가 나서 손등의 힘줄이 터질 듯했다.그가 수련하는 것은 위선법이지만 진서준은 진정한 선법을 익혔다!만약 진서준이 정말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른다면 구지범의 패배는 분명했다!이것이 바로 선법과 위선법의 차이로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영감탱이, 그게 사람이 할 얘기야? 그
“어르신,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요? 물어보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진서준은 텅 빈 주변을 둘러보며 무기력하게 외쳤다.그는 구지범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곧 죽게 될 자에 대해 진서준이 궁금해할 이유는 없었다.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 진요한에 관한 일이었다.구창욱이 과거에 아버지를 가르쳤던 만큼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터였다.그러나 구창욱은 진서준에게 진요한에 대해 알아갈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아까 소리 없이 왔던 것처럼 그는 지금 소리 없이 가버렸다.“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을 거야.”진서준은 한숨을 내쉬고 산 아래로 걸어갔다.정상에서 내려와 보니 태성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당신이... 살아서 내려오다니!”태성민은 진서준의 몸에 상처 하나 없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어떻게 이럴 수가.‘각주’는 지선 실력자가 아니었는가.그리고 방금 그 불 봉황도 각주가 거의 전력을 다했다는 증거였다.지선의 전력을 막아낼 수 있는 자라면 동급의 지선뿐이다.그렇다면 이 진 마스터도 지선이란 말인가?그런데 너무 어리지 않은가?국안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듯이 진 마스터는 겨우 스무 살 초반에 불과했다.세상에! 대박!대한민국에 드디어 용이 나왔구나!태성민은 진서준을 떨리는 눈동자로 바라보며 믿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진서준은 그의 앞에 가서 차분하게 말했다.“위에 있는 자는 가짜야. 천기각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나거든.”“네?!”태성민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자가... 가짜라고요? 그럼 그자는요?”진서준 혼자만 내려온 모습을 보며 태성민은 이상함을 느꼈다.혹시 진 마스터가 그를 처치한 건가?지선이 이렇게 죽을 수가?대한민국 전역을 통틀어 지선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귀한 존재였다.판다보다 더 귀할 정도로 말이다.진서준은 태성민의 경악한 표정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안 죽었어. 도망간 거야.”도망을 가?지선을 도망가게 했다고?이건 지선을 죽이
게다가 휴대폰과 같이 편리한 연락 수단을 누가 거부하겠는가?“각주님, 앞으로 어떤 지시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칼산과 불바다라 할지라도 저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을 겁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앞으로 내가 부탁하는 건 정말 칼산과 불바다일 수도 있어.”“괜찮습니다! 제 목숨은 옛 각주님께서 주신 거예요. 옛 각주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미 죽었을 겁니다!”태성민은 이 말을 듣고도 후회하는 기색이 없었다.“각주님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값진 일일 테죠!”태성민의 의리에 진서준은 속으로 기뻤다.구창욱의 안목으로 선택한 천기각의 인재들이니 인품이 나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구지범 그 인간은 왜 그렇게 악랄한 건지 진서준은 알 수 없었다.부친을 살해하는 것은 어떤 시대에도 용서받지 못할 큰 죄였다.하물며 구지범은 자신 아버지의 혈통을 위해 그런 짓을 했다니 너무나 잔인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그럼 먼저 가보겠다. 나중에 일이 생기면 연락하지.”“각주님, 제가 모셔다드릴게요!”태성민은 진서준을 산 아래까지 배웅했다.“참, 각주님. 앞으로 서북에 가시면 저에게 바로 연락하세요! 제가 서북에서는 어느 정도 지위가 있으니 반드시 만족스럽게 모셔드릴 겁니다!”태성민이 서북 출신이라는 말을 들은 진서준은 궁금한 것이 생겼다.“그럼 서북의 유씨 가문을 알아?”유연비에 대해 진서준은 아는 게 너무 적었다.하지만 그녀는 그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고 예전에는 그녀의 손에 꼼짝도 못 했다.“알죠. 서북에서 으뜸가는 세가입니다. 유씨 가문은 대대로 횡련을 수련해온 가문으로 그들 조상이 횡련 지선이라고 들었습니다.”태성민의 표정도 점차 심각해졌다.“유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나? 이를테면 젊은 세대 말이야.”진서준이 물었다.태성민은 멍해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잘 모릅니다. 저도 유씨 가문의 이전 세대와만 접촉해봐서요. 다만 젊은 후배인 유천효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그는 유
“수정 씨, 여행하러 온 거예요?”배수정이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서준은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지난 만남 이후로 진서준과 배수정은 4개월 가까이 서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그동안 진서준은 수련에 전념하느라 다른 일에는 시간을 쏟을 수 없었다.그 사이, 배수정은 진서준에게 카톡으로 수십 개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진서준은 하나도 확인하지 못했고 당연히 답장도 없었다.진서준이 이런 태도를 보이자 배수정은 깊은 상처를 받았고 진서준에 대한 마음을 접게 되었다.날씨가 따뜻해지자 배수정은 산을 오르며 여행을 통해 잠시 진서준을 잊어보려 했다.하지만 진산 기슭에서 진서준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했던 배수정이었지만 진서준을 보는 순간, 그녀의 가슴은 또다시 통제할 수 없이 심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맞아요, 친구들이랑 진산에 놀러 왔어요.”배수정은 선글라스를 벗고 진서준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배수정의 곁에는 남자 두 명과 여자 두 명, 총 네 명의 청년이 함께 있었다.청년들의 분위기와 외모는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하긴, 국내 최고 핫한 연예인 배수정의 친구들이 평범할 리는 없을 터였다.배수정과 가까운 거리에 있던 한 청년이 배수정이 진서준을 바라보는 시선을 감지하자 눈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그 청년의 이름은 양지천이었다. 양지천은 배수정의 추종자일 뿐만 아니라 경성 양씨 가문의 직계 자손이었다.양지천은 배수정을 오랫동안 따라다니며 추구해 왔지만 배수정이 이렇게 그윽한 눈빛으로 다른 사람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양지천이 눈앞의 이 진서준이라는 남자가 배수정과 각별한 사이임을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배수정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진서준은 어색하게 몸을 돌렸다.여러 여자의 관심을 받아본 적 있는 진서준이었기에 배수정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할 만큼 미련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진서준은 허사연과의 약속을 깨고 싶지 않았다.“친구들이랑 잘 놀아요, 난 이만 가볼게요.”진서
그런데 배수정의 결연하고 슬픈 표정을 보자 진서준의 마음도 괴로워졌다.“수정아, 좀 천천히 가, 같이 가자.”양지천 일행은 곧장 배수정을 따라잡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배수정은 점점 더 빨리 걸었고 한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양지천과 일행에게 들키지 않으려 했다.그러다 그만 발을 헛디뎌 발목을 삐었고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배수정의 신음에 떠나려던 진서준은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배수정이 바닥에 주저앉은 것을 본 진서준은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달려갔다.“수정아, 괜찮아? 혹시 너무 빨리 걸어서 발목을 삐었어?”양지천 일행도 서둘러 배수정의 곁으로 달려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아...”배수정은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괜찮긴 뭐가 괜찮아? 눈물까지 흘리면서.”배수정이 흘리는 눈물이 발목 때문이라고 착각한 양지천은 마음이 아파서 어쩔 줄 몰랐다.“무슨 일이죠?”진서준도 이때 다가와 배수정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발목을 다친 거예요? 내가 좀 볼게요.”진서준이 다가오자 양지천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이봐요, 당신은 그냥 당신 갈 길이나 가세요. 수정은 우리가 돌보면 됩니다.”배수정도 냉담하게 한마디 보탰다.“그냥 발목을 삔 거예요. 서준 씨, 얼른 가보세요. 괜히 이런 사소한 걸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요.”진서준은 배수정이 자기에게 단단히 화난 걸 눈치채고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어쨌든, 지난번 김연아 사건 때 배수정이 정보를 주며 도와준 덕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그 은혜를 갚지 못한 채 이렇게 떠나자니 내키지 않았다.그래서 배수정이 아무리 자기를 원망하더라도 진서준은 배수정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괜찮아요. 아직 경성행 비행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어요.”진서준은 태연하게 양지천과 일행을 밀어내고 배수정 앞으로 다가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양지천은 진서준의 행동을 보고 몹시 불쾌해하며 물었다.“뭐 하는 거야?”“당연히 발목을 치료해 주려는 거
여자가 생각하는 가장 얄미운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바로 갖은 수단을 동원해 여자를 유혹해 은밀한 부위가 흥건히 젖을 정도로 마음과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야릇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갑자기 여자의 몸에서 일어나 이런 멘트를 던지는 남자였다.“아차,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각났네.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이어서 하자.”진서준이 바로 배수정에게 그런 남자였다.물론 진서준은 배수정의 진심을 갖고 논 것이지 신체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다.영웅이 미인을 구하는 장면은 흔한 클리셰지만 여자의 마음을 얻기엔 그만큼 효율적인 방법도 없었다.예전에 진서준이 절에서 배수정을 구해줬을 때, 진서준의 당당하고 든든한 모습은 배수정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만약 두 사람의 인연이 그 정도에서 끝났다면 배수정도 더 깊이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후에도 몇 차례 진서준과 마주치며 진서준은 매번 배수정에게 새로운 느낌을 안겨주었다.그래서 배수정은 진서준에게 점점 더 마음이 끌렸다.특히 진서준이 혼자서 진씨 가문과 서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세력에 맞섰을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김연아를 구해낸 그날의 장면은 배수정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그 장면 이후, 배수정은 진서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더욱 확실해졌다.하지만 진서준이 운대산에 들어가 수련에 몰두한 이후, 진서준은 세상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듯 연락이 뚝 끊겼다.배수정은 매일 진서준에게 수십 개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배수정의 불처럼 뜨거웠던 마음은 조금씩 식어갔다.배수정이 진서준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그저 반응 없는 짝사랑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배수정은 진서준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기로 결심했다.진서준이 자기에게 주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한, 자신도 더 이상 진서준에게 기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다음번에 또 우연히 만나더라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낯선 사람처럼 대할 생각이었다.그런데 진서준이
“다음에 얘기하자.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배수정은 지친 얼굴로 대답했다.“알았어, 그럼 넌 여기서 잠깐 쉬고 있어.”양지천은 나머지 세 사람을 한쪽으로 불러 모았다.“너희들은 방금 저 녀석의 정체와 배경을 알아봐. 내가 좋아하는 여자를 저렇게 울린 대가를 반드시 톡톡히 치르게 해주겠어.”양지천의 눈에는 날카로운 살기가 스쳤다....진서준은 바로 경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전에 임배가 알려준 묘지를 들렀다.묘지에 도착한 진서준은 임배가 그려준 지도를 따라 묘지 안에서 그 보검을 찾을 수 있었다.7척 길이의 보검은 매미의 날개처럼 얇았다.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살짝 검의 윗부분을 튕겨 먼지를 털어내자 보검은 본래의 광채를 드러냈다.옅은 청색의 보검은 표면에는 아무런 문양도 새겨져 있지 않았고 오직 검 손잡이 끝부분에 단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참선...”짧은 두 글자였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패기가 깃들어 있었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쥐고 체내의 영기를 끌어모아 천천히 검 속으로 흘려보냈다.그러자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옅은 청색이었던 참선검이 갑자기 청광을 내뿜으며 빛나기 시작했다.그 빛이 허공에 퍼지더니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화려한 화면이 나타났다.그 화면 속에는 한 남자가 참선검을 손에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구름 위에는 십여 명의 인물이 서 있었고 그들은 마치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압도적인 위압감을 풍겼다.이 화면을 본 진서준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설마 이 검의 주인이 옛날에 혼자서 수십 명의 신선들과 싸웠다는 건가?”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지만 도무지 믿기 힘든 일이었다.진서준은 과거 스승님께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수사가 번개를 극복하고 승천에 성공하면 신선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선이 된 이후로는 인간계로 내려오는 것이 평범한 사람이 하늘로 오르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고 했다.그 이유는 스승님도 알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참선검, 네 주인은 이제 없으니 앞으로는 내가 널 잘 돌봐줄게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