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7화 예상외로 차분하네

주혁은 말을 마치자마자 은채의 팔을 단단히 잡아채 병실로 끌고 들어갔다. 그는 망설임 없이 은채의 소매를 걷어 올리며 차갑게 의사에게 지시했다.

“채혈해.”

은채는 눈을 크게 뜨며 이를 악물고 저항했다.

“하주혁, 이거 놔.”

그들의 격렬한 움직임에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서연은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내 표정이 냉혹하게 변했다. 그녀는 은채의 팔을 더 강하게 제압하며 억누르려 했다.

의사는 서둘러 채혈 도구를 준비해 은채에게 다가왔다.

은채는 팔에 찌릿한 통증이 스며들자 숨을 삼켰다. 서늘한 감촉이 피와 함께 유리관을 타고 흘러내리며 혈액팩이 서서히 채워졌다.

서연은 은채의 피가 채워지는 걸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은채의 팔을 더욱 강하게 눌러 고통을 가중시켰다.

“가만히 있으면 돼. 주혁 오빠도 널 다치게 하진 않을 거야.”

서연은 뻔뻔스럽게 말하며 덧붙였다.

“네가 언니한테 헌혈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주혁 오빠가 널 받아준 거야.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건 아니겠지.”

서연의 말에 은채는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겼다.

이내 모든 것이 명확해졌고, 머릿속에서 흩어졌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고요하게 주혁을 응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놔.”

그러나 주혁은 여전히 은채의 팔을 강하게 잡고 있었고, 그 힘에 은채는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서연은 한술 더 떠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며 상처를 입힐 듯 더욱 힘을 주었다.

은채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자신의 분노가 더 큰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평정을 잃지 않으려 했다.

“하주혁, 협조할 테니까 이거 놔.”

주혁은 그녀를 잠시 응시하다가, 혈액팩이 가득 찬 것을 확인하자 천천히 손을 놓았다. 그의 눈빛은 미안함 없이 오직 냉정함만이 서려 있었다.

“처음부터 얌전히 있었으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거야.”

그의 말투는 마치 무심하게 일상 대화를 나누는 듯했고, 은채의 고통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무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은채는 주혁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3년을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매달 반복되던 신체검사도 그녀의 희귀한 혈액형 때문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섬뜩하게 떠올랐다. 이 결혼은 애초부터 거래였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은채는 서연을 비웃듯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서연에게 말했다.

“네 언니를 좋아하는 남자를 좋아하다니 너도 참 우습네.”

은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입가에는 조소 어린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가 서연을 당황하게 했다. 서연은 손을 확 놓아버리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우스운 건 너지.”

은채는 입술을 굳게 오므리며 여유롭게 웃었다.

“맞아, 우리 둘 다 우습지.”

서연은 은채의 비웃는 미소에 속으로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은채가 비웃는 듯한 그 표정을 참을 수 없었다.

서연은 주먹을 꽉 쥐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뭔데 날 비웃는 거야? 넌 주혁 오빠 앞에서 나보다 더 보잘것없는 존재일 뿐이야.’

서연은 은채가 주혁의 곁에 있는 이유가 오로지 혈액형의 우세 때문이라 생각하며 그녀를 경멸했다.

은채가 희귀한 RH-O형 혈액형이 아니었다면, 주혁은 절대 은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거라고 서연은 굳게 믿었다.

주혁은 은채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하며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냉담했고, 목소리에는 미동조차 없는 차가움이 담겨 있었다.

“입단속 잘 해. 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은채는 눈살을 찌푸리며 병실을 떠나는 주혁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고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애초에 거래로 시작된 결혼이었으니, 이제 가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서연은 팔짱을 낀 채 은채를 비웃으며 말했다.

“류은비, 이제 알겠지? 누가 진짜 우스운 사람인지.”

의사는 500cc의 혈액을 채취한 후 은채의 팔에서 주삿바늘을 제거하고 주의사항을 간단히 전달한 뒤 병실을 나섰다.

병실에는 오직 은채만이 남았다. 은채는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곧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며 시야가 흐려졌다.

잠시 후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은채는 재빨리 눈물을 닦아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오세요.”

진정국이 문을 열고 들어와 은채를 조심스레 쳐다보며 공손히 인사했다.

“하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차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은채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병실을 나섰다. 그녀는 여전히 팔이 시큰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걸음을 재촉했다.

옆 병실 입구에는 덩치 큰 경호원 두 명이 서 있었다.

은채는 그 두 사람을 알고 있었다. 모두 주혁이 가장 신뢰하는 경호원으로서, 그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이었다.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들이 이곳에 배치되어 고시영을 보호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은채는 태연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정국은 은채를 조심스럽게 펜트하우스로 데려다 주었다. 은채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주혁은 정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태는 어때?]

정국은 그대로 보고했다.

“평소와 같습니다. 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상외로 차분하네.]

주혁은 은채가 분명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 예상했지만 그녀는 묵묵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계속 지켜봐.]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진짜 은비가 깨어났으니 류씨 가문은 분명 움직이려 할 것이다.

주혁은 통화를 마치며 병실에 누워 있던 은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주혁아...”

그때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혁은 은채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워내고 뒤돌아섰다. 병상에 누워 있는 여자를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깼어?”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