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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손버릇이 나쁜 사람

은채가 펜트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순간 갑작스러운 어지러움이 밀려와 비틀거렸다. 집안일을 하고 있던 이성연은 은채의 상태를 보고 급히 달려와 그녀를 부축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이성연은 은채가 주혁과 결혼할 때부터 곁을 지켜온 사람이었으며, 심혜영의 지시에 따라 은채를 감시하기 위해 류씨 가문에서 파견된 인물이었다.

은채는 이성연의 손길을 뿌리치며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괜찮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표정에도 별다른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이성연은 은채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약간 난처한 듯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혹시 그날이 다가와서 그러신 건가요.”

은채는 잠시 굳어졌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이성연이 3년 동안 자신의 생리 주기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기 때문이다.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속도 안 좋아요.”

“먼저 위층에 가서 좀 쉬고 있을게요. 저녁에 불러주세요.”

은채는 그렇게 말한 후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엔 차가운 결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성연을 곁에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임신 사실이 들통날 게 분명했다.

은채는 침실에 들어서며 화장대를 살폈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이성연이 사소한 물건에 욕심을 내며 손버릇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은채는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이제 그녀를 내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은채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방을 나와 계단 위에서 아래층을 향해 단호히 외쳤다.

“정 집사님 어디 계시죠? 절 만나러 오시라고 전해주세요.”

뒤뜰에서 일하던 정이훈은 곧 호출을 받고 거실로 들어왔다. 은채는 굳은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고, 거실에는 이미 여러 명의 아주머니들이 모여 있었다.

“사모님, 무슨 일이십니까.”

정이훈은 은채의 평소와 다른 엄격한 모습에 놀란 듯했다. 은채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제 방에 있던 귀중한 물건이 사라졌어요. 오늘 제 방을 청소했던 사람, 그리고 제 방에 다녀간 사람들을 모두 조사해 주세요.”

정이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표정이 단호해졌다. 명문가인 하씨 가문에서 도난 사건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하씨 가문은 정보 유출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도난 사건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곧장 조사하겠습니다.”

정이훈은 정원사에게 명령을 내리며 말했다.

“경비원들을 불러오세요.”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거실에 있던 아주머니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중에서도 이성연은 은채 옆에 서서 불안한 얼굴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도련님이 안 계실 때 이런 소란을 일으키면 괜히 도련님 기분이 상하실지도 몰라요. 중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그냥 넘어가시죠.”

은채는 이성연의 불안한 눈빛을 보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걱정 마세요. 남편은 제게 화내지 않아요. 오히려 규칙을 어긴 사람이 있다면, 제가 아니라도 철저히 조사하겠죠. 정 비서님은 주혁씨를 오래 보셨으니 잘 아실 겁니다.”

정이훈은 은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곳에서는 절대 도둑질이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 물건이 얼마나 귀중한지와 상관없이, 이 집에선 손버릇이 나쁜 사람을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이성연은 은채와 정이훈의 단호한 태도에 주눅이 든 듯, 조용히 숨을 죽이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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