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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화

은정숙의 말을 들은 유남준은 즉시 주방에서 걸어 나갔다.

쿵!

나가면서 팔이 찬장에 부딪혀 큰 소리가 났고 위에 가득 진열되어 있던 양념통들이 거의 전부 바닥에 떨어져 부서졌다. 그중 하나는 유남준의 손등 위로 떨어져 매끈하고 새하얀 손에 퍼런 멍이 들었다.

유남준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걸었다. 요 며칠 그는 집안의 물건 위치를 전부 머릿속에 기억했으나 가끔 물품 위치가 변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집밖에 나가기 전까지 그는 또 의자와 테이블 등 몇 군데에 부딪히고 말았다.

서다희한테 전화를 걸어 당장 운전하여 오라고 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유남준은 정상인과 눈먼 사람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알게 되었다.

만약 눈이 보였다면 그는 진작에 차를 몰고 박민정을 찾아갔겠지만 지금은 서다희가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사는 곳이 여기랑 가까워 5, 6분 정도 되자 서다희가 도착했다.

서다희는 멀리서부터 유남준이 눈이 덮인 길목에 서있는 걸 보았다. 박민정한테 쫓겨난 줄로 알고 우산을 가질 새도 없이 급히 유남준한테로 뛰어갔다.

“대표님, 왜 이러고 계세요?”

유남준은 전화로 다른 얘기는 없고 빨리 오라고만 했다.

“차 몰고 서산에 있는 한 만둣집으로 가.”

“네.”

신림현 서산에는 만둣집이 하나밖에 없는데 장사가 너무 잘 되다 보니 줄을 한참을 서야 살 수 있었다.

만둣집에 도착한 후 박민정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손님한테 마련한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긴 코트를 입은 사람이 그녀 앞에 섰다.

“민정아.”

고개를 드니 연지석의 연예인 뺨치는 준수한 외모가 눈 안에 들어왔다.

“지석아, 너 왜 여기 있어?”

“네가 아주머니더러 나한테 전화해서 여기 만두가 맛있다고 얘기하라 한 게 아니었어?”

연지석의 말을 듣고 박민정은 목구멍이 턱 막혔다.

은정숙이 만두가 먹고 싶어 그녀를 심부름 보낸 게 아니라 연지석과 이어주려고 그랬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나 또 연지석이 난감해할까 봐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는 말을 차마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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