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 나가라고요?”소민근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뜻밖에도 진루안이 자신에게 꺼지라고 하는 말을 들은 것이다!어쨌든 자신은 큰 그룹의 회장이기도 하고, 아버지 소우성은 건성의 민생 대신이기도 하다. 만약 진루안에게 약간의 감성지수만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듣기 거북하게 자신에게 소리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진루안은 정말 모든 서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자신에게 꺼지라고 했고, 이는 환각을 본 것이 아니다.서호성의 표정에는 난처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을 띠고 있지만, 또 감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소민근이든 진루안이든 모두 미움을 살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사위는 더더욱 절대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서호성이 또 어떻게 불쾌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진루안이 소민근을 처리하는 것은 모두 진루안의 일로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진루안은 소민근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계속 말했다.“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꺼지라고요!”“사소한 걸로 대단한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면서 나를 매수하려는 겁니까? 당신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겁니까?”“당신의 아버지는 또 누군데? 왜 감히 자신이 나를 만나러 오지 못하는 겁니까?”“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기에 자신은 오지 못하면서, 구태여 당신을 보내서 개망신을 당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부질없는 짓 아닙니까?”“돌아가서 당신의 아버지께 전해요. 만약 이 일에 관련되지 않았다면 쓸데없이 관여하지 말고, 만약 이 일에 관련이 있다면 그럼 내 탓을 하지 말라고요!”“꺼져!”몇 마디 말을 하면서 진루안의 공포스러운 기세가 휩쓸자, 소민근이 어떻게 진루안과 맞설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화가 났는지 놀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놀라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어쨌든 그는 지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단지 복잡한 눈빛으로 진루안을 한참동안 주시하다가 결국 서씨 가문 저택 밖으로 나갔다.소민근이 나가려고 하자 서호
전화벨이 오랫동안 울린 후에야 비로소 통화가 연결되었다.“아버지, 일이 실패했어요. 진루안은...”...서씨 가문 저택의 홀 안.진루안은 계속 테이블 앞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소민근의 뒷모습을 보던 눈빛이 석형묵에게로 이동했다.진루안이 자신을 바라보자, 석형묵은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진루안에 대한 두려움도 갈수록 커졌다.그는 진루안의 신분을 잘 알고 있다. 그들 부자가 이전에 진루안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단지 자신이 외국을 숭배하고 결탁하려고 하고 선조들을 폄하하는 것만으로도, 진루안은 결코 자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단지 여러 이유로 줄곧 이 부자를 손을 보지 못했는데, 오늘 기회를 잡은 진루안이 또 어떻게 풀어줄 수 있겠는가?“정말 오래간만이네. 석형묵 씨!”진루안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석형묵을 바라보며 말했다.진루안의 눈빛과 기색을 본 석형묵은 가슴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고,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느꼈다. 진루안만이 자신에게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다.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그 자신이 훤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럴수록 지금 더욱 두려워하는 것이다.“진, 진 선생님 안녕하세요!”석형묵은 더듬더듬 인사를 했지만 속으로는 몹시 당황했다.석운사는 자기 아들의 이렇게 두려워하는 모습을 봤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그때 그들 부자 두 사람은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날조했다. 인터뷰에서는 더욱 방자하게 진루안을 모욕하면서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진루안을 여론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만들었다.비록 그 첫 번째 여론의 풍파가 최근의 두 번째처럼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진루안이 그들에게 손을 쓰기에는 충분했다. 심지어 그들을 죽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진 선생님, 우리 부자가 잘못을 알고 있습니다. 진 선생님, 용서해 주십시오!”석운사는 석형묵보다 좀 더 숙련된 모습이었다. 그는 지금 자신도 모르게 일어섰고 심지어 진루안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이면서, 진루안
‘이렇게 됐으니 비밀을 지킬 필요도 없어. 차라리 진루안에게 직접 말해야겠어.’“형묵이는 내 아들이 아닙니다. 서호성의 사생아인데 단지 내 호적에 올려서 그의 아들을 키웠을 뿐입니다!”와!석운사의 이 말이 나오자, 서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서지숙과 서미숙은 더더욱 믿을 수가 없어서 오라비인 서호성을 바라보았다.그녀들은 정말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런 일이 생겼단 말이야? 저 석형묵이 오빠의 사생아라는 거야?’‘큰오빠는 도대체 바깥에 몇 명의 사생아가 있는 거야?’‘그리고 지금 이 비밀을 진루안과 서경아 앞에서 말했으니, 이 두 사람의 서호성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은 더욱 커지겠지.’과연 석운사가 이렇게 비밀을 말하자, 진루안은 갑자기 자신의 하찮은 장인 서호성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진루안의 눈빛에 서호성은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그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그는 진루안이 화가 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특히 석형묵이 자신의 사생아라는 말을 듣자 이 분노는 더욱 커졌다.진루안은 서호성에게 석씨 부자와 너무 많이 연루되지 말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고 탓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이런 위협 속에서도 서호성은 여전히 자기 식으로 행동했는데, 진루안은 이제서야 그 이유를 완전히 알 수 있었다.‘이제 마침내 이유를 찾았어. 원래 이 석형묵은 서호성의 사생아로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어. 그러니 어떻게 자신의 아들을 상관하지 않을 수 있겠어.’‘아들은 혈통을 잇는 핏줄이고, 딸은 남의 대를 이어주는 생명수 역할을 하는 거야.’그래서 서호성은 여태까지 서경아를 좋게 대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이든 성인이든 모두 그랬다. 만약 진루안이 서경아의 처지를 바꾸지 않았다면 여전했을 것이다.다만 지금의 서경아는 서씨 가문에서 여전히 아무런 지위도 없지만, 오히려 그들 서씨 가문의 일꾼이 되고 그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이제 이 모든 것이 변했다. 서호성이
“아이고, 사위,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안 돼!”자신의 아들이 진루안에게 끌려와서 바닥에 쓰러지고, 진루안이 발로 얼굴을 밟자 서호성은 당황했다.어쨌든 자신이 석형묵의 친아버지인데, 진루안이 석형묵에게 손을 쓰는 걸 어떻게 빤히 보고 있을 수 있겠는가? 가슴이 아파서 일어선 서호성은 진루안의 앞에 와서 뻔뻔스럽게 사정했다.“진 서방, 그러면 안 돼. 석형묵은 확실히 내 아들이야. 자네가 한 번 좀 봐주게.”서호성은 이미 진루안에게 무릎을 꿇을 정도에 이르렀다. 사위 앞에서 장인인 자신의 체면과 존엄은 조금도 없었다.소설속에 나온 것처럼 장모는 발 씻는 물을 따르라고 하고, 장인은 뺨을 때리고 병신이라고 불렀다. 지금 서호성이 감히 진루안의 뺨을 때릴 수 있을까? 한 번 해 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결과가 어떨지는 서호성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석형묵의 안전을 보호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장인 어른, 얘를 지키려는 겁니까?” 잔뜩 긴장한 장인이 무릎을 꿇을 듯이 자기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본 진루안은 큰 소리로 물었다.서호성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친아버지인 자신이 당연히 석형묵을 관여해야 했다. 정말로 석형묵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진 서방, 내가 부탁하겠네.”그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진루안이 그래도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다면 자신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그러나 만약 진루안이 석형묵을 죽인다면 필연적으로 서호성과 원한을 맺게 될 것이고, 이후의 두 사람이 원한을 풀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진루안은 서호성을 주시하다가 담담하게 웃었다.“그래요. 제가 장인어른의 체면을 봐서 건드리지 않겠습니다!”“휴...” 이 말을 들은 서호성은 흥분하여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진루안의 큰 도량에 온갖 감격의 찬사를 늘어놓았다.진루안은 지금 서호성이 늘어 놓는 감격의 표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이 석형묵을 건드리지 않은 이유는 서호성과 원한을 맺는 게
진루안은 이미 일어선 석형묵을 보고 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석형묵은 만면에 기대하는 기색이 가득한 석운사를 보았지만, 확고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니요, 나는 그를 대신해서 벌을 받지 않겠어요.”“앞서 유언비어를 퍼뜨려 말썽을 일으켰고, 또 나를 꼬드겨서 당신을 모독하게 한 것은 모두 석운사 씨의 생각으로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단지 가담만 했을 뿐입니다.”지금 석형묵은 석운사를 도와 죄를 짊어지는 건 고사하고, 오히려 석운사를 짓밟으면서 모든 죄를 석운사에게 떠넘겼다.석운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정말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20여년간 키웠던 아들이 뜻밖에도 이런 말을 한 거야?’그는 놀란 나머지 더욱 마음이 서러웠다.‘알고 보니 내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배은망덕한 놈을 키웠네. 허허.’‘나도 정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어.’ ‘형묵이 비록 서호성의 사생아지만, 내가어릴 때부터 키웠기에 서호성에게는 한 푼도 쓰지 못하게 했지. 형묵이 출국해서 유학을 했을 때는 내 돈을 더 써서 수억, 수십억 원에 달하는 유학 비용을 썼어.’‘결국 이런 ‘인재'를 키우게 될 줄은 몰랐어.’“훌륭한 아들이야!” 석형묵을 바라보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 석운사의 눈에는 조롱기가 가득했다.이 조롱하는 미소 속에는 조롱과 실망의 웃음이 섞여 있었다.서호성은 석형묵이 이렇게 하면 좋지 않다고 느꼈다. ‘어쨌든 석운사는 20여년간 자신을 길러준 양아버지인데, 이렇게 바로 석운사를 포기한 거야?’그러나 진루안의 눈에는 이런 사람은 미래에 어떤 발전도 없을 것이기에, 이미 석형묵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만약 서호성이 정말 보호하려 한다면 조만간 석형묵에게 연루될 것이다.그러나 진루안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운사를 보는 눈에는 차가운 기운이 반짝였다.“내가 당신의 팔을 끊는 것은, 당신이 헛소문을 퍼뜨리고 말썽을 일으킨 죄를 갚는 셈입니다!”석운사가 반응하기도 전에 진루안이 한손으로 내리치자, 석운
“잠깐만!” 진루안은 석운사를 불러서 그의 마음을 한바탕 두렵게 만들었다.‘설마 진루안이 생각을 번복하고 내 목숨을 원한단 말이야?’석운사의 안색이 창백한 것을 본 진루안은 그의 생각을 알았지만, 너무 많이 설명을 하지 않고 지갑에서 백지 수표 한 장을 꺼냈다.“펜을 가져와!” 진루안이 소리쳤다. 누구에게 특별히 분부할 필요도 없었고, 13, 4세 정도의 아이가 달려와서 펜을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세원아, 고마워!”서세원의 머리를 쓰다듬던 진루안은 이 서호성과 조영화가 낳은 아이에 대해 다소 연민을 느꼈다.조영화의 죽음은 서호성이 손을 쓴 것이다. 그는 사람을 조종해서 조영화를 교통사고로 죽였고, 병실에 있던 조영화의 남동생 조윤을 불이 나게 해서 죽였다.‘이 두 사람은 깨끗이 죽었기에 서호성을 의심할 부분이 없었지.’‘서씨 가문의 도련님인 서세원 이 아이만 남겨두었을 뿐이야.’‘이 아이는 조용화가 죽은 뒤부터 아주 과묵해졌어.’“매형, 천만에요!” 입을 헤벌리고 웃은 서세원은 구석 자리로 돌아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던 진루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저으면서 펜을 들고 수표에 4억 원을 썼다.“수표를 가지고 병원에 가세요. 남은 돈은 당신에게 주겠어요!”“나 진루안은 이치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모질다고 탓하지 말아요.”“알겠어요?”진루안의 말과 건네준 수표는 석운사의 마음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 젊지만 능력이 출중한 진루안에 대해서 그는 정말 탄복했다.그러나 그는 이 수표에 손을 내밀지 않고 떠났다.석운사는 그래도 그 정도의 기개는 가지고 있었다.수표를 받지 않고 떠난 석운사를 진루안은 답답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그래도 인물인 셈이야.”“그가 수표의 돈이 적다고 불쾌하게 생각한 건가?”석운사가 떠난 후 석형묵은 적지 않은 자유를 느꼈다. 게다가 앞으로 자신은 서씨 가문의 도련님이기에 아주 자유로웠다.일어선 뒤에 사양하지
“루안씨, 우리 아빠의 말과 오늘 일은 마음에 두지 말아요.”차에 앉은 서경아는 진루안이 어둡고 무거운 표정으로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 서씨 가문에 간 일에 대해서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도 석형묵이 뜻밖에도 자기 아버지의 사생아라는 것을 몰랐다. 이 일은 전혀 소문이 나지 않았기에, 죽은 계모 조영화도 이 일을 몰랐을 것이다.아버지와 누가 이 아들을 낳았는지에 대해서도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그러나 이 일이 진루안을 화나게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진루안을 위로하면서 서씨 가문과 완전히 틀어지지 않도록 해야 했지만, 그녀 자신도 딜레마에 빠졌다.“괜찮아요, 화가 난 게 아니라 단지 석운사가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서경아가 자신을 위로하는 것을 본 진루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서경아는 진루안이 정말 화가 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자신도 석운사가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20여년간 아들로 길렀는데, 나중에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석형묵도 그를 전혀 상관하지 않았어.’물론 석운사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모두 불쌍하다고 생각할 뿐이고, 그를 동정하지는 않았다. 이 모두는 그가 마땅히 치러야 할 죗값이다.만약 그가 처음에 서호성을 도와 아들을 기르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지만,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니 이런 결말을 맞은 것도 의외가 아닐 것이다.“루안씨, 그 차은서는 지금은 어때요?” 서경아는 이 일을 언급하지 않고 차은서를 언급했다.차은서가 얼마 전 진루안에게 복수하고 싶어했고 또 자신의 정조를 망치도록 손을 썼기 때문에, 서경아는 이 차은서에게 관심이 많았다.그녀는 지금까지 이렇게 한 사람을 미워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차은서는 뼛속까지 미워하면서 유일하게 보복할 생각을 가진 상대였다.차은서는 죽지 않으면 서경아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 독한 여자가 또 어떤 잔꾀를 생각해내서 루안씨를 상대할지 누가 알겠어.’이전에는 자신이
‘연수아와 관련되지 않았다면 연정은 내게 거의 전화를 하지 않았어.’“여보세요, 연정 장군.”[진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핸드폰을 내려놓은 진루안의 안색은 굳어 있었다. 또 걱정을 품은 채 핸드폰을 손에 쥐고 오래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침대에서 일어난 서경아가 침대 머리맡의 스탠드를 켜자 즉시 침실이 밝아졌다.“루안씨, 왜 그래요?” 얼굴이 약간 붉어진 서경아가 진루안에게 물었다. 진루안이 온몸에 불을 붙인 뒤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경아씨 나 잠깐 나가야 해요!” 진루안은 굳은 표정으로 서경아에게 말했다.그러나 그의 표정은 약간 망설이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기색이었다. 특히 서경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있었다.서경아는 이때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는데, 진루안의 이런 표정을 보자 더욱 의구심이 들었다.진루안이 한밤중에 외출한다면 절대 작은 일이 아닐 것이다.“경아씨, 연수아가 얼마 전에 서북 변경에 있는 한 부대의 부사령관으로 갔어요. 방금 연수아의 오빠 연정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연수아가 병사들과 함께 순찰을 돌던 중에 이웃 국가의 포탄에 부상을 입었다고 해요. 아직까지 생명이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요.”“나는 지금 서북쪽의 목강성에 가야 해요!”진루안은 서경아에게 이 일을 숨길 수도 없어서 자연히 사실대로 이야기했다.서경아는 연수아가 포탄에 맞아 상처받았다는 말을 듣고 표정에 바로 초조한 기색이 드러났다. 연수아가 진루안을 좋아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서경아는 연수아 이 아가씨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용모나 신분, 가문은 자신에 비해서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더 좋기도 했다.‘만약 내가 없었다면, 진루안과 연수아가 맺어질 기회가 가장 많았을 거야.’‘지금 연수아에게 일이 생겼으니, 루안씨의 마음속에는 틀림없이 답답함과 자책감이 있을 거야.’연수아가 왜 그렇게 위험한 국경 지역에 갔는지 묻지 않았지만, 진루안이 그녀의 감정을 거절한 것과 관계가 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서경아는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