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위에 지도를 쫙 펴 놓고 지도에 선과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꼼꼼하게 분석한 결과 강서준은 다시 새 지도와 펜을 들고 지도의 한 곳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렸다.서청희가 물었다. “찾았어요?”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감을 잡은 듯싶다.“강한 별장이 불에 탔을 때 밤이었어요. 저녁 밥을 먹고 강물에 뛰어들자마자 정신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 동굴에 있었어요. 그때 배고픔을 느꼈으니 지하 동굴이 강한 별장과 멀지 않았을 거 같아요.”강서준은 지도에서 강을 가리켰다.“이 강을 따라 표류했네요. 표류하는 속도로 보아 지하 동굴이 아마 이 근처에 있을 거예요.”그러면서 산을 가리켰다.서청희가 물었다.“그럼 언제 출발하게요?”강서준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급하지 않아요. 아직 이곳인지 확실하지 않으니까 먼저 알아봐야 돼요. 소요왕한테 부탁해야겠어요.”말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오늘 너무 바빠서 마중 나가지 못했어요. 미안해요.”휴대폰 너머로 소요왕의 목소리라 들려왔다.“괜찮아요. 참, 사람 좀 빌려줄 수 있어요?”소요왕이 물었다. “무슨 일이죠?”“내가 찾을 곳이 있는데 몸 좀 쓰는 사람이 필요해서요.”“그렇다면 최동을 보낼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최동에게 연락해요.”“고마워요.”“우리 사이에 인사치레는 사양하죠. 끊을게요. 바빠서.”소요왕이 통화를 끊자 강서준은 최동에게 연락했다. 10년 전 동굴을 찾을 것이니 몸이 민첩한 병사 수십 명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강서준이 소파에 기대어 휴식하고 서청희는 동그라미를 그린 지도를 살펴보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 액정을 봤더니 김초현이다.서청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초현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강서준이 잠든 걸 확인하고 조용히 나와 문밖에서 전화를 받았다.“초현아, 무슨 일이야?”“청희야, 혹시 강서준이랑 같이 있어?”김초현이 짤막하게 물었다.서청희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서청희, 내 말 들려?”서청희는 심호흡을 들이마셨다
김초현은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벽에 부딪친 휴대폰은 액정이 깨지면서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미쳐버리겠어.”씩씩거리면서 소파에 털썩 앉았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하연미가 다가오더니 깨진 휴대폰을 보고 물었다.“아, 아니야.”김초현은 심호흡을 하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밖으로 나갔다.‘강서준은 내 거야. 누구도 탐내선 안 돼.’서청희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강서준이 거기에 있을 거야.’김초현은 방금 뽑은 포르쉐 스포츠카를 몰고 서청희의 별장으로 향했다.한편, 서청희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을 알았다.김초현과의 우정을 위해 그동안 참고 있다가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되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강서준과 함께 있는 순간부터 김초현과의 우정을 끊어야 된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강서준이 곤히 잠들다 눈을 떴다.서청희가 옆에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말소리에 서청희가 정신을 차렸다.“아, 아니에요.”강서준은 휴대폰을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다.“나가서 좀 걸어요. 너무 답답하네요.”“알았어요.”서청희는 휠체어를 찾아 강서준을 앉히고 밖으로 나갔다.별장에서 나와 별장 단지의 도로를 천천히 걸었다.서늘한 가을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서청희는 멀리 가지 않고 단지 근처만 돌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포르쉐 한 대가 달려왔다. 바로 김초현이다.서청희의 별장에 도착하기 전에 밖에서 산책하는 서청희와 강서준을 보았다. 김초현은 급하게 차를 세우고 씩씩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두 사람에게 다가가자마자 서청희의 뺨을 쳤다.“서청희, 내가 너를 믿었는데 어떻게 내 남자를 빼앗아?”뺨을 맞은 서청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다.“아니야, 네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왜 이러는거야?”강서준은 김초현이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이러는 건 바라지 않았다.화가 잔뜩 난 김초현을 보며 꾸짖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왜 사람을 때려요? 사과
“상관있어요. 당신은 내 남편이잖아요. 우리 가서 재결합…”김초현은 강서준을 끌고 가려고 잡아당겼다. 하지만 너무 힘을 준 탓에 강서준은 힘없이 휠체어에서 곤두박질쳤다.“뭐하는 거야?”서청희가 달려와 김초현을 밀어버렸다.“지금 몸이 허약한 게 안 보여?”황급히 땅바닥에 쓰러진 강서준을 일으키며 걱정스럽게 물었다.“괜찮아요?”강서준이 손을 저었다. 그 장면을 본 김초현은 울부짖었다.“서준 씨, 나랑 청희 중에서 누굴 원해요? 청희예요 아니면 나예요?”서청희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강서준을 부축해 휠체어에 앉히고 눈을 부릅떴다.“김초현, 넌 말끝마다 강서준을 사랑하고 위한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네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잖아. 지금 고독에 중독돼서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해. 그래도 재결합할 거야?!”“뭐라고?”그 말에 김초현이 화들짝 놀랐다.“몇 개월밖에 안 남았다고요?”믿을 수 없었다.“말해 봐요. 사실이에요?”강서준은 휠체어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진기를 수련할 수 없다면 확실히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 운이 좋으면 몇 년은 더 살겠지만 몇 개월 뒤에 온몸이 마비되어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서청희가 다시 물었다.“이래도 재결합 할 마음이 있어?”“나, 나…”김초현은 뒷걸음을 치며 망설였다.머릿속에 수많은 벌레들이 날면서 윙윙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랐다.서청희가 이를 악물었다.“넌 강서준을 사랑한 적이 없어. 오로지 흑룡이라는 신분만 사랑했던 거야. 지금 흑룡도 아니니 진심을 말해 봐. 그래도 사랑해? 만약 지금도 사랑하고 평생 옆에서 돌볼 수 있다면 내가 물러날게.”평생을 돌봐야 된다는 말에 김초현은 흠칫 놀랐다.모용우가 한 말을 똑똑히 들었다. 강서준이 고독에 중독되면 서서히 몸이 쇠약해지고 근육이 위축되어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도 못할 거라고 했다.게다가 자신도 고독에 중독되어 피부가 점점 썩고 검은 반점이 생긴다고 했으니 앞날이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없었
강서준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김초현을 머릿속에서 떨쳐냈다. 그는 서청희의 얼굴에 난 빨간 손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일어나 손을 뻗어 어루만졌다."아파요?""네."서청희는 서러운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강서준의 품에 파고들었다."저는 서준 씨를 잃고 싶지 않아요. 서준 씨가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초현이한테 돌아가면 어떡해요?"강서준은 서청희를 끌어안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건 저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 저는 초현 씨한테 빚진 걸 평생 갚아야 해요. 이번에도 저 때문에 고독에 중독되었는데, 제가 어떻게 해독 방법을 알고도 모르는 척할 수가 있겠어요."서청희는 강서준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해가 되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그래도 서청희는 지금 강서준의 품에 안겨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다른 일은 실제로 닥친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서청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한테 김초현보다 못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니까."콜록..."강서준의 기침 소리를 듣고, 서청희는 그를 다시 휠체어에 앉혔다."바람이 쌀쌀해요. 저희는 이만 돌아가요.""그래요."강서준이 머리를 끄덕였다.서청희는 강서준과 함께 빌라 안으로 들어왔다.얼마 후, 최동이 건장한 소요군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와서 강서준에게 말했다."형님, 제가 능력 좋은 녀석들로 골라왔습니다. 앞으로 이 녀석들은 형님의 명령만 따를 겁니다."강서준은 그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그래."최동이 계속해서 말했다."앞으로 필요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저를 부르십시오. 제가 뭐든지 대신해드리겠습니다.""켁..."강서준은 입을 막고 기침을 했다. 그러자 손바닥은 피로 흥건해졌다.서청희는 종이를 갖고 와서 강서준의 손을 닦아주려고 했다.강서준이 종이를 받아들며 말했다."그냥 저한테 줘요."강서준은 피를 닦으며 최동에게 말했다."지금 바로 지프차 몇 대, 텐트, 잠수 장비, 그리고 먹을 것을 준
서청희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러지 말고 우리 그냥 다 같이 가요.""흥."김초현은 콧방귀를 뀌며 서청희를 무시하고 강서준을 부축해 주려고 했다."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아요."강서준은 김초현의 손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차에 올라탔다.김초현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강서준의 옆자리에 앉았고, 서청희도 지지 않고 반대쪽 차 문을 열고 강서준의 옆자리에 앉았다.모두가 차에 올라탄 후, 지프차는 하나 둘 출발하기 시작했다.강서준은 뒤로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김초현은 강서준의 손을 잡으며 일부러 애정행각을 했다."여보,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예요?"서청희는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서준 씨는 지금 안정이 필요하니까 그냥 조용히 있어."김초현이 차가운 말투로 받아쳤다."내가 내 남편이랑 말하겠다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너...!"서청희는 인상을 확 구겼다.강서준은 천천히 눈을 뜨며 김초현에게 말했다."그냥 조용히 있어요. 초현 씨가 지금 얼마나 귀찮게 굴고 있는지 알아요? 계속 말할 거면 그냥 차에서 내려요."김초현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강서준의 어깨보다 더 편한 곳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의 어깨에 가만히 기대 있었다. 그녀는 시간이 이 순간에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차는 빠르게 움직여 보룡산 일대로 도착했다. 이곳은 강중과 강북의 접경 지역에 있었다.보룡산 부근.지프차가 길가에 주차되고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강서준도 차에서 내려와 먼 곳에 있는 넓은 강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밤은 강가에서 보내도록 하지."최동이 지시를 내렸다."얼른 가서 텐트를 설치해."동행한 특전사들은 빠르게 짐을 들고 강가로 가서 텐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강가.강서준은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있었다.최동이 다가가서 담배 한 대를 건넸다. 그러자 강서준이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끊었어."최동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고는 넓은 강을 바라보며 말했다."이곳에 뭘 찾으러 오신 거예요?"
보룡산의 태운강.강가에는 텐트가 아주 많이 설치 됐다.강서준은 커다란 바위에 앉아 휴대폰을 들고 10년 전 강한그룹 사건이 일어난 3개월 동안의 날씨를 관찰했다.곁에 앉아있던 서청희가 물었다."서준 씨, 뭘 봐요?"김초현도 궁금한 모습이었다.김초현은 강서준을 잃을 수 없었고 그가 서청희와 함께 있는 것도 싫어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따라왔다.강서준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10년 전에 비가 왔는지 안 왔는지 알아야 강물의 깊이를 추측할 수 있어서 날씨를 보고 있었어요."서청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강물의 깊이를 알아서 뭘 하려고요?"강서준이 설명했다."내가 강에 뛰어들었을 때 나무토막을 잡고 살아남았거든요. 그렇게 동굴까지 떠내려갔던 것 같은데 강물의 깊이를 알면 자세한 위치를 추측할 수 있잖아요."김초현이 물었다."무슨 동굴을 찾고 있는데요? 강물의 깊이라면 제가 알 것 같아요. 내가 10년 전에 태운강에서 놀고 있었잖아요."강서준이 김초현을 힐끔 보며 물었다."강물의 깊이를 안다고요?"김초현은 사색에 잠겼다.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그때 몇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강물이 엄청 얕았어요. 제가 친구들이랑 강가에서 게를 잡던 생각이 나네요."강서준이 물었다."확실해요?""네."김초현이 머리를 끄덕였다.10년 전에 그렇게 큰일이 일어났으니 김초현은 그날의 일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강서준은 태운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바로 판단이 선 듯 머리를 들었다.몇 개월 동안 비가 안 왔다고 계산하면 아마 10m~20m 정도 잠수해야 할 것이다.강서준은 생각과 대화를 멈추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고독이 뇌신경까지 퍼져서 만약 과도하게 머리를 쓴다면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워질 것이다.주변을 수소문하러 간 특전사들은 금방 돌아왔다."건너편의 산에 동굴이 아주 많은데 길이 사면팔방으로 다 통한다고 합니다.""강 건너편에도 동굴이 있는데 지금은 물에
하지만 김초현이 빠르게 가로채서 강서준을 부축해 줬다. 그러고는 서청희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이런 일은 나한테 맡기고 너는 떨어져. 남녀가 유별한데 어디 유부남 몸에 손을 대려고 하는 거야."서청희는 어색한 표정으로 강서준을 부축한 손을 놨다.서청희가 명의 상의 여자친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강서준이 허락하기는 했지만 김초현이 전 와이프라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었다.서청희는 김초현에게 여전히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김초현의 남편을 빼앗은 것처럼 느껴졌다.강서준은 춥고 머리 아프고 몸에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누군가와 싸울 힘은 더더욱 없었던 지라 그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강서준은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서청희를 힐끔 봤고, 서청희는 알겠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김초현은 강서준을 데리고 휴식하러 이불과 베개가 전부 준비되어 있는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곁에 앉아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강서준에게 물었다."서준 씨, 혹시 아직도 저한테 화가 안 풀렸어요?"말하기가 싫었던 강서준은 그저 눈을 감고 있었다."대답을 안 하는 건 역시 화가 안 풀렸다는 뜻이죠?"김초현의 목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지자 강서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시야에서 김초현은 아주 흐릿했고 몸집도 여러 개로 겹쳐 보였다.강서준은 힘겹게 눈을 깜빡였고 이제야 김초현이 조금 또렷하게 보였다."지금은 말하기 싫으니까 이만 나가주면 안 돼요? 좀 조용히 있고 싶어요."강서준이 무기력하게 말했다."싫어요. 저는 오늘 꼭 담판을 내고 말 거예요."김초현은 고집스럽게 강서준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그를 일으키고는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며 그의 몸을 흔들어댔다."제가 다 잘못했다고 했잖아요. 근데 왜 아직도 용서를 안 해주는 거예요? 서준 씨가 저를 사랑한다는 걸 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 이만 다시 시작하면 안 돼요? 제가 서준 씨를 평생 보살펴 줄게요."안 그래도 머리가 어지러웠던 강서준은 김초현때문에 더 어지러워졌다. 그는 기침을 하며
김초현은 넋을 잃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서준 씨가 나를 위해 해독 방법을 찾고 있다고?'이 순간 그녀는 자신이 강서준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달았다. 강서준이 해독 방법을 찾고 있을 때도 어리광이나 부리고 말이다."나는..."김초현은 입을 벌리기는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서청희는 김초현을 지나치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강서준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는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듯 안색이 창백했다.강서준의 모습을 보고 서청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강서준은 감당하지 못할 고통에 다시 눈을 떴다.이번에는 머리뿐만 아니라 온몸이 다 아팠다. 마치 수많은 벌레가 살을 뜯고 피를 빨며 뼛속까지 파고든 것처럼 말이다.강서준은 수많은 전투를 이겨온 전사였다. 그는 온몸에 다쳐보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견디기가 힘든 듯 무릎을 끌어안고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서 뒹굴었다."악...!"밖에서 강서준의 비명소리를 듣고 서청희와 김초현이 후다닥 달려들어왔다.강서준이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바닥에서 뒹구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안색이 확 변했다.서청희는 자세를 낮추고 강서준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서준 씨, 왜 그래요?"김초현은 넋을 잃은 채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뒤따라 온 최동도 고통스러워하는 강서준을 보고 속이 말이 아니었다. 한 나라의 영웅이 이런 결말을 맞이한 것은 민족의 비애였다.고통은 예고 없이 시작되고 예고 없이 끝났다.몇 분 후 고통이 수그러들고 강서준은 서청희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서청희는 자신의 옷소매로 강서준의 땀을 닦아줬다."괜찮아요."강서준은 서청희를 향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모든 힘을 다 해서야 제대로 일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또다시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서청희는 벌떡 일어서서 그를 부축해 줬다."몸이 불편하면 그냥 누워서 쉬어요."강서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래 누워 있어도 답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