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턱을 괸 강하랑은 배시시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어쨌든 오늘은 대표님이 제 시간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럼 이번 달 임무에서 한 장을 빼주시면 안 될까요?”말끝에 애교를 섞으며 눈을 반짝이곤 해맑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다시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생긴 연유성은 일부러 모른 척 천연덕스레 말했다.“그 말은 오늘 이 식사 자리 때문에 사랑 씨 시간을 낭비했다는 거예요?”마지막 한 마디에 그는 사실 섭섭한 마음을 조금
그냥 친한 사이도 아니다.“혹시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생각에 잠겨있던 그녀의 귀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시 멈칫하던 그녀는 그제야 이미 주차장까지 내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은 따로 운전해서 왔다. 지금 두 사람에겐 여기서 헤어지거나, 아니면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는 선택밖에 없었다.고민하던 와중에 남자의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아직 떠오르는 곳이 없으면 제가 추천하는 곳으로 가볼래요?”강하랑은 눈썹을 튕겼다.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연유성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이미 사랑 씨
목적지 없는 드라이브라니.조수석에 앉은 강하랑은 그의 말에 바로 고개를 돌려 그를 보지 않았다. 그저 태연하게 뒤로 휙휙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보았다.서해는 비록 빠르게 발전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시 원래의 모습을 잃은 건 아니었다.원래의 모습에서 나무와 꽃을 더 많이 심었다. 그래서인지 멀리서 보면 마치 숲속에 높은 빌딩이 세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아름다운 자연과 현시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고층 건물의 조합이라.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어울렸다.만약 정말로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운전하는 거라면, 어쩌
툭 내뱉은 그녀의 말은 오래된 친구를 대하는 것 같았다.연유성은 익숙한 호칭에 살짝 멈칫하더니 다시 정신을 차렸다.시선을 떨군 채 자신의 옷깃을 꼭 잡고 있는 강하랑을 보며 목울대를 움직였다. 그윽하게 그녀를 보고 있었지만 이미 신경이 온통 거리에 팔린 강하랑은 그 시선을 알 길이 없었다.“지난번 단 대표랑 같이 사랑 씨 찾으러 왔을 때 승우가 알려줬어요. 사랑 씨도 알다시피 이곳은 지씨 가문의 구역이거든요. 그래서 승우가 이곳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죠.”낡은 동네가 지씨 가문의 것이라는 것은 사실 과장된 말이다. 여하간에
낡은 동네의 거리는 아주 북적거렸다. 길가의 노점상들은 대부분 음식을 팔고 있었다.입구 쪽엔 옷과 신발을 팔고 있었다. 전부 싸게 처리하는 것들이었고 가격 흥정은 사절한다는 글이 상자에 쓰여 있었다. 사장은 의자에 앉아 확성기를 틀어놓고 있었다.만약 다른 곳에서 이런 확성기 소리를 들었다면 강하랑은 아주 시끄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이곳에서 들으니 더욱 뭔가 구경할 마음이 생기는 기분이었다.사람이 붐비는 곳엔 당연히 여러 가지 시끄러운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려야 했다.옷 파는 곳을 지나치자 중간엔 또 다
가족끼리 온 사람도 있었고, 강하랑과 연유성처럼 젊은 커플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의자에 앉아서 고른 것이 아닌 인형을 꺼내는 사장님 곁에 다가가서 고르는 사람도 있었다.이 속도라면 두 사람이 밥을 먹고 나오기도 전에 원하는 인형이 다 팔리게 될 것이다.자리가 있든 말든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에 드는 인형을 손에 넣여야 했다. 마음에 드는 인형이 아니라면 색칠을 예쁘게 해도 속상할 것 같았다.연유성의 건의에 강하랑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들어 사장님이 꺼내고 있는 인형을 짚으며 말했다.“
강하랑의 나직한 목소리가 인파를 뚫고 연유성의 귓가에 흘러 들어갔다.순간 주위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가 사라진 것 같았다.멍하니 강하랑을 보고 있던 연유성의 가슴은 쿵쾅쿵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뛰었다. 귓가에 심장 소리만 남았다.노을빛 아래 둘만 남은 것 같았다.주위에서 아무리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와도, 오가는 사람들과 부딪쳐도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한 채 눈앞에 있는 강하랑만 빤히 보았다.그때의 화재사건 후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걱정했다.연성태는 그가 죽어 연씨 가문을 이을 사람이 없을까 봐, 온서애는 마지막으로
“사랑 씨, 다른 것도 먹어보지 않을래요?”강하랑은 눈썹을 살짝 튕겼다.“사랑 씨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요. 내가 얼른 가서 사 올게요.”사실 거절하려고 했다.하지만 옆 가게 사장이 내온 홍어회를 보니 코를 찌르는 냄새가 풍겨왔고 하려던 말마저 침과 함께 삼켜버렸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정말로 다 말해도 돼요? 제가 먹고 싶은 음식을 전부 말해도 되나요?”강하랑은 연유성이 아마도 홍어회 같은 음식을 먹어보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생활한 환경이 연바다와 다르긴 했지만 딱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