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연바다를 내버려두기로 했다.강하랑의 계획이 잘 풀린다면 두 사람은 얼마 같이 있지도 못할 거니까.이 거짓된 감정을 그동안 더 지켜보려고 한다.그저 꿈이라고 할지라도.만약 강하랑의 계획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면...그녀는 열심히 고민했다. 만약 연바다의 곁에서 떠날 수 있다고 해도 이 폭군은 그녀를 다시 잡아 올 것이다. 두 사람은 영원히 예전처럼 지내지 못할 것이다.지금의 분위기도 어제와 다른데, 그때가 되면 더욱 험악할 것이다.가짜는 가짜일 뿐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아무리 진짜처럼 위장해도 그 포장을 벗겨내
연바다는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그녀의 웃음을 마주했을 때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순간 그 호칭 때문에 난 짜증이 사라져 버릴 정도였다.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침대맡에 앉은 강하랑은 이미 그릇을 들고 먹고 있었다. 연바다도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목울대를 꿈틀거렸다.“필요한 거 있으면 다시 불러.”그렇게 말하면서 강하랑에게서 시선을 뗐다. 설탕을 부어주면서 말한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좀 더 낮았다.숟가락을 내려놓은 후, 그는 테이블 위의 노트북과 핸드폰을 들고 떠났다. 마치 도망치는 것 같
“오케이, 알았어. 그만할게.”푸른 눈동자의 소년은 두 손을 들면서 항복을 얘기했다. 말투도 꽤 진지해졌다.“하지만, 핸슨. 이번에 귀국하더니 성격이 꽤 변했네? 예전과는 다른 기분이야. 정말... 연애해?”“너, 한가해?”연바다는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한쪽에 놓고 노트북을 들고 뭘 연구하기 시작했다.핸드폰 속의 남자는 억울한 듯 얘기했다.“그저 궁금했을 뿐이야.”어릴 때 만난 여자를 위해서 자기를 바꾼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니까.물론 영상 통화를 건 이유도 잊지 않았다.“맞
그 생각은 마치 넝쿨처럼 연바다의 머릿속에서 퍼져나갔다.연바다는 배에서 중상을 입고 깨어난 강하랑을 떠올렸다. 마치 갓 눈을 뜬 아기 새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의 엄마를 찾는 것 같았다. 조금만 잘해주면 마음을 다해서 믿음을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연바다는 그때 깨어난 강하랑이 그리웠다.해외에는 전두엽 제거 수술도 있어서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사람이 바보가 될 수 있었다. 기억뿐만이 아니라 다른 감정까지 모조리 잊어버린, 그런 바보 말이다.연바다는 그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결국 얻는 게
아마도 강하랑이 이렇게 얘기할 줄은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연바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여전히 한쪽 무릎을 꿇고 등을 곧게 세운 자세였다.하지만 차갑게 굳은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아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강하랑은 손을 들어 대담하게 그의 머리를 만졌다. 예쁜 얼굴에는 미소가 걸렸다.“이거 봐. 나도 답을 내놓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어.”“그럼 만약 내가...”연바다의 목소리는 조금 쉬었다. 서늘한 강하랑의 손을 쥔 그의 눈동자는 조금 어두워졌다.“만약 내가 앞으로 널 속이지 않겠다고 하면?
연바다는 이튿날 아침에야 강하랑이 열이 난 것을 발견했다. 호텔의 웨이터가 아침을 가져다주어서 침실의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깊이 고민한 연바다가 미간을 찌푸리고 방문을 열었다.안은 어두웠다. 어제의 약 냄새가 아닌 싱그러운 향기가 나고 있었다.연바다는 침대맡으로 와서 어제 놓고 간 온수를 확인했다. 절반이나 사라져 있었다.침대에 누워있는 강하랑은 전혀 방해를 받지 않은 듯, 두 눈을 꼭 감고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멀쩡해 보이는 강하랑을 보고 연바다의 굳은 표정이 약간 풀어졌다.“하랑아?”그는 약간
진정석이 나가자 연바다는 더는 시간을 끌 것도 없이 얼른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간편하게 갈아입을 수 있는 옷가지와 세면도구 등 말이다.짐을 가지고 가는 일은 당연히 그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대충 정리를 하고 한쪽으로 밀어두면 호텔 직원이 알아서 들고 올 것이다.그리고 그는 그저 강하랑 한 사람만 책임지고 데리고 나오면 되었다.물건을 정리한 후 그는 얇은 담요를 그녀의 몸에 두르고 안아 올렸다.병원엔 아침부터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도시락을 들고 있었고 아픈 사람을 위해 아침을 준비해 온 듯했다. 엘리베이터 앞은 더더
어쨌든 인생의 단맛만 느끼며 살았을 테니 이런 선택을 하는 것에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그간 연바다가 강하랑을 어떻게 대했는지 진정석은 전부 보았다.거의 모든 일을 그가 처리하지 않으면 연바다가 직접 나서서 처리했고 그야말로 강하랑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살폈다고 말할 수 있었다.만약 강하랑이 이런 보살핌에 익숙하였다면 분명 다른 일에서도 연바다에게 먼저 의지할 것이다.그러나 그는 몰랐다. 온실 속에 장미처럼 키워지던 사람이 과거에 어떤 풍파를 견디며 살았는지 말이다.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연바다의 냉담한 목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