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유혁은 침묵에 잠겼다. 단이혁이 한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어젯밤 그는 단이혁과 교대로 창가를 지키기로 했다. 혹시라도 연바다가 강하랑을 데리고 야반도주할까 봐서 말이다.하지만 피곤함에 찌든 몸은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져 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느덧 단이혁이 강하랑을 찾았다고 문자 보냈을 때였다.비록 그도 꽤 일찍 깨어난 편이지만, 단이혁 혼자 창가를 밤새워 지켰다는 생각에 죄책감부터 들었다. 만약 단이혁이 없었다면 강하랑을 무사히 찾을 수 없었으리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강하랑이 말이 맞는다고 해도 그가 입
‘우리는 너 혼자 납치범을 만나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이 한마디는 마치 커다란 돌멩이처럼 강하랑의 가슴속에 박혔다. 너무 아파서 다른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그녀는 잠깐 침묵하다가 힘들게 말을 꺼냈다.“우리... 그냥 떠날까요?”그녀의 시선에는 얼굴에 피멍이 든 지배인이 보였다. 불과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으면서 조식을 추천하던 그 사람이 말이다.잠깐 사이에 바닥에 엎어져서 원래의 모습은 알아볼 수도 없게 된 그를 보고 그녀는 마음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단이혁과 단유혁의 설득이 없더라도 말이다.‘오빠들이랑
어느덧 기분 좋게 불던 살랑 바람이 멈추고, 짹짹거리면서 지저귀던 새들도 날아갔다. 고요한 공간 속에서 연바다는 강하랑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하랑이는 내가 누구이길 바라?”연바다의 목소리는 단이혁에게 말할 때와 달리 한없이 다정했다. 마치 그녀가 자신이 연유성이기를 바란다면 그냥 연유성으로 살 것 같은 모습이었다.반대로 강하랑은 정답을 알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모르는 척하는 것은 자신만 우습게 만든다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이 황당한 현실을 웃는 것인지, 자신의
단유혁의 말이 맞았다. 단유혁의 말이 없더라도 고개만 숙이면 연바다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강하랑이 돌아간다고 해서 단이혁과 단유혁이 무사할 거라는 보장은 당연히 없었다. 연유성의 이름으로 그녀를 기만할 정도로 거짓말에 능할 사람을 어떻게 믿겠는가?그녀는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자 단이혁이 곧바로 말을 보탰다.“단사랑, 유혁이 말이 맞아.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넌 절대 우리의 걸림돌이 아니야. 우리한테도 너 하나 지켜줄 능력은 있으니까 이쪽으로 와.”운학산에서 일어났던 비극은 한 번이면 족했다. 단이혁은 강하랑이
“들어가자, 경호원도 전부 데려갈게.”연바다는 다정한 자세로 강하랑의 귀가에 대고 말했다.“이번에는 장난이 아니야, 믿어줘.”강하랑은 연바다가 그녀의 손을 잡도록 가만히 내버려뒀다. 반항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분고분한 그녀의 태도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연바다는 손을 들어 단이혁과 단유혁을 가로막은 경호원들은 물러나게 했다. 이제는 연바다와 그녀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아선 경호원밖에 없었다.머리를 돌리지 않고도 부산스러운 발걸음 소리를 들은 강하랑은 안도
“미친놈?”연바다는 머리를 갸웃하기만 할 뿐 화를 내지는 않았다. 미친놈, 악마, 정신병자... 이런 호칭이라면 이미 질리도록 들었기 때문이다.인간은 이렇듯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게 꼬리표를 달고는 한다. 그 타인은 자신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데도 말이다.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연바다는 진작 화를 내고도 남았겠지만, 강하랑이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그래, 네 기분만 좋아질 수 있다면 뭐라고 해도 좋아. 그까짓 욕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어.”연바다는 손을 거두면서 시선을 내렸다. 나지
강하랑은 그 소리에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하얗고 매끈하던 피부는 종이 때문에 붉은 흔적이 생겼다. 지금 모습을 보면 정말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연바다는 그대로 우뚝 멈춰 섰다. 검은 눈동자는 더욱 깊어졌다.그 모습을 본 강하랑의 마음속에서는 저도 모르게 두려움이 치솟았다. 그녀는 멍하니 자기한테 다가오는 연바다를 쳐다보았다. 연바다가 강하랑 앞에 멈춰서서 손을 뻗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하지만 공간이 없어서 물러날 곳도 없었다.연바다는 더 움직이지 않았다. 강하랑이 그를 피할 때 그는 손을 내민
호텔 밖. 해가 높이 떠오르고 있을 때, 단이혁과 단유혁을 둘러싸고 있던 보디가드들도 점점 사라져 콘크리트 바닥 위에 있는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떠나기 전에 그들은 바닥의 피를 깨끗이 닦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곳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어느새 길에는 단이혁과 단유혁 두 사람만 남았다.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해가 치솟아 공기는 뜨거웠지만 두 사람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형, 이제 어떡해요?”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두 사람은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하지만 태양 아래에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