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혁도 의자에서 일어나 지승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얘기했다.“기회는 알아서 잡는 겁니다. 내가 주는 게 아니라.”그 말에서 단원혁의 태도를 알 수 있었다.지승현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강하랑이 지승현을 받아들일지는 모른다.결과가 어떻든, 단원혁의 말에 지승현은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강하랑의 가족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만족스러운 일이었다.지승현은 평소처럼 미소 지으며 얘기했다.“제가 노력하겠습니다. 형님이라는 호칭을 조금 더 뻔뻔스럽게 부를 수 있도록 이요.”안경 너머로 감출 수
지승현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있겠어요?”오히려 지승현을 도와주고 있었다.강하랑은 그것도 모르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단이혁이 저번에 강하랑 앞에서 지승현이 늑대니 기생오라비니, 하면서 뒷담화를 너무 많이 해서 걱정된 것이었다.게다가 이번에는 단원혁이 그를 따로 불러냈으니...“우리 큰오빠가 좋지 않은 말을 했다면 크게 신경 쓰지 마요. 우리 가문 사람들... 알고 보면 다 착한 사람이에요.”마지막 말을 하면서 강하랑은 괜히 마음에 찔렸다.오빠들이 그녀에게 잘 대해주는 것은 확실했다. 항상 가장 좋은 것만 강하랑
“아이고, 이런. 우리가 때를 잘못 잡고 나타난 것 같군.”강하랑은 등 뒤로 익숙한 향기와 온화한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그대로 굳어버린 강하랑은 지승현을 확 밀어냈다. 동시에 얼굴뿐만 아니라 귀마저 빨갛게 물들어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엄마, 엄마가 이 시간에 어쩐 일로 나오셨어요?”은은한 달빛 아래 강하랑의 작은 그림자는 남자의 커다란 그림자에 겹쳐졌고 두 사람의 모습은 다른 사람 눈엔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정희월은 눈웃음을 지으며 두 아이를 보았다.“나랑 아줌마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너희 둘이 대담하게 집 앞에
1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텃밭은 어느새 장미밭이 되어 한쪽 담벼락을 차지하고 있었다.장미가 피어날 때면 항상 은은한 장미 향이 정원을 지배하곤 했다.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선 강하랑은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참, 승현 씨는 왜 갑자기 장미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는 거예요?”강하랑은 고개를 홱 돌려 뒤에 있던 남자를 보았다.지승현은 시선을 내리깔더니 갑자기 입꼬리를 올렸다.“방금까지 키스해놓고 아직도 날 승현 씨라고 부르는 거예요?”강하랑의 얼굴이 다시 순식간에 빨갛게 익어버렸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하며 다소 수줍은
강하랑의 핸드폰 화면에 바로 가족 단톡방이 나와 있었고 정희월이 찍어 올린 듯한 사진이 있었다.사진 속 여자는 비록 아담했지만 기세는 약하지 않았고 남자의 옷깃을 잡아당긴 채 바싹 붙고 있었다.남자의 모습은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고 다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눈빛으로 어정쩡하게 행여라도 여자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하지만 찍은 각도 탓인지 아니면 어두웠던 탓인지 두 사람이 정확하게 무엇을 하는지 찍히진 않았다.단톡방엔 전부 성인들이었다. 아직 어린이였던
지승현은 나직하게 웃으며 말했다.“알아요. 사랑 씨만 절 좋아하면 돼요.”“...”맞는 말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들으니 무언가 기분이 이상했다.강하랑은 습관적으로 귀를 만지작거리면서 화제 전환하려고 했다.“그, 저기, 큼. 이 방이에요. 오늘은 이 방에서 지내요. 필요한 거 있으면 목희 아줌마한테 말하거나, 아니면 저한테 말해도 돼요.”“그래요.”지승현은 강하랑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방은 아주 평범한 손님방이었다. 아마 단원혁이 미리 손목희에게 말해둔 것인지 침대는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고 협탁엔 수면 향초가
지승우는 하던 말을 멈추었다.한참 지나서야 그는 다소 귀를 의심하는 어투로 말했다.“유성아, 지금, 지금 뭐라고?”‘미친 거 아니야? 상처 부위도 아물지 않았는데 퇴원을 하겠다고? 지가 불사조라도 된다는 거야 뭐야?'그러나 연유성은 농담이 아닌 듯했다.키보드 위에 분주히 움직이던 손가락이 멈추더니 천천히 연유성은 고개를 들어 지승우를 보았다.“확실히 다 나은 건 아니지만 계속 병원에 누워있을 정도는 아니야. 의사도 움직여도 된다고 했어. 상처 부위만 주의한다면. 한주 쪽 상황은 너도 잘 알잖아. 내가 계속 돌아가지 않고
선이 그어진 딱딱한 태도. 마치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그는 강하랑이 화를 내면서 찾아와 그에게 따져 묻기를 바랐다.적어도 강하랑이 그에게 아직 마음이 있다는 증거였으니까.하지만 지금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강하랑의 목소리는 걱정이 가득한 것 같지만 마치 인터넷에서 떠도는 안부 인사를 복사해서 그대로 그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성의 없는 걱정 같은 것이었다.그 짧은 몇 개월이란 시간 사이에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빨리 변하다니.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되는 건 또 아니었다. 모든 시초가 그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