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어둠이 드리워졌다.무영산 촬영장엔 밝은 조명이 하나둘씩 켜졌다.장군역을 맡은 배우들은 갑옷 의상을 입은 채 높게 솟은 나무 아래서 횃불을 들고 있었고 은은한 횃불 불빛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었다.그리고 반대로 맞은 편엔 촬영 조명이 밝게 켜져 있었다.시멘트와 기와로 지어진 현대 느낌이 물씬 나는 건물 주위로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맡은 임무를 척척 해내고 있었다.강하랑은 카메라 뒤에 서서 자신의 오빠인 ‘성세혁'을 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웃음을 짓더니 감탄을 했다.“감독님, 이 촬영 구도를 좀 보세요. 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장비를 주섬주섬 챙기며 폭포가 있는 쪽으로 가려 했지만, 귀에 들려오는 유준규와 촬영장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되는 성세혁 동생 강하랑이 나누는 얘기에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사실 강하랑은 톱스타인 성세혁의 동생이란 이유로 유준규와 친해진 것이 아니었다.촬영 현장에서 제공되는 밥은 정말로 맛이 없었고 촬영장 위치가 산꼭대기에 있었던 터라 모든 사람이 직원 전용 식당에 가거나 방으로 돌아가 알아서 라면을 끓여 먹는 수밖에 없었다.그랬기에 하는 수 없이 강하랑이 직접 요리를 했다.그녀는 박씨 가문에서 요리
달빛에 반사되어 날카로운 빛을 뿜고 있는 칼이 강하랑의 목에 드리워졌고 주위에선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강하랑은 입술을 틀어 문 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그녀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서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보면서 그녀에게 달려오고 있었다.제일 먼저 그녀의 앞으로 다가온 형체는 단유혁이었다. 평소에도 냉정했던 얼굴은 한없이 차갑게 일그러져 있었고 천천히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사랑이를 놔줘!”“거기 멈춰 서!”강하랑은 목에서부터 가벼운 고통을 느끼게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의 행동에 따라 숨을 참게 되었다.그들은 강하랑이 내뱉은 말에 남자가 마치 그녀를 죽일 듯이 흥분할 줄은 몰랐다.조마조마한 순간에 그 칼은 포물선을 이루더니 바닥에 꽂혀버리게 되었고 남자는 바닥에 쿵 소리와 함께 제압당하게 되었다.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소리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은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도 듣게 되었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본인들의 허리에 올렸다.물론 강하랑의 힘으론 남자의 허리를 부러뜨릴 순 없었다.그녀가 남자를 제압할 때부터 머리가 먼저 바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닿게 되었으니 분
“누구 짓이든 이젠 상관없어. 어차피 도망가지도 못할 테니까. 그러니까 넌 얼른 나랑 함께 치료받으러 가. 넌 어찌 된 애가 감독님 곁에 있어도 다치게 되냐?!”단이혁은 다시 강하랑을 끌어당기며 잔소리를 해댔다.강하랑은 그의 말에 다른 계획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자신에게 숨기고 있다는 사실에 바로 입을 삐죽 내밀었다.촬영 준비하던 사람이 단세혁인 줄 알았을 땐 그녀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납치범이 방금 그녀에게 칼을 겨눴던 순간보다 더 초조했다.그리고 그녀가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이 아니었다.어디서 갑자기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단세혁의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옅은 상처를 치료하는 수밖에 없었다.사실 그녀의 몸에 있는 흉터에 이해 이 옅은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더는 자신을 걱정하지 않기를 바랐기에 얌전히 약을 발랐다....옷을 갈아입은 단이혁은 쉬지 않았다.달빛에 비친 나무 그림자 아래 고엽을 밟으니 바스락 소리가 났다.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이혁이 형.”단이혁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단유혁이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두 사람은 그렇게 그곳
그 사람은 온몸으로 퍼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단이혁에게 밟혀버린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기에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강하랑 목에 있던 붉은 상처를 떠올린 단이혁은 바로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남자를 보았다. 손을 밟는 것만으로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그는 몸을 낮추더니 날카로운 칼을 납치범의 얼굴에 갖다 대였다. 그리곤 여전히 느긋한 어투로 말했다.“말해 봐. 대체 누가 시킨 거지? 그리고 내 동생을 데려가 찍으려 했던 영상은 또 뭐지?”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칼이 남자의 얼굴에 닿았고 뺨을 때리듯 단이혁은 칼을 흔들었다
그리고 남자가 한 말을 어느 정도 믿고 있었다.아마도 정말로 강세미에게 미쳐버린 극성팬이 더는 스크린에서 자신의 연예인을 볼 수 없게 되자 충동적으로 벌인 범행이 분명했다. 여하간에 만약 정말로 강세미가 시킨 일이었다면 아마 강하랑을 납치하여 영상 나부랭이나 찍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남자의 행동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고 웃겼다.더는 납치범을 상대할 생각이 없어진 단이혁은 눈빛을 보내자 덩치가 큰 남자가 바로 끌고 갔다. 아마 경찰에게 넘길 것으로 보였다.그리고 남은 한 사람...그는 여전히 칼을 든 채 시선을 돌려 나무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