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원지민은 확신했다. 반달 후에는 확실히 이씨 가문 안주인 자리를 굳히리라는 것을.기분이 하도 나빠 원지민은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그래서 VIP 병실 휴게실의 문을 열며 말했다.“들어와.”그러자 임호가 즉시 따라 들어왔다.휴게실은 고급스럽고 화려했다.원지민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약간 꼬고 임호를 바라보며 여왕처럼 말했다.“무릎 꿇어. 날 즐겁게 해줘.”임호의 그 무심한 눈빛에 잠깐의 변화가 일었다.곧이어 그는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더니 익숙하게 행동했다.이 순간 그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임호는 어둠의 섬에서 태어났고 원지민의 부친은 딸의 안전을 위해 많은 돈을 주고 그를 고용했다.원지민의 부친은 어둠의 섬의 충성스러운 죽음의 전사들을 선택했다.그들은 평생 단 한 명의 주인만 섬기니 말이다.하지만 그는 자신이 직접 선택한 경호원이 그에게 치명적인 약을 먹일 줄은 몰랐다.그가 어둠의 섬 전사들의 맹목적인 충성심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이다.주인이 시키는 대로라면, 설령 아버지를 죽이는 일이라 해도 그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따를 것이다.그래서 임호는 원지민의 가장 더러운 손발이었다.모든 더러운 일들은 임호가 처리했다.그리고 임호가 배신할 걱정도 없었다.죽음의 전사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배신하지 않으니 말이다.벽 속에 흔들리는 그림자 속에서, 한 검은 그림자가 몸을 숙여 기어 다니며 경건하게 주인을 섬기고 있었다.아무런 거리낌 없이 쾌락을 추구하며...모든 일을 마친 후.조금 전 자극을 받은 몸 때문에 원지민은 의자에 앉아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말했다.“다음번에는 주의해, 실수하지 않도록.”그녀는 첫 경험을 최고의 가치로 활용하고 싶었다.임호 같은 출신이 천한 사람에게 말고 말이다.그가 잘 섬기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을 찾았을 것이다.얼굴이 붉어진 채로 원지민은 조금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임세희는 지금 어떻게 됐어?”임호는 대답했다.“감시하고 있습니다. 죽지는 않
임세희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남자가 어떻게 욕하든 별 반응이 없었다.이 집은 원래도 고물상이 월세를 내고 있었고 그녀도 고물상이 여기로 데려왔다. 아니면 잘 곳도 없었을 것이다. 돈이 없어 성병을 고치려 해도 고칠 수가 없었다. 전에 다친 상처가 아물지 못해 점점 덧나고 있었다.절름발이 남자가 문을 열고 나가서야 임세희는 고개를 들었다.반쪽은 아무 문제 없었지만 다른 반쪽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흉측하기 그지없었다.임세희의 얼굴은 길가에 버려졌을 때 차에 치이는 바람에 아스팔트 길에 스치면서 반쪽 얼굴을 아예 날려버리게 되었다.그 고통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다.임세희는 고통을 참아내며 차주와 사적으로 해결하며 돈을 좀 받아내려 했지만 차주가 기어코 신고해 보험 처리했다.임세희는 경찰에게 잡혀갈까 봐 두려워 고통도 참은 채 도망갔다.그렇게 최적의 치료 시간을 놓친 얼굴은 아물어가면서 울퉁불퉁해졌고 흉측하게만 변해갔다. 인맥도 없고 돈도 없고 가족과도 관계를 끊었으니 여기서 밥이나 얻어먹으며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절름발이도 그녀를 내쫓고 싶어 했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임세희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때 문이 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임세희는 아래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지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반쪽 얼굴에 금장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눈빛이 독수리처럼 부리부리했다.“복수하고 싶어요?”남자가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저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인가요?”임세희는 상대가 누군지 묻지도 않고 바로 자신을 도울 수 있는지만 물었다.지금 임세희는 얼굴과 몸이 다 망가진 상태였다. 이대로 그냥 잠자코 있기엔 정말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하지만 이준혁은 옆에 보디가드를 많이 두고 있었기에 가까이 다가가기가 힘들었다.윤혜인도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복수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이런 상황에 먼저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
임세희는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고층 빌딩과 별장에서 이 더럽고 지저분한 판잣집에 오기까지 쭉 회상했다. 그리고 얻어낸 결론은 바로 다 윤혜인 때문이라는 것이었다.그때 강에 빠져서 죽어버렸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을, 살아서 돌아와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임세희는 윤혜인을 뼈저리게 증오했다.그 빌어먹을 윤혜인이 꼭 대가를 치러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KB 클럽.웨이터가 문을 닫고 나가자 곽경천의 시선은 맞은편에 앉은 이준혁에게로 향했다. 이준혁은 늘 그랬듯 외모가 준수했다.“이 대표님 아프다더니 이렇게 나와도 되는 거예요? 혜인이는 그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집에서 전복죽 끓이고 있던데. 아주 내 동생을 꽉 잡고 놓아주지를 않네요.”곽경천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그 말에 마음이 따듯해진 이준혁은 표정이 살아났다.준수한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번졌다. 곽경천은 그 미소가 유난히 눈에 거슬려 코웃음 쳤다.“사람 마음 가지고 노는 건 정말 타고났네요.”이준혁은 아직 완전히 나은 게 아니었기에 어딘가 병약해 보였다. 그는 올라간 입꼬리를 다시 내리며 진지하게 말했다.“형님, 오해에요. 저는 절대 혜인이 가지고 논 적 없어요. 진심으로 사랑합니다.”곽경천은 갑자기 날아든 형님이라는 호칭에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다.전에 윤혜인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아직 책임을 따져 묻지도 못했는데 감히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곽경천이 표정과 말투가 싸늘해졌다.“형님이라고 부르지 마요. 명을 재촉하는 걸로 들리니까.”까만 보석 같은 이준혁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인내심 있게 곽경천의 비아냥을 받아줬다. 자세를 낮추는 표현이기도 했다.하지만 곽경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간을 찌푸렸다.“그 마음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 내가 살아있는 한 내 동생은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할 테니까요.”곽경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내 뜻은 잘 전달된 것 같네
곽경천이 서류를 열어보니 안에는 기밀 문서가 들어 있었다.타이틀에 적힌 글자에 곽경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안에 들어있는 건 이준혁의 유서였나.뒤로 펼치면 펼칠수록 곽경천의 미간이 점점 더 구겨졌다.그러다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지금 가지고 있는 것의 80퍼센트를 혜인에게 남기겠다는 말인가요?”“네, 맞아요. 유서는 이미 공증을 마친 상태입니다. 다시 변경할 가능성은 없어요.”곽경천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준혁은 유산 중 80퍼센트는 윤혜인의 몫이었고 20퍼센트는 어머니에게 남겨준 것이다.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도 대개 알 것 같았다. 이준혁이 엄마보다 여자를 더 중요시한다는 건 아니다. 이준혁의 어머니는 지금도 이선 그룹의 주식을 6퍼센트 가지고 있었다. 유산으로 20퍼센트까지 받으면 그 비율은 무조건 윤혜인을 초과하게 될 것이다.그래도 충분히 놀라운 결정이었다. 몇조나 되는 자산을 이렇게 쉽게 준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이준혁이 진지하게 말했다.“형임, 제가 이걸 보여준 건 당장 혜인이와 결혼하는 걸 동의해 달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속죄할 기회만 주시면 돼요.”“전에는 일만 하다 보니 혜인이를 아껴주지 못해서 고생을 많이 했을 거예요. 아이까지 잃게 했죠. 그래서 형님이 반대하는 것도 다 이해해요. 그래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만나는 걸 막지만 말아 주세요. 혜인이가 선택한 사람이 결국 내가 아니더라도 이 유서는 바뀌지 않을 거예요.”“이번 생에 여자는 혜인이 하나에요.”이준혁은 마지막 말에 힘을 실었다. 그는 감정을 막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그 사람이라고 마음을 먹으면 죽을 때까지 일편단심으로 그 사람만 바라봤다.윤혜인을 위해서라면 모든 가능성을 다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이준혁은 곽경천이 돌려준 서류를 다시 들이밀며 진지하게 말했다.“이 서류는 형님이 대신 보관해 주세요.”곽경천은 입술을 앙다문 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만나는 것만 막지 않으면
곽경천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듣기 좋은 말은 다 할 수 있죠. 근데 실제로 그 말을 지킬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에요.”이준혁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만약 혜인이가 더 낳고 싶지 않다면 아름이가 저희의 유일한 아이가 될 것이라고 약속드리겠습니다.”비웃던 곽경천은 굳은 얼굴로 말문이 막혔다. 상장 기업의 대표가 이런 약속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이는 기업의 계승과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평생 아이가 아름이 하나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더욱이 아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말이다...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곽경천은 이 남자를 다시 훑어보면서 살짝 굳은 얼굴로 물었다.“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사람은 다 이기적이다. 특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들 같은 사람들에게는 일반 사람들보다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들이 제멋대로 결정하기에는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이준혁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이 사항에 대해서는 혼전계약서에 이미 추가했습니다.”곽경천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혜인이가 당신과 결혼한다고 누가 그래요?”함부로 넘겨짚기도 유분수지, 아직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은 이미 혼전계약서까지 작성했다고 한다.“이 일은 전적으로 혜인의 결정에 맡기고 강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름이에게 완전한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어요.”그는 검은 보석같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곽경천을 보면서 진지하게 약속했다.“형님께서 저한테 기회를 주신다면 저는 혜인이와 아름이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목숨 걸고 맹세하겠습니다.”곽경천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 반반한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엄청나게 놀랐다. 이 남자는 보통이 아니다. 협상의 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신경 쓰고 있는지 잘 알고 있고 꺼낸 조건들도 전혀 꼬투리를 잡을 수 없고 거절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가 아름이를 좋아하는 모습도
“알겠어요. 고마워요, 홍 아줌마.”윤혜인의 얼굴에는 기쁜 표정이 서렸다. 하지만 그녀가 도시락통을 받아들고 뒤도는 순간 차에서 내린 곽경천과 마주치게 되었다. 순간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세상에, 오늘 오빠가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곽경천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어디 가?”“아니, 안 가는데.”윤혜인은 말을 더듬으며 시선은 신발만 쳐다보았다. 손에 들린 도시락통이 지금은 증거가 되었고 곽경천은 도시락통을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자신이 백설 공주에서 독 사과를 들고 있는 악독한 왕후의 역할이 된 것 같았다. 그는 시선을 돌리고 담담하게 말했다.“9시 전에 반드시 귀가해.”“응?”윤혜인은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곽경천의 표정을 보면 그녀가 어디를 가려는지 아는 듯한 모습이지만 그의 말투는 왜 이런 건지 어리둥절했다.‘오빠가 어떻게 허락할 수 있지?’윤혜인은 다시 물었다.“오빠, 나 진짜 가?”“응.”윤혜인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시 한번 확인했다.“정말 준혁 씨 보러 가?”이제는 숨기지도 않고 직접 물었다. 곽경천은 귀찮은 듯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보며 말했다.“가기 싫어?”윤혜인은 자신이 그 사람에게 가는 것을 허락했다고 확신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녀는 지금 당장 이준혁의 앞으로 날아가서 어떻게 오빠를 설득했는지 묻고 싶었다.“갈게, 오빠.”윤혜인은 몸을 숙여 기사의 차에 올랐다. 곽경천은 떠나는 차를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다 큰 여동생이 결국에는 품을 떠난다는 생각에 아련해졌다. 그는 두 사람이 그저 만나기만 하는 것일 뿐 결혼하는 것도 아니라며 자신을 위로했다....병원에서는 문현미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지민이 빈 도시락통을 가지고 나와 문현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이모, 준혁이를 달래서 다 먹었어요. 이모의 요리 솜씨가 늘었다고 칭찬까지 했어요.”“정말이야?”문현미는 활짝 웃었고 눈가의 자잘한 주름이 더 선명하게 보였
문현미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다가 아무 생각 없이 거울을 보았다. 그때, 띵 하고 뒤에 있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서 돌아보니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그녀는 마치 벼락에 맞은 듯했다. 저 옆모습은 누구랑 닮아있었다...문현미는 입을 벙긋거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따라갔다. 하지만 그때는 그 여자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녀는 앞에 있는 병실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 전체 층은 이준혁이 혼자 쓰고 있다. 저 사람은 설마...“이모, 왜 그래요?”원지민은 넋이 나간 문현미의 모습을 보고 다정하게 물었다.“내가...”문현미는 생각했던 말을 꺼내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원지민은 문현미가 몰래 이준혁을 보러 들어가려고 하는 줄 알고 살짝 불쾌했지만 이내 기분을 가다듬었다.“그럼 이제 돌아갑시다.”문현미가 흘리듯 물었다.“지민아, 윤혜인이 죽은 데 대해 준혁이가 괜찮아졌어?”원지민은 그 물음에 흠칫했지만 빠르게 대답했다.“준혁이한테서 그 일에 관한 얘기를 들은 지 한참 됐어요.”원지민의 시선은 문현미를 바라보고 있었고 웃으며 물었다.“이모, 그건 왜 갑자기 묻는 거예요?”문현미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저 갑자기 생각나서.”원지민은 망설이며 문현미를 보더니 얼른 다가가 다정하게 문현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이모, 오늘 마침 제가 시간이 생겨서 치료하러 같이 가요.”문현미가 대답했다.“요즘 나 괜찮아진 것 같아.”무엇 때문인지 그녀는 매번 심리치료를 하고 난 후에 머리가 텅 빈 듯 며칠 동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여 문현미는 본능적으로 치료하기를 거부했다. 원지민이 말했다.“가요, 이모. 제가 이미 예약을 다 해놨어요. 김 선생님께서 유명인사들의 예약도 다 미루고 이모를 기다리고 있어요.”김 선생님은 아주 유명한 심리치료 의사에서 많은 유명인사가 전문적으로 그를 찾아 심리치료를 받았다.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문현미도 더 거절하기 미안하여 고개를 끄덕
나올 때, 문현미는 다리가 나른해지고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마치 한순간에 몇 년은 폭삭 늙은 기분이 들었다.“이모!”원지민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리는 문현미를 붙잡았다.문현미는 애써 머리를 짚은 채 하얗게 질려 생기를 잃어버린 입술을 뻐끔거렸다.“왜 손 떨리고 다리도 힘이 풀리는 거지...”그러자 원지민은 다급히 그녀를 부축하여 차에 태우고 입을 열었다.“이모, 제가 드린 약 제때 안 드신 거 아니에요?”“지난번에 실수로 좀 흘렸는데 다 먹고 약이 떨어져서 안 먹긴 했어.”“그럴 줄 알았어요. 근데 왜 저한테 말씀 안 하셨어요? 가져다드리면 되는 건데.”“그 약 구하기 힘들다고 그랬잖아. 너한테 부탁하기 미안해서 그랬지.”“이모, 이모는 그냥 저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잖아요.”미소를 머금은 원지민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남도 아닌데 어떻게 저한테 부탁하는 걸 미안해할 수 있어요?”그녀는 차에 준비해 온 약병을 꺼내 문현미에게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해외 지인분들에게 부탁해서 가져왔는데 구하기 쉽지 않은 약이라 갑자기 필요하실까 봐 좀 더 준비했어요.”약을 받은 문현미는 싱긋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고마워.””“시간 맞춰서 드시는 거 잊지 마세요.”원지민이 다시 한번 당부했다.이 약은 문현미가 잠을 푹 잘 수 있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요즘 약이 떨어져서 그녀는 늘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여 정신 상태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이 약만 먹으면 그녀는 이제 잘 수 있다.“지민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이모,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저한테는 사양하지 마세요.”원지민은 화난 척하며 문현미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제 마음속에서 저는 항상 이모를 친엄마로 여겼는데 설마 이모는 나를 남으로 여겼단 말이에요?”원지민의 눈을 본 문현미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지민아, 난 사실 너를 며느리로 삼았다...”며느리...며느리!짧디짧은 이 세 글자는 문득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문현미의 머리를
말을 마친 주석훈은 손에 감았던 삼각 머플러를 풀어 칼을 깨끗이 닦은 뒤 다시 넣고는 진아연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참혹하게 죽은 채 혼자 남겨진 진아연은 숨이 멎는 순간에도 눈을 크게 뜬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지 못한 채로 죽어버렸다....집에서 하룻밤을 쉰 소원은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서둘러 병원으로 유진을 보러 갔다. 다행히 점점 좋아지는 유진의 상태에 소원은 안도했다.육경한은 그녀를 만나 최근에 확인한 소식을 알려주었다.“진아연이 죽었어.”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에 소원은 자리에 얼어붙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어떻게...”소원은 단서가 이렇게 쉽게 끊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진아연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을 알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었는데 이제 그녀가 죽었으니 그동안 애써 찾아낸 다른 단서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었다.순간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범인은 안상철과 같은 방식으로 진아연을 죽였어. 똑같이 67번을 찔렀어. 범인은 인체 해부에 아주 숙련된 사람이야.”소원은 경계심을 품으며 물었다.“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상철 삼촌을 죽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말이야...?”만약 정말 같은 사람이라면 이 범인이 아마도 아버지를 죽인 진범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이 두 사람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응, 내 추측도 그래. 너도 조심하고 경계심을 잃지 마.”육경한은 반지를 꺼내 소원에게 건넸다.“이거 받아.”반지를 본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이게 뭐야?”소원이 손을 내밀지 않자 그녀가 오해한 것임을 눈치챈 육경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이건 호신용 반지야. 끼고 있어. 안에 바늘이 있는데 그 바늘에는 독이 있어서 이 바늘로 찌르면 상대방은 온몸의 힘이 빠지게 돼.”반지의 기능을 들은 소원은 그제야 이 작은 물건이 유용한 곳에 쓰인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받아서 손에 꼈다. 하지만 결혼반지를 끼는 곳에 아니라 독신임을 상징하는 손가락에 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지만 주석훈은 여전히 온화하고 젠틀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이런 장면에 익숙해진 듯 별 반응이 없었다.마지막 몇 번의 칼질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진아연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칼날이 그녀의 살을 천천히 파고들며, 생명은 마치 촛불이 꺼지듯 서서히 소멸해 갔다.죽을 수 있을 만큼의 고통, 그러나 죽지 못하게 만드는 고통. 그야말로 가장 잔혹한 죽음이었다.기운이 다 빠진 진아연은 주석훈의 차분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알겠어... TV 뉴스에 나왔던 안상철의 죽음도 당신...”진아연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진작 알아차려야 했다.“당신... 맞지...”이제야 모든 진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늦어도 너무 늦었다...그날 현장에 있었던 그녀는 안상철이 도망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상철이 돈을 숨겨둔 곳까지 몰래 따라갔다. 그녀는 그 돈이 신비로운 인물이 준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신비로운 인물이 주석훈인지 몰랐다.안상철을 따라간 진아연은 그 돈을 손에 넣어 자신의 도피 자금으로 쓰려고 했다.그래서 안상철이 돈을 파내는 것을 보고 망치를 들어 안상철의 머리를 내리친 뒤 돈을 챙겨 차를 타고 도망쳤다.그 후 며칠 동안 숨어 지내며 안상철에 대한 소문을 기다렸고 그러다가 안상철이 칼에 여러 번 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칼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강하게 내리쳤을 뿐이었고 힘도 많이 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안상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얻는 것이었다.살인이 두려워서 안상철을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살인죄까지 뒤집어쓰면 도주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 시점에서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것은 스스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하지만 안상철을 죽인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 이렇게 점잖은 주석훈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아연이 물었다.“왜... 왜 그 사람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는 거야...”주석훈이
심지어 진아연은 얼마 전까지도 주석훈을 젠틀한 문화인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큰 착각을 한 것 같았다.진아연은 주석훈을 향해 아첨하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변호사님, 어떤 일이든 할게요. 제발...”“쉿!”주석훈은 두 번째 손가락을 입가에 올리며 ‘쉿’하는 소리를 냈다.‘쉿’하는 그 소리에 온몸에 식은땀이 난 진아연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번뜩이는 칼날을 휘두르던 남자는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를 찔렀다.“안녕, 나는 주석훈이야.”“으악!”진아연은 하늘을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칼은 급소를 찌르지 않았지만 충분히 고통스러웠다.이어서 또 한 번 칼을 휘두른 주석훈은 이번에도 급소가 아닌 뼈 사이를 정확히 찔렀다. 날카로운 칼날이 조금씩 몸을 파고들자 진아연은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주석훈이 친절하게 말했다.“여긴 무릎뼈가 있는 곳이야. 다음은 발목뼈, 아마 통증이 다를 거야.”“왜... 왜, 왜 이러는 거예요?”진아연은 쉰 목소리로 힘겹게 물었다.“세상 일에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네가 저지른 일에는 인과응보가 따르는 법이지. 지금 겪는 건 그저 그 대가일 뿐이야.”말을 하면서 그녀의 뼈 사이를 정확히 찌른 주석훈은 날카로운 칼날로 진아연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또다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주석훈은 들리지 않는 듯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하나만 말해줄게. 나는 사실 법의학자가 될 뻔했어. 예전에 인체 해부하는 것을 좋아했거든.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어. 변호사가 된 이유는 돈을 빨리 벌기 위해서야.”주석훈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진아연에게 이야기했다.고통에 죽을 지경인 진아연은 울며 말했다.“나를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육경한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렇게 말했지. 하지만...”주석훈은 뼈관절을 해부하며 말을 이었다.“너를 믿을 수 없어. 쓰레기 주제에 두 번째 기회를 바라다니, 꿈 좀 그만 꿔!”무자비하게 조롱하는 주석훈의 말에
진아연의 이름을 들은 육경한은 매우 침착하게 천천히 말을 뱉었다.”괜찮아, 아마 걔는 살 수 없을 거니까.”“...”황수진은 육경한이 진아연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고 매우 놀랐다. 그가 보기엔 이 신비한 사람이 진아연을 구출한 것을 보면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한 패거리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하였지만 뜻밖에도 육경한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육경한은 동네 정문 쪽 동영상을 보면서 이리저리 보다 지프차량이 진아연을 돌격하는 곳에서 멈추었다.차량은 아무런 인정사정이 없이 그 자리에서 사고를 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마도 진아연 단지 입구에서 죽는다는 것이 정말 번거롭고 또 잠재된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방안을 바꾼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이 방안은 집행될 것이고 이 신비한 사람은 절대 진아연의 목숨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황수진이 지프차를 보았는데, 분명히 가짜 번호판이었지만 조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그가 한국 본토에서 활동하는 한 날 중에는 언제든지 증거가 남게 될 것이다.반대편 차 안에서 진아연은 그곳을 본 후 안색이 어두워졌다."제트 씨, 왜 저를 이렇게 황량한 교외에 두셨어요? 택시를 타고도 돌아가기도 곤란해요."“여기 안 오고 들키고 싶어요?"제트의 기분은 나빠지자 진아연은 감히 말하기 무서웠다."그럼 제가 내려가도 되나요?"진아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후에야 천천히 진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내려요.“진아연은 기쁜 마음으로 차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주 쉽게 차 문이 열렸다. 그녀는 일종의 재난을 모면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매우 기뻤다는데 한 발이 발밑의 땅을 금방 밟았을 때, 뒤에서 누가 등이 세게 걷어찼다.진아연은 멀리 차여 입에서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고 마치 자신의 몸이 해체되는 것처럼 느껴졌다.차근차근 차에서 내려 진아연의 앞에 다가와 걸음을 멈춘 남자를 보고 진아연은 어리둥절해졌다.“왜... 왜 저를 발로 차요?"제트는
남자는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만약 제가 당신에게 기회를 준다면요?”“무슨 기회요?”진아연은 자신이 누구와 거래하는지 잊지 않고 전전긍긍하며 물었다.남자의 두 눈은 마치 별을 숨긴듯 하였다. 그는 반혹적인 어조로 말했다.“육경한을 죽일 기회를 줄게요. 만약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저는 당신의 잘못을 추궁하지 않고 평안히 출국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 진아연 씨, 어떻게 생각해요?”“정말이에요?”진아연은 그의 말을 정말 믿기 어려웠다.제트를 마주할 떄 진아련은 항상 착각에 빠졌다. 사실은 육경한을 죽이는 것보다 제트를 마주하는게 더 어려웠다. 이 두 문제를 함께 놓으면 비교가 될 것이다.왜냐하면 그는 아주 신비하기에 누구도 그의 배경과 내력을 알 수 없어 그와 상대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경한의 약점은 아주 많다. 소원이와 그녀 뱃속에 있는 아이, 그리고 망할 놈 유진이... 심지어 하나하나의 나쁜 계획은 이미 진아연의 마음속에서 형태를 갖추게 되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제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물론 정말이에요, 당신이 성공하면 저는 말한 대로 다시는 따지지 않을 것이에요. ”말하는 사이에 남자는 뒤에 쫓아오는 세 대의 차를 가볍게 따돌렸다.이 제트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마냥 무섭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진아연의 마음속에 있는 제트는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그녀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어 놀라지 않았다.진아연은 눈앞의 남자를 보면서 자신의 충성심을 알려 주었다.“제트 씨, 안심해요, 저는 반드시 임무를 완수할 거니까. 당신은 저를 죽이지만 않으면 됩니다.”“음, 기대가 되네요.”“...”뒤따라오던 세 대의 차가 앞차를 잃어버린 후, 경비원들은 실시간 정보를 병실의 VIP 라운지에 전달했다.유진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남자는 황수진보고 유진이의 휴식에 방해 안 되는 대기실에 오라고 했다.지금 육경한의 안색은 매우 안 좋았다.경호원들이 전송해 오는 화면
남자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잡히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또 오다니 정말 바보 중의 바보예요!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곳 경비원은 다른 동네 분들과 다를 줄은, 이곳 경비원은 정말 최고급 경호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여자가 원망하자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진아연, 당신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멍청한 사람인 것 같아요. ”진아연은 순간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가 라는 생각에 그녀는 그를 경계하면서 물어봤다.“누구세요? “남자는 침묵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 가리려고 마스크를 썼지만, 눈빛에 드러나는 냉랭함은 숨길 수 없었다. 진아연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나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당신이 바로 제트 씨이세요? ”남자는 그녀를 상대하지도 않고 부인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설명했다. 진아연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바지에 실수까지 할 뻔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늑대 무리에서 도망쳐 나와 호랑이 굴에 들어갈 줄을... "제트 씨... 아주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여기에 나타난 건 아니예요. 지금 당장 꺼질게요. ”놀라움은 하여금 진아연의 이성을 잃게 만들어 고속도로에서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릴 생각까지 하였다.제트와 비교했을 때, 지금 뒤에서 자신을 쫓아오는 경비원들이 구세주라고 생각되었다. 진아연은 제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필경 지난번에 그의 손에서 죽을 뻔했으니까... 진아연의 손이 차 문손잡이에 닿았을 때, 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진아연은 절망 속에서 두 손을 비비며 용서를 비는 자세를 취했다. “죄송해요... 제트 씨... 저 진짜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저를 놓아주세요. ”안장이 좁아서 진아연은 무릎을 꿇을 수 없어 두 손을 끊임없이 비비며 아주 작은 희망을 찾고 있었다.남자는 역시 수단과 방법을 숨기고 있었다. 뒤차의 추격을 피하는 동시에
여자가 작은 골목에 들어섰을 때, 경비원이 말했다. “아가씨, 길을 잘못 들었어요. 13동은 저쪽에 있어요.”여자는 할 수 없이 돌아섰는데 경비원이 다시 말했다. “아가씨, 친구 보러 처음 오셨어요?”여자는 이곳의 경비원이 왜 범인을 검문하는 것처럼 자신을 물어보는지 이해 안 가 속으로 욕했다.여자는 대충 대답했다.“네네, 처음 왔어요.”13동 문 앞에 오자 경비원이 직접 603의 초인종을 눌렀고 방울 소리가 울리자,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경비원은 여자보고 말하라고 고개를 돌렸다.“...”정말 어쩔 수 없어 여자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아이고, 배가 너무 아파요.”여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경비원은 즉시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경비원이 구급차를 부르는 사이에 여자는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도망쳤다.“거기서요!”경비원은 일반인보다 더 빠르게 반응해 무전기에 대고 빨리 저 검은 옷 입은 여자를 잡으라는 말을 했다.여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점점 닫혀 가는 문을 보며 당황해 어리둥절했다.“닫지 말아요.”안에서 경비원이 소리를 듣고 여자 쪽으로 돌진해 왔다. 그들은 마치 여기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듯 일반 경비원보다 속도가 더욱 빨랐다.바로 얼마 전 육씨 그룹이 이곳의 부동산을 사서 전문적인 경호원으로 바꾸어 수상한 인물을 주시하여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파출소로 보냈다. 여자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어디로 도망갈지 몰랐다. “저 여자 잡아요.”전에 여자와 얘기하던 경비원이 소리쳤다. 여자가 잡힐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펑!큰 소리가 나 그곳을 보자 검은색의 지프차 한 대가 돌진해 들어와 난간에 부딪혀 부서지는 것이 보였다.대중들은 모두 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어리둥절하여 반응하지 못했지만, 지프차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자, 경비원들은 모두 재빨리 몸을 피했다.유독 여자만 제자리에서 자신한테 향해 오는 것을 멍하니 보며 어찌할 바
소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유진이를 보러 갈래”“필요 없어”육경한은 단호히 거절하다 멈칫했다. 그러다 소원이 자신이 아이를 못 본다고 오해 할가봐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보고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일도 다 병원에 가지고 갈 거니까. 넌 휴식이 필요해. 알았어? “유진이 병으로 쓰러진 후 소원은 며칠 동안 거의 밤새 자지 못해 눈 밑에는 이미 짙은 다크써클이 생겼지만 그녀는 억지로 버티는 중이었다.소원은 유진이 자신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육경한은 무슨 일이든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직접 휴대폰 음성 메시지를 소원이에게 들려주었다.“아빠, 엄마 보고 잠자고 있으래요.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저는 삼촌이라고 부를 거예요. ”“엄마보고 많이 휴식하고 있으래요. 그렇지 않으면 뱃속의 아기가 천천히 자랄 거예요. 저는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어요. 아기한테 오빠가 지금 힘이 세니까 아기를 업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캐톡에서 유진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협박한 것을 보니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좋은 것 같았다. 유진이의 소리는 듣기에도 정신이 맑고 괜찮아 보였다.소원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생각해 보니 자기가 쉬지 않은 것을 아이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은 즉 유진에게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기에 소원이는 말 듣고 차에서 내려서 휴식을 취하러 갔다.네 명의 경호원은 육경한의 분부에 따라 두 명은 아파트 입구에 두 명은 계단 입구를 엄중히 지켜 사수의 파리 한 마리조차 날아 들어갈 수 없었다.육경한의 차가 떠나자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여인이 사방을 둘러보며 나타났다.그녀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채 마스크를 쓰고 수상한 모습으로 나타나 동네 경비원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저기요, 당신은 어느 건물로 가나요? 여기에서 뭘 하고 있습니까? “여인은 경비원한테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요... 사람을 찾고
주석훈이 웃으며 말했다.“허허. 몰랐죠? 저 평소엔 되게 허당이에요.”“변호사님 은근히 유머가 넘친다니까요.”주석훈은 언변에 능했기에 단 몇 마디에 간호사가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지었다.“저기는 왜 저런 거래요? 아까 길을 잘못 들었는데 막더라고요.”주석훈이 물었다.“아, 저기요.”간호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어떤 여자애 한 명 들어왔는데 가족이 살해당했다나 뭐라나. 실어증에 걸려서 한마디도 못 했는데 평소 믿고 따르던 언니가 와서 입을 열었다고 들었어요.”주석훈이 물었다.“여자애요? 많이 놀랐나 보네요.”“그러게요.”간호사가 대답했다.“가족이 칼 맞고 죽었는데 누가 견딜 수 있겠어요.”“억울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범인만 잡아도 다행 아니겠어요?”주석훈이 말했다.“어려울 것 같던데요?”간호사가 말했다.“뭐 유용한 단서가 안 나왔나 보더라고요. 아빠가 여자애를 지키겠다고 같이 들어가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 봤대요. 진술한 상황이 경찰이 알고 있는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경찰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만 내쉬더라고요.”간호사가 이렇게 많은 내용을 알 수 있었던 건 안지영의 간호를 책임진 간호사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주석훈이 더 물으려는데 다른 간호사가 들어왔다.“어? 이 간호사 있었네? 저쪽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 빨리 가봐.”이 간호사가 말했다.“알겠어요.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게요.”치료를 받은 주석훈이 이 간호사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이 간호사가 얼굴을 붉히며 괜찮다고 말했다.주석훈이 멀리 가고 나서야 다른 간호사가 이렇게 말했다.“이 간호사, 아까 저 사람이랑 무슨 얘기 했어? 저 병실에서 나온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 돼.”“저 별말 안 했어요. 다들 아는 내용 얘기해준 거예요.”이 상황에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인정하면 바보나 다름없었다.“그래. 앞으로 조심해. 자칫하다간 징계 먹을 수도 있어.”나이 많은 간호사가 귀띔했다.“알아요.”이 간호사가 얼른 대답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