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희는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고층 빌딩과 별장에서 이 더럽고 지저분한 판잣집에 오기까지 쭉 회상했다. 그리고 얻어낸 결론은 바로 다 윤혜인 때문이라는 것이었다.그때 강에 빠져서 죽어버렸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을, 살아서 돌아와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임세희는 윤혜인을 뼈저리게 증오했다.그 빌어먹을 윤혜인이 꼭 대가를 치러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KB 클럽.웨이터가 문을 닫고 나가자 곽경천의 시선은 맞은편에 앉은 이준혁에게로 향했다. 이준혁은 늘 그랬듯 외모가 준수했다.“이 대표님 아프다더니 이렇게 나와도 되는 거예요? 혜인이는 그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집에서 전복죽 끓이고 있던데. 아주 내 동생을 꽉 잡고 놓아주지를 않네요.”곽경천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그 말에 마음이 따듯해진 이준혁은 표정이 살아났다.준수한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번졌다. 곽경천은 그 미소가 유난히 눈에 거슬려 코웃음 쳤다.“사람 마음 가지고 노는 건 정말 타고났네요.”이준혁은 아직 완전히 나은 게 아니었기에 어딘가 병약해 보였다. 그는 올라간 입꼬리를 다시 내리며 진지하게 말했다.“형님, 오해에요. 저는 절대 혜인이 가지고 논 적 없어요. 진심으로 사랑합니다.”곽경천은 갑자기 날아든 형님이라는 호칭에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다.전에 윤혜인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아직 책임을 따져 묻지도 못했는데 감히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곽경천이 표정과 말투가 싸늘해졌다.“형님이라고 부르지 마요. 명을 재촉하는 걸로 들리니까.”까만 보석 같은 이준혁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인내심 있게 곽경천의 비아냥을 받아줬다. 자세를 낮추는 표현이기도 했다.하지만 곽경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간을 찌푸렸다.“그 마음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 내가 살아있는 한 내 동생은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할 테니까요.”곽경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내 뜻은 잘 전달된 것 같네
곽경천이 서류를 열어보니 안에는 기밀 문서가 들어 있었다.타이틀에 적힌 글자에 곽경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안에 들어있는 건 이준혁의 유서였나.뒤로 펼치면 펼칠수록 곽경천의 미간이 점점 더 구겨졌다.그러다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지금 가지고 있는 것의 80퍼센트를 혜인에게 남기겠다는 말인가요?”“네, 맞아요. 유서는 이미 공증을 마친 상태입니다. 다시 변경할 가능성은 없어요.”곽경천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준혁은 유산 중 80퍼센트는 윤혜인의 몫이었고 20퍼센트는 어머니에게 남겨준 것이다.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도 대개 알 것 같았다. 이준혁이 엄마보다 여자를 더 중요시한다는 건 아니다. 이준혁의 어머니는 지금도 이선 그룹의 주식을 6퍼센트 가지고 있었다. 유산으로 20퍼센트까지 받으면 그 비율은 무조건 윤혜인을 초과하게 될 것이다.그래도 충분히 놀라운 결정이었다. 몇조나 되는 자산을 이렇게 쉽게 준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이준혁이 진지하게 말했다.“형임, 제가 이걸 보여준 건 당장 혜인이와 결혼하는 걸 동의해 달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속죄할 기회만 주시면 돼요.”“전에는 일만 하다 보니 혜인이를 아껴주지 못해서 고생을 많이 했을 거예요. 아이까지 잃게 했죠. 그래서 형님이 반대하는 것도 다 이해해요. 그래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만나는 걸 막지만 말아 주세요. 혜인이가 선택한 사람이 결국 내가 아니더라도 이 유서는 바뀌지 않을 거예요.”“이번 생에 여자는 혜인이 하나에요.”이준혁은 마지막 말에 힘을 실었다. 그는 감정을 막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그 사람이라고 마음을 먹으면 죽을 때까지 일편단심으로 그 사람만 바라봤다.윤혜인을 위해서라면 모든 가능성을 다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이준혁은 곽경천이 돌려준 서류를 다시 들이밀며 진지하게 말했다.“이 서류는 형님이 대신 보관해 주세요.”곽경천은 입술을 앙다문 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만나는 것만 막지 않으면
곽경천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듣기 좋은 말은 다 할 수 있죠. 근데 실제로 그 말을 지킬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에요.”이준혁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만약 혜인이가 더 낳고 싶지 않다면 아름이가 저희의 유일한 아이가 될 것이라고 약속드리겠습니다.”비웃던 곽경천은 굳은 얼굴로 말문이 막혔다. 상장 기업의 대표가 이런 약속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이는 기업의 계승과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평생 아이가 아름이 하나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더욱이 아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말이다...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곽경천은 이 남자를 다시 훑어보면서 살짝 굳은 얼굴로 물었다.“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사람은 다 이기적이다. 특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들 같은 사람들에게는 일반 사람들보다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들이 제멋대로 결정하기에는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이준혁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이 사항에 대해서는 혼전계약서에 이미 추가했습니다.”곽경천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혜인이가 당신과 결혼한다고 누가 그래요?”함부로 넘겨짚기도 유분수지, 아직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은 이미 혼전계약서까지 작성했다고 한다.“이 일은 전적으로 혜인의 결정에 맡기고 강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름이에게 완전한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어요.”그는 검은 보석같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곽경천을 보면서 진지하게 약속했다.“형님께서 저한테 기회를 주신다면 저는 혜인이와 아름이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목숨 걸고 맹세하겠습니다.”곽경천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 반반한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엄청나게 놀랐다. 이 남자는 보통이 아니다. 협상의 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신경 쓰고 있는지 잘 알고 있고 꺼낸 조건들도 전혀 꼬투리를 잡을 수 없고 거절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가 아름이를 좋아하는 모습도
“알겠어요. 고마워요, 홍 아줌마.”윤혜인의 얼굴에는 기쁜 표정이 서렸다. 하지만 그녀가 도시락통을 받아들고 뒤도는 순간 차에서 내린 곽경천과 마주치게 되었다. 순간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세상에, 오늘 오빠가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곽경천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어디 가?”“아니, 안 가는데.”윤혜인은 말을 더듬으며 시선은 신발만 쳐다보았다. 손에 들린 도시락통이 지금은 증거가 되었고 곽경천은 도시락통을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자신이 백설 공주에서 독 사과를 들고 있는 악독한 왕후의 역할이 된 것 같았다. 그는 시선을 돌리고 담담하게 말했다.“9시 전에 반드시 귀가해.”“응?”윤혜인은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곽경천의 표정을 보면 그녀가 어디를 가려는지 아는 듯한 모습이지만 그의 말투는 왜 이런 건지 어리둥절했다.‘오빠가 어떻게 허락할 수 있지?’윤혜인은 다시 물었다.“오빠, 나 진짜 가?”“응.”윤혜인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시 한번 확인했다.“정말 준혁 씨 보러 가?”이제는 숨기지도 않고 직접 물었다. 곽경천은 귀찮은 듯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보며 말했다.“가기 싫어?”윤혜인은 자신이 그 사람에게 가는 것을 허락했다고 확신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녀는 지금 당장 이준혁의 앞으로 날아가서 어떻게 오빠를 설득했는지 묻고 싶었다.“갈게, 오빠.”윤혜인은 몸을 숙여 기사의 차에 올랐다. 곽경천은 떠나는 차를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다 큰 여동생이 결국에는 품을 떠난다는 생각에 아련해졌다. 그는 두 사람이 그저 만나기만 하는 것일 뿐 결혼하는 것도 아니라며 자신을 위로했다....병원에서는 문현미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지민이 빈 도시락통을 가지고 나와 문현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이모, 준혁이를 달래서 다 먹었어요. 이모의 요리 솜씨가 늘었다고 칭찬까지 했어요.”“정말이야?”문현미는 활짝 웃었고 눈가의 자잘한 주름이 더 선명하게 보였
문현미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다가 아무 생각 없이 거울을 보았다. 그때, 띵 하고 뒤에 있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서 돌아보니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그녀는 마치 벼락에 맞은 듯했다. 저 옆모습은 누구랑 닮아있었다...문현미는 입을 벙긋거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따라갔다. 하지만 그때는 그 여자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녀는 앞에 있는 병실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 전체 층은 이준혁이 혼자 쓰고 있다. 저 사람은 설마...“이모, 왜 그래요?”원지민은 넋이 나간 문현미의 모습을 보고 다정하게 물었다.“내가...”문현미는 생각했던 말을 꺼내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원지민은 문현미가 몰래 이준혁을 보러 들어가려고 하는 줄 알고 살짝 불쾌했지만 이내 기분을 가다듬었다.“그럼 이제 돌아갑시다.”문현미가 흘리듯 물었다.“지민아, 윤혜인이 죽은 데 대해 준혁이가 괜찮아졌어?”원지민은 그 물음에 흠칫했지만 빠르게 대답했다.“준혁이한테서 그 일에 관한 얘기를 들은 지 한참 됐어요.”원지민의 시선은 문현미를 바라보고 있었고 웃으며 물었다.“이모, 그건 왜 갑자기 묻는 거예요?”문현미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저 갑자기 생각나서.”원지민은 망설이며 문현미를 보더니 얼른 다가가 다정하게 문현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이모, 오늘 마침 제가 시간이 생겨서 치료하러 같이 가요.”문현미가 대답했다.“요즘 나 괜찮아진 것 같아.”무엇 때문인지 그녀는 매번 심리치료를 하고 난 후에 머리가 텅 빈 듯 며칠 동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여 문현미는 본능적으로 치료하기를 거부했다. 원지민이 말했다.“가요, 이모. 제가 이미 예약을 다 해놨어요. 김 선생님께서 유명인사들의 예약도 다 미루고 이모를 기다리고 있어요.”김 선생님은 아주 유명한 심리치료 의사에서 많은 유명인사가 전문적으로 그를 찾아 심리치료를 받았다.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문현미도 더 거절하기 미안하여 고개를 끄덕
나올 때, 문현미는 다리가 나른해지고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마치 한순간에 몇 년은 폭삭 늙은 기분이 들었다.“이모!”원지민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리는 문현미를 붙잡았다.문현미는 애써 머리를 짚은 채 하얗게 질려 생기를 잃어버린 입술을 뻐끔거렸다.“왜 손 떨리고 다리도 힘이 풀리는 거지...”그러자 원지민은 다급히 그녀를 부축하여 차에 태우고 입을 열었다.“이모, 제가 드린 약 제때 안 드신 거 아니에요?”“지난번에 실수로 좀 흘렸는데 다 먹고 약이 떨어져서 안 먹긴 했어.”“그럴 줄 알았어요. 근데 왜 저한테 말씀 안 하셨어요? 가져다드리면 되는 건데.”“그 약 구하기 힘들다고 그랬잖아. 너한테 부탁하기 미안해서 그랬지.”“이모, 이모는 그냥 저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잖아요.”미소를 머금은 원지민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남도 아닌데 어떻게 저한테 부탁하는 걸 미안해할 수 있어요?”그녀는 차에 준비해 온 약병을 꺼내 문현미에게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해외 지인분들에게 부탁해서 가져왔는데 구하기 쉽지 않은 약이라 갑자기 필요하실까 봐 좀 더 준비했어요.”약을 받은 문현미는 싱긋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고마워.””“시간 맞춰서 드시는 거 잊지 마세요.”원지민이 다시 한번 당부했다.이 약은 문현미가 잠을 푹 잘 수 있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요즘 약이 떨어져서 그녀는 늘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여 정신 상태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이 약만 먹으면 그녀는 이제 잘 수 있다.“지민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이모,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저한테는 사양하지 마세요.”원지민은 화난 척하며 문현미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제 마음속에서 저는 항상 이모를 친엄마로 여겼는데 설마 이모는 나를 남으로 여겼단 말이에요?”원지민의 눈을 본 문현미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지민아, 난 사실 너를 며느리로 삼았다...”며느리...며느리!짧디짧은 이 세 글자는 문득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문현미의 머리를
...병실.윤혜인이 도시락을 들고 들어갈 때 남자는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비록 여전히 병상에 누워있지만 잠들기 전에는 항상 평소 입던 셔츠를 입고 있었다.검은색의 셔츠로 인해 약간 병적으로 보이는 남자의 잘생긴 얼굴은 더욱 새하얗게 돋보였다.약간 다크 나이트 느낌이 들고 신비로우며 잘생기고 매력적이었다.이 남자는 정말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얼굴 자체가 결국 아름다운 명함이 되었고 일거수일투족 모두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왜 안 들어와?”남자는 눈을 들어 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어린 여인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윤혜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이 남자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순간, 작은 얼굴은 불에 타기라도 한 듯 빨갛게 물들었다.그녀는 자신이 싫었다. 잘생긴 남자를 못 본 것도 아니고 그녀의 주변에는 잘생긴 남자가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곽경천, 베남준...빼어난 미남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그녀는 병실로 들어와 방금 도착한 시늉을 했다.“저도 방금 도착했어요.”그러자 이준혁은 눈썹을 살짝 추켜올리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까부터 왠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는데...”뜨끔한 윤혜인은 헛기침하고 애써 덮기 위해 부정했다.“잘못 보셨나 봐요. 전 방금 도착했는데.”이준혁은 윤혜인이 놀림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더 웃으며 말했다.“그럼 내가 너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랬나 봐. 이상하게 네가 온 것 같아서 눈을 들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네가 있더라고.”그 말에 윤혜인의 작은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보고 싶기는 무슨.진짜 열애 중인 연인이라도 된 것 같잖아.“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윤혜인이 발끈 화를 내며 투덜거렸다.이윽고 갖고 온 도시락 뚜껑을 열자 전복죽 냄새가 병실 안에 확 풍겼다.윤혜인은 한 그릇을 그의 앞에 놓았지만 이준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먹여줄 때까지 기다
중간에 뜸이 있었기에 윤혜인은 한순간 자신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반응을 하지 못했다.그러자 이준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잡고 한 글자, 한 마디 또박또박 말해주었다.“너한테 잘해 주고 싶다고.”윤혜인의 귀는 순식간에 불타오르듯 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녀는 얼굴을 돌려 황급히 말을 돌렸다.“도대체 우리 오빠를 어떻게 설득한 겁니까?”붉은빛으로 물든 그녀의 귓불이 남자의 눈 밑에 드러났다.그러자 참다못한 이준혁이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아...”깜짝 놀란 윤혜인이 낮은 목소리로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그녀는 황급히 귀를 막았는데 손바닥마저 열이 오른 기분이었다.막 화를 내려고 하자 남자가 물었다.“알고 싶어?”또다시 궁금증이 돋은 윤혜인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이준혁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턱을 주물럭거리더니 일부러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비밀.”“...”윤혜인은 조금 화가 났고 머릿속에는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설마 두 사람이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합의를 했단 말인가?오빠가 이렇게 자신을 팔아먹었다고?그 정도는 아닐 텐데.“나중에 알려줄게.”이준혁은 작은 입을 삐죽거리는 윤혜인의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말했다.“나중이 언젠데요?”남자는 깊은 눈매로 속삭이듯 말했다.“우리가 다시 부부가 될 때.”“...”“꿈꾸시네. 누가 당신 아내예요?”그러나 이준혁은 짜증 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이어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두 글자를 말했다.“여보.”“...”결혼과 여보가 설마 다른 뜻인가?두 사람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고 남자의 머리카락 사이에서는 샴푸 향기가 은은히 느껴졌다. 정말 당장이라도 뽀뽀를 할 것 같은 거리였다.윤혜인은 심장이 두근거려 황급히 얼굴을 붉혔다.그녀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본 이준혁은 입꼬리를 올리며 순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이윽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 간단히 씻었고 윤혜인은 침대 머리맡에 씻은 포도가 있는 것을 보고 한 알씩 입에 털어 넣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