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미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다가 아무 생각 없이 거울을 보았다. 그때, 띵 하고 뒤에 있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서 돌아보니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그녀는 마치 벼락에 맞은 듯했다. 저 옆모습은 누구랑 닮아있었다...문현미는 입을 벙긋거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따라갔다. 하지만 그때는 그 여자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녀는 앞에 있는 병실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 전체 층은 이준혁이 혼자 쓰고 있다. 저 사람은 설마...“이모, 왜 그래요?”원지민은 넋이 나간 문현미의 모습을 보고 다정하게 물었다.“내가...”문현미는 생각했던 말을 꺼내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원지민은 문현미가 몰래 이준혁을 보러 들어가려고 하는 줄 알고 살짝 불쾌했지만 이내 기분을 가다듬었다.“그럼 이제 돌아갑시다.”문현미가 흘리듯 물었다.“지민아, 윤혜인이 죽은 데 대해 준혁이가 괜찮아졌어?”원지민은 그 물음에 흠칫했지만 빠르게 대답했다.“준혁이한테서 그 일에 관한 얘기를 들은 지 한참 됐어요.”원지민의 시선은 문현미를 바라보고 있었고 웃으며 물었다.“이모, 그건 왜 갑자기 묻는 거예요?”문현미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저 갑자기 생각나서.”원지민은 망설이며 문현미를 보더니 얼른 다가가 다정하게 문현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이모, 오늘 마침 제가 시간이 생겨서 치료하러 같이 가요.”문현미가 대답했다.“요즘 나 괜찮아진 것 같아.”무엇 때문인지 그녀는 매번 심리치료를 하고 난 후에 머리가 텅 빈 듯 며칠 동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여 문현미는 본능적으로 치료하기를 거부했다. 원지민이 말했다.“가요, 이모. 제가 이미 예약을 다 해놨어요. 김 선생님께서 유명인사들의 예약도 다 미루고 이모를 기다리고 있어요.”김 선생님은 아주 유명한 심리치료 의사에서 많은 유명인사가 전문적으로 그를 찾아 심리치료를 받았다.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문현미도 더 거절하기 미안하여 고개를 끄덕
나올 때, 문현미는 다리가 나른해지고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마치 한순간에 몇 년은 폭삭 늙은 기분이 들었다.“이모!”원지민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리는 문현미를 붙잡았다.문현미는 애써 머리를 짚은 채 하얗게 질려 생기를 잃어버린 입술을 뻐끔거렸다.“왜 손 떨리고 다리도 힘이 풀리는 거지...”그러자 원지민은 다급히 그녀를 부축하여 차에 태우고 입을 열었다.“이모, 제가 드린 약 제때 안 드신 거 아니에요?”“지난번에 실수로 좀 흘렸는데 다 먹고 약이 떨어져서 안 먹긴 했어.”“그럴 줄 알았어요. 근데 왜 저한테 말씀 안 하셨어요? 가져다드리면 되는 건데.”“그 약 구하기 힘들다고 그랬잖아. 너한테 부탁하기 미안해서 그랬지.”“이모, 이모는 그냥 저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잖아요.”미소를 머금은 원지민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남도 아닌데 어떻게 저한테 부탁하는 걸 미안해할 수 있어요?”그녀는 차에 준비해 온 약병을 꺼내 문현미에게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해외 지인분들에게 부탁해서 가져왔는데 구하기 쉽지 않은 약이라 갑자기 필요하실까 봐 좀 더 준비했어요.”약을 받은 문현미는 싱긋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고마워.””“시간 맞춰서 드시는 거 잊지 마세요.”원지민이 다시 한번 당부했다.이 약은 문현미가 잠을 푹 잘 수 있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요즘 약이 떨어져서 그녀는 늘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여 정신 상태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이 약만 먹으면 그녀는 이제 잘 수 있다.“지민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이모,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저한테는 사양하지 마세요.”원지민은 화난 척하며 문현미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제 마음속에서 저는 항상 이모를 친엄마로 여겼는데 설마 이모는 나를 남으로 여겼단 말이에요?”원지민의 눈을 본 문현미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지민아, 난 사실 너를 며느리로 삼았다...”며느리...며느리!짧디짧은 이 세 글자는 문득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문현미의 머리를
...병실.윤혜인이 도시락을 들고 들어갈 때 남자는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비록 여전히 병상에 누워있지만 잠들기 전에는 항상 평소 입던 셔츠를 입고 있었다.검은색의 셔츠로 인해 약간 병적으로 보이는 남자의 잘생긴 얼굴은 더욱 새하얗게 돋보였다.약간 다크 나이트 느낌이 들고 신비로우며 잘생기고 매력적이었다.이 남자는 정말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얼굴 자체가 결국 아름다운 명함이 되었고 일거수일투족 모두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왜 안 들어와?”남자는 눈을 들어 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어린 여인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윤혜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이 남자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순간, 작은 얼굴은 불에 타기라도 한 듯 빨갛게 물들었다.그녀는 자신이 싫었다. 잘생긴 남자를 못 본 것도 아니고 그녀의 주변에는 잘생긴 남자가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곽경천, 베남준...빼어난 미남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그녀는 병실로 들어와 방금 도착한 시늉을 했다.“저도 방금 도착했어요.”그러자 이준혁은 눈썹을 살짝 추켜올리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까부터 왠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는데...”뜨끔한 윤혜인은 헛기침하고 애써 덮기 위해 부정했다.“잘못 보셨나 봐요. 전 방금 도착했는데.”이준혁은 윤혜인이 놀림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더 웃으며 말했다.“그럼 내가 너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랬나 봐. 이상하게 네가 온 것 같아서 눈을 들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네가 있더라고.”그 말에 윤혜인의 작은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보고 싶기는 무슨.진짜 열애 중인 연인이라도 된 것 같잖아.“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윤혜인이 발끈 화를 내며 투덜거렸다.이윽고 갖고 온 도시락 뚜껑을 열자 전복죽 냄새가 병실 안에 확 풍겼다.윤혜인은 한 그릇을 그의 앞에 놓았지만 이준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먹여줄 때까지 기다
중간에 뜸이 있었기에 윤혜인은 한순간 자신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반응을 하지 못했다.그러자 이준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잡고 한 글자, 한 마디 또박또박 말해주었다.“너한테 잘해 주고 싶다고.”윤혜인의 귀는 순식간에 불타오르듯 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녀는 얼굴을 돌려 황급히 말을 돌렸다.“도대체 우리 오빠를 어떻게 설득한 겁니까?”붉은빛으로 물든 그녀의 귓불이 남자의 눈 밑에 드러났다.그러자 참다못한 이준혁이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아...”깜짝 놀란 윤혜인이 낮은 목소리로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그녀는 황급히 귀를 막았는데 손바닥마저 열이 오른 기분이었다.막 화를 내려고 하자 남자가 물었다.“알고 싶어?”또다시 궁금증이 돋은 윤혜인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이준혁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턱을 주물럭거리더니 일부러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비밀.”“...”윤혜인은 조금 화가 났고 머릿속에는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설마 두 사람이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합의를 했단 말인가?오빠가 이렇게 자신을 팔아먹었다고?그 정도는 아닐 텐데.“나중에 알려줄게.”이준혁은 작은 입을 삐죽거리는 윤혜인의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말했다.“나중이 언젠데요?”남자는 깊은 눈매로 속삭이듯 말했다.“우리가 다시 부부가 될 때.”“...”“꿈꾸시네. 누가 당신 아내예요?”그러나 이준혁은 짜증 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이어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두 글자를 말했다.“여보.”“...”결혼과 여보가 설마 다른 뜻인가?두 사람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고 남자의 머리카락 사이에서는 샴푸 향기가 은은히 느껴졌다. 정말 당장이라도 뽀뽀를 할 것 같은 거리였다.윤혜인은 심장이 두근거려 황급히 얼굴을 붉혔다.그녀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본 이준혁은 입꼬리를 올리며 순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이윽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 간단히 씻었고 윤혜인은 침대 머리맡에 씻은 포도가 있는 것을 보고 한 알씩 입에 털어 넣었
“전 당신과 연애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요.”정말 나쁜 남자 같으니라고. 함정은 또 왜 이리 잘 파는 거지.“난 네 오빠를 설득했어.”이준혁이 그윽한 눈으로 윤혜인을 일깨워주었다.곽경천이 그녀가 이곳에 오도록 보내준 것은 분명히 털어놓는다는 뜻이겠지.“우리 오빠가 약속했다면 우리 오빠랑 사귀지 왜 저한테 요구해요?”이준혁은 실눈을 뜨고 그녀의 뒷덜미를 꽉 쥐어짜며 위협적으로 말했다.“내 취향이 얼마나 정상적인지 한번 해볼래?”남자의 눈동자는 원시적인 점유 욕으로 가득 차서 보는 사람의 심장을 떨리게 했다.윤혜인은 화들짝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벌벌 떨었다.“안 돼요!”그러자 이준혁이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뭐가 안 돼?”윤혜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이유가 뭐가 있겠는가?이 남자는 분명 고의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다.윤혜인은 입을 삐죽거리며 덩달아 무섭게 몰아붙였다.“어쨌든 잠자리는 안 돼요...”“그렇다면 뽀뽀 포옹은 되지?”이준혁이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말을 이었다.“그래. 알겠어.”“!!!”이 사람은 왜 이렇게 자꾸 남의 말을 이상하게 이해하는 걸까?그녀는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다 안 돼요!”그러자 이준혁이 그윽한 눈빛을 하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그럼 네가 지금 누구 다리 위에 앉아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고 말해보지 않을래? 응?”이준혁의 말에 윤혜인이 고개를 숙이자 두 사람의 자세는 확실히 설명하기 애매했다.그녀는 그의 다리 위에 앉아 있고 그의 두 손은 그녀의 가는 허리를 자연스럽게 감싸고 있다.심지어 두 사람의 허리는 찰싹 붙어 있었고 약간 뜨거운 열기를 띠고 있기도 했다...하지만 이는 웬 양아치 놈이 그녀를 내려놓지 못하게 하니까 그런 거 아닌가.그러자 그녀는 약간 낮은 말투로 중얼거리더니 인정할 수 없다는 듯 투덜거렸다.“당신은 정말 난폭하군요.”“그럼 앞으로 네 말대로 할게.”윤혜인은 그의 말이 조금 믿기지 않았다.역시나 남자는 아
차 두 대가 앞뒤로 자리를 떴고 그 검은색 차는 여전히 제자리에 주차되어 있다.차 안, 검은색 정장의 경호원이 누군가에게 물었다.“도련님, 따라갈래요?”그리고 뒷좌석에 앉은 신비로운 검은 그림자가 긴 손가락을 턱에 대고 있다.피부가 하얀 것이 마치 햇빛을 본 지 오래된 뱀파이어 같았다.위로 올려다보면 흉흉하고 무서운 흉터가 입가에서 얼굴 전체를 관통하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흉터의 모양은 더욱 무서웠다.그의 얼굴은 마치 무언가에 의해 찢겨나갔다가 이어붙인 광대 인형 같았다.한참이 지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니요.”그 목소리는 뻑뻑하고 갈기갈기 갈라져 있어 딱 봐도 성대가 심하게 손상된 모양이다.“어차피 곧 보게 될건데요 뭐.”남자의 눈은 그윽한 빛깔을 띠고 있었고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더니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무섭게 웃었다.“돌아가지.”남자가 간결하게 분부했다.이어 차는 즉시 시동을 걸고 반대 방향으로 운전해 갔다....차는 별장 뒤에 도착했다.이준혁은 여전히 윤혜인의 허리를 잡고 있었고 놓아줄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차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그는 끝없는 행복감을 느꼈다.“자, 이만 갈게요.”윤혜인은 방금 줄곧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는데 뜻밖에도 잠이 들 정도로 편안했다.이 남자에 대해 그녀도 너무 무방비했다.이준혁은 팔짱을 낀 채 사람을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9시라고 했는데 아직 5분 남았어.”“...”이 사람은 정말 1분 1초도 그녀와 따져야 하는 사람이다.이준혁은 깊은 눈빛으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하여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아무리 봐도 모자랄 것 같았다.윤혜인은 귓불이 뜨거워지며 심장 박동마저 빨라졌다.“좀 그만 쳐다봐줄래요?”“좋아해.”그의 길고 예쁜 손끝이 그녀의 핑크빛 뺨에 닿아 그녀의 윤곽을 자세히 묘사했다.좋아한다는 말을 몇 번 들어도 윤혜인의 얼굴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듯 뜨거워진다.살갗이 간지러워 나 그의 손을 헤집고 버럭 화를 냈다.“멋대로 손
그녀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가슴이 아픈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준혁은 그저 싱긋 웃어 보였다.“그래. 데려다줄게.”윤혜인은 이 정도 거리는 몇 걸음만 걸으면 도착하는데 뭐하러 데려다주냐고 말하고 싶었다.게다가 그의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이다.그러나 이주혁은 어느덧 이미 차에서 내려 그녀의 차 문을 열어주었고 윤혜인은 차에서 내려 눈을 들자 곽경천이 팔짱을 끼고 문기둥에 기대어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윤혜인은 순간 갑자기 안색이 돌변하며 고개를 숙였다.“됐어요. 빨리 다시 차에 타세요. 저희 오빠가 저기 있어요.”그러더니 남자를 그냥 차에 밀어 넣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도망가버렸다.이준혁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이 얼마나 꼴불견인가.윤혜인이 혼자 급히 달려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얼음장처럼 싸늘하던 곽경천의 안색도 조금 누그러졌다.윤혜인은 가슴을 가리고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오빠, 아직 안 갔어?”곽경천은 대답 대신 손을 들어 손목시계를 보았다.“8시 59분, 합격.”“...”결국, 그녀를 잡기 위해서였나...그렇게 마음이 놓이지 않는데 왜 그 남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거지?“오빠, 이준혁이 오빠한테 뭐라고 한 거야?”그러자 곽경천은 눈을 흐리며 대충 둘러댔다.“그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들어가라.”“...”왜 그녀가 상관할 일이 아니란 말이지?설마 윤혜인은 그들의 대화 중 일부가 아닌가?윤혜인은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안 알려주면 나 그 사람이랑 연애할 거야.”“이미 사귀고 있는 거 아니었어?”그때, 뒤에서 매력적인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윤혜인은 곽경천이 한 말인 줄 알고 반박하려다가 문득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고개를 돌리자 뜻밖에도 이준혁이 바로 뒤에 서 있었다.그 순간, 예쁜 얼굴이 또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윤혜인은 이를 꽉 악물고 말을 마친 뒤 재빨리 집안으로 몸을 숨겼
“확인하라고 했습니다.”“그래요. 전 보름간 출장을 다녀올 겁니다.”곽경천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네, 알겠습니다.”두 남자의 주고받는 눈빛의 뜻은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부탁이다.이준혁이 떠나려 하자 곽경천이 갑자기 그를 불러세웠다. “그 임씨가 L국 체인 여관의 그 임씨 집입니까?”“네, 형님, 아십니까?”“좀 알아요, 아버지가 임씨 집안의 시동생과 잘 알고 있거든요. 전에 임씨가 당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했는데 혹시 그게 무슨 은혜인지 물어봐도 될까요?”이준혁의 눈매가 순간 매섭게 번쩍이더니 그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그는 임세희가 그를 구한 날이 바로 그녀의 생일이라는 것을 떠올렸다.그때 임세희 가족은 L국에서 임세희에게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는데 그날, 그는 별장 창고에서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했다. 피부색이 다른 두 알몸이 서로 뒤엉켜 있는 모습을 보자니 메스꺼움이 극에 달했다.나중에 그는 넋을 잃고 빙하로 떨어졌는데 임세희가 얼음 아래에서 그의 위치를 찾아 망치로 구멍을 뚫고 필사적으로 그를 구해낸 것이다.이준혁은 아직도 계속 그의 귓가에서 그를 응원하며 포기하지 말라고 하던, 내 손을 잡으라던 그녀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났다.그때의 임세희는 정말 순진하고 착하며 귀여웠었다.하여 이준혁도 언젠가 임세희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그는 그녀에게 수없이 많은 기회를 주고 그녀가 다시 바른길로 가길 바랐지만 임세희는 사람을 해치고 결국 자기 자신마저 해치고 말았다.곽경천은 이준혁의 생각에 잠긴 기색을 바라보며 말하기를 꺼리는 줄 알고 눈빛이 다시 싸늘하게 식어갔다.“이준혁 대표님, 말하기 어렵다면 괜찮아요. 날이 늦었으니 돌아가세요.”“불편하지 않습니다.”이준혁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아주 어렸을 때, 얼음이 깨져 실수로 물속에 빠진 날 임세희가 저를 구해줬습니다.”“얼음물?”곽경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모스 공작 장원의 그 얼음 호수 말입니까?”뜻밖의 상황에 이준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