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름의 신임은 이미 진우희에게 많은 이점을 가져다줬다. 원진우도 진우희는 남다르게 보고 있었다.그것 외에 다른 내놓으라 하는 가문에서도 원씨 가문의 중시를 받는 진우희를 보고 사적으로 찾아와 고액의 보수를 주며 병을 봐달라고 했다.하지만 이 돈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신분 상승을 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다른 나라로 이민가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고 가끔 여행 가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이래저래 계산기를 뚜드리던 진우희는 결국 눈길을 윤아름에게 돌렸다.윤아름은 만나는 사람이 적어 매우 단순할뿐더러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사악한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게다가 진우희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편을 들어주려고 하니 제일 좋은 동아줄이긴 했다.“하지만...”윤아름은 이랬다가 나가지 못하면 진우희에게 줄 돈이 없을 것 같아 망설였다. 윤아름의 손에는 지금 돈이 없었고 무턱대고 원진우에게 달라고 했다가는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알아요.”진우희는 윤아름이 망설이는 원인을 알고 있었다. 나가지 않는다면 돈이 없으니 말이다.원진우의 재산이 나나를 뒤흔들 만큼 많다 해도 문도 나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돈을 줄 리는 없었다. 그리고 윤아름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원진우는 척척 알아서 사가지고 왔다.윤아름은 종일 이 호화로운 감옥에 갇혀 있으니 돈을 쓸데도 딱히 없었다.진우희가 뭘 갖고 싶어 하는지는 윤아름도 진작 알고 있었다.“그러면 블루 하트를 제게 주세요.”윤아름이 멈칫했다. 진우희가 말하는 블루 하트가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원진우가 액세서리를 수도 없이 선물했지만 윤아름은 원진우가 가면 바로 끼기 싫어서 벗어두곤 했다.여기 이렇게 갇혀 있는데 해도 보여줄 사람이 없었다.진우희가 말했다.“중간에 엄청 큰 블루 다이아몬드가 달린 목걸이요.”진우희의 묘사는 정확했다. 저번에 딱 한 번 봤지만 진우희의 눈길을 사로잡은 목걸이였다.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는 목걸이였다.진우희는 그렇게 크고 맑은 블루 다이아몬드를 처
하지만 그 목걸이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진우희는 어기적거리며 윤아름이 잡는지 지켜봤다.“선생님...”아니나 다를까 윤아름이 진우희를 불러세웠다.진우희가 걸음을 멈추자 윤아름이 설명했다.“아쉬워서 그러는 건 정말 아니에요. 그냥 진우 씨가 발견하면 선생님이 불리해질까 봐 그러는 거예요...”“액세서리가 그렇게 많은데 하나 정도 없어진다고 어떻게 알아요?”진우희는 어이가 없었다. 윤아름이 아까워서 그러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여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그냥 줄지 말지만 얘기해요. 주기 싫다면 저도 언젠가 가주님을 보고 무서워서 횡설수설할지도 모르겠네요. 가끔은 입이 머리보다 먼저 움직여서...”너무 노골적인 협박에 윤아름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윤아름은 오랫동안 사람을 별로 만나지 못했다. 잠에서 깨어난 후로 방 청소하는 벙어리 아줌마 외에 제일 많이 만난 사람이 진우희였다.진우희를 착하지만 두려움이 많은 아가씨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에 따라 두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었다.거래만 틀어진 거라면 그냥 진우희에게 부탁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고민해 볼 생각이었다. 성공 가능성이 반으로 준다고 해도 목걸이 하나 때문에 진우희가 위험해지는 건 싫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진우희는 지금 다 같이 죽자는 심보로 윤아름을 협박하고 있었다.윤아름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줄게요.”기분이 좋아진 진우희가 얼른 표정을 정리하더니 부드럽게 말했다.“사모님 좋은 분인 거 저도 알고 있어요. 어차피 끼지도 않을 거 제가 먼저 보관해 드릴게요.”윤아름은 즐거워하는 진우희의 얼굴을 보며 자꾸 어딘가 불안했다.진우희가 재촉했다.“사모님, 얼른 금고 열어주세요.”액세서리는 특별 제작한 유리 금고에 들어 있었고 홍채와 비밀번호로만 열 수 있었다.저번에 윤아름이 깜빡하고 닫지 않았다는 걸 발견하고 몰래 꺼내서 착용해 본 것이었다.원씨 가문은 경비가 삼엄했다. 그날은 금속탐지기를 넘을 수 있는 주머니를 챙기지 않았기에 바로
윤아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만약 정말 나갈 수 있다면 목걸이 따위는 대수롭지 않았다. 원진우가 준 건 하나도 갖고 싶은 게 없었다.그리고 진우희에게 약속한 돈을 주며 목걸이는 회수하지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진우희의 상태를 보아하니 말해봤자 오해만 깊어질 것 같아 아예 입을 다물었다.진우희는 윤아름이 후회할까 봐 두려운지 잽싸게 입을 열었다.“제가 나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윤아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그런 진우희를 보며 물었다.“선생님이 말하는 대로 할게요.”진우희가 말했다.“이따 내가 문을 열면 집사보고 내려오라고 하세요. 그때 소지품 검사만 피하게 해주면 돼요.”“그래요.”진우희가 벨을 누르며 나가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원진우는 나름의 방어선을 두 개나 설치했다. 들어오면서 한번 검사하고 나가면서 한번 검사했다. 주요하게는 윤아름에게 주지 말아야 할 물건을 줄까 봐 막는 것이었다.저번에 부탁한 약재는 아주 작았기에 침구 파우치에 넣으면 발견할 수 없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목걸이를 들고 나가야 했기에 조심해야 했다. 다만 진우희에게도 플랜B는 있었다.진우희의 브라는 탐지 센서를 막을 수 있는 브라였다. 어떤 탐지기든 브라 안에 숨긴 물건은 탐지해 낼 수 없었다.이 목걸이를 손에 넣기 위해 진작 준비한 속옷이었다. 하지만 저번에 안타깝게 기회를 날려 먹은 뒤로 이 목걸이에 접근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비록 탐지 센서를 막을 수 있는 브라를 입었지만 금속 탐지기를 거치지 않으면 좋은 건 확실했다.집사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진우희가 예의 바르게 집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진우희는 어떻게 해야 사람의 환심을 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반적이지만 무던한 외모라 사람들이 경계심을 풀기에는 제격이었다.또 바뀐 진우희를 보며 윤아름은 아까 본 진우희가 환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와는 정말 생판 다른 진우희였다. 마치 무언가에 접신한 것처럼 완벽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집사도 뭔가 얌전해 보
집으로 돌아온 원진우는 기사가 차에서 내리고 나서도 혼자 차에 남아 잠깐 눈을 감고 휴식했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은 차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원진우가 차에서 내리려는데 차에 올라탄 진우희가 탐욕스러운 웃음을 짓는 걸 보게 되었다. 평소 진우희는 종래로 웃지 않았다. 적어도 원씨 저택에서는 웃는 걸 본 적이 없었고 일관되게 침착한 자세였다.아직 원씨 저택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헤벌쭉 웃는다는 게 이상했다.원진우는 많은 사람을 만나봤기에 진우희의 미소가 탐욕스럽다는 걸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평소 찍소리도 못하던 가정 주치의의 얼굴에 이런 미소가 나타났다는 건 매우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그 차는 시야에서 사라졌다.원진우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이렇게 지시했다.“진 의사가 탄 차 미행해서 보고해.”하루 종일 밖에서 일 처리하느라 원진우는 기분이 매우 안 좋은 상태였다.게다가 요즘 누군가 의도적으로 외국에 있는 저택에 접근했지만 남아서 순찰을 돌던 경비에게 잡혔다는 소식도 들었다.경비는 취객이 호화로운 별장을 보고는 창문으로 기어들어가 안에서 한잠 자고 가려고 들어갔지만 이렇게 호화로운 별장은 처음이라 안에서 구경하기 시작했다고 했다.경비가 그를 발견했을 때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원진우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든 간에 경찰이 출동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기에 경비는 취객을 한바탕 뚜드려 패고는 강에 버렸다고 전했다.그러면서도 경비는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건지 아니면 무심코 접근한 건지는 알수 없다고 했다. 술을 먹은 건 사실이었고 근처 공원에 노숙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주변 사람들 말로는 이 취객이 공원에서 노숙하는 걸 본 적이 있다고 했지만 원진우는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술에 취한 취객이 여섯이나 되는 경비의 순찰에도 불구하고 안으로 들어갔고 들어간 것도 모자라 안에서 한참 돌아다니기까지 했다.경비들은 모두 원진우가 훈련한 엘리트였다. 그 취객이 겉보기와 같이 단순한 노숙자인지는
집사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네, 가주님.”‘생강차?’원진우의 입꼬리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윤아름은 입맛이 까다로웠기에 생수를 마셔도 고산에서 비행기로 운송한 물만 마셨다.원진우도 윤아름의 입맛에 맞춰 한 번도 빠짐 없이 그렇게 해줬다. 지금 윤아름이 아무렇게나 따라 마시는 물도 다 비행기로 운송한 물이었다. 그러니 기억을 잃었어도 물맛은 절대 잊을 리가 없었다.그런 윤아름이 오늘 생강차를 먹겠다고 한 건 절대 고산수가 질려서가 아니라 생강차를 만들려면 평소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기에 시간을 벌려고 한 것 같았다.집사는 원진우의 얼굴에 걸린 서늘한 미소에 마음이 불안해져 조심스럽게 물었다.“가주님, 혹시 틀린 구석이라도 있나요?”“아니요.”원진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손에 들었던 와인을 원샷하더니 와인잔을 거칠게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집사님, 가정 주치의 좀 새로 찾아야겠어요.”원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가주님, 혹시 진 의사님이 뭘 잘못했나요...”집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렇게 묻자 원진우가 서서히 눈꺼풀을 들더니 집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집사는 하려던 말을 되레 삼키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입을 잘못 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얌전한 인상을 가진 진우희를 좋게 보고 있었다. 게다가 진우희는 직접 만든 비누와 향초를 종종 가져다주곤 했다. 비싼 물건은 아니었기에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중요한 건 그 물건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향초는 한약 성분이 들어가 매일 사용하면 수면에 좋다고 했다. 사용해 보니 확실히 잠은 잘 왔다.집사는 불면증으로 몇 년을 고생하고 있었다. 나쁜 일을 하도 많이 해서 밤만 되면 억울한 원귀들이 꿈에 나타났다.그렇게 집사는 향초에 점점 빠져들었고 진우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하지만 집사는 이런 물건을 받았다고 해서 진우희에 대한 검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원진우가 뽑은 사람이었기에 하는 바 업무를 착실히 완성하는 걸 철칙으로
”축하해요. 임신하셨습니다!”멍 때리고 있던 윤혜인 머릿속에는 오후에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만 계속 떠올랐다.그때, 조용하게 다가온 이준혁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면서 물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준혁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잡으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한참 뒤, 이준혁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고 윤혜인은 온몸에 힘이 풀린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땀으로 젖은 머리와 글썽이는 눈망울은 조금 전에 많이 힘들었음을 설명해 주었다.겨우 숨을 고른 그녀는 서랍을 열어 임신 검사 보고서를 꺼냈다.요즘따라 계속 위에 통증을 느꼈던 윤혜인은 오늘 오후 병원에 찾아갔고 피검사를 한 결과, 의사는 그녀에게 임신 5주 차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윤혜인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분명 매번 안전 조치를 확실하게 취했는데.다시 돌이켜보니 저번 달에 딱 한 번, 술자리를 마친 이준혁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 뒤, 집 앞에서 갑자기 그녀에게 한마디 물었었다.“지금 안전하지?”그런데 안전기에도 임신할 수 있는 거구나…욕실 안에는 물소리로 가득했다. 안에 있는 남자는 2년 전에 윤혜인과 아무도 몰래 결혼한 그녀의 남편이자 그녀의 상사이기도 한 이산 그룹 대표 이준혁이다.그때 당시 술이 많이 취한 윤혜인은 뜻하지 않게 그녀의 상사와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마침 이준혁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이준혁은 그녀에게 가짜 결혼을 제안한 것이다. 이준혁 할아버지의 최대 소원이 손자가 하루 빨리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그렇게 결혼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었다. 대외적 비밀 결혼으로 언제든 종료할 수 있는 가짜 결혼이었다.그때 당시 윤혜인은 그저 너무 행복했다. 그녀는 자신이 8년 동안이나 짝사랑해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말에 고민없이 동의했던 것이다.결혼한 뒤에도 이준혁은 매일 너무 바빴다. 한달 동안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하지만 2년 동안
윤혜인은 우유를 마시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연예 뉴스로 가득했지만 윤혜인은 이런 쪽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했다.그러던 중 갑자기 익숙한 이름이 보여서 그 기사를 클릭하게 되었다.기사와 함께 기재된 사진 속에서 임세희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고 함께 걷고 있는 남자는 흐릿한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한 눈에 봐도 몸매 비율은 완벽했다.사진을 확대한 윤혜인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사진 속 실루엣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준혁이다!그럼 오후에 갑자기 회의를 취소하고 외출을 했던 게, 그의 전 여자친구인 임세희를 데리러 공항에 간 거란 말인가?그 순간, 윤혜인의 가슴에는 큰 돌멩이 박힌 듯 답답했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다가 의도치 않게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고 다급하게 끊으려고 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유난히 다정하고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였다.너무나도 깜짝 놀란 윤혜인은 바로 핸드폰을 던져버렸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한참 뒤, 날이 밝아오자 윤혜인은 시간에 맞춰 회사로 출근했다.이준혁과 가짜 결혼을 한 뒤, 이준혁은 그녀가 집에 있길 원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이준혁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긴 했지만 다른 회사가 아닌 이산 그룹에 취직해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윤혜인은 이준혁 곁에 비서로 남아 물을 따르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하는 등 소일거리 역할을 맡게 되었다.그리고 중요하고 핵심적인 비서 일은 이준혁의 수행 비서인 주훈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회사에 윤혜인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훈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산 그룹의 이준혁 대표는 지금까지 계속 남자 비서만 채용했고 2년 동안 여자 비서는 윤혜인 한 명밖에 없었기에 다들 윤혜인과 회사 대표가 특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김성훈이었다. 그는 사무실을 떠나려는 듯했다.윤혜인은 주먹을 꽉 쥐고 감정을 숨긴 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김 대표님, 안녕하세요.”그러고는 김성훈을 지나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고급스러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이준혁은 고가의 정장을 입고 있었고, 윤혜인은 단번에 이 옷이 어젯밤 그가 입고 나갔던 옷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 마케팅 보고서입니다. 결재해 주세요.”이준혁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서류에 사인한 뒤 윤혜인에게 건넸고 서류를 받은 윤혜인이 사무실 밖으로 나와보니 김성훈이 여전히 사무실 입구에 서있었다.그녀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김성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젠장, 혜인 씨가 우리 대화를 들은 거 아니야?”이준혁의 눈빛에는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 그는 김성훈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성격이 온순하고 착한 윤혜인은 질투 같은 걸 절대 안 한다. 그녀가 계속 지금처럼 조용하게 살아준다면 이준혁은 앞으로도 그녀에게 많은 걸 해줄 것이다.한편, 엘리베이터 안에서.윤혜인은 최대한 눈물이 흐르지 않게 고개를 높이 들었지만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녀는 2년이라는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그녀 혼자만의 착각일 뿐이였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 여자친구의 복귀에는 역부족이었다.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윤혜인이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가눈 채, 탕비실로 향했다.커피로 정신을 좀 맑게 하고 싶었다. 탕비실 안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기사 봤어? 임세희 귀국했대.”“응? 그게 누군데?”“너 몰라? 임세희는 임씨 가문의 아가씨잖아. 본인도 유명한 탑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