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영과 정선아가 주범이라는 증거가 없는 동영상과 사진은 정민아에게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기에 고연우가 기어코 가지겠다면 빼앗을 이유가 없었다.그녀의 무덤덤한 태도에 방 안의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정민아는 불청객을 쫓아내는 듯 턱을 들어 문 쪽을 가리켰다.고연우는 갑자기 짜증이 밀려오는지 눈살을 찌푸렸다.“네 등에 흉터들이 그때 생긴 거야?”그의 시선이 말끔한 옷차림으로 꼭꼭 감춘 그녀의 등에 향했다.“아버님, 어머님은 아무것도 모르셔?”정민아가 14살에 정씨 가문에 들어가서부터 4년 동안 있었으니까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에 선명하게 생긴 흉터를 가족들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고연우의 물음에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답했다.“매일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웬만해서는 얼굴을 피해서 때리니까 알 수가 없지. 그리고 얼굴을 때려도 30분 안에 부기가 가라앉도록 교묘하게 때렸어.”게다가 정민아가 괴롭힘을 심하게 당하고 오는 날이면 정선아는 주소월과 함께 데이트하러 나갔고,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는 정민재는 보고도 모른척했으며 정철진은 평소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그녀의 아픔을 눈치채지 못했다.그러나 고연우는 정민아가 비록 늦은 나이에 입양되어서 정씨 가문과 나눈 정이 많지 않다고 해도, 그녀의 양부모님이 한 번이라도 나섰다면 그 사람들이 감히 이렇게 날뛰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쉰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왜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지?”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무뚝뚝하게 답했다.“필요 없어.”사실 정민아는 정씨 가문에 갓 입양되었을 때만 해도 잘 보이려고 온갖 노력을 쏟아부었고 그녀를 괴롭히던 사람들도 처음에는 말로만 무안을 주었기에 작은 일로 그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서 조용하게 있었다.그러나 얼마 후, 그녀는 우연히 자기가 정씨 가문의 친자식이라는 것과 정민재가 사업을 물려받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그녀를 다른 사람한테 보냈다는
정민아는 지난 며칠 동안 운전사한테 출퇴근 길 운전을 맡겼던 고연우가 갑자기 이러는 의도를 파악하려고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그녀는 순간 고연우가 어젯밤 동영상과 사진들에서 뭔가를 발견하고는 죽마고우인 약혼녀의 명성을 지키려고 자기를 암살하려는 건 아닌지라는 의심까지 들었다.얼마 후, 정민아가 고연우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좋아.”마침 도로가 가장 막히는 출근 시간인 데다가 고산그룹이 CBD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차는 거북이보다 더 느린 속도로 달릴 수밖에 없었고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는 아예 꽉 막혀서 움직이지도 못했다.이때, 고연우가 눈앞에 보이는 고산그룹 빌딩을 보면서 덤덤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장씨 가문과 협력할 거야.”사실 어젯밤 영상에서 정민아의 옷을 찢었던 남자가 바로 장씨 가문의 도련님이었다.정민아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말했다.“난 화해할 생각도, 사과할 생각도 전혀 없어.”그녀는 평소 모든 일에 있어서 늘 관대한 척 타협하지 않으면 성격이 날카로운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고연우의 입장을 고려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곧이어 고연우의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지만, 정민아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말을 이어 나갔다.“다들 네가 날 가장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걸 아니까 내가 그 남자에게 어떠한 악행을 가해도 장씨 가문에서는 그 원한을 너에게 덮어씌우지 않을 거야. 그리고 고산 그룹과의 협력도 중단하지 않겠지.”고연우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무슨 여자가 입만 열면 엄한 말밖에 안 나와! 차라리 산에 들어가서 원숭이가 될 생각은 없어? 네가 왕좌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잖아.”“...”이때 전방의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정민아는 운전에만 집중하느라고 그의 말을 무시했다.고연우는 순간 짜증이 머리끝까지 밀려왔고 때마침 걸려 온 공민찬의 연락을 받더니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정선아는 손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가방을 꽉 쥐면서 머뭇거렸다.“연우 오빠, 이걸 내가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어요...”고연우는 그녀를 지나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면서 무뚝뚝하게 말했다.“그럼, 말하지 마.”평소 그는 정선아와 함께 자란 정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가 최민영과의 관계가 특별해서인지 항상 다른 사람을 대할 때보다는 더 신사적이었다.그러나 정선아는 평소와 달리 갑자기 변한 그의 태도에 많이 당황했고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그가 극도로 혐오하는 정민아에 대한 일로 이런다는 것이다.정선아는 싸늘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를 악물고 뒤따라갔다.“연우 오빠, 그거 알아요? 언니가 우리 집에 입양되려고 친부모님을 지하실에 감금하고는 실종됐다고 거짓말을 했대요. 마을 사람들이 두 분을 찾았을 때는 이미 세상을 뜬 상황인 데다가 엄마 아빠가 측은한 마음에 입양을 빨리 결정하도록 일부러 괴롭힘을 당한 척에 자해 시도까지 했대요, 너무 무섭지 않아요? 지금 언니와 부모님과의 관계가 극에 치닫고 있으니까 혹시라도 해코지하는 건 아니겠죠?”고연우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누가 그래?”정선아가 우물쭈물하면서 답했다.“그게... 며칠 전 대학교 동창이 집으로 놀러 왔다가 언니 사진을 보고 그러더라고요. 그 애 사촌 언니의 셋째 이모가 그 마을에 시집가서 그런 소문을 들었대요.”사실 며칠 전, 정선아는 마당 입구에서 우연히 채연이가 정민아에게 무언가를 건네주는 것을 보고는 불안함에 밤잠을 설쳤고 정민아가 힘들게 쌓아온 자기의 이미지를 망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증거 있어?”“동창이...”정선아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허탈해 보였고 이내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만졌다.“그... 그건 왜요?”“증거도 없는 헛소문을 듣고 언니를 이렇게 모함하고 다녀도 돼?”“연우 오빠도 언니를 미워하는 거 아니었어요?”“그거랑은 별개야, 이건 인격 문제지.”“...”
사연희가 불만을 늘어놓고 있을 무렵, 정민아는 주소월한테서 온 연락을 받았다.주소월은 갑자기 그녀의 일과 건강에 무한한 관심을 보이면서 이것저것 물었다. 그러나 정민아는 몇 년 만에 느껴보는 다정한 모성애에 적응이 되지 않는 듯 건성으로 답하고는 통화를 끊었고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정민아와 주소월은 오늘 밤 고급 연회장에서 가게의 송년회를 주최하기로 했고 며칠 전부터 VIP 고객과 몇 명의 잘생긴 외모의 모델에게 요청장을 보냈다.사연희는 자기가 직접 디자인한 여성미를 물씬 풍기는 스타일의 슈트를 차려입고 화장기 없는 정민아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눈썹을 찡그렸다.“설마 송년회에 이 얼굴로 가겠다는 건 아니지? 오늘 같은 날에는 예쁜 미모를 더 돋보일 수 있게 한껏 꾸며야지.”“네가 이번 송년회는 고객님들이 빛나야 한다고 했잖아.”“넌 꼴찌가 전교 1등을 질투하는 걸 본 적이 있어?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비교하고 질투하는 경향이 있어. 다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껏 신경 쓰는데 네가 이런 옷차림과 얼굴로 나타나면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거야!”사연희는 정민아에게 옷을 다시 골라주면서 말했다.“그러니까 오늘 넌 아름답게 단장해서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감히 넘볼 수 없게 해야 해.”정민아는 사연희의 터무니없는 말에 실소를 터뜨렸다.그녀들은 사전 준비를 위해 30분 일찍 송년회 장소에 도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도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아가씨, 오늘...”사연희는 곧장 환한 얼굴로 그들을 맞이하면서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정민아는 조용히 앉아 술만 들이켰다.그러나 원래도 예쁜 미모에 한껏 꾸며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는 충분했다.연회가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한 남자 모델이 술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민아 씨, 혼자 마시면 심심하지 않나요? 제가 같이 마셔 드릴게요.”정민아는 비록 취하지는 않았어도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었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이 해야 할 일은
정민아는 고개를 들어 고연우를 향해 경멸과 도발이 가득한 웃음을 짓고는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이때 고연우가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고 갑작스러운 고통에 그녀는 화가 치밀어올랐다.“고연우, 미쳤어? 네 모습이 지금 어떤 줄 알아?”“...”“막돼먹은 질투쟁이 같아.”“내가 질투한다고? 그것도 너 때문에? 자기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 거 아니야? 이제는 기본적인 자기 인식조차도 없어졌나 봐.”“나한테 기어코 양자택일을 하라는 사람이 누구지? 그것도 바람피운 장면을 목격해서 화가 치밀어 오른 모습으로 말이야, 아니면 네가 지금 어떤 모습인지 공 비서한테 물어볼래?”공민찬은 갑자기 자기 이름이 거론되자, 곧장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정민아에게 그만하라고 눈짓했고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었다.사실 고연우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매우 신사적인 편이었고 오랜 시간 함께 한 공민찬도 이처럼 화난 그의 모습은 처음 봤다.곧이어 고연우는 정민아의 손을 잡아당기며 밖으로 끌고 나갔고 공민찬은 재빨리 남자 모델의 앞을 막아서면서 말했다.“당신, 살고 싶지 않아요? 저분이 누군지 알고 덤벼드는 건가요?”얼마 후, 방을 나온 공민찬은 고연우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레 물었다.“양 대표님께서 아직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모님은...”고연우가 일부러 두 사람의 결혼을 은폐한 적은 없지만, 정민아와 함께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어서 그녀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두 개 방 사이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고, 고연우가 예약된 방에 들어서자, 모든 사람이 대화를 멈추고 일어나서 그를 맞이했다.“고 대표님...”고연우가 자리에 앉자, 한 남자의 시선이 정민아에게로 향하면서 조심스레 물었다.“낯이 익은 아가씨 같은데 혹시 데뷔를 앞둔 여배우인가요?”정민아의 얼굴은 아무리 데뷔를 한 후, 뜨지 못해도 한번 본 사람은 잊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미모를 소유했다.자리에 참석한 다른 남자들은 그저 고연우가 빨리 이 미모의 여자에게 싫증을 느껴서 자기
고연우는 정민아의 노골적이면서도 듣기 거북한 말에 더 크게 화를 냈다.“정민아, 넌 머리가 안 돌아가? 다른 사람들은 닭털도 칼로 잘 사용하던데, 넌 왜 손에 검을 쥐여줘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해.”정민아는 손을 들어 그의 가슴을 만지더니 여우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그러니까 네 말은, 네가 내 검이라는 거야?”고연우는 고개를 돌려 얼른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대외적으로 넌 아직 내 아내야.”“그럼, 내가 최씨 가문이랑 더 큰 충돌이 생겨도...”그는 결국 다시 고개를 돌려 정민아에게 차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남편으로서 풍수가 좋은 무덤을 골라줄 수는 있어.”“무덤은 필요 없고 돈이나 많이 태워 줘, 난 귀신이 된 후에도 매일 출근해서 돈 벌기는 싫거든.”사실 정민아는 혹시라도 죽으면 서현란의 옆에 곤히 잠둘려고 남몰래 그녀의 옆 무덤 자리를 사놨었다.고연우는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말했다.“... 꿈도 꾸지 마!”계단을 내려갈 때, 정민아는 갑자기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뒤돌아봤지만,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 중에는 아는 얼굴이 없었다.‘내가 나쁜 짓을 많이 해서 환각이 생겼나?’신림동에 도착한 정민아는 송씨 아주머니가 손수 끓여준 국을 마신 후,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사연희에게 카톡을 보냈다.“나 오늘 컨티션이 안 좋아서 먼저 집에 돌아와서 누웠어. 오늘 미안하고 고마워.”송년회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지만, 사연희는 바쁜 와중에서도 그녀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됐어, 난 신경 쓰지 말고 네 남편이나 잘 타일러. 넌 모를 수도 있겠지만, 아까 그의 안색이 당장이라도 질투심에 폭발할 것 같았단 말이야.”정민아는 스피커폰이 아닌 거에 안도하면서 바지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었다.2층에 도착한 그녀가 방문 손잡이를 잡을 때, 곁눈으로 그 옆에 서 있는 고연우를 몰래 쳐다봤다.벽에 기댄 채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역광까지 비쳐서 키가 유난히 더 커 보였고 위암감까지 느
비록 갑작스러운 상황에 서은혁 몸의 대부분이 속수무책으로 차 안으로 끌려 들어갔지만, 180센티미터가 넘는 거구의 그를 단번에 제압하기에는 어려웠다.정민아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한숨을 내쉬더니 곧장 다가가서 그의 손을 덥석 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근육질 남자는 한 손으로도 거뜬히 제압할 수 있는 여린 그녀의 등장에 비웃었다.그러나 정민아는 이내 다리를 높게 들더니 그 남자의 얼굴을 발로 가격했고 가늘고 긴 그녀의 구두 굽이 인중을 정확히 겨냥해서 피가 철철 뿜어져 나왔다.그 남자는 고통을 호소하면서 그녀를 향해 주먹을 힘껏 날렸지만, 그녀는 유연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곧이어 그녀는 남자가 다음 공격을 하기 전에 뒤로 한 발 물러서면서 서은혁도 같이 뒤로 끌어당겼다.싸움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여린 그녀의 등장에 아무런 걱정 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그 무리가 정신을 차리고 도와주려 할 때, 두 사람은 이미 손을 뻗어 공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승합차 운전사가 흉악한 얼굴로 가속 페달을 밟자, 차는 거대한 굉음을 내며 맹렬히 앞으로 돌진했고 갑자기 급정거하더니 두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후진했다.그러나 정민아는 모든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서은혁과 함께 문이 열린 옆 가게로 들어갔다.오늘의 의상에 맞게 굽 높은 힐을 신은 그녀는 달리는 도중에 결국 발목을 삐었다.다행히 그 무리는 서은혁에게 깊은 원한이 없는지 차를 돌려 곧장 자리를 떠났다.서은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정민아의 삐끗한 발목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괜찮아요?”긴장이 풀리자, 발목에서 뼈를 파고드는 듯한 통증이 엄습해 왔다.“...”그는 곧장 무릎을 꿇고 앉더니 정민아의 바지 밑단을 조심스레 걷어 올렸다. 그녀의 발목은 이미 심하게 부어오른 데다가 주위의 하얀 피부와 상반되게 빨개져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그는 그녀의 발목을 잡고 여기저기 눌러보더니 뼈에 금이 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
정민아는 갑작스러운 고연우의 등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네가 왜 여기 있어?”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그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오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고 작은 병원이라 우연히 만날 확률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연우의 시선은 곧 그녀의 곁에 있는 서은혁에게로 향했고 냉랭하게 웃었다.“내 등장으로 당신들의 알콩달콩한 연애를 방해한 건가요? 그다음 목적지는 어디죠? 호텔에 가서 하룻밤을 묵을 계획이었나요?”그의 한마디에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고 곧이어 그는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정민아, 내가 전에 했던 말을 까먹었어? 나 몰래 바람을 피우면 내가 널 죽일 거라고 했지.”서은혁은 눈썹을 찌푸리며 부랴부랴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민아 씨가 저를 구하려다가 다쳤고 제가 병원까지 데려온 것뿐이에요. 예의상 도움을 주고받은 것이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부적절한 관계는 절대 아닙니다.”고연우는 눈을 치켜뜨며 그를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물었다.“그래서 매우 영광스럽나요?”“...”“건장한 남자가 여자한테 도움을 청한 것도 모자라 다치게까지 하고, 들어보니 아직도 자기를 해치려던 범인이 누군지 찾아내지도 못했다면서요. 이렇게 무능한데도 밥은 잘 넘어가나 봐요?”서은혁은 전부터 고연우가 전형적인 귀공자처럼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신사적이라는 소문을 들었었지만, 정반대인 그의 진짜 모습을 보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러나 고연우는 서은혁을 비웃으면서 계속 막말을 퍼부었다.“벌써 못 견디겠어요? 이 정도로 나약한 인내력이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나요? 어차피 이 사회는 당신과 같은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은 환영하지 않으니까요.”이때 의사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는 그 남자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 소동이라도 벌일까 봐 퇴근을 핑계로 세 사람을 자기의 진료실에서 내보냈다.고연우는 정민아를 안고 진료실을 나왔고 서은혁도 휠체어를 밀면서 그 뒤를 따랐다.“여기 민아 씨의 힐이에요, 최소 반년 동안은 중심을 잡기 힘든 굽 높은 힐을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