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은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위선적이고, 교활하고, 이기적이고, 겉과 속이 다르고, 권세에 빌붙어...”그녀의 말에 당사자인 서은혁뿐만 아니라, 가게 구석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사연희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망했어! 이렇게 된 이상 새로운 가게를 찾을 수밖에 없겠네...’서은혁은 망설임 없이 단어들을 내뱉는 정민아에게 다시 물었다.“부모님께서 당신한테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 정도로의 적대감을 품게 된 거죠?”“궁금하면 직접 당신 부모님한테 찾아가서 물어봐요. 당...”정민아가 서은혁을 가게에서 쫓아내려다가 사연희의 뜨거운 시선에 하려던 말을 집어삼켰다.“가게 월세에 대해서는 우리 사장과 얘기해요.”사연희는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자기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에 서은혁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서은혁 씨라고 했죠? 저쪽에 차랑 커피를 준비해 놨는데 자리를 이동해서 저랑 얘기하면 어떨까요? 민아랑 더 얘기를 나눠봐도 기분만 더 나빠질 뿐이에요. 차라리 궁금한 걸 저한테 물으면, 제가 숨김없이 다 얘기해 줄게요.”정민아가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자, 좀 전까지 어지러웠던 곳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고 방 안에 책걸상, 컴퓨터와 책장밖에 없어서 썰렁하기 그지없었다.30분 후, 사연희는 서은혁을 가게 앞까지 배웅하고는 정민아에게 와서 말했다.“서은혁 씨가 널 좋아하지? 이 가게를 사려면 돈이 많이 들겠는데 씀씀이가 아주 큰가 보네. 난 이번 생에 저렇게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정민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술을 오므리더니 손에 든 디자인 원고를 내려놨다.“너 언제부터 연애에 관심이 커졌지?”그녀는 서은혁이 자기의 앞에 나타난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닌 불순한 목적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사연희는 정민아의 반응이 재미없다는 듯 뾰로퉁한 표정을 지었다.“넌 정말...”때마침 정민아의 휴대폰이 울렸고 주소월이 본가에 저녁을 먹으러 오라는 거였다.그러나 그녀는 짧은
고연우가 있으니 정민아는 정선아를 칼로 해칠 수 없다. 그녀는 식탁 앞에 서자마자 손을 억제당했다. 고연우는 목소리를 깔면서 말했다.“정민아...”비록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주소월이 바라던 자매간의 깊은 우애는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주소월은 차갑게 빛나는 칼날을 보며 눈동자가 떨렸다. “민아야...”정민아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들을 냉정하고 조롱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제가 오만한가요? 아니면 악독한가요?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시죠? 그럼 당신들은 이기적이지 않나요? 당신들이 바라는 겉만 번지르르한 화목을 위해 저와 정선아의 불화를 모른 척하셨죠.”“정선아가 저에게 사과하라고 한 건 정선아가 지난번에 나에 대해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 들통났기 때문이었죠. 네가 혹시...”“언니...”정선아는 언성을 높이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정선아가 이전에 했던 일들을 말할까 봐 두려워서였다. 예전에는 엄마가 믿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지난번 사건 이후로 엄마는 정민아에 대한 죄책감이 한없이 커져 있었다.그녀는 정민아를 바라보며 긴장으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정민아는 그런 정선아의 모습을 보며 어이없는 듯 코웃음을 쳤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제 시작일 뿐이야. 앞으로 남은 시간이 아주 많아.”정민아는 겪었던 불공평과 당했던 모욕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선아의 가면을 하나씩 벗겨내어 그녀의 악독한 본성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려 했다.정민아는 고개를 살짝 돌려 주소월을 바라보았다. 이 연이은 공격을 주소월이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그녀는 아버지를 화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했는데 이어 어머니마저 병원에 보내는 불효를 저지르고 싶지는 않았다.그녀는 손에 힘을 풀고 칼을 바닥에 떨어뜨리자 아주 쨍한 소리가 났다.“다들 천천히 드세요. 저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고연우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남겨져 있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감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고연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싸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내 생각엔 네가 날 어떻게 죽일지 고민 중인 것 같아.”“응. 사실 나도...쓰읍...”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목에서 갑작스럽게 느껴진 통증에 무방비 상태였던 정민아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것은 바로 고연우가 손을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있고 때문이었다.손가락이 피부에 닿자 따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아마도 아까 채연에게 긁힌 상처 때문인 듯했다.고연우는 손을 거두어들이며 자기 손가락 끝에 묻은 피를 보여주었다. “다치지 않았는데도 물어대더니 이젠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기세구나.”정민아가 말했다.“...그렇다면 연우씨는 밤에 잠잘 때 절대 눈을 감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발병이라도 하면 가장 먼저 당신을 물어버릴 테니까.”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작은 눈송이가 차 앞 유리에 떨어져 곧바로 물로 변했지만 점점 더 많은 눈이 쌓이면서 얇은 얼음층이 이루어졌다.정씨 가문에서 신림동까지는 꽤 멀었고 눈 오는 날씨에 길이 미끄러워 차를 천천히 몰다 보니 한참을 몰았는데도 조금 밖에 가지 못했다.두 사람은 원래부터 말이 잘 통하지 않았고 차 안에는 음악도 켜지 않아 눈송이가 차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고요했다.정민아는 앞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고 고연우는 지루했는지 갑자기 물었다.“너의 친부모님은 너를 잘 대해주는 거야?”“?”정민아는 잠시 멍해졌다가 고연우가 묻는 것이 그녀의 양부모에 대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정씨 가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철진과 주소월이 자신의 친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그 두 사람을 친부모로 생각하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그녀는 눈을 살짝 감으며 마치 별것 아닌 일을 이야기하듯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는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이라 너희 같은 부잣집 도련님과 아가씨들과는 다르게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좋고 나쁠 것도 없어.”고연우는 침묵했다.“...”고연우는 사실 정민아가 잘 지내는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송씨 아주머니는 할 말을 잃었다.“?”이게 남편으로서 할 소리는 아니다. 송씨 아주머니는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정민아와 소파에서 다리를 꼬고 냉정하게 앉아 있는 고연우를 번갈아 보았다. 이혼을 권하는 말을 몇 번이나 하려고 했지만 이혼을 말린다는 것과 말리지 않는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며 결국 참아냈다.침대 위에서 정민아는 낮은 목소리로 앓는 소리를 내며 추운 듯 몸을 더 움츠렸다.고연우는 침대에서 고열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깊은 잠에 빠진 정민아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거만하고 오만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녀는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정민아가 이렇게 초라하고 가엾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보며 고연우는 왠지 안쓰럽다고 느꼈다.고연우는 언잖은 듯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눈을 몇 번이나 깜박이며 말했다.“부인의 잠옷을 가져다주세요.”“네.”송씨 아주머니가 옷을 가져오면서 욕실에서 따뜻한 물을 떠 왔다. “아가씨는 깔끔한 것을 좋아해요. 땀에 젖은 채로 잠자리에 들지 않으세요. 몸을 닦아주면 열도 좀 내릴 겁니다.”고연우는 마음속의 짜증을 억누르며 말했다.“그냥 이대로 누워 있게 두세요.”그는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결국 정민아의 이불을 걷어내며 말했다.“일어나서 옷 갈아입어.”송씨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방을 나갔다.방 안은 히터가 켜져 있어 적당히 따뜻했지만 이불을 걷어내자 정민아는 추워서 몸을 떨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이불을 더듬었지만 고연우가 어디에 던져놨는지 찾을 수 없었다.“고열로 바보가 되기 싫으면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어.”정민아는 여전히 눈을 감고 손으로 더듬거리며 고연우의 말을 무시했다.“...”고연우는 몇 초 동안 참고 기다렸다. 그러나 정민아가 여전히 이불을 더듬고 있는 것을 보고 얼굴이 더욱 어두워지고 엄숙해졌다.“정민아.”정민아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고연우는 깊은숨을 몇 번 내쉰 뒤에 결국 화를 참으며 몸을 숙여 그녀의 옷
고연우는 마음속에 아침부터 쌓였던 분노가 이 순간에 최고조에 달했다. 그의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았다.“정민아가 죽고 싶어서 그런 거면 조용한 곳에 가서 혼자 해결하라고 하세요. 다른 사람까지 피해 주지 말고요.”그는 항상 정민아에 관한 일만 생기면 매우 폭력적이었고 성격도 나빠지면서 인내심도 없었다. 그리고 쉽게 화를 냈다.송씨 아주머니는 정민아가 이 말을 들으면 상처받을까 봐 급하게 전화를 끊었지만 정민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송씨 아주머니는 좋은 의도로 한 일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했기에 마음이 불편해졌고 초조해하며 불렀다.“아가씨...”정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앱에서 송금 알림이 왔는데 2천만 원이 입금되었다.“...”처음에는 백아영이 가게 공금을 보낸 것으로 생각해서 옷을 갈아입고 나서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두 번째 4천만 원 세 번째 6천만 원 점점 더 많은 송금 알림이 울리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정민아는 핸드폰을 꺼내 송금 기록을 확인해 보니 예상대로 고연우가 보낸 것이었다.메모 1: 내가 너를 굶기기라도 했어? 아프면서까지 일하러 가야 해야 해?메모 2: 아프면 침대에 얌전히 누워 있어.메모 3: 병이 더 악화하면 또 누가 널 돌보라는 거야?그 뒤로는 더 이상의 메모는 없었다. 왜냐하면 송금 기록이 수십 건이 넘었기 때문이다. 고연우는 일일이 메모를 남길 인내심이 없었다.정민아는 이 메모들조차 고연우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공민찬이 대신 입력한 것으로 의심했다.송씨 아주머니는 누가 송금했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연이어 울리는 알림 소리를 듣고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정민아가 한참 동안 핸드폰을 바라보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그녀가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처럼 돈에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아가씨와 대표님은 부부이고 그의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절대 스스로를 억울하게 하지 마세요. 밖에 여우 같은 여자들에게 좋은 일을 시키
정민아는 동영상을 넘기기만 하면 그동안 있었던 모든 앙금은 깨끗하게 지워 주겠다고 메시지를 보냈었다.채연이 말했다.“내가 넘긴 거라는 사실을 비밀로 해줄 거지?”세력이 막강한 최민영을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정민아는 미친 사람 같은 이 여자와도 얽히고 싶지 않았다.그 무리의 결말을 떠올리면 채연은 자기도 모르게 몸이 으스스 떨렸다. 어젯밤 내내 생각했지만 채연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배경도 없고 시골에서 온 여자가 그들을 이렇게까지 몰락시켰는지 말이다. 심지어 민형 언니와 연우 도련님같이 대단한 사람들도 피할 수 없었다. 한 명은 해외로 떠났고 한 명은 강제로 정민이와 결혼했다.마치 독심술을 하는 것처럼 그들의 모든 행동을 예측한 것 같았다.“응.”정민아는 웃으며 아주 직설적으로 말했다.“동영상은 정선아가 줬다고 해줄게.”거짓말로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에 대해 전혀 부끄러움이 없어 보였다.채연은 다시 말했다.“...내가 이 사실을 정선아에게 말할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너희 어젯밤에 사이 틀어졌잖아.”“...”정말 그러했다. 어젯밤 정민아가 떠난 후 그녀와 정선아는 크게 싸웠다.“너 우리를 감시했어?”“내가 너희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 것 같아? 굳이 감시할 필요도 없어.”이기적이고 이익만을 좇는 이들에게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들의 사이를 틀어놓을 수 있다.영상을 손에 넣자마자 차를 몰고 떠났다. 옆 건물이 바로 정씨 가문이었지만 올라가 보지도 않았다.가는 길에 송씨 아주머니에게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말하고 아무거나 대충 먹었다.집에 도착하자 송씨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께서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아요. 돌아오시자마자 거실에서 계속 얼굴을 찌프리며 앉아 계세요. 아마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네, 고마워요 아주머니. 늦었으니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거실로 들어서자마자 고연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집으로 돌아올 줄은 아는구나.”이 비꼬는
고연우는 한 손을 정민아의 옆에 놓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감쌌다. 그의 짙은 눈 밑에 그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계속 시선을 떼지 못했다.“...”뒤이어 그가 어금니를 살짝 깨물자, 아래 턱선이 팽팽해지면서 목젖이 위아래로 진동했고 잠긴 목소리로 정민아를 불렀다.“정민아...”목이 타들어 갈듯한 무더위. 정민아의 코끝에 고연우의 강렬한 남성적인 기운이 감돌아 숨쉬기 힘들었지만 절대 떨림 때문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몸이 점점 굳어졌고 모공 하나하나가 밖으로 나와 저항하려는 것 같았다. 고연우의 검은 눈동자에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내 입꼬리를 치켜세우면서 정민아에게 물었다.“싫어?”사실 두 사람이 불이 환하게 켜진 상황에 가까이서 눈을 마주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고, 정민아에 대한 증오로 차갑기만 했던 고연우의 눈빛이 지금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러나 정민아는 눈썹을 한껏 치켜올리더니 비아냥거렸다.“... 네가 전에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말해줄까?”그 순간, 고연우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를 감싸면서 시원한 민트향을 풍겼다.“남자의 말도 믿어? 정민아, 너 바보야?”정민아가 말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그가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더니 키스를 퍼부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민아가 아무런 반항을 못 하자, 고연우는 서슴없이 그녀의 입안 곳곳을 탐했고 야릇하면서도 거친 숨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정민아는 간신히 정신을 다잡고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그의 키스를 피했고 하얀 목이 약간 들어 올려져 턱에서 쇄골까지의 라인이 두드러져서 눈을 뗄 수 없었다.방 안의 공기는 마치 수많은 불꽃이 숨어 있는 듯 살짝만 건드려도 활활 타오를 것만 같았지만, 정민아가 이내 분위기를 와장창 깨는 말을 내뱉었다.“얼마 전 최민영이 국내로 돌아오겠다고 자살 소동까지 일으키면서 난리 쳤대.”“...”그녀의 한마디가 그 어떤 행동상의 거부보
최민영과 정선아가 주범이라는 증거가 없는 동영상과 사진은 정민아에게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기에 고연우가 기어코 가지겠다면 빼앗을 이유가 없었다.그녀의 무덤덤한 태도에 방 안의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정민아는 불청객을 쫓아내는 듯 턱을 들어 문 쪽을 가리켰다.고연우는 갑자기 짜증이 밀려오는지 눈살을 찌푸렸다.“네 등에 흉터들이 그때 생긴 거야?”그의 시선이 말끔한 옷차림으로 꼭꼭 감춘 그녀의 등에 향했다.“아버님, 어머님은 아무것도 모르셔?”정민아가 14살에 정씨 가문에 들어가서부터 4년 동안 있었으니까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에 선명하게 생긴 흉터를 가족들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고연우의 물음에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답했다.“매일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웬만해서는 얼굴을 피해서 때리니까 알 수가 없지. 그리고 얼굴을 때려도 30분 안에 부기가 가라앉도록 교묘하게 때렸어.”게다가 정민아가 괴롭힘을 심하게 당하고 오는 날이면 정선아는 주소월과 함께 데이트하러 나갔고,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는 정민재는 보고도 모른척했으며 정철진은 평소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그녀의 아픔을 눈치채지 못했다.그러나 고연우는 정민아가 비록 늦은 나이에 입양되어서 정씨 가문과 나눈 정이 많지 않다고 해도, 그녀의 양부모님이 한 번이라도 나섰다면 그 사람들이 감히 이렇게 날뛰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쉰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왜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지?”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무뚝뚝하게 답했다.“필요 없어.”사실 정민아는 정씨 가문에 갓 입양되었을 때만 해도 잘 보이려고 온갖 노력을 쏟아부었고 그녀를 괴롭히던 사람들도 처음에는 말로만 무안을 주었기에 작은 일로 그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서 조용하게 있었다.그러나 얼마 후, 그녀는 우연히 자기가 정씨 가문의 친자식이라는 것과 정민재가 사업을 물려받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그녀를 다른 사람한테 보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