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까지 슬펐던 마음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신은지는 미간을 누르면서 진선호를 노려 보았다.“마지막은 좀 좋게 가면 안 돼요? 다시 침대에 눕고 싶은 거냐구요.”진선호는 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이건 모르시겠죠. 원래 남자란 갖고 싶은 걸 손에 넣으면 도전욕이 사라져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다른 여자에게 눈이 돌아가요. 그 전에 위기감을 조성하는 겁니다. 은지 씨 주위에는 항상 다른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면 절대로 한눈팔지 못할 거예요.”“...”신은지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왜 자신도 같이 욕하시는 거예요?”박태준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 계단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석양 빛에 한 몸이 된 것 같았다. 출중한 외모의 남녀는 커플처럼 어울렸다. 나란히 서있는 모습은 마치 한 폭 그림 같았다. 순간 넘을 수 없는 선이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는 두 사람을 보면 볼수록 화가 났다. 분명 자신이 신은지의 남편이자 남자 친구이다.하지만 자신과 신은지가 어울린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줄곧 자신에게 까칠한 신은지의 모습 때문에 서로 어울린다는 것도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박태준은 계단 위로 올라가 신은지 옆에 섰다. 억지로 두 사람이 그려진 그림 속에 들어갔다.따뜻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심지어 석양의 빛도 공격적이게 보였다. 신은지가 설명을 하기도 전에 박태준이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넣었다.상대가 거절할 까봐 오히려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열기 가득한 품 안에 잡히고 말았다.박태준은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회사로 마중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신은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자신이 언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인가. “박 대표님, 아직도 유치원 다니시나 봅니다? 퇴근하면 누가 데리러 와줘야 직성이 풀리나 봐요.”진선호는 옆에서 그를 더 자극했다. “은지 씨, 자신을 보살필 수 있는 남자를 찾아야 해요
상대방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온몸이 다 아파요.”진선호: “…”진선호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지만 지금 조금 흔들렸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지난 20여 년 동안 잘 풀리다가 올해 갑자기 그동안 누적된 불운이 전부 터진 것처럼 재수가 없었다. 이 일은 진선호의 책임이 아니지만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을 수 없었다.진선호는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차가 없지만 차 한 대만 오면 그와 그녀는 여기서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진선호는 다리를 다쳐 쪼그려 앉을 수 없었다. 그래서 허리를 굽혀 물었다. “움직일 수 있습니까? 심하게 다치지 않았다면 길가로 부축해 드릴게요. 거기서 구급차를 기다립시다. 길 한복판에 있는 건 너무 위험해요.”이렇게 말을 하고 있을 때, 손에 있던 전화가 연결되었다.진선호: “안녕하세요. 여기 운해대로인데 구급차가 한 대가 필요합니다. 부상자…”진선호는 고개를 숙여 상대방의 증상을 묻어보려고 했는데 휴대폰을 든 손이 붙잡혔다. “저 괜찮아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돼요.”여자는 바닥에서 일어나 눈앞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초라하지만 환하고 예쁜 얼굴을 드러냈다. 갸름한 얼굴에 큰 눈망울, 이목구비는 또렷하고 아름다웠다. 길고 촘촘한 속눈썹이 내리깔고 있는 눈을 가려서 눈 밑의 정서를 알 수 없었다.진선호는 그녀가 멀쩡하게 서 있을 수 있고 얼굴에도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없는 것을 보고 부상이 심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다시 물었다.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만약 내상이라도 있으면.”“…”신시은은 진선호를 한 번 쳐다보더니 바닥에 닳아 피투성이가 된 팔꿈치를 그에게 내밀었다. “팔과 무릎이 까졌어요. 붕대 좀 감아주세요.”차에 구급상자가 없어서 진선호는 곧바로 사람을 진료소로 데려갔다.붕대를 감은 후, 진선호는 의사 책상 위에 있는 메모지로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서 신시은에게 건네주었다. “그쪽이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으니 배상으로 1
박태준은 얼굴을 신은지의 어깨에 묻었다. 따뜻한 몸은 그녀의 등에 밀착했고 건조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여자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안았다.짜릿한 촉감에 신은지는 움찔했다.남자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네가 지난번에 말했던 거.”“??”지난번에 말했던 거?신은지는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럴 때 곰곰이 생각하지 않아도 박태준의 뜻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싫어…”신은지도 자신이 왜 거절했는지 알 수 없었다. 몸은 확실히 달아올랐지만 심리적인 이유 때문인지 머릿속이 하얘졌고 모든 대답과 반응을 본능에 맡겼다.신은지가 거절의 말을 채 하기도 전에 박태준은 이미 그녀를 당겨서 침대에 눕혔다.침대 변두리에 무릎을 꿇고 신은지와 마주 보고 있는 박태준의 어두운 눈동자에서는 성난 파도 같은 어둠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박태준에게서 강한 압박감과 정복욕을 느낄 수 있었고 키스로 인해 붉어진 입술은 신은지의 코앞에 있었다.박태준은 참고 있었다.박태준의 팔은 신은지의 몸 양쪽에서 버티고 있었는데 그는 손가락을 조여 주먹을 쥐었다. 목의 핏줄은 성난 듯 튀어나와 있었고 가슴은 심한 기복을 이루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는 조용한 방에서 메아리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은지, 너도 날 원하고 있어!” 긍정문이었다.신은지는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박태준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뜨겁고 진지한 눈빛에는 그녀만 보였다. 그 속에는 조롱과 농담 등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마치 무슨 엄숙한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그녀는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신은지가 피하려는 것을 느낀 박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다시 되돌려 강제로 그와 눈을 마주치게 했다. “넌 나를 속일 수 없어. 내가 너랑 키스할 때 넌 즐기고 있었어. 너도 나를 원하고 있어!”“…”신은지의 얼굴은 몹시 뜨거웠다. 하지만 거기가 더 뜨거웠다.박태준의 말 하는 글자 하나하나가 폭죽처럼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는 박태준과 신은지가 이혼한 줄 몰랐다. 그들이 함께 온 것을 보고 당연히 아직 부부라고 생각했다.나유성이 바로잡았다. “삼촌, 이 두 사람 이미 이혼했어요.”“…” 나유성의 삼촌은 어색해서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그리고 나유성에게 고개를 돌려 또 한바탕 퍼부었다. “됐다. 넌 병원에 가만히 있어. 난 돌아가서 네 숙모 곁에 있어 줘야겠다. 그 지갑은? 내가 내려가는 김에 버려줄게.”입을 잘못 놀린 복수였다.나유성은 입술을 오므렸다. “안 버릴 거예요!”“왜 이렇게 아끼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준 선물이냐?”“… 네,”나유성의 삼촌은 떠나려다가 이 말을 듣고 희한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조카는 성격이 온화하고 예의 바른 신사지만 여자 복이 형편없었다. 그는 조카가 연애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제? 됐다! 시간 내서 가족들에게 보여줘. 네 엄마 너의 혼사 때문에 머리카락까지 하얘졌어!”나유성은 고개를 들고 신은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워낙 성격이 온화해서 그의 눈빛은 무엇을 보나 애틋한 느낌이었다.지금 감정이 듬뿍 담긴 시선은 ‘바로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녀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데려갈 수 있어요.”나유성의 시선이 신은지에게로 향했을 때, 박태준은 앞으로 한 걸음 나서서 신은지의 앞을 막았다. ‘이 새끼 흑심 품고 있을 줄 알았어! 진작에 이 새끼 혼자 병원에 둘걸…’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공기 중에 번쩍이는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나유성의 삼촌은 이 팽팽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박태준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그가 떠나자 박태준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박태준은 손을 내밀었다. “지갑은?”나유성은 침대에 기대어 이불에서 손을 넣어 검은색 지갑을 꺼냈다. 브랜드 제품이 아닌 평범한 지갑이었다. 겉보기에는 새것처럼 보였지만 스타일을 보면 오래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박태준은 뒤에 서 있는 신은지를 바라보며 원망하는 말투로 물었다. “네가 줬어?”신은지는 예전에 나유성에게 지갑을 선물한 적이 있었
이미 알고 있는 일이어서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신은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업무적인 일이야. 가자.”신은지는 배를 만지며 ‘배가 고프다’고 하려던 말을 “아직 저녁도 못 먹었어.”라고 바꾸었다.이 단어는 머리에 야한 생각밖에 없는 박태준에게 암시적인 의미가 될 것이다.방금 그 여자가 수상 쩍이게 신은지를 한쪽으로 끌고 가서 얘기한 것을 보면 분명 업무 얘기를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신은지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것을 눈치채고 박태준은 마음이 불편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박태준에게는 아직도 '계약 남자친구'라는 꼬리표가 달려있어서 그에겐 아직 자격이 없었다.“가자. 뭐 먹고 싶어?” 박태준은 먹을 것보다 신은지의 손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신은지의 손을 잡고 싶었다.방금 병실에서 신은지가 손을 뗀 속도는 로켓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던 것을 박태준은 기억한다.박태준이 손을 들었을 때 신은지는 이미 빠른 걸음으로 멀리 걸어갔다. 손을 잡기는커녕 그녀의 옷자락에도 닿지 못했다.신은지의 뒷모습을 보며 박태준은 맥이 빠져 뒤에서 따라갔다. “내가 그렇게 창피하냐?”신은지는 소 한 마리를 삼킬 수 있을 만큼 배가 고파서 박태준의 말에 숨은 뜻을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럴 리가? 너처럼 잘생긴 얼굴도 사람들 앞에 내놓는 게 창피하다면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박태준은 이 말을 듣고 침울하던 기분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입꼬리는 이미 올라갔지만 애써 얼굴을 굳히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근데 왜 고연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렇게 빨리 손을 뗐어?”박태준은 이렇게 말하면서 신은지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순조롭게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손바닥에 감싸 쥐었다. 순간 남자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만약 고연우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박태준을 주인 만나서 기뻐하는 개로 비웃었을 것이다.신은지는 두 사람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박태준: “…”
신은지는 아무리 알아봐도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한 씨 아주머니는 지난번 남포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한 씨 아주머니는 허공에 사라지듯 소식이 끊겼다. 신은지가 고액 투자해 구한 탐정조차도 한 씨 아주머니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초조해진 신은지는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버지한테 물어봤어?” 진유라는 신은지에게 물었다. “물어봤었지. 듣자마자 모른다고 하더라.” 신은지는 말했다. “그때는 증거가 없었지만 지금은 어머니 일기장이 있으니 절대 오리발 내밀지 못하실 거야. 꿍꿍이가 있는 사람한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아버지는 지금 구치소에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어서 변호사 외에는 아무도 만날 수 없어.” 신은지는 머리카락을 넘기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박태준 아니면 안 돼. 아마 박태준이 알았으면 지난번에 너희 아버지를 반쯤 죽였을 수도 있어.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너희 아버지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다는 거야. 면회 갔을 때 네가 물어본 질문에 대답 하나도 안 했잖아.” “이 얘기는 다음에 다시 하자.”신은지는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 신은지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박태준을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강 씨 집안의 권력자인 강태민이 위험하다고 했으면 정말 위험한 것이다. “박태준이랑 화해한 거 아니야? 네 엄마가 박태준 엄마나 마찬가지 아니야?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진유라는 신은지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아직 계약 남자친구 기간이 안 끝났어. 서로 안 맞으면 헤어질 수도 있어. 그러니까 최대한 엮이지 않는 게 좋아.” 신은지와 박태준은 3년 동안 부부로 지내왔다. 하지만 박태준은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거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박태준은 항상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대표, 신은지는 차를 따라주는 직원이었다.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신은지가 밥을 전달해 주는 몇 분 밖에 안 됐다.때문에 박태준은 신은지에 대해
신지연은 진유라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본인 아니에요? 그쪽이랑 신은지는 한통속이잖아요. 천박한…” 이때, 진유라는 신지연의 말을 더 이상 듣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냅킨을 신지연의 입에 넣어버렸다. 진유라는 식당에서 나올 때 손을 닦고 있다가 허겁지겁 나오는 바람에 냅킨을 들고나왔다. 마침 버릴 곳이 없어서 찾고 있었는데 유용하게 잘 사용하게 되었다. 잠시 후, 진유라는 화장실에서 주저앉아서 무언가 열심히 줍고 있는 신은지를 보았다.“은지야, 화장실 바닥에 주저 앉아서 뭘 그렇게 열심히 찾고 있어?” 진유라가 말했다.“머리카락…”신은지는 본인이 예상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번 강이연이 신당동에 갔을 때 신지연에게 둘째 큰아버지와 친자 확인을 해보라고 권유했다.그때 당시 신지연은 자신이 마치 강 씨 집안 혈육이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이었다.신지연의 성격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난리를 피울 것이다. 하지만 머리카락 몇 가닥으로 본인임을 증명할 수 없다. 이때, 방금 전 자리를 떠났던 신지연이 다시 신은지 앞에 나타났다. 신지연은 신진하가 구치소에 들어간지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나타나 신은지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며 신은지를 보자마자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며 난리를 피웠다.“뭐?” 진유라는 신은지에게 말했다. “신지연 머리카락 남았는지 봐줘.” 신은지는 진유라에게 말했다. “아직 있네!” 진유라는 신지연의 옷에서 머리카락을 한 움큼을 잡으며 말했다. “머리숱 많아서 부럽다!” 진유라는 본인 머리카락을 만지며 비교했다. “대머리도 아닌데 머리카락이 없을 리가 있어요? 뭐 하는 거예요? 신은지 도와주고 출세라도 할 작정이에요? 꿈 깨세요. 요즘은 석사 정도는 나와야지, 알아주지도 않는 학교 나와서는 아무 쓸모 없어요.”신은지는 신지연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신지연, 오자마자 내 머리끄덩이를 잡은 걸 보면 분명 또 무슨 나쁜 짓을 하려고 했던 게 분명해.” 신은지의 생각이 맞다. 진유라는 신지연의
진영웅은 어두운 얼굴로 경찰서에서 나오는 박태준을 보고 당황했다. 잠시 후, 박태준은 먼저 나간 신은지가 차에 없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사모님은?”“방금 전화를 받자마자 택시 타고 가셨습니다.” 진영웅은 신은지가 떠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 붙잡고 뭐 했어?”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무슨 수로 써서라도 붙잡으려고 했는데 사모님이 따라오면 아프리카로 보낸다고 하셨어요.” 진영웅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누구 전화를 받고 간 거야?” 박태준은 별 기대 없이 물었다. 진영웅은 입을 꼭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의 표정은 알고는 있지만 절대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입 꼭 다물고 뭐해? 빨리 말해.” “대표님께서 뒷조사하라고 하셨던 그 늙은이요. 사모님께서 ‘강 씨 둘째 큰아버지’라고 말씀하는 것만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거리가 멀어서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너는 말이 너무 많아.” 박태준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박태준은 본인과 재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는 신은지가 강태민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보고 한 가지 확신했다.바로 신은지는 아버지의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이가 많은 남자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신은지가 박태준과 사귀는 것은 젊어서 체력도 좋고,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주기 때문이다. 늙은 노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 진영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영웅은 그야말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어차피 신은지는 떠났으니 두 사람이 입씨름을 할 필요는 없다. 이때, 경찰서에서 나온 진유라는 입구에 서서 안 좋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태준과 진영웅을 마주쳤다. 진유라는 주변을 살펴본 후 물었다. “은지는요?”박태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진유라 앞에서 애서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은지가 저랑 재혼하고 싶지 않다고 그랬습니까?”박태준의 말투는 쌀쌀맞았지만 예의를 갖췄다. 옆에 있던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