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지가 박태준 뒤에 다가와 보니 마침 안전통로에서 나온 강 씨네 둘째 어르신을 보게 되었다. 그는 키도 크고 캐주얼한 복장을 입었고 눈에는 권력자만 갖고 있는 예리함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또 어르신의 자상함도 섞여있었다.둘째 어르신은 아무도 데리고 오지 않고 혼자였다. “박 대표......”박태준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강태민은 이제야 신은지를 보게 되었다. 고개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신은지 씨, 이번 일은 우리 집 자식들이 철 없이 저지른 일이라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보상으로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강태민의 입장은 명확했다. 그건 바로 이번 일을 최대한 소리 소문 없이 처리하는 거였다.신은지는 강태민의 손목을 보며 말했다. “둘째 어르신, 혹시 제가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강태민은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네, 그러죠.”그래서 강태민 일행은 신은지의 방으로 들어왔다. 신은지는 가방에서 염주를 꺼냈다. 이 염주는 신은지 손에서 다시 관리를 하지 않은 관계로 전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전에 남포시에서 저를 구한 분이 어르신 맞죠?”신은지는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강태민은 신은지 손에 있는 염주를 빤히 쳐다보다가 웃음을 지었다. 뭔가 예의상 웃는 것 같았지만 또 달라 보였다.“맞아요.”그러자 신은지는 물었다. “그럼 어르신 께서는 혹시 저희 엄마 아시나요?”육지한은 강태민의 소속이고 그의 지령에 따라 일을 했다. 전에 엄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한산 별장도 알고 보면 강태민 거였다.“오래전에 얼굴 몇 번 본 적 있어서 옛 친구라고 할 수 있죠.” 강태민은 긴장한 듯 침을 삼키고 말했다.신은지는 뭐라고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때 육지한이 강이연과 강민호를 데리고 들어왔다. 두 사람은 마치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왔다.강민호는 보란 듯 벌을 받은 거 같았고 들어오자마자 바로 사과했다. “신은지 씨,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술을 많이 마셔서 술김에 그만 방을 잘못 들어가 실수를 한 것
두 사람은 몇 발짝 물러섰다. 박태준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신은지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신은지, 너 대체 우리 둘째 삼촌이랑 무슨 사이야?” 강이연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원한과 질투로 가득 차 있었다.“강이연 씨, 무슨 말이에요?”“삼촌이 아들을 얼마나 아끼시는데. 여태까지 한 번도 때린 적이 없었어. 오늘 너 때문에 손찌검까지 하고 연락처도 주시고.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하면 누가 믿겠어?”“강민호 같은 인간쓰레기가 맞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네가 어떻게 그런 놈을 설득해서 입을 다물게 했어?”그렇게 두들겨 팼는데 강이연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던 것이다. 둘이 그렇게 오붓한 남매 사이는 아닌 거 같은데?강이연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아니면 내가 왜 오 도련님과 방을 바꾸겠어?”강이연이 일부터 박지훈을 밟은 틈을 타 옷 주머니의 카드키를 바꾼 걸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오늘일 뿐만 아니라 박물관 일도 네가 한 짓인 거 다 알아. 네가 백진희의 아들을 유학 보내는 대가로 백진희한테 죄를 뒤엎어 쓴 거지 .”신은지는 비웃듯이 말했다. “너 같이 악랄한 여자가 감히 박씨 가문에 들어가려고 해? 꿈 깨. 다음 생에 유기견으로 태어나면 모를까?”“신은지, 내가 일부러 너한테 접근한거 알고 있었지.” 강이연의 목소리는 문득 높아졌다. “그러면서 나를 조커처럼 지켜본 거 아니야?”“알고 있으면 어쩔 건데? 내 뒤에는 강씨 가문이야. 너 하나쯤은 쉽게 밟아줄 수 있어. 오늘 민호 오빠가 당한 게 네가 한 말 때문인 줄 알아? 삼촌이 박 사장님 체면을 봐준 거야. 박 사장님만 아니었으면 네가 오늘 억울해서 죽는 한이 있어도 아무 방법이 없을걸.”말을 들은 신은지는 별로 화를 내지 않았다. “응. 네 말이 맞아. 아 맞다, 너한테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는데.”“무슨 말이야?”신은지는 대꾸하지 않고 그녀를 향해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 웃음에 강이연은 갑자기 온몸이 오싹했다.정
깜짝 놀란 박태준은 손이 미끄러져 하마터면 신은지를 놓칠 뻔했다가 다시 바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마침 여자의 얼굴이 복부 아래인 민감한 곳에 맞댔다.온몸의 신경이 곤두선 그는 목소리가 잠겨졌다. “신은지, 너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아?”그는 신은지가 취해서 얼떨떨해진 줄만 알았다.결혼 뒤, 매번 신은지가 취했을 때마다 그가 돌봤으니, 그녀의 술 버릇이 얼마나 나쁜지 제일 잘 알고 있었다.따질 생각은 없었는데, 품에서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취한 여자가 갑자기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그뿐만 아니라 손으로 문지르다가 불편한지 그곳을 누르려고까지 했다.박태준은 그녀의 분주한 손을 잡고 솟아오르는 욕구를 억지로 참으며 물었다. “나랑 선을 긋는다더니, 왜 또 같이 있겠다는 거야?”곤드레만드레 취했어도 신은지는 그의 말을 교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같이 있는 게 아니라 은혜를 갚기 위해 병을 고쳐주는 것뿐이야.”화가 난 박태준은 웃음만 나왔다. “남들이 은혜 갚는다고 하면 보통 잠자리를 같이 해주는 건데, 넌 그냥 옆에서 자기만 하는 거야? 은지야, 백화점에서 세일해도 너만큼은 안 해.”신은지는 눈썹을 찡그리더니 한참 만에야 정중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넌 좋은 남편감이 아니야.”그녀의 말은 마치 부드럽고 가느다란 가시처럼 가슴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심한 통증은 아니었지만 시큰하고 저렸다.박태준은 고개를 숙여 한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감싼 채 이마를 맞대고 신은지와 시선을 마주쳤다.쉰 목소리는 조용한 거실에서 유난히 작게 들렸다. “은지야, 전엔 내가 나빴던 거 알아, 기회 한 번 줘, 내가 고칠게.”그가 말할 때 신은지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박태준은 손끝으로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은지야......”신은지는 길게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싫으면 됐어, 그만 잘래.”그녀가 박태준을 밀치고 의자에서 뛰어내리자,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다.박태준의 손이 허허하게 그녀의 허리에
박태준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신은지의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소파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차림을 보았다. 상의는 거의 다 벗겨졌지만 바지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박태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짐승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30분 동안 뭐한 거야?”그에게 빚졌던 은혜를 갚으려 마음을 굳게 먹었었다. 게다가 박태준이 아프다고 해서 그를 혼자 둘 수는 없었다.그가 좋은 남편감은 아니지만 속궁합도 맞고, 신체와 외모 모두 신은지의 이상형이기도 했다. 중간에 도망칠까 봐 일부러 술을 마시면서 자기 최면도 했지만 노력은 헛수고로 돌아가고 말았다.“입 맞춤.”신은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창피한 동시에 짜증이 났다.“입 다물어.”박태준이 자리에 일어났다. 그리고 술을 몇 병 들고 왔다. 그가 들고 온 술은 저번에 진영웅이 가져다준 술이다.“한잔할래?” 신은지는 술병을 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어떤 술인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의사가 여러 번 해도 된다고 그랬어.”“..”“한번만 더 하자.”박태준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어서 상대를 위로하기 바빴다.“믿어줘, 이번에는 절대로 다치게 안 할게.”그의 눈빛에 빛이 반짝 거렸다. 순간 신은지는 그가 결혼을 해달라는 건지 아니면 다른 걸 해달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별장 안.자리를 뜨려던 강태민이 이번 일로 다시 돌아왔다. 밖에서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는 강이연은 강 씨 가문 사람 앞에서는 도덕적인 사람처럼 행동했다.“둘째 큰 아버지, 그 사람 이상해요. 무조건 해외로 유학 시키려고 그랬어요. 그리고 경인 시 박물관에 들어갔을 때도 자기 아들한테 소개 좀 시켜 달라고 했다니까요. 분명히...”백진희는 구치소에 있지 않은가, 그녀가 어떻게 별장에 나타난 것일까. 또한 그의 아들이 유학 명단에서 빠졌다는 게 무슨 말일까.해외로 유학을 보내는 일은 그녀가 손 하나만 까딱해도
“잠만 자고 갈 거야?” 박태준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어제 얘기 끝났잖아…” 박태준은 이불을 걷어 목과 가슴의 상처를 신은지에게 보여줬다. 박태준의 가슴과 어깨에는 상처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아직도 피가 나는 곳도 있었다. “얘기는 끝났지. 그런데 네가 내 몸에 상처를 냈으니까 가격을 올려도 할 말 없지 않아?”“……” 신은지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등에도 상처 있는데 볼래?” 박태준은 등을 보여주려고 뒤돌아섰다. “됐어. 가격만 올려, 다른 건 절대 안 돼.” 신은지는 재빨리 박태준을 제지했다. “내가 돈이 없을 것 같아?”“다른 건 절대 꿈도 꾸지 마…” 신은지는 박태준과 침대에 마주 보고 누워서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해 일어나 앉았다. 잠시 후, 신은지는 온몸이 경직됐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 신은지는 고개를 돌려 박태준을 째려보며 말했다. “박태준, 어젯밤에…”콘돔? “우리 집에 콘돔이 있나?” 박태준은 침대에 누워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네 집이잖아,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신은지가 박태준을 좋아했을 당시, 신은지는 박태준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서 콘돔을 샀다. 하지만 그 후로 콘돔의 유통기한이 지날 때까지 하나도 쓰지 않았다. 신은지는 박태준이 본인을 건드리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콘돔을 사지 않았다. “나 혼자 사는데 콘돔이 무슨 필요야? 사놓으면 유통기한 지나서 버릴 텐데?” 박태준은 일부러 신은지의 정곡을 찔렀다. “유통기한 지나면 버리면 되잖아?” 박태준의 말에 뜨끔한 신은지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신은지는 이불을 걷어 내고 침대에서 내려오려다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는 것이 생각나 재빨리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박태준에게 말했다.“뒤돌아.” 박태준은 씁쓸했다. 신은지를 이렇게 놓아준다면 어렵게 발전한 사이가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예전과 같은 사이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따 가서 사 올게.” 박태준은 말했다. “미안, 어
과거의 박태준은 때려죽여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박태준은 입만 열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신은지는 박태준이 바뀌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눈여겨봤다. 때문에 박태준에게 빚지고 싶지 않은 신은지는 어젯밤 잠시 정신을 놓았던 것이다. 박태준은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매우 풍족하다. 하지만 유일하게 부족한 것인 바로 남자로서 구실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순간 박태준의 단점이 생각난 신은지는 곧바로 말했다. 신은지는 뒷걱정을 생각하며 후회하지 않았다. 박태준이었다면 신은지처럼 할 수 있었을까?절대 못했을 것이다. 박태준과 신은지의 성격은 정반대이다. 하지만 신은지는 정반대인 성격이라도 박태준이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전 남편이라 그런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첫 남자라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분간할 수 없으니 시도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계약 남자친구 기간에는 절대 다른 사람들한테 내가 네 여자친구라는 걸 말하면 안 돼.” 신은지는 말했다.신은지는 지난번 두 사람의 재혼설이 떠돌아다녀서 고생했던 것이 떠올랐다. 신은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박태준이 여기저기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었다. “말 안 했는데 알아채면? 그럼 내 탓하면 안 돼.” 잠시 후, 박태준은 일부러 과장하며 말했다. “내 옆에서 떨어져 있어. 붙어있으면 다른 사람이 오해할 수도 있어.” “고연우는 눈치가 백단이야.” 매너 있고 품위 있는 고연우는 신은지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겼었다.잠시 후, 신은지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고연우한테 들키면 끝나는 거야.” “그럼 오늘 아르바이트생 시켜서 네 짐 옮기라고…” 목적을 이룬 박태준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때, 신은지는 박태준의 말을 가로채고 말했다. “우리 각방 쓰자. 내 짐 옮길 필요 없어.” “……” 박태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박태준은 잔뜩 실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신은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어렵게 얻은 계약 남자친구를 하루 만에 끝
신은지는 평소 나유성에게 나는 향긋한 우드향이 느껴졌다. 잠시 후, 신은지는 화들짝 놀라며 나유성 품에서 빠져나와 말했다. “고마워, 발에 뭐가 걸렸나 봐.”신은지는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보았다. 하지만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신은지는 방금 뭐에 걸려 넘어진 걸까? 신은지가 땅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나유성은 말했다. “왜 그래?”“아무것도 아니야. 들어가자.” 신은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신은지는 자신이 잘못 본 거라고 생각했다. 레스토랑 근처 주차장, 박태준은 차 안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박태준은 레스토랑과 조금 떨어진 주차장에 있었지만 온 신경은 모두 신은지에게 있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신은지가 뭐에 걸려 넘어졌는지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넘어졌다는 것은 나유성이 한 짓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나유성은 방금 전 신은지가 박태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도 고개를 돌려 못 본 척했다. 나유성, 그야말로 교활하다. 나유성은 겉으로 보기에 온화하고 매너 좋은 신사 같다. 하지만 속으로는 악랄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신은지는 순진한 양의 탈을 쓴 나유성에게 깜빡 속고 있는 것이다. 박태준은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나유성과 신은지는 이미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잠시 후, 박태준은 아무도 없는 텅 빈 입구만 바라보다 차에서 내려 담배를 꺼냈다. 이 시각 레스토랑 안, 나유성은 매너 좋은 신사답게 신은지에게 의자를 빼주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박태준은 담배를 한 모금 태우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신은지는 나유성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신은지는 갑자기 고통을 느꼈다. 남자는 성관계 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지 않나? 3년이 지났는데도 박태준의 스킬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신은지는 주문을 끝내고 형식적인 인사를 나눈 후 말했다. “이모, 저희 엄마가 강 씨 가문에 대해서 말한 적 있었어요?” 나유성의
신은지가 앉아 있는 창가 쪽 테이블에 도착한 박태준은 주저하지 않고 신은지 옆자리에 앉았다.박태준을 뒤따라 온 나유성은 죽일 듯이 박태준을 노려보며 어머니 옆에 앉았다. “이모, 안녕하세요.” 박태준은 나유성 어머니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나유성 어머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아는 동생이랑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구나, 너희끼리 맛있게 먹으렴.” “……”나유성 어머니는 배를 만지며 말했다. “나이 들면 소화가 잘 안돼서 말이야… 고기는 젊은 사람들이 먹어야지.”잠시 후, 나유성 어머니가 떠나자 세 사람만 남았다. 분위기는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 박태준은 신은지 옆에 붙어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있는 음식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양식 별로 안 좋아해, 우리 한식 먹으러 가자.”아침에 케이크 한 조각만 먹어 배가 고픈 신은지는 박태준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양식 안 좋아하면서 왜 왔어?”방금 전 박태준은 일부러 나유성 어머니 눈에 잘 띄는 곳에서 담배를 피웠다. “이모가 부르셨잖아. 어른이 부르는데 안 오면 안 되지.” “그럼 한식은 너 혼자 먹으러 가.” 신은지는 나이프와 포크를 들어 스테이크를 자르며 말했다. “네가 스테이크를 먹고 싶으면 내가 같이 먹어줄게.”“억지로 먹을 필요 없어.”“억지 아니야.” 박태준은 스테이크를 한 조각 잘라먹으며 말했다. 나유성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은지는 지금까지 나유성에게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혹시 나유성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항상 온화한 태도를 유지했다. 신은지는 박태준에게 신경질적이었지만 그 속에 애교가 섞여 있었다. 나유성은 갑자기 가슴이 뭉클하고 답답했다. 특히 신은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나유성이다. 만약 그 당시 나유성이 주저하지 않고 신은지를 도와줬더라면 오늘 신은지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나유성일 것이다.한때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