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클럽의 룸 안에서, 진은영과 성현준이 공적인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은영은 몇 번이나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서 성현준의 말을 듣지 못했다. 분명 유이준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성현준이 가볍게 기침을 하며 말했다.“왜요? 아직도 저희 전 처남이 잊혀지지 않나요?”진은영이 부인할 틈도 없이 성현준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두 사람도 좋았을 때가 있었으니 처남 생각이 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어요. 부끄러운 일도 아니니까요. 물론 처남 성격이 좀 고약하긴 하지만 집안도 좋고 잘생겼잖아요. 처남과 결혼하게 되는 사람은 자다가도 웃으면서 깰지도 모르죠.”“하지만 오늘 같이 오신 분이랑 잘 되진 않을 거예요. 처남은 좀 취향이 독특한 것 같거든요.”성현준은 유이준의 전 처남이었고 전에도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한때 가족이었던 만큼 유이준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래도 잘 아는 편이었다. 결론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성현준의 말을 듣고 진은영은 웃음을 지었다.“생각보다 이준 씨를 잘 아시나 보네요. 예전에 이안 씨가 이준 씨 얘기를 많이 했었나 보죠?”유지언을 언급하자 성현준은 잠시 슬픔 속에 잠겨있었고 진은영을 위로할 힘조차 사라진 듯했다.진은영이 그를 놀리려던 찰나, 식탁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하와이 쪽에 있는 아줌마한테서 급하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은영 씨, 여기로 와줄 수 있을까요? 진별이가 갑자기 열이 심하게 나서요. 병원에 데려갔는데도 무슨 문제인지 찾지 못했어요... 의사선생님께서 부모님을 불러야 한다고 하셨어요.”아줌마는 돌려서 말하려고 했지만 진은영은 의사가 급성 백혈병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아줌마에게 바로 하와이로 가겠다고 말하며 일단 당황하지 말라고 했다.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진은영이 되려 당황하게 되었다. 비행기 티켓을 사라고 비서에게 전하는 개 아니라 본인이 직접 예약해 버렸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는 모두 만석이었다
유이준은 또 무심코 물었다.“같이 가셨어요?”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이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매니저는 자신이 말을 잘못한 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뭐라 말을 보탤까 고민했지만 유이준은 이미 벤틀리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버렸다.초봄인지라 날씨는 추웠다. 차 안은 얼음 동굴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유이준은 차를 운전하지 않고 그저 무표정으로 천천히 담배를 꺼내 피울 뿐이었다.담배 연기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하자 그는 손을 들어 창문을 조금 내렸다. 차가운 바람과 연기 속에서 그는 진은영과 보냈던 나날들을 기억했다.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으며 달달했을 때, 화가 났을 때도 있었다.유이준은 자신에게 여자라고는 진은영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마음에 들었던 여자도 진은영뿐이었고 몸을 섞은 여자도 진은영뿐이었다. 하지만 진은영은 그걸 모르는 듯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은 유이준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 큰 것 같았다.그는 다시 한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유이준은 자신이 진은영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는 몰랐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때문에 진은영을 미워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한편, 하와이에서.진은영과 성현준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여자의 가정사에 개입하는 건 너무 선을 넘는 것 같았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진은영은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를 전했다.“정말 감사합니다, 성 대표님. B시로 돌아가면 제가 밥을 사겠습니다.”성현준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작별 인사를 했다.하지만 그가 돌아서려던 순간,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이 떨어졌다. 강한 햇빛 아래에서 진은영은 그 사진에 있는 사람이 유이안임을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순간 분위기가 미묘해졌다.진은영은 사진을 주워서 성현준에게 건넸다.“아직도 이안 씨를 사랑하고 있으세요?”성현준은 사진을 받아 들고 한참을 바라보더니 조용하게 말했다.“네. 아직 사랑하고 있지만 제가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사람은
병실 문이 살짝 열렸고 아줌마가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은영 씨, 여동생이라고 하시는 분이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진은영이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진안영이?’진은영이 병실 문 앞으로 나가자 지친 모습을 하고 있는 진안영이 밖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진은영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진별이 말이야. 누구 아이야?”진은영은 숨기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혈육인 여동생에게는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진안영은 천천히 병실로 들어가더니 병상 옆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잠든 진별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아이의 얼굴은 새하얗고 갸름했으며 진은영의 어린 시절과 많이 닮아 보였다. 다섯 살 정도는 돼 보였다.진안영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진별이의 얼굴을 만졌다. 자신과 혈연관계가 있는 그 아이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학 때 생긴 아이야?”아무래도 언니 쪽이 포스가 더 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평소에는 진은영이 진안영 앞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다. 하지만 지금, 진은영은 그녀의 질문에 반박할 자신이 없었다.한참 후에 진은영이 인정했다.“응, 사고였어.”진안영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유이준 씨 아이야?”진은영은 약간 화를 내며 말했다.“진안영!”진안영은 가장 차분한 목소리로 가장 충격적인 말을 했다.“이마 쪽이 유이준이랑 똑같아.”진은영은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그녀도 병상 옆으로 가서 잠든 진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진은영의 과거의 기억에 잠긴 채 입을 열었다.“그해 나는 아직 공부를 하고 있었고 이준 씨는 이미 졸업한 선배님이었어. 친구 덕분에 만나게 됐었고.”“그때 이준 씨는 아직 YS 그룹을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여서 어리고 스트레스도 큰 상태였어. 그래서 술을 마실 때도 지금처럼 조심스럽지 않았지.”“그날 밤, 이준 씨는 술에 취했고 나도 취했어. 그러다 보니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거지.”이렇게 말하며 진은영은 씁쓸하게 웃었다.“다음 날 아침, 나는 바로
일주일 후, 진별이는 B시로 돌아왔다.원래는 진안영이 진별이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진은영은 여러 차례 고민한 끝에 딸을 자신의 곁에 두기로 했다. 그녀는 진안영에게 말했다.“진별이를 계속 다른 사람 집에 있게만 할 수는 없어.”전용기에서 진별이는 엄마의 품에 살짝 기대었고 진안영은 진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전용기가 착륙하고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갔다.진별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노란색 패딩을 입고 얼굴을 따뜻하게 감쌌다. 진별이는 별장에 있는 예쁜 작은 정원을 바라보았다. 겨울이지만 잔디는 여전히 푸르르고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었다.진별이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엄마, 저 앞으로 여기서 사는 거예요?”진은영은 약간 목이 메인 목소리로 대답했다.“응, 앞으로 엄마랑 같이 살 거야.”함께 간 아줌마는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이 멋진 별장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은영 씨가 하고 있는 사업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집이 정말 비쌀 텐데 말이에요. 하와이에 있다면 80억에서 100억은 할 거예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B시에서도 그 정도 가격이에요. 일단 잠깐은 여기에서 사는 거로 하고요. 제가 비서한테 더 큰 집을 알아보라고 할게요. 나중에 도우미 아줌마를 몇 명 더 고용해서 진별이를 돌보게 할 생각이에요. 가을이 되면 진별이를 학교에 보내도 좋고요.”아줌마는 속으로 감탄했고 진별이는 아주 기뻐했다. 만약 날이 너무 춥지만 않았더라면 푸른 잔디 위에서 몇 바퀴 굴러다니고 싶을 정도였다.진안영은 그녀가 기뻐하는 것을 알고 손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가서 임시로 만든 진별이의 방을 보여주었다.진별이가 돌아와 살 수 있도록 유명한 디자이너를 고용해 최고급 친환경 자재로 이 방을 꾸몄던 것이다.방에는 진별이가 좋아하는 애니 캐릭터로 가득했다. 가구에도 인쇄되어 있었다. 부드러운 침대 옆에는 분홍색 고양이 집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3개월 된 하얗고 작은 고양이 새끼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진별이는
침묵이 흘렀다.사실 그들은 함께한 시간이 꽤 길었지만 유이준은 그녀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진은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항상 싸우지 못해서 안달이었고 서로를 곤란하게 만들기만 했다.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서야 두 사람이 사랑 얘기를 하게 되다니...하지만 그들이 헤어질 때 진은영이 뭐라고 말했던가...그녀는 유이준에게 잠자리를 갖는 것 외에 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진은영은 이렇게 그가 듣기 싫어할 말을 해버렸고 그들 사이에는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잠시 후, 유이준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직도 사랑한다고요? 진은영 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죠. 저는 한 여자에게 매달릴 정도로 어리석지 않아요. 그쪽도 자기가 한 말을 잊지 않았겠죠?”“이번엔 또 뭘 꾸미는 거예요? 저한테서 뭐라도 이득을 보려고 그래요? 이용하고 나서 발로 차버리려는 거죠?”진은영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그녀는 유이준이 매정하고 듣기 힘든 말을 듣기만 했다.“선을 보는 것도 꽤 좋더라고요. 적어도 여자분이 깨끗하고 정직하니까요.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말이에요.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은 상대를 찾으면 바로 1년 안에 결혼하고 아이를 가질 겁니다.”마지막 몇 마디는 유이준이 이를 악물고 내뱉은 말이었다.그는 전화 너머 진은영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온몸이 떨리고 있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그녀도 유이준 앞에서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체면을 지키며 조용히 말했다.“그래요? 미리 축하해요.”그 말을 들은 유이준은 잠시 멈칫했다.약 2초가 지나 진은영은 전화를 끊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유이준이 했던 말들이 계속 맴돌았다.‘적어도 깨끗하니까...’‘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휴대폰이 책상 위로 떨어졌다.진은영은 서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밖에 있는 정원에서 진별이의 기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진은영에게 큰 행복을 주었고 진은영
진은영도 손을 내밀며 말했다.“안녕하세요.”두 사람은 악수하며 잠깐 인사를 나누고는 바로 손을 놓아버렸다.그리고는 임하민이 유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들어가자. 아까 이안 언니가 우리 둘 어디 있냐고 물어봤대.”유이준은 임하민을 애지중지했다.그는 진은영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임하민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두 사람이 가버리자 진은영 홀로 남게 되었다.옆에 있는 큰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진은영은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았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안색이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있었다.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속으로 생각했다.‘분명 처음 선택한 건 난데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누구한테 보여주려고?’그녀는 5분 정도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감정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연회장에 들어섰다.그때, 진안영이 그녀를 가로막았다.방금 전 장면을 목격했던 그녀는 마음이 아파서 진은영을 화장실로 데려가 얘기를 나눴다.그녀는 문을 잠그고 진은영을 바라보았다.진은영이 웃으면서 말했다.“봤어?”그러자 진안영이 봤다고 대답하고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이준 씨가 선을 본 건 지난주 일이야. 갑자기 정해졌대. 곧 임하민 씨랑 약혼하고 연말에 결혼할 거래.”진안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진별이는 어떻게 할 거야? 정말 이준 씨에게 아이의 존재를 알리지 않을 거야? 두 사람의 사이가 더 깊어지기 전에 진별이의 존재를 알려야 해. 그러면 이준 씨에게도 선택할 기회는 있겠지.”진은영은 세면대에 기대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파우치를 열어 담배 한 갑을 꺼내 들었다. 한 대 피워서 기분을 풀고 싶었지만 손이 너무 떨렸다.결국 갑안에 있던 담배가 바닥에 흩어졌다.진은영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방울은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서 바닥에 있는 담배를 적셨다.“이준 씨가 그러더라.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을 찾고 싶다고 말이야. 안영아, 나는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이준 씨 앞에 서면 정말
결혼식이 거의 시작할 때야 유이준은 비로소 연회장으로 돌아왔다.강원영과 유이안은 결혼식에 100테이블을 초대했다. 이 연회장은 B시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홀이었는데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유이준은 여자 측 친척으로서 당연히 메인테이블에 앉았다.임하민은 그를 보고 말했다.“유이준, 여기야! ”유이준은 그곳을 향해 몇 발자국 걸어갔다.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는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진은영을 보았다. 그녀는 진안영과 함께 앉아 있었고 교진범과는 두 자리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고 자세히 보면 금방 울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진은영은 드레스 입지 않았고 아주 깔끔한 슈트 차림이었는데 포멀하면서도 섹시함을 잃지 않았다.그녀의 몸매가 좋다는 것은 유이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그는 두 사람이 침대에서 밤새 뒹굴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것은 그의 첫 경험이자 진은영의 첫 경험이었다.여러 해가 지난 후, 진은영이 그를 찾아왔다.그녀는 그가 그해의 일을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유이준은 그저 몇 년 동안 어떻게 그녀에게 연락해야 할지 핑계를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관계를 했을 때 두 사람은 좋아하는 사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단지 그날 밤의 분위기에 취했을 뿐이고 유이준은 또 진은영의 풋풋함과 그녀 눈가의 눈물, 그리고 가냘프지만 화끈한 몸매를 느꼈을 뿐이었다.그날 밤, 두 사람은 서로의 열기를 다시금 되새겼다.유이준은 한 번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물 만난 고기처럼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그녀를 원하기만 했다.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유이준의 목젖이 몇 번 움직였다.임하민은 유이준의 손을 잡아서 자리에 앉혔다. 그는 진은영을 노려보며 임히민의 손길을 저항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이 자신에게 바싹 붙어도 그저 내버려두었다.한편, 유이안은 유이준이 수상하다고 느꼈다.사실 엊그제 갑자기 임하민을 결혼 상대로 정한 것도 수상했었다. 마치 누구한테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갑작스레 정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유이준이 지금 진은
두 사람이 술잔을 내려놓자 임하민은 더욱 수줍어하며 그에게 몸을 기댔다.두 사람은 금실이 좋아 보였다.찬란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유이준의 미모는 더욱 잘생겨 보여서 여인을 사로잡았지만 그의 시선은 줄곧 진은영을 주시하고 있었다.진은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이런 장면은 그녀에게 놓고 말해서 너무 잔인했다.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감정을 억눌렀고 그 덕에 이런 자리에서 추태를 부리지 않을 수 있었다.그러나 유이준은 여전히 진은영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마치 온 세상에 두 사람만 남은 것처럼 말이다.옆사람이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가 진은영을 쳐다보고 있다는 건 알아차릴 수 있었다.특히 임하민이 불안해하며 말했다.“이준아, 왜 그래?”유이준은 차분하게 술을 한 잔 권하고는 자리를 떴다.진안영은 한사코 진은영의 손목을 잡고 그녀에게 힘을 주었다.조진범은 그들과 두 자리를 사이에 두고 자신의 아내와 처제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매우 자상하게 고기 한 조각을 집어 진은영의 그릇에 담아주었다. 진안영은 화가 나기도 하고 웃음도 나서 그냥 코웃음을 쳤다. 진은영은 또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3번 테이블 쪽에서 유이준은 계속해서 몰래 진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조진범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유이준이 임하민과 결혼할 리 없지.’조진범뿐 아니라 유이준의 부모님도 알아챌 정도였다.유선우가 아내와 눈을 마주쳤다.‘이준이랑 진은영 아직 안 끝난 것 같은데? 그럼 임하민은 어떡하지? 임씨 가문에 어떻게 말해야 하지? 아들이 일편단심이라 아직도 진은영을 잊지 못한다고 말해야 하나?’조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그녀의 자식이었기에 조은서는 그가 행복하고 즐겁길 바랐다. 동시에 그녀는 유이준을 믿었다. 마음속에 진은영이 있다고 해도 임하민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아닐 거라고 믿는 것이었다. 그는 일 처리를 잘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결혼식이 끝난 후, 진안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진은영을 별장으로 데려
하지만 조은희는 그 답변에 만족하지 않았고 눈물이 맺힌 채 애처롭게 다시 물었다.“결혼했어요? 다른 사람이 있어요? 아직도 저를 좋아해요?”그녀가 물었을 때 처음보다 조금 더 고집스러워졌고 그 모습에 진석은 마음이 아팠다.진석은 그들이 헤어졌을 때 조은희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소녀였다는 것을 기억했다.하지만 지금 조은희는 이렇게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며 진석에게 묻고 있었다. 그녀가 점점 용감해질수록 그의 마음은 더 아팠다.진석은 더 이상 조은희를 놀리지 않았다.그는 조은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답했다.“결혼 안 했고 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 약혼녀는 다리 치료를 마친 후 올 상반기에 결혼할 거야. 아직도 좋아해. 많이 좋아해.”...조은희의 눈가는 더욱 붉어졌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그게 제가 진석 씨와 사귀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진석은 한 걸음 다가가 그녀 눈가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조은희는 눈물이 많은 여린 여자가 되었다. 그는 예전 조은희가 항상 웃고 뒤에서 그를 끌어안으며 ‘진 선생님’이라고 달콤하게 불렀던 기억을 떠올렸다.그녀를 좋아하는 것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때 그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그 감정을 시작했다. 그 후 조은희는 해외로 떠났고 진석은 B시에 남았다. 그 뒤 1년 동안 진석은 조은희가 아무 말 없이 떠난 것에 대해 그녀를 미워하기도 했었다. 자신을 먼저 유혹한 것도 조은희였기에 더 화가 났다.하지만 그가 나중에 생각하니 조은희는 겨우 20살이었다.진석은 조은희의 첫사랑이었고 그녀의 청춘 그 전부였다. 게다가 그녀는 진심으로 진석을 사랑했기에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진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알겠지? 우리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먼저 학교 관계자들과 저녁을 먹어야지. 도서관도 지어야 하잖아. 그곳도 우리가 갔던 곳이었지.”그는 조은희가 대답하기 전에
순간 조은희의 생각이 멈추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조은희는 진석의 의도를 알 수 없었고 그가 굳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진석은 그녀를 차에서 이끌어 내리고 있었다.학교에서 준비한 식당은 학교 근처에 있었고 과거에 조은희가 진석과 함께 와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별도로 방을 예약하지 않았었다.익숙한 장소를 다시 찾으니 묘한 감회가 밀려왔다.진석과 조은희는 나란히 안으로 들어섰다. 키가 185cm인 남자와 170cm인 여자는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조합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들 사이의 과거를 아는 학교 관계자들은 자연스럽게 몇 마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조은희는 약간 불편한 기색을 띠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어린 시절엔 철이 없었죠.”반면 최근 몇 년간 사업을 통해 단련된 진석은 여유로운 미소로 담담하게 응대했다.“과거의 인연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것으로 보여요.”그 말이 나오자 학교 관계자들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진석이 조은희 때문에 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 1억이 전부 조은희 덕분이었기에 학교 관계자들은 일부러 조은희를 진석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조은희에게 음료만 권하면서 농담을 건넸다. “잠시 후 진석이 취하시면 조은희가 집에 데려다줘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잖아.”조은희는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지만, 탁자 아래로 내려간 그녀의 손이 진석의 손에 잡혔다.진석의 손길은 매우 부드러웠고 남녀 간의 감정이 담긴 것 같지 않은 마치 어른이 아이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듯 따스한 느낌이었다.조은희의 붉은 입술이 약간 떨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후 손을 빼냈고 진석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먼저 한 잔을 마셨다.교장은 여전히 예전의 그 교장이었고 진석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깊은 감회에 잠긴 듯 말했다.“많이 변했구나.”감상적인 분위
그날 밤 조은희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조은혁은 그 시간 동안 새로 들인 취미인 거북이들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늙으니까 이런 거나 만지고 있지.” 그날 밤 조은혁은 거북이들을 모두 방생하며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들었다. 심지어 한 마리 거북이 등에 ‘진석’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으며 괜히 화풀이도 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유치하다며 혀를 찼다. 조은희는 이 모든 일을 몰랐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가 며칠째 자신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보라며 걱정하고 있는 것만 알았다. 일주일이 지나며 휴가가 끝났고 조은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림 수업을 맡고 있었다. 가끔 그녀는 자신이 진석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딱히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일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저녁 해 질 녘이었다. 조은희는 차 열쇠를 챙겼다. 차를 몰고 가 간단한 간식을 사서 집에 돌아와 드라마를 보며 먹을 계획이었다. 그녀의 일상은 단순했고 굳이 그것을 깰 생각도 없었다. 며칠 전에 그 일은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조은희의 얼굴은 노을빛에 물들어 더욱 맑고 투명해 보였다. 그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차 문을 열려던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희야.” 그 목소리는 진석이였다. 조은희는 천천히 돌아섰고 그곳에 서 있는 진석을 보았다. 그는 몇몇 교직원들과 함께 기부에 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조은희는 학교의 오래된 도서관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한 기부를 논의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재회에 조은희는 순간적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석의 눈빛은 깊고도 복잡했다. 이 학교는 그들이 과거에 함께 있었던 곳이었
휴게실에서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안겨 억눌린 채로 울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좋아한다면 내가 대신 가서 말해줄게요.” 조은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빠가 언니를 대역죄인이라고 할 거예요.” 진안영은 잠시 멈칫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 “진범 씨가 도와줄 거예요.”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더욱 몸을 기댄 채 계속 울었지만 오늘이 조우찬의 첫돌 날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조금만 울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니까.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이 온화하고 점잖은 사람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진안영은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자기 남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문 열어볼게요.” 진안영이 문을 열었을 때 예상대로 문밖에는 진석이 서 있었다. 진안영은 그와 눈을 마주쳤지만 아무 감정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두 분이 얘기하세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진안영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휴게실 안은 여전히 조은희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그녀는 왜 이렇게 슬픈 걸까. 다시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일까? 아니면 이 몇 년 동안 계속 슬픔에 잠겨 있었던 걸까? 진석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5년 동안 떨어져 지낸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실 그들이 처음 함께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 만남 이후 바로 헤어졌으니까. 조은희는 그때 겨우 18살의 어린 소녀였고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많이 성숙해졌지만 여전히 그때의 소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 조은희는 그를 품에 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처음엔 진안영인 줄 알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진안영의 허리는 이렇게 강건하지 않았다. 분명히 남자의 허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온화한 듯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을 풍기
다음 해 8월. 조우현과 방유설의 아기가 첫돌을 맞았다. 방유설은 조우현에게 아들을 낳아주었고 그 아이의 이름은 조우찬으로 지어졌다. 이 이름은 큰아버지인 조진범이 지어준 것이었고 방유설은 이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편 조진범과 진안영의 막내아들의 이름은 조우진이었다. 조우찬과 조우진, 이 두 아이는 조씨 가문의 차세대 남자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가문에서 첫 아이는 여전히 진아현이었다. 현재로서는 유일무이한 작은 공주님으로서 이 작은 소녀는 조은희 고모를 따라다니는 걸 좋아했다. 올해로 세 살 반이 된 진아현은 곧 유치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조우찬의 돌잔치 날 조은희는 여전히 진아현을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예상치 못한 옛사람을 마주쳤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해 그녀가 타국으로 떠난 이후로 가끔 스쳐 지나갈 뿐 이렇게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몇 년이 지났을까. 조은희는 차마 생각하기조차 두려웠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듯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벌써 4, 5년이 된 것 같았다. 진석은 옆에 아무도 없이 홀로 서 있었다. 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행사장의 중앙에서 다른 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조씨 가문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의 일은 잊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은희 진아현의 손을 잡고 있었고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진아현은 고개를 들어 고모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모, 저 사람 좋아해요?” “아니야.” 조은희는 순간 당황하며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진아현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왜 자꾸 그 사람만 보고 있어요? 물론 잘생겼긴 하지만 여자애들은 좀 더 절제해야 해요.” 조은희는 잠시 놀라며 물었다.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진아현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빠가 그랬어요! 아빠가 항상 엄마한테 말했어요. 잘생겼어도 자기만 보면 안 된다고. 여
유이안의 말이 끝나자 조씨 가문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박연희였다. 그녀는 서둘러 유이안에 물었다. “유설이 상태는 괜찮아?” 유이안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외숙모, 걱정하지 마세요! 유설 씨 상태는 좋아요. 그냥 조금 놀란 것 같아요. 우현이가 안에서 곁에 있어 주고 있어요.” 박연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조은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뜻밖에 아이라니. 그게 좋은 거지! 좋은 거야.” 두 사람의 부부 사이는 원래도 좋았지만 부모라면 누구나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법이다. 게다가 조우현과 방유설의 외모가 워낙 출중하니 그 아이 역시 틀림없이 예쁠 거라는 생각에 조은혁은 그저 상상만으로도 격동되었다. 방유설을 닮은 귀여운 딸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한참 지난 후 조우현이 방유설을 부축하며 나왔다. 방유설은 설탕물을 조금 마신 덕분에 정신을 차렸지만 집에 돌아가 며칠은 충분히 쉬어야 했다. 특히 임신 초기 3개월 동안은 모든 일을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뜻밖에 찾아온 아이였지만 방유설은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아직 평평한 아랫배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조우현의 목을 끌어안으며 마음속 깊이 행복이 가득 차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방유설도 한 번쯤은 행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꿈에서조차 감히 바랄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조우현이 깊은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가 약간 잠긴 채 말했다. “유설아,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어.” 결혼한 지 오래됐지만 조우현은 가끔은 철없고 유치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성숙했고 갈수록 더욱 성숙해졌다. 가끔 방유설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우현은 젊은 나이에 결혼한 편이었고 자신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모두 그녀에게 쏟아부은 것 같다고. 밤에 문득 잠에서 깨어날 때면 그는
몇 달 후 가을 10월쯤.방유설이 주연한 《청홍》이 대히트를 치며 영화 글러브 최우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시상식 당일 날 조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모여 방유설을 응원하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가 부담을 느낄까 봐 다음에 받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계속 전했다. 방유설은 매우 감동했다. 진안영이 갓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마친 후 이렇게 와서 자신을 응원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방유설은 진안영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난 이미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상을 받았어요.” 진안영은 원래 차분한 성격인데 방유설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너는 우현이랑 있으면 사람이 이렇게 활발해져! 우현이가 사람을 잘 챙긴다고 네 아주버님이 자주 칭찬하셔.” 방유설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진안영과 얘기했다. 조은희는 사탕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평소에 연기하면서 다이어트해도 이럴 때는 사탕 하나 드세요. 나중에 여우주연상 받고 저혈당으로 쓰러지면 안 되잖아요.” 방유설은 사탕을 받아서 입에 넣었다. 우유사탕이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았다. 조은희는 살짝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딱 봐도 언니예요! 다른 여배우들보다 언니가 훨씬 이뻐요.” 조우현은 여동생을 흘깃 보며 말했다. “이건 외모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외모만 보고 결정되면 긴장감이 없잖아.” 조은희는 달콤한 사랑을 떠먹은 기분에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이때 최우수 남자주연상이 발표되었고 다른 영화의 남자 주연이 받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박도원이었다. 그는 국내에 없어서 촬영 감독이 대신 상을 받으며 발언 중 여러 번 방유설을 언급했다. 갑자기 설원 커플 팬들이 들썩이며 이 장면을 모든 플랫폼에 퍼뜨렸다. 설원 커플 팬클럽에서 활동 중인 팬들은 102만 명에 달한다. 그렇게 인기 있는 커플이었다. 조우현은 아내의 직업을 존중하는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그저 코를 머쓱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방유설은 가장 떠들썩한 설날을 보냈다. 3월쯤 그녀는 조우현과 결혼했다. 그녀의 웨딩드레스와 베일은 무려 3미터 길이였고 어르신들은 베일이 길수록 결혼이 오래 지속된다고 했기에 조우현은 3미터 길이의 베일을 디자인하게 했다. 그는 그녀에게 평생을 함께할 거라고 약속했다. 교회 종소리가 울리자 방유설은 조진범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조우현에게 다가갔다. 이제부터 그들은 하나가 되었고 그의 가족도 그녀의 가족이 되어 함께 기쁨과 고난을 나누게 되었다. 10여 미터의 거리. 그 길은 마치 그들이 걸어온 4년과 닮아 있었다. 순백의 제단 앞에서 조진범은 방유설을 동생에게 넘기며 가볍게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대해라.” 조우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베일 너머로 방유설을 바라보았다. 오늘에 그녀는 순백의 모란꽃 같았다. 조우현은 부드럽게 방유설의 베일을 올리며 그녀에게 그의 눈을 바라보게 하며 결혼식을 마치려 했다. 그들은 이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목격할 것이고 잠시 후 서약을 마치면 그들은 진정한 부부가 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그것이 그가 그녀에게 약속한 평생의 로맨스였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그들의 감정은 깊었고 후회는 없었다! 방유설은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생중계가 이루어졌고 그녀는 생중계 수익은 모두 산간 지역의 아이들에게 기부했다. 네티즌들은 광고비를 통해 많은 수익을 올렸고 한 번의 생중계에서만 160억 정도의 이익을 얻었다. 네티즌들은 생중계를 보며 신나서 토론했다. [와! 조우현의 큰형도 잘생겼네.] [너무 아쉬워. 결혼을 너무 일찍 했어.] [여동생도 엄청 이쁘네! 이 가족은 다들 왜 이렇게 훈훈하지?] [저런 부모님이라니. 부러워!] 조씨 가문에 대한 댓글이 잠잠해지고 이번에는 유씨 가문으로 넘어갔다. [YS 그룹 대표도 너무 잘생겼잖아!] [영국에 모델 같아. 혼혈인가?] [100% 순수 본토! 얼굴이 완벽할 뿐!]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저택 앞 계단에서 조우현과 방유설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박도원이 차에서 내렸다. 오늘 밤 그는 유난히 단정하고 멋져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조우현은 곧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박도원이 공작새처럼 너무 화려하게 꾸미고 왔기 때문이다. 조우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유설이에게 물어봐야겠다. 나랑 박도원중에 누가 더 잘생겼는지. 박도원은 저물어가는 노을 속을 걸어왔다. 방유설은 앞으로 나가 그를 꼭 안아주었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이제 그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조우현은 그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말했다. “꼭 그렇게까지 친밀해야 해?” 방유설과 박도원의 포옹이 끝나자 조우현은 자신도 박도원과 포옹하겠다고 나섰다. 박도원은 당황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순간 조우현의 힘에 거의 날아갈 뻔했다! 조우현은 다가가 박도원을 단단히 끌어안고 그의 등을 세차게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떠난다니 정말 많이 보고 싶을 거 같아.” 박도원은 말문이 막혔다. 방유설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도저히 조우현이 자기 집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났는데 어쩜 아직도 저렇게 유치할까? 밥은 다 먹은 후에도 조우현은 여전히 소심하고 질투가 많았다. 그러나 박도원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조우현 같은 사람만이 방유설의 차가운 삶을 따뜻하게 채워줄 수 있었다. 박도원은 자신이 방유설을 온전히 채워줄 수 없음을 느꼈다. 박도원은 방유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부족했고 방유설에 대한 감정도 너무 단순했다. 하지만 조우현은 달랐다. 그에게는 든든한 형제자매와 부모님이 있었다. 박도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이번엔 질투 좀 해도 되겠지. 그날 밤은 박도원이 B시에 머무는 마지막 밤이었다. 다음 날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P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식사 중 몇 잔의 술이 오갔고 모두 조금씩 취기가 올라왔다. 두 남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