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후, 진별이는 B시로 돌아왔다.원래는 진안영이 진별이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진은영은 여러 차례 고민한 끝에 딸을 자신의 곁에 두기로 했다. 그녀는 진안영에게 말했다.“진별이를 계속 다른 사람 집에 있게만 할 수는 없어.”전용기에서 진별이는 엄마의 품에 살짝 기대었고 진안영은 진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전용기가 착륙하고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갔다.진별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노란색 패딩을 입고 얼굴을 따뜻하게 감쌌다. 진별이는 별장에 있는 예쁜 작은 정원을 바라보았다. 겨울이지만 잔디는 여전히 푸르르고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었다.진별이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엄마, 저 앞으로 여기서 사는 거예요?”진은영은 약간 목이 메인 목소리로 대답했다.“응, 앞으로 엄마랑 같이 살 거야.”함께 간 아줌마는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이 멋진 별장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은영 씨가 하고 있는 사업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집이 정말 비쌀 텐데 말이에요. 하와이에 있다면 80억에서 100억은 할 거예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B시에서도 그 정도 가격이에요. 일단 잠깐은 여기에서 사는 거로 하고요. 제가 비서한테 더 큰 집을 알아보라고 할게요. 나중에 도우미 아줌마를 몇 명 더 고용해서 진별이를 돌보게 할 생각이에요. 가을이 되면 진별이를 학교에 보내도 좋고요.”아줌마는 속으로 감탄했고 진별이는 아주 기뻐했다. 만약 날이 너무 춥지만 않았더라면 푸른 잔디 위에서 몇 바퀴 굴러다니고 싶을 정도였다.진안영은 그녀가 기뻐하는 것을 알고 손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가서 임시로 만든 진별이의 방을 보여주었다.진별이가 돌아와 살 수 있도록 유명한 디자이너를 고용해 최고급 친환경 자재로 이 방을 꾸몄던 것이다.방에는 진별이가 좋아하는 애니 캐릭터로 가득했다. 가구에도 인쇄되어 있었다. 부드러운 침대 옆에는 분홍색 고양이 집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3개월 된 하얗고 작은 고양이 새끼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진별이는
침묵이 흘렀다.사실 그들은 함께한 시간이 꽤 길었지만 유이준은 그녀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진은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항상 싸우지 못해서 안달이었고 서로를 곤란하게 만들기만 했다.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서야 두 사람이 사랑 얘기를 하게 되다니...하지만 그들이 헤어질 때 진은영이 뭐라고 말했던가...그녀는 유이준에게 잠자리를 갖는 것 외에 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진은영은 이렇게 그가 듣기 싫어할 말을 해버렸고 그들 사이에는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잠시 후, 유이준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직도 사랑한다고요? 진은영 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죠. 저는 한 여자에게 매달릴 정도로 어리석지 않아요. 그쪽도 자기가 한 말을 잊지 않았겠죠?”“이번엔 또 뭘 꾸미는 거예요? 저한테서 뭐라도 이득을 보려고 그래요? 이용하고 나서 발로 차버리려는 거죠?”진은영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그녀는 유이준이 매정하고 듣기 힘든 말을 듣기만 했다.“선을 보는 것도 꽤 좋더라고요. 적어도 여자분이 깨끗하고 정직하니까요.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말이에요.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은 상대를 찾으면 바로 1년 안에 결혼하고 아이를 가질 겁니다.”마지막 몇 마디는 유이준이 이를 악물고 내뱉은 말이었다.그는 전화 너머 진은영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온몸이 떨리고 있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그녀도 유이준 앞에서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체면을 지키며 조용히 말했다.“그래요? 미리 축하해요.”그 말을 들은 유이준은 잠시 멈칫했다.약 2초가 지나 진은영은 전화를 끊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유이준이 했던 말들이 계속 맴돌았다.‘적어도 깨끗하니까...’‘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휴대폰이 책상 위로 떨어졌다.진은영은 서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밖에 있는 정원에서 진별이의 기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진은영에게 큰 행복을 주었고 진은영
진은영도 손을 내밀며 말했다.“안녕하세요.”두 사람은 악수하며 잠깐 인사를 나누고는 바로 손을 놓아버렸다.그리고는 임하민이 유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들어가자. 아까 이안 언니가 우리 둘 어디 있냐고 물어봤대.”유이준은 임하민을 애지중지했다.그는 진은영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임하민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두 사람이 가버리자 진은영 홀로 남게 되었다.옆에 있는 큰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진은영은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았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안색이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있었다.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속으로 생각했다.‘분명 처음 선택한 건 난데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누구한테 보여주려고?’그녀는 5분 정도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감정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연회장에 들어섰다.그때, 진안영이 그녀를 가로막았다.방금 전 장면을 목격했던 그녀는 마음이 아파서 진은영을 화장실로 데려가 얘기를 나눴다.그녀는 문을 잠그고 진은영을 바라보았다.진은영이 웃으면서 말했다.“봤어?”그러자 진안영이 봤다고 대답하고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이준 씨가 선을 본 건 지난주 일이야. 갑자기 정해졌대. 곧 임하민 씨랑 약혼하고 연말에 결혼할 거래.”진안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진별이는 어떻게 할 거야? 정말 이준 씨에게 아이의 존재를 알리지 않을 거야? 두 사람의 사이가 더 깊어지기 전에 진별이의 존재를 알려야 해. 그러면 이준 씨에게도 선택할 기회는 있겠지.”진은영은 세면대에 기대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파우치를 열어 담배 한 갑을 꺼내 들었다. 한 대 피워서 기분을 풀고 싶었지만 손이 너무 떨렸다.결국 갑안에 있던 담배가 바닥에 흩어졌다.진은영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방울은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서 바닥에 있는 담배를 적셨다.“이준 씨가 그러더라.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을 찾고 싶다고 말이야. 안영아, 나는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이준 씨 앞에 서면 정말
결혼식이 거의 시작할 때야 유이준은 비로소 연회장으로 돌아왔다.강원영과 유이안은 결혼식에 100테이블을 초대했다. 이 연회장은 B시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홀이었는데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유이준은 여자 측 친척으로서 당연히 메인테이블에 앉았다.임하민은 그를 보고 말했다.“유이준, 여기야! ”유이준은 그곳을 향해 몇 발자국 걸어갔다.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는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진은영을 보았다. 그녀는 진안영과 함께 앉아 있었고 교진범과는 두 자리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고 자세히 보면 금방 울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진은영은 드레스 입지 않았고 아주 깔끔한 슈트 차림이었는데 포멀하면서도 섹시함을 잃지 않았다.그녀의 몸매가 좋다는 것은 유이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그는 두 사람이 침대에서 밤새 뒹굴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것은 그의 첫 경험이자 진은영의 첫 경험이었다.여러 해가 지난 후, 진은영이 그를 찾아왔다.그녀는 그가 그해의 일을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유이준은 그저 몇 년 동안 어떻게 그녀에게 연락해야 할지 핑계를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관계를 했을 때 두 사람은 좋아하는 사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단지 그날 밤의 분위기에 취했을 뿐이고 유이준은 또 진은영의 풋풋함과 그녀 눈가의 눈물, 그리고 가냘프지만 화끈한 몸매를 느꼈을 뿐이었다.그날 밤, 두 사람은 서로의 열기를 다시금 되새겼다.유이준은 한 번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물 만난 고기처럼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그녀를 원하기만 했다.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유이준의 목젖이 몇 번 움직였다.임하민은 유이준의 손을 잡아서 자리에 앉혔다. 그는 진은영을 노려보며 임히민의 손길을 저항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이 자신에게 바싹 붙어도 그저 내버려두었다.한편, 유이안은 유이준이 수상하다고 느꼈다.사실 엊그제 갑자기 임하민을 결혼 상대로 정한 것도 수상했었다. 마치 누구한테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갑작스레 정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유이준이 지금 진은
두 사람이 술잔을 내려놓자 임하민은 더욱 수줍어하며 그에게 몸을 기댔다.두 사람은 금실이 좋아 보였다.찬란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유이준의 미모는 더욱 잘생겨 보여서 여인을 사로잡았지만 그의 시선은 줄곧 진은영을 주시하고 있었다.진은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이런 장면은 그녀에게 놓고 말해서 너무 잔인했다.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감정을 억눌렀고 그 덕에 이런 자리에서 추태를 부리지 않을 수 있었다.그러나 유이준은 여전히 진은영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마치 온 세상에 두 사람만 남은 것처럼 말이다.옆사람이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가 진은영을 쳐다보고 있다는 건 알아차릴 수 있었다.특히 임하민이 불안해하며 말했다.“이준아, 왜 그래?”유이준은 차분하게 술을 한 잔 권하고는 자리를 떴다.진안영은 한사코 진은영의 손목을 잡고 그녀에게 힘을 주었다.조진범은 그들과 두 자리를 사이에 두고 자신의 아내와 처제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매우 자상하게 고기 한 조각을 집어 진은영의 그릇에 담아주었다. 진안영은 화가 나기도 하고 웃음도 나서 그냥 코웃음을 쳤다. 진은영은 또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3번 테이블 쪽에서 유이준은 계속해서 몰래 진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조진범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유이준이 임하민과 결혼할 리 없지.’조진범뿐 아니라 유이준의 부모님도 알아챌 정도였다.유선우가 아내와 눈을 마주쳤다.‘이준이랑 진은영 아직 안 끝난 것 같은데? 그럼 임하민은 어떡하지? 임씨 가문에 어떻게 말해야 하지? 아들이 일편단심이라 아직도 진은영을 잊지 못한다고 말해야 하나?’조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그녀의 자식이었기에 조은서는 그가 행복하고 즐겁길 바랐다. 동시에 그녀는 유이준을 믿었다. 마음속에 진은영이 있다고 해도 임하민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아닐 거라고 믿는 것이었다. 그는 일 처리를 잘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결혼식이 끝난 후, 진안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진은영을 별장으로 데려
주차장에서.진은영이 차 문을 열고 막 차에 타려는데 뒤에서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시려고요?”그 말을 들은 진은영의 몸이 그 자리에 굳었다.그 목소리의 주인은 유이준이었다.그녀는 천천히 뒤로 돌아섰고 차가운 등불 아래 비친 유이준의 잘생긴 얼굴을 보았다.유이준은 그녀에게서 서너 걸음 떨어져 있었는데 그의 눈동자를 보면 볼 수록 진은영은 그 속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그 깊은 눈동자는 그녀의 몸과 마음마저 모두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한참 후에야 진은영은 비로소 미소를 지어 보였다.“네, 가려고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유 대표님?”유이준은 무표정이었지만 눈빛은 이글거렸다.“저한테 하실 말 없나요?”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유이준은 코트 주머니로 손을 뻗어 아직 열지 않은 담뱃갑을 손에 쥐었다.그는 포장을 뜯지 않은 채 손에 쥐고만 있었는데 시선은 여전히 진은영을 향했다.“예를 들어 지난번 전화에서 물어봤던 거라든가...”‘저번에 전화로 물어봤던 거?’진은영은 다시 기억을 짚어보았다. 그녀는 유이준에게 아직도 자기를 사랑하는지 물었었다.그날 충동적으로 그런 말을 내뱉았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그런 주제넘은 말을 하다니...지금은 생각만 해도 부끄러웠다.“지난번에 했던 말은 이미 잊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유 대표님도 잊어버리세요.”“그래요?”유이준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진은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뭐라 말하려 했지만 뒤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이준, 여기 있었어? 한참 찾았잖아!”임하민이 바로 뒤에 서 있는 것이었다.그녀는 막 피어나려는 꽃봉오리처럼 풋풋했고 아름다웠다. 진은영의 눈시울이 또다시 붉어졌고 시큰해지기 시작했다.그녀는 진안영에게 한 번도 열등감을 가진 적이 없다고 말했었지만 사실 유이준 앞에서는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젊고 청순한 여자,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여자, 어떤
유이준이 차 문을 열었다.차 안은 따뜻했지만 임하민의 표정은 불안했다. 임하민도 여자였기에 촉이 좋은 편이었다.그녀는 오늘 밤 유이준이 수상했던 건 다 진은영이라는 여자 때문이라는 걸 눈치챘던 것이다.임하민도 유이준과 진은영의 스캔들을 들은 적이 있지만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젊고 예쁜 자신이 30대인 여자에게 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확신할 수 없었다. 유이준이 진은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남달랐기 때문이었다.뭔가 애증이 담긴 눈빛이었다....유이준은 차에 타서 임하민과 나란히 앉았다.두 사람은 약혼할 사이였는데 오늘 밤 예상치 못한 사고가 생겨버린 것이었다.유이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하민아, 미안해. 너랑 약혼할 수 없을 것 같아.”임하민은 이미 그 이유를 알아챘다.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살짝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진은영 씨 때문에 그래? 네가 은영 씨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 여자는 평판이 좋지 않아. 성현준이라는 사람이랑 하와이에서 스캔들도 나지 않았어?”유이준은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싸늘한 눈빛에 임하민은 하려던 말을 삼켜 버렸다.“왜?”“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야.”유이준이 조용하게 말했다.그는 진은영 앞에서 내려놓지 못했던 자존심을 임하민 앞에서 모두 내려놓았다.유이준은 그저 핑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가 또다시 진은영이라는 여자한테 빠질 핑계 말이다. 설사 함정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기꺼이 빠지고 싶었다.임하민의 눈시울은 말도 안 될 정도로 빨갛게 되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그녀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려서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하마터면 유이준이랑 결혼할 뻔했는데...’그녀에게 유이준은 마치 백마 탄 왕자와도 같았고 그와의 결혼은 꿈만 같았다.하지만 이제 임하민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임하민은 어린 소녀였기에 심하게 울다가 금세 눈이 호두처럼 부어버렸다. 그녀를 울린 장본인인
차 안은 담배 냄새로 가득 찼다.유이준은 창문을 완전히 내리고 담배 냄새를 날려버린 후,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몇 번 쓰다듬더니 잠시 후 엑셀을 밟아 진은영의 별장으로 향했다.밤바람이 얼굴을 스쳐 유이준의 머릿속을 더욱 맑게 해주었다. 원래 차로 40분 거리였는데 그는 25분 사이에 도착했다. 그뿐만 아니라 진은영보다도 5분 더 일찍 도착해 버렸다.유이준은 차를 어두운 곳에 세우고 차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봄이라서 그런지 저녁이 되자 주위는 아주 조용했다.먼 곳에서 누군가가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먼 탓인지 그 불꽃조차 적막해 보였다. 마치 그와 진은영 사이처럼 말이다. 항상 알 듯 말 듯한 감정 외에 불탈 만한 일은 없었다.사랑이라는 단어조차도 하지 않았었다.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아이가 생겼다.‘맞겠지? 진별이...’‘아마 주차장에서 봤던 그 여자애일 거야. 앳된 얼굴에 짧은 머리... 약간 말랐지만 하얗고 귀여운 아이 말이야. 이목구비는 유씨 가문의 유전자를 더 많이 가져간 것 같았다. 진씨 집안 두 자매도 진별이만큼 예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뒤에서 승용차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진은영이 돌아온 것 같았다.하얀색 벤틀리가 별장 앞으로 다가왔고 문이 열리면서 어둠 속에서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입구에 있는 전등이 켜지고 하와이에서 온 아주머니가 진별이를 안고 빙그레 웃으며 벤틀리를 바라보았다.진은영은 차를 천천히 세우고 한쪽 문을 열더니 진별이더러 차에 앉으라고 했다. 진별이는 기뻐서 엄마 차 앞으로 달려갔다. 대문까지 몇십 미터밖에 남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래도 엄마 차에 타고 싶었던 것이다.아줌마는 그 모녀를 위해 차 문을 닫아주었다.바로 그때, 갑자기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나서 차 문을 열고 안에 탔다.그러자 아줌마가 깜짝 놀라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누구세요? 누구시길래 마음대로 남의 차에 타시는 거죠?”차 안에 앉은 유이준은 고개를 들고 진지한 눈빛으로 아줌마를 쳐다보았는데 그 완벽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