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안은 그런 조진범의 눈빛에 방금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물론 진은영이 청첩장을 찢고 조진범에게 죽지도 않냐는 저주를 내렸다는 일은 생략했다. 모든 것을 알려준 이지안이 조용히 물었다.“대표님, 안영 씨 행방, 계속 찾아볼까요?”조진범은 다시 등을 돌렸다.그는 창밖의 석양을 계속 바라보았다. 이지안이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느꼈던 그 설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조진범은 진안영이 B 시에 없다면 분명 H 시에 있는 하도경을 찾아가 함께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만 그 둘이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하도경의 집안에서 반대했기 때문이 아닐까.조진범은 눈이 시큰해질 때까지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결국, 생각 정리를 마친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그만둬요.”조진범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지안은 그가 새신랑이라기보다는 실연당한 남자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조진범과 정지혜의 지난 6개월간의 교제를 떠올려 보았지만 정말 싱겁기 그지없었다. 조진범이 진심으로 정지혜를 사랑하는 것 같은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이지안은 하려던 말을 가까스로 삼켜냈다.이지안이 자리를 뜨고 나서도 조진범은 다시 한참 동안 홀로 서 있었다. 책상 위의 휴대폰이 울릴 때가 되어서야 그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정지혜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오늘 밤에 그녀 아버지의 생신 축하파티가 있을 예정이니 예비 사위로서 반드시 참석해 체면을 세워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정지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조진범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알겠다는 대답을 내놓았다.한 시간 후, 조진범은 차를 몰고 약혼녀의 집에 도착했다. 그는 특별히 희귀 와인 두 병도 따로 챙겨와 정지혜의 아버지와 함께 나눌 생각을 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가 정지혜의 집 앞에 멈추자 안에 있던 조진범은 고개를 들어 정씨 가문의 저택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전 부인의 본가가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면 정지혜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정지혜는 기분이 나빴지만 아버지의 생일이기도 했고 집 안에는 많은 친척이 조진범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탓에 지금 당장 그에게 따질 수도 없었고 다툴 수도 없었다.정지헤는 애써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왔으면서 왜 안 들어오고 있어요? 다들 기다리고 있었는데.”조진범은 그 말에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저녁의 어스름 속에 서 있는 여인은 진안영이 아닌 이해심 많은 그의 약혼녀 정지혜였다. 그의 전 부인도 아니었고 지금 그가 모든 신경을 쏟고 있는 그 사람도 아니었다.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던 조진범은 아무 말 없이 곧장 차에서 내렸다.한 쌍의 남녀가 어스름한 저녁에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은 아주 보기 좋았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던 정씨 가문의 하인들이 계속해서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아가씨, 사위님.”조진범은 고결한 표정으로 하인들의 인사에 응답하지 않았다.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달콤해진 정지혜는 참지 못하고 조진범의 팔에 팔짱을 낀 채 그의 곁에 꼭 붙어 걸어갔다. 그러고는 자신의 얼굴을 넓은 조진범의 어깨에 살짝 기대자 부드러운 그녀의 피부가 고급스러운 재질의 옷감에 닿았다. 머리를 풀고 있었던 덕에 정지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웠지만 조진범은 여전히 그녀에게 자신의 다정함을 보여주지 않았다.정지혜는 그런 조진범의 모습에 적잖이 실망한 모양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조진범이 다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는 어느 여자에게나 다 이런 식으로 행동했다. 이런 남편이라면 먼 곳으로 출장을 가거나 외근을 나간다고 해도 정지헤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정지혜 역시 부부 사이가 지나치게 끈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진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제일 높은 위치에서 만나는 것이었다.두 사람이 거실로 들어서자 정지혜의 아버지가 직접 나와 두 사람을 맞이했다.“진범아.”하지만 이런 식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정지헤의 부모뿐이었다. 다른 친척들은 조진범에게 ‘조 대표
밤이 깊었다.진은영은 잠자리에 들었다...진안영은 수면 가운을 걸친 채 테라스 밖으로 나가 C 시의 야경을 감상했다. C 시는 B 시만큼 번화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파트의 테라스에서조차 멀리 이어진 산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산 너머에는 진안영의 어머니가 복역 중인 교도소가 있었다. 모범수로 인정받은 그녀는 3개월 감형을 받아 형량이 줄어든 상태였다.진안영은 고개를 숙여 손에 쥐어진 청첩장을 바라보았다.[신랑 조진범, 신부 정지혜][백년해로]...조진범이 결혼을 한단다.그리고 일부러 진안영에게까지 청첩장을 보냈다. 보나 마나 그는 지금 진안영을 마음속 깊이 증오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녀가 자신의 입으로 하도경의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던 그 순간, 진안영은 조진범과 했던 결혼 생활, 그와 함께 나눴던 사랑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이 청첩장이라는 존재가 잠잠하던 그녀의 마음에 돌을 던져버렸다.진안영은 오랫동안 밤하늘 아래에 서 있었다.다음 날 아침, 진은영은 일찍 집을 나섰다.진안영은 진은영을 차까지 바래다주었다.검은색 차의 뒷좌석에 탔다가 다시 차에서 내린 진은영은 동생의 불룩한 배를 살살 어루만지더니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예정일 일주일 남으면 네 곁에 계속 있어 줄게. 아기 태어나면 엄마도 정말 기뻐하실 거야. 아이가 태어난 지 두 달이 되면 우리 같이 엄마한테 아기 보여드리러 가자.”그 말에 진안영도 조용히 자신의 배를 살살 어루만졌다.잠시 후, 그녀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그래...”...5월 20일은 조진범과 정지혜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그리고 진안영은 예정일보다 3일이나 빨리 출산하게 되었다.(조이서가 좋은 곳에서 태어날 수 있게 하려고 진안영이 이를 악문 것이었다.)C 시 제1 산부인과의 고급 산후조리원에는 진은영이 B 시에서 특별히 초청해온 최고의 산부인과 전문의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진안영의 출산 과정에는 문제가 생겼다.난산이었다. 산모가 피를 지나치게 많이 흘리고 있었다.진은
B시, 가장 럭셔리한 호텔 안.조진범은 정지혜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오늘 밤 가장 성대한 날, B시의 유명인사들이 거의 모두 JH그룹 회장의 재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방문했다. 하지만 떠들썩한 분위기와는 달리 신랑은 줄곧 건성으로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별로 기뻐 보이지 않는 눈치였다.그런데 그때, 진은영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진은영은 원래 냉정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인데 통화가 연결되고 건너편에서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세계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가 이토록 무너지는 것도 정상이었다. 그런 가정에서 딸로 태어나 태어날 때부터 썰렁한 대우를 받으며 자랐고 이제 엄마까지 감옥에 갇혀버렸다. 게다가 현재 그녀의 여동생은 피를 쏟아내고 있다. 그녀는 지금 거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맞서 싸우고 있다.휴대폰에서 진은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안영이 임신한 거 당신 애라고요. 그러니까 오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휴대폰이 조진범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지만 다행히 카펫이 깔려있어 깨지지는 않았다. 조진범은 즉시 휴대폰을 주워들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진은영에게 다시 물었다.“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당장 갈게요.”“C시 XX 산부인과병원.”...전화를 끊은 조진범은 곧바로 옆에 있던 이 비서에게 지시를 내렸다.“지금 당장 전용기를 준비해 주세요. C시로 가겠습니다.”그 말에 이 비서는 잠깐 넋을 잃고 말았다.오늘 밤 여주인공인 정지혜도 덩달아 넋을 잃고 말았다. 사실 그녀는 방금 조진범의 통화 소리를 전부 다 들었다.진안영이 조진범의 아이를 임신했다.그리고 현재 진안영이 아이를 낳고 있다.그런데 조진범이 지금 C시에 가면 그들의 결혼식은? 남겨진 정지혜는?다시 정신을 차린 정지혜가 다급히 조진범의 팔을 잡아당겼다.정교한 메이크업은 현재 거의 일그러져버렸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움을 띠고 있었다.“조진범 씨, 30분 후에 우리는 결혼 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자 진안영은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그녀는 분만대 위에 힘없이 누워있었다.그 순간, 그녀는 마치 청력을 잃은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분홍색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고 물을 빨아들인 꽃잎이 조용히 자라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잠시 후, 진안영의 청력이 돌아왔다.의사들이 다급하게 그녀를 치료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간호사는 갓 태어난 작은 여자아이를 따뜻한 물이 조심조심 씻기고 있었다. 그 작은 체구에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가 꽤 컸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진안영의 눈에서도 맑은 눈물이 도르륵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이 아이는 진안영이 낳은 아이였다.희고 가녀린 진안영의 손이 남자의 손에 단단히 잡혀 있었다. 마치 그녀가 깊이 사랑해 마지않는 남편이라도 되는 것처럼.조진범은 아이를 확인하지도 않고 진안영의 몸 상태가 걱정되어 계속 그녀의 곁만 지키고 있었다. 검고 깊은 눈동자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놓칠까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진안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조진범은 자신들이 이미 반년 전에 이혼한 사이임을 잊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고 자신의 청첩장을 직접 보내던 그 날의 냉담함마저도 잊은 것 같았다.이 순간, 그는 그저 진안영이 보고 싶었다. 그녀가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상관없었다. 지금 조진범은 진안영과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진안영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그녀는 오늘이 조진범의 결혼식 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진안영은 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이혼을 마쳤고 서로에게 자유를 주었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진안영은 조금씩 조진범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며 최대한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하지만 조진범은 진안영이 그럴수록 오히려 그녀의 손을 더 꽉 잡았다.그는 허리를 반쯤 굽힌 채 아내를 깊이 사랑하는 남편이라도 된 듯한 시선으로 진안영을 바라보았다.아이를 다 씻기고 연핑
진안영은 혈액 팩 두 팩을 주입하고 체력을 조금 회복했지만 여전히 허약했다. 조씨 집안 가족들도 감히 더 방해하지 못하고 진아현을 확인한 뒤, 근처에 호텔을 잡고 병실을 떠났다. 그렇게 병실에는 조진범만 남게 되었다.VIP 병실은 새것처럼 깨끗했다.진은영은 조진범과 마주 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탓하고 있었다. 진은영의 마음속에서 조진범은 무책임한 쓰레기 남이고 조진범은 진즉 말해주지 않은 진은영을 탓했다.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새벽 병동에서 가장 큰 인기척은 진아현의 달콤한 숨결뿐이었다. 작은 손가락이 움찔거리며 웅크리더니 아현이는 작은 주먹을 꼭 쥐고 꿈나라에 빠졌다. 조진범은 아현이의 귀여운 모습에 마음이 녹아내릴 것 같았고 다시 보니 윤곽은 그를 닮았지만 전체적인 이목구비는 엄마를 똑 닮아 부드럽고 아름다운 완벽한 외모였다.한참 즐겁게 보고 있는데 녀석이 갑자기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으앙...”아이는 예쁜 얼굴을 잔뜩 찡그리더니 실눈에서 콩알만 한 눈물 몇 방울을 쥐어짜 냈다.구슬피 우는 아이에 조진범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났다. 그는 아현이를 품에 안고 이리저리 달래주려 애썼지만... 아이는 어떻게 달래는 거지? 조진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꼬마는 더욱 세게 울기 시작했다. 정말 울음소리가 하늘을 진동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조진범이 쩔쩔매고 있는데... 입구 벽에 기대어 있던 진은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쟤 지금 배고픈 거잖아요. 바보.”진은영이 비아냥거리며 그를 조롱했지만 조진범은 굳이 그녀에게 따지지 않았다. 그는 아이를 안고 진안영을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베개에 반쯤 기댄 채 아이를 안기 위해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조진범은 진안영의 건강을 걱정하며 머뭇거렸다.“그렇게 피를 많이 흘려서 아이를 먹일 수 있겠어? 먼저 분유를 타 마시면 안 되나?”그러나 진안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그녀는 아까 전부터 줄곧 그와 이야기를 하지
...진은영은 단숨에 하고 싶었던 말을 전부 털어놓았다.사실 평소에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건데 그가 직접 C시에 찾아와 감정이 더 격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씩씩거리는 진은영에 비해 유이준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진은영은 그의 눈빛 속에 담긴 감정을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방금, 유이준은 사실 그녀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후회한다는 말 한마디만 해주면, 진은영이 그의 품에 안겨만 준다면,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마음이 있었다. 심지어 결혼까지 해줄 수 있다. 누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그 사람의 입을 꿰매어 버릴 것이고 유이준의 아내로서 그 누구도 진은영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을 것이다.유이준이 고개를 숙이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그의 바람과는 달리 진은영은 그를 원하지 않는다. 가정이 초라하다고 하지만 진안영도 조진범과 결혼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유이준은 왜 안된단 말인가... 아니, 이유는 한가지뿐이다. 유이준은 조진범이 아니니까.유이준이 몸을 기울여 담배꽁초의 불을 꺼버렸다.그는 양복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맞은편 진은영에게 건네주고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진은영 씨, 이게 진짜 당신의 이유인 거죠? 사실 당신은 조진범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정작 조진범의 마음에 든 여인은 당신이 아닌 진안영일 줄 생각지도 못했겠지. 그래서 당신은 날 찾아온 거고... 하지만 어떡하지? 이것 참 아쉽게 됐네요. 전 조진범과 별로 닮지 않아서 말이에요.”그 사진을 움켜쥔 진은영의 손가락이 흠칫 떨렸다.그 사진은 몇 년 전의 비즈니스 접대 자리 사진인데 그날 그녀는 처음으로 조진범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조진범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감출 수 없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처음으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남자였다.... 그래, 조진범을 좋아했다는 건 인정할 수 있다.인생에서 다들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 적이 있지 않나?사실 유이준의 선공에 진은영은 충분히 해명하여
조진범과 정지혜는 하마터면 정말 부부가 될 뻔했었다.그는 진안영이 괜한 생각을 할까 휴대폰을 들고 병실을 나와서야 전화를 받았다. 통화가 연결되자 전화 건너편에서 정지혜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진범 씨, 언제 돌아올 거예요? 나를 버리고, 우리의 결혼식을 버리고 아이를 보러 가는 것도 이해했지만 바쁜 일이 끝났으면 이제 돌아와서 우리의 결혼식을 계속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사실 앞으로 두 사람의 결혼식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하지만 조진범은 정지혜를 자극하지 않았다.그는 나지막이 그녀를 달래며 며칠이 지나서야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고 이에 정지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 씨, 저야말로 당신 미래의 아내라고요. 설마 그 아이 때문에 계속 진안영과 함께 할거예요? 당신이 없는 밤 B시의 언론사가 당신을 어떻게 썼는지 알기나 해요? 그리고 진안영... 진안영은 우리 두 사람의 감정에서 제삼자에 불과하다고요.”“아니야.”조진범의 말투는 한없이 단호했다. 이에 정지혜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져버렸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조진범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조진범은 진안영을 마음에 두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원래부터 진안영은 그의 마음을 떠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인정하려 하지 않았을 뿐.한 아이가 그들의 결말을 다시 썼지만 그렇다면 정지혜는? 그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밤이 깊어 오고 주위의 인기척은 점점 더 사라져갔다.조진범은 복도에 서서 밤바람이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머리도 조금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왜 B 시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B시에 처리해야 할 일이 그렇게 많은데... 그는 진안영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조민희처럼 그녀에게도 출산 후 사고가 생길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하여 조진범은 반드시 C시에 머물러야 했다.핸드폰 너머로 정지혜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조진범 씨, 앞으로
하지만 조은희는 그 답변에 만족하지 않았고 눈물이 맺힌 채 애처롭게 다시 물었다.“결혼했어요? 다른 사람이 있어요? 아직도 저를 좋아해요?”그녀가 물었을 때 처음보다 조금 더 고집스러워졌고 그 모습에 진석은 마음이 아팠다.진석은 그들이 헤어졌을 때 조은희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소녀였다는 것을 기억했다.하지만 지금 조은희는 이렇게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며 진석에게 묻고 있었다. 그녀가 점점 용감해질수록 그의 마음은 더 아팠다.진석은 더 이상 조은희를 놀리지 않았다.그는 조은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답했다.“결혼 안 했고 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 약혼녀는 다리 치료를 마친 후 올 상반기에 결혼할 거야. 아직도 좋아해. 많이 좋아해.”...조은희의 눈가는 더욱 붉어졌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그게 제가 진석 씨와 사귀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진석은 한 걸음 다가가 그녀 눈가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조은희는 눈물이 많은 여린 여자가 되었다. 그는 예전 조은희가 항상 웃고 뒤에서 그를 끌어안으며 ‘진 선생님’이라고 달콤하게 불렀던 기억을 떠올렸다.그녀를 좋아하는 것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때 그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그 감정을 시작했다. 그 후 조은희는 해외로 떠났고 진석은 B시에 남았다. 그 뒤 1년 동안 진석은 조은희가 아무 말 없이 떠난 것에 대해 그녀를 미워하기도 했었다. 자신을 먼저 유혹한 것도 조은희였기에 더 화가 났다.하지만 그가 나중에 생각하니 조은희는 겨우 20살이었다.진석은 조은희의 첫사랑이었고 그녀의 청춘 그 전부였다. 게다가 그녀는 진심으로 진석을 사랑했기에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진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알겠지? 우리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먼저 학교 관계자들과 저녁을 먹어야지. 도서관도 지어야 하잖아. 그곳도 우리가 갔던 곳이었지.”그는 조은희가 대답하기 전에
순간 조은희의 생각이 멈추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조은희는 진석의 의도를 알 수 없었고 그가 굳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진석은 그녀를 차에서 이끌어 내리고 있었다.학교에서 준비한 식당은 학교 근처에 있었고 과거에 조은희가 진석과 함께 와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별도로 방을 예약하지 않았었다.익숙한 장소를 다시 찾으니 묘한 감회가 밀려왔다.진석과 조은희는 나란히 안으로 들어섰다. 키가 185cm인 남자와 170cm인 여자는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조합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들 사이의 과거를 아는 학교 관계자들은 자연스럽게 몇 마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조은희는 약간 불편한 기색을 띠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어린 시절엔 철이 없었죠.”반면 최근 몇 년간 사업을 통해 단련된 진석은 여유로운 미소로 담담하게 응대했다.“과거의 인연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것으로 보여요.”그 말이 나오자 학교 관계자들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진석이 조은희 때문에 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 1억이 전부 조은희 덕분이었기에 학교 관계자들은 일부러 조은희를 진석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조은희에게 음료만 권하면서 농담을 건넸다. “잠시 후 진석이 취하시면 조은희가 집에 데려다줘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잖아.”조은희는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지만, 탁자 아래로 내려간 그녀의 손이 진석의 손에 잡혔다.진석의 손길은 매우 부드러웠고 남녀 간의 감정이 담긴 것 같지 않은 마치 어른이 아이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듯 따스한 느낌이었다.조은희의 붉은 입술이 약간 떨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후 손을 빼냈고 진석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먼저 한 잔을 마셨다.교장은 여전히 예전의 그 교장이었고 진석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깊은 감회에 잠긴 듯 말했다.“많이 변했구나.”감상적인 분위
그날 밤 조은희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조은혁은 그 시간 동안 새로 들인 취미인 거북이들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늙으니까 이런 거나 만지고 있지.” 그날 밤 조은혁은 거북이들을 모두 방생하며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들었다. 심지어 한 마리 거북이 등에 ‘진석’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으며 괜히 화풀이도 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유치하다며 혀를 찼다. 조은희는 이 모든 일을 몰랐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가 며칠째 자신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보라며 걱정하고 있는 것만 알았다. 일주일이 지나며 휴가가 끝났고 조은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림 수업을 맡고 있었다. 가끔 그녀는 자신이 진석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딱히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일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저녁 해 질 녘이었다. 조은희는 차 열쇠를 챙겼다. 차를 몰고 가 간단한 간식을 사서 집에 돌아와 드라마를 보며 먹을 계획이었다. 그녀의 일상은 단순했고 굳이 그것을 깰 생각도 없었다. 며칠 전에 그 일은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조은희의 얼굴은 노을빛에 물들어 더욱 맑고 투명해 보였다. 그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차 문을 열려던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희야.” 그 목소리는 진석이였다. 조은희는 천천히 돌아섰고 그곳에 서 있는 진석을 보았다. 그는 몇몇 교직원들과 함께 기부에 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조은희는 학교의 오래된 도서관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한 기부를 논의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재회에 조은희는 순간적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석의 눈빛은 깊고도 복잡했다. 이 학교는 그들이 과거에 함께 있었던 곳이었
휴게실에서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안겨 억눌린 채로 울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좋아한다면 내가 대신 가서 말해줄게요.” 조은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빠가 언니를 대역죄인이라고 할 거예요.” 진안영은 잠시 멈칫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 “진범 씨가 도와줄 거예요.”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더욱 몸을 기댄 채 계속 울었지만 오늘이 조우찬의 첫돌 날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조금만 울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니까.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이 온화하고 점잖은 사람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진안영은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자기 남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문 열어볼게요.” 진안영이 문을 열었을 때 예상대로 문밖에는 진석이 서 있었다. 진안영은 그와 눈을 마주쳤지만 아무 감정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두 분이 얘기하세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진안영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휴게실 안은 여전히 조은희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그녀는 왜 이렇게 슬픈 걸까. 다시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일까? 아니면 이 몇 년 동안 계속 슬픔에 잠겨 있었던 걸까? 진석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5년 동안 떨어져 지낸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실 그들이 처음 함께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 만남 이후 바로 헤어졌으니까. 조은희는 그때 겨우 18살의 어린 소녀였고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많이 성숙해졌지만 여전히 그때의 소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 조은희는 그를 품에 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처음엔 진안영인 줄 알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진안영의 허리는 이렇게 강건하지 않았다. 분명히 남자의 허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온화한 듯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을 풍기
다음 해 8월. 조우현과 방유설의 아기가 첫돌을 맞았다. 방유설은 조우현에게 아들을 낳아주었고 그 아이의 이름은 조우찬으로 지어졌다. 이 이름은 큰아버지인 조진범이 지어준 것이었고 방유설은 이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편 조진범과 진안영의 막내아들의 이름은 조우진이었다. 조우찬과 조우진, 이 두 아이는 조씨 가문의 차세대 남자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가문에서 첫 아이는 여전히 진아현이었다. 현재로서는 유일무이한 작은 공주님으로서 이 작은 소녀는 조은희 고모를 따라다니는 걸 좋아했다. 올해로 세 살 반이 된 진아현은 곧 유치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조우찬의 돌잔치 날 조은희는 여전히 진아현을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예상치 못한 옛사람을 마주쳤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해 그녀가 타국으로 떠난 이후로 가끔 스쳐 지나갈 뿐 이렇게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몇 년이 지났을까. 조은희는 차마 생각하기조차 두려웠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듯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벌써 4, 5년이 된 것 같았다. 진석은 옆에 아무도 없이 홀로 서 있었다. 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행사장의 중앙에서 다른 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조씨 가문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의 일은 잊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은희 진아현의 손을 잡고 있었고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진아현은 고개를 들어 고모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모, 저 사람 좋아해요?” “아니야.” 조은희는 순간 당황하며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진아현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왜 자꾸 그 사람만 보고 있어요? 물론 잘생겼긴 하지만 여자애들은 좀 더 절제해야 해요.” 조은희는 잠시 놀라며 물었다.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진아현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빠가 그랬어요! 아빠가 항상 엄마한테 말했어요. 잘생겼어도 자기만 보면 안 된다고. 여
유이안의 말이 끝나자 조씨 가문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박연희였다. 그녀는 서둘러 유이안에 물었다. “유설이 상태는 괜찮아?” 유이안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외숙모, 걱정하지 마세요! 유설 씨 상태는 좋아요. 그냥 조금 놀란 것 같아요. 우현이가 안에서 곁에 있어 주고 있어요.” 박연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조은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뜻밖에 아이라니. 그게 좋은 거지! 좋은 거야.” 두 사람의 부부 사이는 원래도 좋았지만 부모라면 누구나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법이다. 게다가 조우현과 방유설의 외모가 워낙 출중하니 그 아이 역시 틀림없이 예쁠 거라는 생각에 조은혁은 그저 상상만으로도 격동되었다. 방유설을 닮은 귀여운 딸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한참 지난 후 조우현이 방유설을 부축하며 나왔다. 방유설은 설탕물을 조금 마신 덕분에 정신을 차렸지만 집에 돌아가 며칠은 충분히 쉬어야 했다. 특히 임신 초기 3개월 동안은 모든 일을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뜻밖에 찾아온 아이였지만 방유설은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아직 평평한 아랫배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조우현의 목을 끌어안으며 마음속 깊이 행복이 가득 차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방유설도 한 번쯤은 행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꿈에서조차 감히 바랄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조우현이 깊은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가 약간 잠긴 채 말했다. “유설아,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어.” 결혼한 지 오래됐지만 조우현은 가끔은 철없고 유치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성숙했고 갈수록 더욱 성숙해졌다. 가끔 방유설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우현은 젊은 나이에 결혼한 편이었고 자신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모두 그녀에게 쏟아부은 것 같다고. 밤에 문득 잠에서 깨어날 때면 그는
몇 달 후 가을 10월쯤.방유설이 주연한 《청홍》이 대히트를 치며 영화 글러브 최우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시상식 당일 날 조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모여 방유설을 응원하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가 부담을 느낄까 봐 다음에 받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계속 전했다. 방유설은 매우 감동했다. 진안영이 갓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마친 후 이렇게 와서 자신을 응원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방유설은 진안영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난 이미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상을 받았어요.” 진안영은 원래 차분한 성격인데 방유설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너는 우현이랑 있으면 사람이 이렇게 활발해져! 우현이가 사람을 잘 챙긴다고 네 아주버님이 자주 칭찬하셔.” 방유설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진안영과 얘기했다. 조은희는 사탕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평소에 연기하면서 다이어트해도 이럴 때는 사탕 하나 드세요. 나중에 여우주연상 받고 저혈당으로 쓰러지면 안 되잖아요.” 방유설은 사탕을 받아서 입에 넣었다. 우유사탕이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았다. 조은희는 살짝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딱 봐도 언니예요! 다른 여배우들보다 언니가 훨씬 이뻐요.” 조우현은 여동생을 흘깃 보며 말했다. “이건 외모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외모만 보고 결정되면 긴장감이 없잖아.” 조은희는 달콤한 사랑을 떠먹은 기분에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이때 최우수 남자주연상이 발표되었고 다른 영화의 남자 주연이 받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박도원이었다. 그는 국내에 없어서 촬영 감독이 대신 상을 받으며 발언 중 여러 번 방유설을 언급했다. 갑자기 설원 커플 팬들이 들썩이며 이 장면을 모든 플랫폼에 퍼뜨렸다. 설원 커플 팬클럽에서 활동 중인 팬들은 102만 명에 달한다. 그렇게 인기 있는 커플이었다. 조우현은 아내의 직업을 존중하는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그저 코를 머쓱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방유설은 가장 떠들썩한 설날을 보냈다. 3월쯤 그녀는 조우현과 결혼했다. 그녀의 웨딩드레스와 베일은 무려 3미터 길이였고 어르신들은 베일이 길수록 결혼이 오래 지속된다고 했기에 조우현은 3미터 길이의 베일을 디자인하게 했다. 그는 그녀에게 평생을 함께할 거라고 약속했다. 교회 종소리가 울리자 방유설은 조진범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조우현에게 다가갔다. 이제부터 그들은 하나가 되었고 그의 가족도 그녀의 가족이 되어 함께 기쁨과 고난을 나누게 되었다. 10여 미터의 거리. 그 길은 마치 그들이 걸어온 4년과 닮아 있었다. 순백의 제단 앞에서 조진범은 방유설을 동생에게 넘기며 가볍게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대해라.” 조우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베일 너머로 방유설을 바라보았다. 오늘에 그녀는 순백의 모란꽃 같았다. 조우현은 부드럽게 방유설의 베일을 올리며 그녀에게 그의 눈을 바라보게 하며 결혼식을 마치려 했다. 그들은 이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목격할 것이고 잠시 후 서약을 마치면 그들은 진정한 부부가 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그것이 그가 그녀에게 약속한 평생의 로맨스였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그들의 감정은 깊었고 후회는 없었다! 방유설은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생중계가 이루어졌고 그녀는 생중계 수익은 모두 산간 지역의 아이들에게 기부했다. 네티즌들은 광고비를 통해 많은 수익을 올렸고 한 번의 생중계에서만 160억 정도의 이익을 얻었다. 네티즌들은 생중계를 보며 신나서 토론했다. [와! 조우현의 큰형도 잘생겼네.] [너무 아쉬워. 결혼을 너무 일찍 했어.] [여동생도 엄청 이쁘네! 이 가족은 다들 왜 이렇게 훈훈하지?] [저런 부모님이라니. 부러워!] 조씨 가문에 대한 댓글이 잠잠해지고 이번에는 유씨 가문으로 넘어갔다. [YS 그룹 대표도 너무 잘생겼잖아!] [영국에 모델 같아. 혼혈인가?] [100% 순수 본토! 얼굴이 완벽할 뿐!]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저택 앞 계단에서 조우현과 방유설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박도원이 차에서 내렸다. 오늘 밤 그는 유난히 단정하고 멋져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조우현은 곧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박도원이 공작새처럼 너무 화려하게 꾸미고 왔기 때문이다. 조우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유설이에게 물어봐야겠다. 나랑 박도원중에 누가 더 잘생겼는지. 박도원은 저물어가는 노을 속을 걸어왔다. 방유설은 앞으로 나가 그를 꼭 안아주었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이제 그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조우현은 그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말했다. “꼭 그렇게까지 친밀해야 해?” 방유설과 박도원의 포옹이 끝나자 조우현은 자신도 박도원과 포옹하겠다고 나섰다. 박도원은 당황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순간 조우현의 힘에 거의 날아갈 뻔했다! 조우현은 다가가 박도원을 단단히 끌어안고 그의 등을 세차게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떠난다니 정말 많이 보고 싶을 거 같아.” 박도원은 말문이 막혔다. 방유설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도저히 조우현이 자기 집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났는데 어쩜 아직도 저렇게 유치할까? 밥은 다 먹은 후에도 조우현은 여전히 소심하고 질투가 많았다. 그러나 박도원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조우현 같은 사람만이 방유설의 차가운 삶을 따뜻하게 채워줄 수 있었다. 박도원은 자신이 방유설을 온전히 채워줄 수 없음을 느꼈다. 박도원은 방유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부족했고 방유설에 대한 감정도 너무 단순했다. 하지만 조우현은 달랐다. 그에게는 든든한 형제자매와 부모님이 있었다. 박도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이번엔 질투 좀 해도 되겠지. 그날 밤은 박도원이 B시에 머무는 마지막 밤이었다. 다음 날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P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식사 중 몇 잔의 술이 오갔고 모두 조금씩 취기가 올라왔다. 두 남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