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었다.진은영은 잠자리에 들었다...진안영은 수면 가운을 걸친 채 테라스 밖으로 나가 C 시의 야경을 감상했다. C 시는 B 시만큼 번화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파트의 테라스에서조차 멀리 이어진 산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산 너머에는 진안영의 어머니가 복역 중인 교도소가 있었다. 모범수로 인정받은 그녀는 3개월 감형을 받아 형량이 줄어든 상태였다.진안영은 고개를 숙여 손에 쥐어진 청첩장을 바라보았다.[신랑 조진범, 신부 정지혜][백년해로]...조진범이 결혼을 한단다.그리고 일부러 진안영에게까지 청첩장을 보냈다. 보나 마나 그는 지금 진안영을 마음속 깊이 증오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녀가 자신의 입으로 하도경의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던 그 순간, 진안영은 조진범과 했던 결혼 생활, 그와 함께 나눴던 사랑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이 청첩장이라는 존재가 잠잠하던 그녀의 마음에 돌을 던져버렸다.진안영은 오랫동안 밤하늘 아래에 서 있었다.다음 날 아침, 진은영은 일찍 집을 나섰다.진안영은 진은영을 차까지 바래다주었다.검은색 차의 뒷좌석에 탔다가 다시 차에서 내린 진은영은 동생의 불룩한 배를 살살 어루만지더니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예정일 일주일 남으면 네 곁에 계속 있어 줄게. 아기 태어나면 엄마도 정말 기뻐하실 거야. 아이가 태어난 지 두 달이 되면 우리 같이 엄마한테 아기 보여드리러 가자.”그 말에 진안영도 조용히 자신의 배를 살살 어루만졌다.잠시 후, 그녀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그래...”...5월 20일은 조진범과 정지혜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그리고 진안영은 예정일보다 3일이나 빨리 출산하게 되었다.(조이서가 좋은 곳에서 태어날 수 있게 하려고 진안영이 이를 악문 것이었다.)C 시 제1 산부인과의 고급 산후조리원에는 진은영이 B 시에서 특별히 초청해온 최고의 산부인과 전문의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진안영의 출산 과정에는 문제가 생겼다.난산이었다. 산모가 피를 지나치게 많이 흘리고 있었다.진은
B시, 가장 럭셔리한 호텔 안.조진범은 정지혜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오늘 밤 가장 성대한 날, B시의 유명인사들이 거의 모두 JH그룹 회장의 재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방문했다. 하지만 떠들썩한 분위기와는 달리 신랑은 줄곧 건성으로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별로 기뻐 보이지 않는 눈치였다.그런데 그때, 진은영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진은영은 원래 냉정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인데 통화가 연결되고 건너편에서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세계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가 이토록 무너지는 것도 정상이었다. 그런 가정에서 딸로 태어나 태어날 때부터 썰렁한 대우를 받으며 자랐고 이제 엄마까지 감옥에 갇혀버렸다. 게다가 현재 그녀의 여동생은 피를 쏟아내고 있다. 그녀는 지금 거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맞서 싸우고 있다.휴대폰에서 진은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안영이 임신한 거 당신 애라고요. 그러니까 오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휴대폰이 조진범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지만 다행히 카펫이 깔려있어 깨지지는 않았다. 조진범은 즉시 휴대폰을 주워들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진은영에게 다시 물었다.“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당장 갈게요.”“C시 XX 산부인과병원.”...전화를 끊은 조진범은 곧바로 옆에 있던 이 비서에게 지시를 내렸다.“지금 당장 전용기를 준비해 주세요. C시로 가겠습니다.”그 말에 이 비서는 잠깐 넋을 잃고 말았다.오늘 밤 여주인공인 정지혜도 덩달아 넋을 잃고 말았다. 사실 그녀는 방금 조진범의 통화 소리를 전부 다 들었다.진안영이 조진범의 아이를 임신했다.그리고 현재 진안영이 아이를 낳고 있다.그런데 조진범이 지금 C시에 가면 그들의 결혼식은? 남겨진 정지혜는?다시 정신을 차린 정지혜가 다급히 조진범의 팔을 잡아당겼다.정교한 메이크업은 현재 거의 일그러져버렸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움을 띠고 있었다.“조진범 씨, 30분 후에 우리는 결혼 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자 진안영은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그녀는 분만대 위에 힘없이 누워있었다.그 순간, 그녀는 마치 청력을 잃은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분홍색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고 물을 빨아들인 꽃잎이 조용히 자라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잠시 후, 진안영의 청력이 돌아왔다.의사들이 다급하게 그녀를 치료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간호사는 갓 태어난 작은 여자아이를 따뜻한 물이 조심조심 씻기고 있었다. 그 작은 체구에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가 꽤 컸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진안영의 눈에서도 맑은 눈물이 도르륵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이 아이는 진안영이 낳은 아이였다.희고 가녀린 진안영의 손이 남자의 손에 단단히 잡혀 있었다. 마치 그녀가 깊이 사랑해 마지않는 남편이라도 되는 것처럼.조진범은 아이를 확인하지도 않고 진안영의 몸 상태가 걱정되어 계속 그녀의 곁만 지키고 있었다. 검고 깊은 눈동자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놓칠까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진안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조진범은 자신들이 이미 반년 전에 이혼한 사이임을 잊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고 자신의 청첩장을 직접 보내던 그 날의 냉담함마저도 잊은 것 같았다.이 순간, 그는 그저 진안영이 보고 싶었다. 그녀가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상관없었다. 지금 조진범은 진안영과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진안영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그녀는 오늘이 조진범의 결혼식 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진안영은 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이혼을 마쳤고 서로에게 자유를 주었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진안영은 조금씩 조진범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며 최대한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하지만 조진범은 진안영이 그럴수록 오히려 그녀의 손을 더 꽉 잡았다.그는 허리를 반쯤 굽힌 채 아내를 깊이 사랑하는 남편이라도 된 듯한 시선으로 진안영을 바라보았다.아이를 다 씻기고 연핑
진안영은 혈액 팩 두 팩을 주입하고 체력을 조금 회복했지만 여전히 허약했다. 조씨 집안 가족들도 감히 더 방해하지 못하고 진아현을 확인한 뒤, 근처에 호텔을 잡고 병실을 떠났다. 그렇게 병실에는 조진범만 남게 되었다.VIP 병실은 새것처럼 깨끗했다.진은영은 조진범과 마주 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탓하고 있었다. 진은영의 마음속에서 조진범은 무책임한 쓰레기 남이고 조진범은 진즉 말해주지 않은 진은영을 탓했다.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새벽 병동에서 가장 큰 인기척은 진아현의 달콤한 숨결뿐이었다. 작은 손가락이 움찔거리며 웅크리더니 아현이는 작은 주먹을 꼭 쥐고 꿈나라에 빠졌다. 조진범은 아현이의 귀여운 모습에 마음이 녹아내릴 것 같았고 다시 보니 윤곽은 그를 닮았지만 전체적인 이목구비는 엄마를 똑 닮아 부드럽고 아름다운 완벽한 외모였다.한참 즐겁게 보고 있는데 녀석이 갑자기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으앙...”아이는 예쁜 얼굴을 잔뜩 찡그리더니 실눈에서 콩알만 한 눈물 몇 방울을 쥐어짜 냈다.구슬피 우는 아이에 조진범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났다. 그는 아현이를 품에 안고 이리저리 달래주려 애썼지만... 아이는 어떻게 달래는 거지? 조진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꼬마는 더욱 세게 울기 시작했다. 정말 울음소리가 하늘을 진동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조진범이 쩔쩔매고 있는데... 입구 벽에 기대어 있던 진은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쟤 지금 배고픈 거잖아요. 바보.”진은영이 비아냥거리며 그를 조롱했지만 조진범은 굳이 그녀에게 따지지 않았다. 그는 아이를 안고 진안영을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베개에 반쯤 기댄 채 아이를 안기 위해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조진범은 진안영의 건강을 걱정하며 머뭇거렸다.“그렇게 피를 많이 흘려서 아이를 먹일 수 있겠어? 먼저 분유를 타 마시면 안 되나?”그러나 진안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그녀는 아까 전부터 줄곧 그와 이야기를 하지
...진은영은 단숨에 하고 싶었던 말을 전부 털어놓았다.사실 평소에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건데 그가 직접 C시에 찾아와 감정이 더 격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씩씩거리는 진은영에 비해 유이준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진은영은 그의 눈빛 속에 담긴 감정을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방금, 유이준은 사실 그녀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후회한다는 말 한마디만 해주면, 진은영이 그의 품에 안겨만 준다면,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마음이 있었다. 심지어 결혼까지 해줄 수 있다. 누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그 사람의 입을 꿰매어 버릴 것이고 유이준의 아내로서 그 누구도 진은영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을 것이다.유이준이 고개를 숙이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그의 바람과는 달리 진은영은 그를 원하지 않는다. 가정이 초라하다고 하지만 진안영도 조진범과 결혼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유이준은 왜 안된단 말인가... 아니, 이유는 한가지뿐이다. 유이준은 조진범이 아니니까.유이준이 몸을 기울여 담배꽁초의 불을 꺼버렸다.그는 양복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맞은편 진은영에게 건네주고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진은영 씨, 이게 진짜 당신의 이유인 거죠? 사실 당신은 조진범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정작 조진범의 마음에 든 여인은 당신이 아닌 진안영일 줄 생각지도 못했겠지. 그래서 당신은 날 찾아온 거고... 하지만 어떡하지? 이것 참 아쉽게 됐네요. 전 조진범과 별로 닮지 않아서 말이에요.”그 사진을 움켜쥔 진은영의 손가락이 흠칫 떨렸다.그 사진은 몇 년 전의 비즈니스 접대 자리 사진인데 그날 그녀는 처음으로 조진범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조진범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감출 수 없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처음으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남자였다.... 그래, 조진범을 좋아했다는 건 인정할 수 있다.인생에서 다들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 적이 있지 않나?사실 유이준의 선공에 진은영은 충분히 해명하여
조진범과 정지혜는 하마터면 정말 부부가 될 뻔했었다.그는 진안영이 괜한 생각을 할까 휴대폰을 들고 병실을 나와서야 전화를 받았다. 통화가 연결되자 전화 건너편에서 정지혜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진범 씨, 언제 돌아올 거예요? 나를 버리고, 우리의 결혼식을 버리고 아이를 보러 가는 것도 이해했지만 바쁜 일이 끝났으면 이제 돌아와서 우리의 결혼식을 계속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사실 앞으로 두 사람의 결혼식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하지만 조진범은 정지혜를 자극하지 않았다.그는 나지막이 그녀를 달래며 며칠이 지나서야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고 이에 정지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 씨, 저야말로 당신 미래의 아내라고요. 설마 그 아이 때문에 계속 진안영과 함께 할거예요? 당신이 없는 밤 B시의 언론사가 당신을 어떻게 썼는지 알기나 해요? 그리고 진안영... 진안영은 우리 두 사람의 감정에서 제삼자에 불과하다고요.”“아니야.”조진범의 말투는 한없이 단호했다. 이에 정지혜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져버렸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조진범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조진범은 진안영을 마음에 두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원래부터 진안영은 그의 마음을 떠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인정하려 하지 않았을 뿐.한 아이가 그들의 결말을 다시 썼지만 그렇다면 정지혜는? 그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밤이 깊어 오고 주위의 인기척은 점점 더 사라져갔다.조진범은 복도에 서서 밤바람이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머리도 조금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왜 B 시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B시에 처리해야 할 일이 그렇게 많은데... 그는 진안영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조민희처럼 그녀에게도 출산 후 사고가 생길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하여 조진범은 반드시 C시에 머물러야 했다.핸드폰 너머로 정지혜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조진범 씨, 앞으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진안영은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생각해 본 적 없어요.”조진범은 무어라 더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허약한 진안영의 몸을 배려하여 그녀의 손바닥을 살짝 잡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먼저 쉬어. 아이는 내가 지키고 있을게.”진안영은 이제 더 이상 그를 쫓아낼 힘이 없었다.게다가 난산이라 정력을 전부 소모하는 바람에 진안영은 눈을 감자마자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그녀가 잠든 후에도 조진범은 여전히 모녀의 곁을 지키며 연약한 아기를 보기도 하고 진안영을 보기도 했다. 임신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그녀의 몸은 그때보다 풍만하지 않았고 얼굴도 그때 눈 오는 날 본 것보다 훨씬 더 갸름했다.묵묵히 보고 있던 조진범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녀의 피부에 손끝이 닿자 조진범은 비로소 그녀에 대한 그의 깊은 미련을 느낄 수 있었다. 반년 동안의 이별 속에서 조진범은 사실 단 한 번도 진안영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저 자존심에 강제로 억누르고 있었을 뿐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녀에 대한 사랑과 설렘이 남아 있었다.조진범은 성숙한 남자이다. 하여 그는 자연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조진범은 진안영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하고 있다.어두운 조명 아래, 그의 눈빛은 더욱 부드러워졌고 조진범은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미간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미간을 지나 오뚝한 콧날에 이르고 또다시 완벽하지만 창백한 입술까지 이르렀다. 조금도 놓치지 않고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련 외에도 조진범은 가슴이 아파 났다.그렇게 한참 동안 진안영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조진범은 곧 몸을 숙여 그녀를 살며시 껴안았다....다음날, 진안영은 약간 기력을 회복하게 되었다.아침 일찍 조은혁 부부가 그녀를 간호해주기 위해 병실에 달려왔다. 그들은 진안영을 보살피고 음식을 요리해주기 위해 특별히 병원 맞은편에 집까지 사두었다. 그래서 올 때 조은혁은 기력을 보충해주기 위해 특별히 끓인 삼계탕을 챙겨왔다.그러나 진안영은 이 자
조진범의 눈엔 남자의 부드러움과 아버지의 자애로움이 담겨 있었다.조진범은 진안영이 그를 위해 낳은 아이를 좋아했다.그는 자신이 직접 아이와 진안영을 보살피고 함께 지내고 싶었다.그는 이렇까지 가족을 그리워한적이 없었다.어쩌면 나이가 든 원인일지도.진안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안영아, 나 너무 후회해."진안영은 침대맡에 앉아 있었다.따듯한 빛이 그녀의 몸을 비추어 마치 얇은 유리막을 덮어놓은 듯 반짝거렸다.그녀는 잔잔히 웃음을 지었다."그때 먼저 이혼을 말한 게 후회가 되나요? 당신이 아니어도 내가 이혼하자고 말했을 거예요. 우리 결혼은 이미 더이상 되돌릴 수 없었어요... 시간 문제였어요."조진범은 고개를 숙여 어린 아이를 바라보았다.아현은 이미 눈을 떴다.태어난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아이는 20cm 외의 물건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빠의 냄새는 마음에 들었는지 한 손가락으로 조진범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환하게 웃었다.아현의 두 손과 발이 허공에서 움직이는 모습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조진범은 마음이 녹아내려 아현에게 더 다가갔다.한참후 조진범이 진안영에게 물었다."언제 임신한 걸 알았어?"진안영은 생각에 잠겼다가 사실을 털어놓았다."이혼 협의서에 싸인할 때 알았어요. 그날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임신한 게 확실했죠."싸인하던 날...조진범은 받아들일 수 없어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왜 나한테 알리지 않은 거지? 말했다면 우리는 어쩌면..."진안영은 그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렸다."어쩌면 이혼하지 않아도 됐다고요? 하지만 진범 씨, 그때 나는 정말 당신이랑 이혼하고 싶었어요. 아이가 생겼다고 해도 당신을 떠났을 거라고요. 나도 멍청하지는 않아요. 당신에게서 100억 위자료와 집까지 받았어요. 이 정도면 아이를 키우기엔 충분해요."조진범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는 화가 나서 진안영의 말을 맞받아쳤다."나 몰래 아이를 낳으려 한거지?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