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서?엄수지는 박연희를 바라보았다.“드디어 왔네요.”그녀는 아이를 안고 비장한 모습이었다.박연희는 머뭇거리며 말했다.“만약 보고 싶지 않으면 내가 대신 나갈게요.”“언제까지 도망칠 수 없죠. 아이가 나한테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 언젠가는 만나야 할 사람이에요. 오늘 만나는 게 나아요.”엄수지는 집사를 불러 심경서와 거실에서 만나게 준비하게 했다.집사가 나가자 엄수지는 옷을 갈아입고 연경에게도 새 옷을 입혀주었다.그건 연경과 친아빠가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다.엄수지가 박연희에게 말했다.“자리 비켜줘요. 얼굴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박연희는 잔잔히 웃었다.1층 마당.심경서는 차 안에 앉아 있었고 집사가 그에게 다가왔다.“대표님, 사모님이 2층 마당으로 모시겠다고 합니다. 따라오시죠.”심경서는 차에서 내린 후 옆의 검은색 차량을 힐끗 바라보았다.이 차량은 그도 알아볼 수 있었다.조은혁의 차였다...그럼 박연희도 함께 있다는 것이다.심경서는 마음이 복잡했지만 감정을 추스르고 집사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도착한 곳은 너무 아름다웠다.배치가 센스 있었다.2층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아이를 위해 곳곳에 영국식 카펫을 깔았다...심경서는 화원으로 들어서자 향긋함이 코를 찔렀다.아마 엄수지의 몸에서 뿜어내는 향긋함일 것이다.심경서는 엄수지를 빤히 쳐다보다가 엄수지의 품 안의 아이에게 시선을 주었다.새하얀 피부와 검은 눈, 그리고 날카로운 턱 선.너무 예쁜 아이였다.심경서를 조금 닮았지만 임윤아와 판박이였다.심경서는 그대로 걸어가다가 한 걸음을 남겨두고 머뭇거리다가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아이의 온기를 느낀 순간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그는 임윤아의 차가운 유골함이 생각났다.그녀는 이미 떠났지만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남겨두었다.이 아이는 그들의 핏줄이다.심경서가 눈물을 흘리자 연경은 큰 눈으로 팔을 저었다.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아빠임을 어떻게 알
섣달그믐날.조씨 저택은 새해를 맞아 많은 준비를 했다.집에 몇 명의 아이들도 있었기에 시끌벅적했다.밤에 조은혁은 미리 회사의 파티에서 빠져나왔다.그는 술을 조금 마셨기에 자고 싶었다.하지만 안방 문을 열자마자 부인이 아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안방은 히터를 틀어 따뜻해 박연희는 얇은 잠옷만 입었고 그녀의 피부는 탐스러웠다.그 모습을 본 조은혁은 잠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그는 한참이나 멍해져 보다가 천천히 문을 닫고 아내의 옆으로 다가갔다.그리고 팔을 뻗어 아들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하루에 몇 끼나 먹는 거야?”100일이 넘은 작은아들은 통통했다.그가 옆에서 바라보자 박연희는 조금 쑥스러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술 마셨으니까 침대에 누워서 쉬어요.”조은혁은 자신의 넥타이를 천천히 풀며 웃었다.“아이를 다 먹이고 나한테 와.”그들은 부부였지만 박연희는 여전히 쑥스러웠다.그녀는 발그래진 얼굴로 조은혁더러 빨리 누우라고 재촉했고 그는 낮게 웃었다.“원하는 거야? 그렇게 급해?”박연희가 그를 노려보자 조은혁은 조금 얌전해졌다.조은혁은 샴페인을 마시고 정신이 흐릿해져 침대에 눕자 정신이 몽롱해졌다...그가 잠에 들었을 때 이마에서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눈을 천천히 뜨자 박연희가 그의 이마의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그가 깨어도 그녀는 몸을 일으키지 않고 도리어 그에게 몸을 기대어 품에 파고들었다.조은혁의 몸은 뜨거워 추운 겨울에 껴안으면 딱 좋았다.박연희가 애교를 부렸다.“아까 잠에 들려고 할 때 우현이가 배고프다고 울었어요. 다 먹이고 나니까 피곤하네요.”조은혁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그의 깊은 두 눈은 성숙한 남자다움을 풍겼다.그는 손을 뻗어 박연희의 몸을 천천히 쓰다듬었고 그의 손길에 그녀는 숨이 가빠왔다.그런 모습을 보며 조은혁은 진지하게 물었다.“이렇게 만지면 기분 좋아?”그가 사람을 홀리는 방법은 정말 다양했다.박연희는 처음에 관심이 없었으나 천천히 호흡이 가빠왔다.그가 손의 움직임을 멈추자
조은혁은 박연희가 하려던 말을 막았다. 한바탕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조은혁은 땀이 흥건한 그녀의 목덜미에 기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한 번만 더 그렇게 다정하게 그 사람을 부른다면 침대에서 못 내려올 줄 알아.”박연희는 가늘게 숨을 몰아쉬었다. 박연희는 팔은 마른 조은혁의 허리를 감고 있었고 얼굴을 그에게 기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조은혁 씨, 당신은 이미 마흔 살이 넘어서 몸을 챙겨야 해요. 아직도 자신을 스무살 넘은 젊은이로 생각하는 거예요?”조은혁은 머리를 움직여 자신의 코끝으로 그녀의 코를 간지럽히며 살며시 핥았다.“70살이 돼도 네가 침대에서 소리 지르게 할 수 있어.”“그래요?”...두 사람은 달콤한 대화를 나누었다. 박연희의 마음속에서는 다른 일에 대한 고민이 있어 조은혁을 밀어내고 일어났다. 그녀는 검은 머리카락을 살짝 드리우고는 남편에게 말했다.“잠깐 눈을 붙이고 있어요. 가서 손님을 접대하고 다시 돌아와 당신과 시간 보낼게요.”조은혁은 이를 빌미로 요구를 제기했다.“저녁 식사 전에 한 번 더 해.”박연희는 그 말을 승낙하지 않고 그를 달랬다.“저녁 식사를 하고 아이들이 잠이 들면 당신과 시간 보낼게요.”조은혁은 다시 베개에 털썩 누웠다. 그는 두 손을 머리에 베고 고민에 빠진 모습으로 물었다.“우리 아이를 너무 많이 낳은 거 아니야?”박연희는 옷을 입으면서 그의 말에 대답했다.“당신은 딸이 있고 싶다고 했잖아요?”조은혁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는 진심으로 딸이 있고 싶었지만 지금도 박연희는 아이 4명을 돌보느라 그와 보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부부생활을 하려고 해도 한 주에 한 번 정도밖에 기회가 없었고 그것도 분위기가 달아오르려 하던 시각에 아이가 깨서 울기가 일수였다. 생각해보니 무척 합리적이지 못했다. 박연희는 옷을 다 입고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녀는 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박연희는 은은하게 웃으며 나가서 손님맞이를 했다....1층의 접대실에서는 다향이
박연희는 마음이 무거웠다. 설 연휴의 이튿날, 박연희는 직접 엄수지를 찾아갔다. 그 서류들을 엄수지에게 전해주려는 이유도 있고 연경이를 보려는 이유도 있었다.박연희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30분이 지나도록 엄수지의 저택에 도착하지 못하자 기사에게 물었다.“왜 길을 돌아서 가는 거예요?”기사는 백미러를 보고는 담담하게 웃었다.“앞에 시정 도로에서 길을 수리하고 있어서 한참을 돌아야 합니다. 여기는 서산 아래에 있는 지역인데 초봄이지만 경치가 꽤 좋아요. 사모님께서 밖을 보시면 매화나무 숲을 구경하실 수가 있습니다.”서산... 박연희가 멈칫했다. 심경서가 출가한 곳이 바로 서산이었다.박연희는 차창을 내렸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지만, 그녀는 추운 줄을 몰랐고 멀리 보니 정말 붉은 매화나무 숲이 있었다. 코끝에는 맑고 깨끗한 냄새가 풍겨왔다...박연희는 그 광경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두 눈이 촉촉해졌다. 기사는 박연희의 기분을 눈치채고 일부로 속도를 늦췄다. 번쩍이는 검은색 캠핑카가 서산의 주위를 따라 천천히 가고 있었다...매화가 가득 핀 곳에서는 마른 몸에 회색 도포를 걸치고 매화꽃에 물을 주고 있는 인영이 보였다. 그의 모든 감각기관은 속세를 벗어난 듯 보이지만 그의 의식 깊은 곳에서는 이 산을 채우고 있는 붉은 매화를 통해 크리스마스이브 날의 붉은 장미를 연상하고 있었다.이번 생에는 푸른 등불과 오래된 불상만이 그에게 평온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박연희의 차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부터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게 되며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게 된다....30분이 더 지나 드디어 엄수지의 저택에 도착했다. 차에 내리자마자 엄수지가 허리에 손을 얹고 거실에 서서 고용인들에게 집안일을 지휘하는 게 보였다... 새로 들여온 백금색의 레코드플레이어를 보자마자 박연희는 그게 엄청 비싼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언니 대단하시네요! 집에서 연회를 진행하려는 거예요?”엄수지는 박연희와 거리낌이 없는 사이였다. 그녀는 박연희를 끌고
엄수지는 센스가 있는 사람이었다. 설 연휴 기간에 심부름하려면 더 수고스러우므로 그녀는 현금 100만 원을 봉투에 넣어 고용인에게 건넸다. 그러니 고용인은 원망하는 마음이 전혀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심부름을 했다. 그는 설 연휴 셋째 날 아침 일찍 H시로 날아갔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 씨 저택으로 달려갔다.정은호는 중요한 인물이었으므로 설 연휴라고 해도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러 돌아다니고 설 인사를 건네기 바빴기에 저녁에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9시 반이었다.정은호가 차에서 내리자 집 안에 있던 고용인이 마중 나오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사모님께서 사람을 보내 직접 초청장을 갖고 오게 했습니다. 점심에 도착했는데 중요한 일인지 9시간 남짓하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정은호는 도도하게 걸어가면서 웃음을 띤 얼굴로 몸을 돌리고 말했다.“그 사람이 어떻게 내 생각이 났대? 그 사람은 이미...”그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정은호는 엄수지가 싫었기 때문에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 2층에 올라가 서재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사무를 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느낌에 정은호는 고개를 곧게 들고 천천히 움직이며 추 비서를 불렀다.“초청장을 갖고 와. 사람은 만나지 않을 거야.”추 비서는 바로 초청장을 가지러 갔다. 5분가량 지나 그는 초청장을 들고 와서 정은호에게 건넸다. 정은호는 그를 나가라고 했다.밤이 깊었을 무렵, 그는 초청장을 펼쳤고 거기에는 전처의 진심 어린 친필이 쓰여 있었다.「정은호 씨에게: 설 연휴가 끝난 두 번째 날, 우리 집에서 연회를 열려고 합니다. 새해를 축하하려는 의미도 있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우리 사이에서 사랑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는 걸 전하려는 의미도 있어요. 이렇게 하는 게 경솔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저번에 안 좋게 헤어진 일도 있어서 당신이 B시로 오는 게 싫을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해요... 하지만 몇 년간 부부생활을 이어온 정 때문에라도 당신이 우리 모녀와 만나지 않으려
엄수지는 여성 공관 출신이므로 수단이 많았다. 그녀는 정은호와 이혼했지만, 연경의 존재에 대해 대외적으로 말할 때는 자신과 정은호의 사랑이 예전에 맺은 결실이라고 얘기하고는 했다...정은호를 아는 사람이면 엄수지가 자신과 아이의 든든한 미래를 위해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엄수지는 날짜를 정하고 바삐 돌아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보름가량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여 전에도 날씬한 몸매가 더 예뻐졌다. 그녀는 또 머리도 새로 했는데 웨이브를 넣은 긴 생머리가 허리까지 드리워진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었다.그날 연회에서 그녀는 예쁜 옷을 입고 아름다운 춤을 추어 수많은 남자를 다 유혹하여 정신을 못 차리게 했다. 그녀에게 구애하는 남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연회가 끝나고 엄수지는 오늘 밤에 구애한 남자 중에서 조건이 제일 좋은 두 명을 골라서 데이트를 더 해보면서 상황을 보려고 했다.엄수지는 대비를 하고 있었다. 만약 정은호가 매정한 마음이라면 그녀는 연경에게 든든한 아버지를 다시 찾아줄 것이다. 정은호 한 사람한테만 목을 맬 필요가 없었다...엄수지의 예상은 빗나갔다. 연회가 끝나고 정월 대보름이 될 때까지 정은호는 만나러 오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B시에서 직무를 맡고 있지만 오지 않았고 그것도 모자라 여자 연예인과 스캔들이 터지기도 했다. 꽃을 선물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등 기사에서는 결혼 임박이라고 쓰기도 했다.엄수지는 이를 기사로 보았다. 조금의 실망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크고 작은 일을 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이렇게 보잘것없는 감정 때문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하여 정은호가 스캔들이 난 뒤, 엄수지는 이태훈의 요청에 과감히 응하고 그와 함께 촛불 만찬을 즐기고 함께 꽃등 놀이를 했다.이태훈은 아주 기뻐했다. 그는 앞서 연회에서 그는 엄수지에게 단단히 빠졌는데 여러 번의 데이트 신청 끝에 결국 엄수지의 승낙을 얻어냈다. 이태훈은 부자였고 사업을 하는데 인맥도 아주 넓었다. 제일 중요한
정은호도 뒤돌자마자 흠칫 놀랐다. 공교롭게도 이혼한 부부가 각자 새로운 사람과 함께 온 곳에서 서로 마주치게 되었다. 정은호의 시선은 엄수지한테서 머물다가 이태훈에게로 돌아갔다. 그 시선에는 상위에 있는 사람들이 주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고 물론 불쾌한 시선이었다. 그의 곁에는 핫한 여자 연예인이 있었고 30살이 갓 넘은 나이는 마침 사랑을 갈망할 나이었다. 그녀는 민감한 여자의 촉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섬섬옥수를 정은호의 어깨에 올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은호 씨, 아는 사람을 봤어요?”은호 씨? 엄수지는 다정하게 부르는 그 말투에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이태훈에게 팔짱을 끼고 웃음을 머금은 채 정은호가 어떻게 자신의 애인에게 설명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정은호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간단하게 설명했다.“내 전처인 엄수지 씨야.”그는 또 엄수지에게 그 여자를 소개했다.“수지야, 여기는 내 여자친구인 예린 씨야.”예린은 핫한 연예인이었고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정은호를 완전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여 전처라는 존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전처도 이미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니 말이다. 예린은 느릿느릿 손을 뻗었다. “엄수지 씨, 만나서 반가워요.”엄수지도 딱히 친절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친절하게 대하는 호구가 아니었다. 엄수지는 웃음을 지으며 정은호에게만 말했다.“좋은 사람 만난 거 축하해요. 기회가 된다면 두 사람을 위한 연회를 열어서 잘 접대해줄게요.”정은호는 웃음을 머금고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태훈과 인사를 할 생각이 없었다. 이는 남자들의 비겁한 심리였는데 마음속으로부터 그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정은호와 엄수지는 몇 년간의 부부생활을 이어갔다. 물론 이혼했지만, 정은호의 마음속에서 엄수지는 여전히 그의 아내였고 다른 사람이 넘볼 수 없는 존재였다.
떠나기 전, 정은호는 다시 한번 엄수지를 바라보았지만 엄수지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의 초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예쁜 여자 연예인을 선택한 남자에게 뭘 바라겠는가.결국, 가장 좋은 자기애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이다.엄수지의 냉담함에 정은호는 조금 화가 났지만 만약 그녀가 약간 기분 나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이름을 불러만 준다면 곁에 있는 여자 연예인은 뒷전이고 그들 사이에도 여전히 화해의 여지가 있다.하지만 엄수지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만약 정은호의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없다면 그녀는 이 혼인 관계를 갖고 싶지 않았다. 혼인에 충성하지 않는 남자는 더더욱 원하지 않았다. 아이를 호적에 올린다고 해도 그녀는 이 썩어빠진 결혼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든든한 남자를 찾을 수 있다면 가장 좋고 찾을 수 없다면 그녀가 연경의 세상이 되어주고 든든한 기둥이 되어줄 것이다.그리고 연경의 성은 그녀의 성을 따를 것이다. 엄경이라고 말이다.엄수지는 섬세한 눈매와 결연함을 가지고 있다.원래도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확실히 결연함을 더 하니 훨씬 매력적이었다.정은호는 그녀를 조금 더 쳐다보다가 결국 예린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식당을 나설 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누군가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만 같았다.“은호 씨.”순간 멈칫한 정은호는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엄수지는 스테이크를 썰면서 이태훈과 담소를 나누기 바쁜데 그러한 그녀의 눈에 정은호가 들어올 리가 없었다.결국, 정은호는 입꼬리를 조금 움찔거리더니 등을 돌리고 완전히 자리를 떴다.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표정은 다소 화가 난 듯했다.잠시 후, 캠핑카에 올라탄 정은호는 엄수지의 거절에 실망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어 다짜고짜 예린을 품에 껴안고 뜨거운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침대만 있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몸을 굴렸겠지만 침대가 없더라도 여자는 남자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몸을 살랑살랑 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