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혁은 박연희가 하려던 말을 막았다. 한바탕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조은혁은 땀이 흥건한 그녀의 목덜미에 기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한 번만 더 그렇게 다정하게 그 사람을 부른다면 침대에서 못 내려올 줄 알아.”박연희는 가늘게 숨을 몰아쉬었다. 박연희는 팔은 마른 조은혁의 허리를 감고 있었고 얼굴을 그에게 기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조은혁 씨, 당신은 이미 마흔 살이 넘어서 몸을 챙겨야 해요. 아직도 자신을 스무살 넘은 젊은이로 생각하는 거예요?”조은혁은 머리를 움직여 자신의 코끝으로 그녀의 코를 간지럽히며 살며시 핥았다.“70살이 돼도 네가 침대에서 소리 지르게 할 수 있어.”“그래요?”...두 사람은 달콤한 대화를 나누었다. 박연희의 마음속에서는 다른 일에 대한 고민이 있어 조은혁을 밀어내고 일어났다. 그녀는 검은 머리카락을 살짝 드리우고는 남편에게 말했다.“잠깐 눈을 붙이고 있어요. 가서 손님을 접대하고 다시 돌아와 당신과 시간 보낼게요.”조은혁은 이를 빌미로 요구를 제기했다.“저녁 식사 전에 한 번 더 해.”박연희는 그 말을 승낙하지 않고 그를 달랬다.“저녁 식사를 하고 아이들이 잠이 들면 당신과 시간 보낼게요.”조은혁은 다시 베개에 털썩 누웠다. 그는 두 손을 머리에 베고 고민에 빠진 모습으로 물었다.“우리 아이를 너무 많이 낳은 거 아니야?”박연희는 옷을 입으면서 그의 말에 대답했다.“당신은 딸이 있고 싶다고 했잖아요?”조은혁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는 진심으로 딸이 있고 싶었지만 지금도 박연희는 아이 4명을 돌보느라 그와 보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부부생활을 하려고 해도 한 주에 한 번 정도밖에 기회가 없었고 그것도 분위기가 달아오르려 하던 시각에 아이가 깨서 울기가 일수였다. 생각해보니 무척 합리적이지 못했다. 박연희는 옷을 다 입고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녀는 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박연희는 은은하게 웃으며 나가서 손님맞이를 했다....1층의 접대실에서는 다향이
박연희는 마음이 무거웠다. 설 연휴의 이튿날, 박연희는 직접 엄수지를 찾아갔다. 그 서류들을 엄수지에게 전해주려는 이유도 있고 연경이를 보려는 이유도 있었다.박연희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30분이 지나도록 엄수지의 저택에 도착하지 못하자 기사에게 물었다.“왜 길을 돌아서 가는 거예요?”기사는 백미러를 보고는 담담하게 웃었다.“앞에 시정 도로에서 길을 수리하고 있어서 한참을 돌아야 합니다. 여기는 서산 아래에 있는 지역인데 초봄이지만 경치가 꽤 좋아요. 사모님께서 밖을 보시면 매화나무 숲을 구경하실 수가 있습니다.”서산... 박연희가 멈칫했다. 심경서가 출가한 곳이 바로 서산이었다.박연희는 차창을 내렸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지만, 그녀는 추운 줄을 몰랐고 멀리 보니 정말 붉은 매화나무 숲이 있었다. 코끝에는 맑고 깨끗한 냄새가 풍겨왔다...박연희는 그 광경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두 눈이 촉촉해졌다. 기사는 박연희의 기분을 눈치채고 일부로 속도를 늦췄다. 번쩍이는 검은색 캠핑카가 서산의 주위를 따라 천천히 가고 있었다...매화가 가득 핀 곳에서는 마른 몸에 회색 도포를 걸치고 매화꽃에 물을 주고 있는 인영이 보였다. 그의 모든 감각기관은 속세를 벗어난 듯 보이지만 그의 의식 깊은 곳에서는 이 산을 채우고 있는 붉은 매화를 통해 크리스마스이브 날의 붉은 장미를 연상하고 있었다.이번 생에는 푸른 등불과 오래된 불상만이 그에게 평온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박연희의 차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부터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게 되며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게 된다....30분이 더 지나 드디어 엄수지의 저택에 도착했다. 차에 내리자마자 엄수지가 허리에 손을 얹고 거실에 서서 고용인들에게 집안일을 지휘하는 게 보였다... 새로 들여온 백금색의 레코드플레이어를 보자마자 박연희는 그게 엄청 비싼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언니 대단하시네요! 집에서 연회를 진행하려는 거예요?”엄수지는 박연희와 거리낌이 없는 사이였다. 그녀는 박연희를 끌고
엄수지는 센스가 있는 사람이었다. 설 연휴 기간에 심부름하려면 더 수고스러우므로 그녀는 현금 100만 원을 봉투에 넣어 고용인에게 건넸다. 그러니 고용인은 원망하는 마음이 전혀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심부름을 했다. 그는 설 연휴 셋째 날 아침 일찍 H시로 날아갔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 씨 저택으로 달려갔다.정은호는 중요한 인물이었으므로 설 연휴라고 해도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러 돌아다니고 설 인사를 건네기 바빴기에 저녁에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9시 반이었다.정은호가 차에서 내리자 집 안에 있던 고용인이 마중 나오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사모님께서 사람을 보내 직접 초청장을 갖고 오게 했습니다. 점심에 도착했는데 중요한 일인지 9시간 남짓하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정은호는 도도하게 걸어가면서 웃음을 띤 얼굴로 몸을 돌리고 말했다.“그 사람이 어떻게 내 생각이 났대? 그 사람은 이미...”그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정은호는 엄수지가 싫었기 때문에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 2층에 올라가 서재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사무를 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느낌에 정은호는 고개를 곧게 들고 천천히 움직이며 추 비서를 불렀다.“초청장을 갖고 와. 사람은 만나지 않을 거야.”추 비서는 바로 초청장을 가지러 갔다. 5분가량 지나 그는 초청장을 들고 와서 정은호에게 건넸다. 정은호는 그를 나가라고 했다.밤이 깊었을 무렵, 그는 초청장을 펼쳤고 거기에는 전처의 진심 어린 친필이 쓰여 있었다.「정은호 씨에게: 설 연휴가 끝난 두 번째 날, 우리 집에서 연회를 열려고 합니다. 새해를 축하하려는 의미도 있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우리 사이에서 사랑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는 걸 전하려는 의미도 있어요. 이렇게 하는 게 경솔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저번에 안 좋게 헤어진 일도 있어서 당신이 B시로 오는 게 싫을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해요... 하지만 몇 년간 부부생활을 이어온 정 때문에라도 당신이 우리 모녀와 만나지 않으려
엄수지는 여성 공관 출신이므로 수단이 많았다. 그녀는 정은호와 이혼했지만, 연경의 존재에 대해 대외적으로 말할 때는 자신과 정은호의 사랑이 예전에 맺은 결실이라고 얘기하고는 했다...정은호를 아는 사람이면 엄수지가 자신과 아이의 든든한 미래를 위해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엄수지는 날짜를 정하고 바삐 돌아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보름가량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여 전에도 날씬한 몸매가 더 예뻐졌다. 그녀는 또 머리도 새로 했는데 웨이브를 넣은 긴 생머리가 허리까지 드리워진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었다.그날 연회에서 그녀는 예쁜 옷을 입고 아름다운 춤을 추어 수많은 남자를 다 유혹하여 정신을 못 차리게 했다. 그녀에게 구애하는 남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연회가 끝나고 엄수지는 오늘 밤에 구애한 남자 중에서 조건이 제일 좋은 두 명을 골라서 데이트를 더 해보면서 상황을 보려고 했다.엄수지는 대비를 하고 있었다. 만약 정은호가 매정한 마음이라면 그녀는 연경에게 든든한 아버지를 다시 찾아줄 것이다. 정은호 한 사람한테만 목을 맬 필요가 없었다...엄수지의 예상은 빗나갔다. 연회가 끝나고 정월 대보름이 될 때까지 정은호는 만나러 오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B시에서 직무를 맡고 있지만 오지 않았고 그것도 모자라 여자 연예인과 스캔들이 터지기도 했다. 꽃을 선물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등 기사에서는 결혼 임박이라고 쓰기도 했다.엄수지는 이를 기사로 보았다. 조금의 실망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크고 작은 일을 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이렇게 보잘것없는 감정 때문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하여 정은호가 스캔들이 난 뒤, 엄수지는 이태훈의 요청에 과감히 응하고 그와 함께 촛불 만찬을 즐기고 함께 꽃등 놀이를 했다.이태훈은 아주 기뻐했다. 그는 앞서 연회에서 그는 엄수지에게 단단히 빠졌는데 여러 번의 데이트 신청 끝에 결국 엄수지의 승낙을 얻어냈다. 이태훈은 부자였고 사업을 하는데 인맥도 아주 넓었다. 제일 중요한
정은호도 뒤돌자마자 흠칫 놀랐다. 공교롭게도 이혼한 부부가 각자 새로운 사람과 함께 온 곳에서 서로 마주치게 되었다. 정은호의 시선은 엄수지한테서 머물다가 이태훈에게로 돌아갔다. 그 시선에는 상위에 있는 사람들이 주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고 물론 불쾌한 시선이었다. 그의 곁에는 핫한 여자 연예인이 있었고 30살이 갓 넘은 나이는 마침 사랑을 갈망할 나이었다. 그녀는 민감한 여자의 촉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섬섬옥수를 정은호의 어깨에 올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은호 씨, 아는 사람을 봤어요?”은호 씨? 엄수지는 다정하게 부르는 그 말투에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이태훈에게 팔짱을 끼고 웃음을 머금은 채 정은호가 어떻게 자신의 애인에게 설명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정은호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간단하게 설명했다.“내 전처인 엄수지 씨야.”그는 또 엄수지에게 그 여자를 소개했다.“수지야, 여기는 내 여자친구인 예린 씨야.”예린은 핫한 연예인이었고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정은호를 완전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여 전처라는 존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전처도 이미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니 말이다. 예린은 느릿느릿 손을 뻗었다. “엄수지 씨, 만나서 반가워요.”엄수지도 딱히 친절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친절하게 대하는 호구가 아니었다. 엄수지는 웃음을 지으며 정은호에게만 말했다.“좋은 사람 만난 거 축하해요. 기회가 된다면 두 사람을 위한 연회를 열어서 잘 접대해줄게요.”정은호는 웃음을 머금고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태훈과 인사를 할 생각이 없었다. 이는 남자들의 비겁한 심리였는데 마음속으로부터 그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정은호와 엄수지는 몇 년간의 부부생활을 이어갔다. 물론 이혼했지만, 정은호의 마음속에서 엄수지는 여전히 그의 아내였고 다른 사람이 넘볼 수 없는 존재였다.
떠나기 전, 정은호는 다시 한번 엄수지를 바라보았지만 엄수지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의 초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예쁜 여자 연예인을 선택한 남자에게 뭘 바라겠는가.결국, 가장 좋은 자기애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이다.엄수지의 냉담함에 정은호는 조금 화가 났지만 만약 그녀가 약간 기분 나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이름을 불러만 준다면 곁에 있는 여자 연예인은 뒷전이고 그들 사이에도 여전히 화해의 여지가 있다.하지만 엄수지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만약 정은호의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없다면 그녀는 이 혼인 관계를 갖고 싶지 않았다. 혼인에 충성하지 않는 남자는 더더욱 원하지 않았다. 아이를 호적에 올린다고 해도 그녀는 이 썩어빠진 결혼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든든한 남자를 찾을 수 있다면 가장 좋고 찾을 수 없다면 그녀가 연경의 세상이 되어주고 든든한 기둥이 되어줄 것이다.그리고 연경의 성은 그녀의 성을 따를 것이다. 엄경이라고 말이다.엄수지는 섬세한 눈매와 결연함을 가지고 있다.원래도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확실히 결연함을 더 하니 훨씬 매력적이었다.정은호는 그녀를 조금 더 쳐다보다가 결국 예린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식당을 나설 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누군가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만 같았다.“은호 씨.”순간 멈칫한 정은호는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엄수지는 스테이크를 썰면서 이태훈과 담소를 나누기 바쁜데 그러한 그녀의 눈에 정은호가 들어올 리가 없었다.결국, 정은호는 입꼬리를 조금 움찔거리더니 등을 돌리고 완전히 자리를 떴다.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표정은 다소 화가 난 듯했다.잠시 후, 캠핑카에 올라탄 정은호는 엄수지의 거절에 실망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어 다짜고짜 예린을 품에 껴안고 뜨거운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침대만 있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몸을 굴렸겠지만 침대가 없더라도 여자는 남자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몸을 살랑살랑 흔들
어두운 차 안, 정은호는 손을 들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미 밤 10시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그는 차 안에서 기다리지 않고 마치 이 집의 남자 주인처럼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너무나도 어두운 얼굴에 아무도 감히 그를 말리지 못했다.게다가 이곳의 고용인들은 모두 정은호가 사모님의 전남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사모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정은호는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가 안방 문을 열었다.방안에는 연경이가 곤히 자고 있었다.그때, 연경이의 곁을 지켜주던 아주머니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대표님.”정은호는 아이를 돌보러 왔으니 그녀더러 먼저 나가라고 손짓을 했고 아주머니는 감히 무어라 대꾸를 할 수 없어 고개를 푹 떨구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정은호는 화가 나 있었다.아이를 돌본다고 하긴 했지만 정은호가 아이를 돌본다는 건 말이 될 리가 없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깊게 잠든 아이의 그 예쁜 눈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계속 바라보다 보니 엄수지 그 망할 여편네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가볍게 픽 웃고는 손을 뻗어 머리 뒤에 베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그런데 신기하게도 정은호는 평소에 줄곧 약간의 불면증을 앓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아이의 살 냄새와 쌕쌕거리는 가벼운 숨소리를 듣고 있자니 스르르 잠이 들것만 같았다.밤이 깊어 오고 바깥에서 들려 오는 승용차 소리가 그를 깨웠다.엄수지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정은호는 그들의 애정이 어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그는 아예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귀를 곤두세우고 아래층의 동정을 살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엄수지에게 퍼부을 날카로운 말을 가득 준비해 놓았다.같은 시각, 1층에서 엄수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정은호의 차를 보게 되었다.그러나 다행히도 이태훈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엄수지는 이태훈과 평범하게 데이트를 하고 평범하게 작별 인사를 마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정은호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고 자
정은호는 그렇게 한참 동안을 멍하니 노려보았다.여러 해 동안 부부로 지냈는데 엄수지는 그냥 이렇게 놔준다고? 심지어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고, 질투도 하지 않고, 이젠 잘 살겠다고, 자유롭게 살겠다고, 정은호보다 훨씬 잘 살겠다고 선언했다.원래라면 그대로 등을 돌려 떠나야 하겠지만 남자의 나쁜 근성 때문인지 정은호는 도무지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더 참을 수 없었다.이성을 잃은 남자가 여자를 번쩍 들어 올렸다.힘을 줘 끌어내리니 얇은 검은색 스타킹이 가느다란 발목까지 벗겨졌고 곧이어 엄수지는 그에게 안긴 채 화장대 위에 앉게 되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여인의 몸은 마치 희미한 빛으로 뒤덮인 듯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정은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절박함이 느껴졌다.뭔가를 증명하는 데 급급했던 그는 다급히 자신의 속박을 풀어 던지고 부드러운 여자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물론 엄수지는 순순히 따르지 않고 필사적으로 정은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저항했다.“정은호,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그러나 남녀의 힘은 분명했고 엄수지는 남자의 공격을 전혀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오랫동안 몸부림치다가 힘을 잃고 화장대에 기대어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강력한 움직임을 온전히 견뎌야 했다.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수치스럽기 그지없었다.화장대 위에 놓인 화장품은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결국 모두 엄수지의 어깨 뒤에 모여들어 어두운 밤에 더욱 고혹적으로 보였다...정은호의 까만 눈동자가 그녀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가쁜 숨을 몰아쉬며 애써 자제력을 보였지만 가끔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이성을 잃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고 하물며 지금 정은호의 몸 밑에 누워있는 사람은 몇 년 동안 함께 했던 전 와이프이다.30분 내내 몰아붙이고 이제 조금 욕망이 채워지자 정은호는 그제야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한편, 엄수지는 일찍이 기진맥진하여 몸을 완전히 정은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