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수지는 센스가 있는 사람이었다. 설 연휴 기간에 심부름하려면 더 수고스러우므로 그녀는 현금 100만 원을 봉투에 넣어 고용인에게 건넸다. 그러니 고용인은 원망하는 마음이 전혀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심부름을 했다. 그는 설 연휴 셋째 날 아침 일찍 H시로 날아갔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 씨 저택으로 달려갔다.정은호는 중요한 인물이었으므로 설 연휴라고 해도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러 돌아다니고 설 인사를 건네기 바빴기에 저녁에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9시 반이었다.정은호가 차에서 내리자 집 안에 있던 고용인이 마중 나오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사모님께서 사람을 보내 직접 초청장을 갖고 오게 했습니다. 점심에 도착했는데 중요한 일인지 9시간 남짓하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정은호는 도도하게 걸어가면서 웃음을 띤 얼굴로 몸을 돌리고 말했다.“그 사람이 어떻게 내 생각이 났대? 그 사람은 이미...”그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정은호는 엄수지가 싫었기 때문에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 2층에 올라가 서재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사무를 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느낌에 정은호는 고개를 곧게 들고 천천히 움직이며 추 비서를 불렀다.“초청장을 갖고 와. 사람은 만나지 않을 거야.”추 비서는 바로 초청장을 가지러 갔다. 5분가량 지나 그는 초청장을 들고 와서 정은호에게 건넸다. 정은호는 그를 나가라고 했다.밤이 깊었을 무렵, 그는 초청장을 펼쳤고 거기에는 전처의 진심 어린 친필이 쓰여 있었다.「정은호 씨에게: 설 연휴가 끝난 두 번째 날, 우리 집에서 연회를 열려고 합니다. 새해를 축하하려는 의미도 있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우리 사이에서 사랑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는 걸 전하려는 의미도 있어요. 이렇게 하는 게 경솔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저번에 안 좋게 헤어진 일도 있어서 당신이 B시로 오는 게 싫을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해요... 하지만 몇 년간 부부생활을 이어온 정 때문에라도 당신이 우리 모녀와 만나지 않으려
엄수지는 여성 공관 출신이므로 수단이 많았다. 그녀는 정은호와 이혼했지만, 연경의 존재에 대해 대외적으로 말할 때는 자신과 정은호의 사랑이 예전에 맺은 결실이라고 얘기하고는 했다...정은호를 아는 사람이면 엄수지가 자신과 아이의 든든한 미래를 위해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엄수지는 날짜를 정하고 바삐 돌아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보름가량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여 전에도 날씬한 몸매가 더 예뻐졌다. 그녀는 또 머리도 새로 했는데 웨이브를 넣은 긴 생머리가 허리까지 드리워진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었다.그날 연회에서 그녀는 예쁜 옷을 입고 아름다운 춤을 추어 수많은 남자를 다 유혹하여 정신을 못 차리게 했다. 그녀에게 구애하는 남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연회가 끝나고 엄수지는 오늘 밤에 구애한 남자 중에서 조건이 제일 좋은 두 명을 골라서 데이트를 더 해보면서 상황을 보려고 했다.엄수지는 대비를 하고 있었다. 만약 정은호가 매정한 마음이라면 그녀는 연경에게 든든한 아버지를 다시 찾아줄 것이다. 정은호 한 사람한테만 목을 맬 필요가 없었다...엄수지의 예상은 빗나갔다. 연회가 끝나고 정월 대보름이 될 때까지 정은호는 만나러 오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B시에서 직무를 맡고 있지만 오지 않았고 그것도 모자라 여자 연예인과 스캔들이 터지기도 했다. 꽃을 선물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등 기사에서는 결혼 임박이라고 쓰기도 했다.엄수지는 이를 기사로 보았다. 조금의 실망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크고 작은 일을 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이렇게 보잘것없는 감정 때문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하여 정은호가 스캔들이 난 뒤, 엄수지는 이태훈의 요청에 과감히 응하고 그와 함께 촛불 만찬을 즐기고 함께 꽃등 놀이를 했다.이태훈은 아주 기뻐했다. 그는 앞서 연회에서 그는 엄수지에게 단단히 빠졌는데 여러 번의 데이트 신청 끝에 결국 엄수지의 승낙을 얻어냈다. 이태훈은 부자였고 사업을 하는데 인맥도 아주 넓었다. 제일 중요한
정은호도 뒤돌자마자 흠칫 놀랐다. 공교롭게도 이혼한 부부가 각자 새로운 사람과 함께 온 곳에서 서로 마주치게 되었다. 정은호의 시선은 엄수지한테서 머물다가 이태훈에게로 돌아갔다. 그 시선에는 상위에 있는 사람들이 주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고 물론 불쾌한 시선이었다. 그의 곁에는 핫한 여자 연예인이 있었고 30살이 갓 넘은 나이는 마침 사랑을 갈망할 나이었다. 그녀는 민감한 여자의 촉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섬섬옥수를 정은호의 어깨에 올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은호 씨, 아는 사람을 봤어요?”은호 씨? 엄수지는 다정하게 부르는 그 말투에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이태훈에게 팔짱을 끼고 웃음을 머금은 채 정은호가 어떻게 자신의 애인에게 설명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정은호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간단하게 설명했다.“내 전처인 엄수지 씨야.”그는 또 엄수지에게 그 여자를 소개했다.“수지야, 여기는 내 여자친구인 예린 씨야.”예린은 핫한 연예인이었고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정은호를 완전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여 전처라는 존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전처도 이미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니 말이다. 예린은 느릿느릿 손을 뻗었다. “엄수지 씨, 만나서 반가워요.”엄수지도 딱히 친절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친절하게 대하는 호구가 아니었다. 엄수지는 웃음을 지으며 정은호에게만 말했다.“좋은 사람 만난 거 축하해요. 기회가 된다면 두 사람을 위한 연회를 열어서 잘 접대해줄게요.”정은호는 웃음을 머금고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태훈과 인사를 할 생각이 없었다. 이는 남자들의 비겁한 심리였는데 마음속으로부터 그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정은호와 엄수지는 몇 년간의 부부생활을 이어갔다. 물론 이혼했지만, 정은호의 마음속에서 엄수지는 여전히 그의 아내였고 다른 사람이 넘볼 수 없는 존재였다.
떠나기 전, 정은호는 다시 한번 엄수지를 바라보았지만 엄수지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의 초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예쁜 여자 연예인을 선택한 남자에게 뭘 바라겠는가.결국, 가장 좋은 자기애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이다.엄수지의 냉담함에 정은호는 조금 화가 났지만 만약 그녀가 약간 기분 나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이름을 불러만 준다면 곁에 있는 여자 연예인은 뒷전이고 그들 사이에도 여전히 화해의 여지가 있다.하지만 엄수지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만약 정은호의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없다면 그녀는 이 혼인 관계를 갖고 싶지 않았다. 혼인에 충성하지 않는 남자는 더더욱 원하지 않았다. 아이를 호적에 올린다고 해도 그녀는 이 썩어빠진 결혼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든든한 남자를 찾을 수 있다면 가장 좋고 찾을 수 없다면 그녀가 연경의 세상이 되어주고 든든한 기둥이 되어줄 것이다.그리고 연경의 성은 그녀의 성을 따를 것이다. 엄경이라고 말이다.엄수지는 섬세한 눈매와 결연함을 가지고 있다.원래도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확실히 결연함을 더 하니 훨씬 매력적이었다.정은호는 그녀를 조금 더 쳐다보다가 결국 예린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식당을 나설 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누군가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만 같았다.“은호 씨.”순간 멈칫한 정은호는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엄수지는 스테이크를 썰면서 이태훈과 담소를 나누기 바쁜데 그러한 그녀의 눈에 정은호가 들어올 리가 없었다.결국, 정은호는 입꼬리를 조금 움찔거리더니 등을 돌리고 완전히 자리를 떴다.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표정은 다소 화가 난 듯했다.잠시 후, 캠핑카에 올라탄 정은호는 엄수지의 거절에 실망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어 다짜고짜 예린을 품에 껴안고 뜨거운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침대만 있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몸을 굴렸겠지만 침대가 없더라도 여자는 남자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몸을 살랑살랑 흔들
어두운 차 안, 정은호는 손을 들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미 밤 10시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그는 차 안에서 기다리지 않고 마치 이 집의 남자 주인처럼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너무나도 어두운 얼굴에 아무도 감히 그를 말리지 못했다.게다가 이곳의 고용인들은 모두 정은호가 사모님의 전남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사모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정은호는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가 안방 문을 열었다.방안에는 연경이가 곤히 자고 있었다.그때, 연경이의 곁을 지켜주던 아주머니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대표님.”정은호는 아이를 돌보러 왔으니 그녀더러 먼저 나가라고 손짓을 했고 아주머니는 감히 무어라 대꾸를 할 수 없어 고개를 푹 떨구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정은호는 화가 나 있었다.아이를 돌본다고 하긴 했지만 정은호가 아이를 돌본다는 건 말이 될 리가 없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깊게 잠든 아이의 그 예쁜 눈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계속 바라보다 보니 엄수지 그 망할 여편네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가볍게 픽 웃고는 손을 뻗어 머리 뒤에 베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그런데 신기하게도 정은호는 평소에 줄곧 약간의 불면증을 앓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아이의 살 냄새와 쌕쌕거리는 가벼운 숨소리를 듣고 있자니 스르르 잠이 들것만 같았다.밤이 깊어 오고 바깥에서 들려 오는 승용차 소리가 그를 깨웠다.엄수지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정은호는 그들의 애정이 어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그는 아예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귀를 곤두세우고 아래층의 동정을 살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엄수지에게 퍼부을 날카로운 말을 가득 준비해 놓았다.같은 시각, 1층에서 엄수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정은호의 차를 보게 되었다.그러나 다행히도 이태훈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엄수지는 이태훈과 평범하게 데이트를 하고 평범하게 작별 인사를 마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정은호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고 자
정은호는 그렇게 한참 동안을 멍하니 노려보았다.여러 해 동안 부부로 지냈는데 엄수지는 그냥 이렇게 놔준다고? 심지어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고, 질투도 하지 않고, 이젠 잘 살겠다고, 자유롭게 살겠다고, 정은호보다 훨씬 잘 살겠다고 선언했다.원래라면 그대로 등을 돌려 떠나야 하겠지만 남자의 나쁜 근성 때문인지 정은호는 도무지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더 참을 수 없었다.이성을 잃은 남자가 여자를 번쩍 들어 올렸다.힘을 줘 끌어내리니 얇은 검은색 스타킹이 가느다란 발목까지 벗겨졌고 곧이어 엄수지는 그에게 안긴 채 화장대 위에 앉게 되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여인의 몸은 마치 희미한 빛으로 뒤덮인 듯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정은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절박함이 느껴졌다.뭔가를 증명하는 데 급급했던 그는 다급히 자신의 속박을 풀어 던지고 부드러운 여자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물론 엄수지는 순순히 따르지 않고 필사적으로 정은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저항했다.“정은호,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그러나 남녀의 힘은 분명했고 엄수지는 남자의 공격을 전혀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오랫동안 몸부림치다가 힘을 잃고 화장대에 기대어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강력한 움직임을 온전히 견뎌야 했다.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수치스럽기 그지없었다.화장대 위에 놓인 화장품은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결국 모두 엄수지의 어깨 뒤에 모여들어 어두운 밤에 더욱 고혹적으로 보였다...정은호의 까만 눈동자가 그녀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가쁜 숨을 몰아쉬며 애써 자제력을 보였지만 가끔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이성을 잃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고 하물며 지금 정은호의 몸 밑에 누워있는 사람은 몇 년 동안 함께 했던 전 와이프이다.30분 내내 몰아붙이고 이제 조금 욕망이 채워지자 정은호는 그제야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한편, 엄수지는 일찍이 기진맥진하여 몸을 완전히 정은호에게
그러나 엄수지는 화를 내지 않았다.이미 이혼한 사이이고 성인남녀인데 가끔 논다고 책임까지 따질 필요가 있는가?엄수지는 다시 거울을 마주하고 부스스한 긴 머리를 가볍게 걷어 올렸다.“은호 씨, 우리는 결코 감정이 없는 게 아니에요. 하물며 저도 이제 나이가 있는지라 세월과 감정의 풍파를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러나 당신은 한창 장년이니 여자도 더 찾고 싶고 몇 년 더 놀고 싶겠죠. 저도 이해해요...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세요. 전 집 나간 남자가 되돌아서는 걸 마냥 기다려주진 않아요. 그러니 은호 씨, 엉망인 결혼은 한 번이면 충분해요. 전 그걸 다시 겪고 싶지 않거든요.”...뜻밖의 거절에 정은호가 눈살을 찌푸렸다.“내 주변에 여자가 몇 명 있든 내 마음속에서 당신이 가장 중요해. 당신의 지위는 변하지 않을 거야.”그리고 그의 말에 답해주는 엄수지의 목소리는 조금 나른하면서도 허스키했다.“몸에 뭐가 더 나왔다고 정말 황제라도 된 줄 아는 거예요? 다리 세 개 달린 개구리는 찾기가 쉽지 않다지만 다리 두 개 달린 남자는 거리에 널려 있어요. 그리고 저도 당신의 것만 필요한 게 아니고요.”여기까지 말하자 엄수지의 얼굴은 더욱 싸늘하게 굳어졌다.“정은호 씨, 오늘 밤, 일은 그저 남녀 사이의 실수로 넘겨요. 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저도 필요 없고요... 제 나이가 되면 원래 욕구가 있는 거고 고정된 남자친구도 없으니 비싼 남자 한 명 불렀다고 생각할게요.”곧이어 그녀는 옆에 있던 지갑을 꺼내더니 안에서 돈다발을 꺼냈다.“기술이 좋더군요. 만족해요.”...정은호는 눈앞의 돈다발을 바라보았는데 대략 40만 정도였다.순간,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그러나 엄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시작했다.“돈을 받으면 이만 꺼지세요. 다시는 오지 말고요. 이 집은 은호 씨를 환영하지 않습니다.”정은호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눈앞의 전 와이프를 바라보며 무거
그러나 엄수지의 생각과 수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하여 엄수지가 몰래 바람을 피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차에 탈 때 추 비서를 시켜 이태훈을 조사하도록 했다. 추 비서는 유능한 사람인지라 곧 이태훈의 모든 과거와 현재를 낱낱이 조사하여 보고했다.“명문 출신이고 전 와이프는 세상을 떴으며 아들은 유학 중입니다.”그 말을 듣고 정은호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그는 바짓가랑이를 툭툭 치며 추 비서에게 또 말을 건넸다.“엄수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꼴은 보기 싫으니까 이태훈에게 전화를 걸어 엄수지는 내 와이프라고 전해... 이 바닥이라면 이익을 중히 여기니 이태훈도 바로 이해할 거야.”그러나 추 비서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비록 정은호의 비서이지만 요 몇 년 동안 엄수지와 교류해온바 엄수지는 좋은 여자이다. 오히려 엄수지와 결혼한 정은호가 운이 좋은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니 정은호는 이렇게 처자를 박대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추 비서가 되물었다.“대표님께서는 여자 친구가 생기셨잖아요. 대표님은 예린 씨와 함께하기 위해 특별히 며칠 더 B시에 머무를 정도로 예린 씨에게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또 사모님에게 집착하시는 겁니까?”...예린?사실 방금 정은호는 예린이라는 존재를 거의 잊고 있었다.예린은 확실히 아름답고 영롱한 미모를 자랑했지만 그녀는 단지 남자의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노리개일 뿐이다. 마음을 준 적은 없지만 동시에 엄수지 때문에 다른 여자들과의 왕래를 끊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엄수지만 이득을 보는 꼴 아니겠는가.“단지 엄수지가 기뻐하는 꼴을 보기 싫은 것뿐이야.”이에 추 비서도 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하지만 추 비서는 워낙 일을 시원시원하게 잘 처리하는 스타일이기에 아니나 다를까, 이태훈은 눈앞의 이익을 보고 즉시 엄수지와의 관계를 포기했고 심지어 전화 한 통으로 두 사람 사이의 만남을 끝냈다.엄수지는 이에 이상해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았다.그녀는 일찌감치 예상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