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엄수지는 화를 내지 않았다.이미 이혼한 사이이고 성인남녀인데 가끔 논다고 책임까지 따질 필요가 있는가?엄수지는 다시 거울을 마주하고 부스스한 긴 머리를 가볍게 걷어 올렸다.“은호 씨, 우리는 결코 감정이 없는 게 아니에요. 하물며 저도 이제 나이가 있는지라 세월과 감정의 풍파를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러나 당신은 한창 장년이니 여자도 더 찾고 싶고 몇 년 더 놀고 싶겠죠. 저도 이해해요...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세요. 전 집 나간 남자가 되돌아서는 걸 마냥 기다려주진 않아요. 그러니 은호 씨, 엉망인 결혼은 한 번이면 충분해요. 전 그걸 다시 겪고 싶지 않거든요.”...뜻밖의 거절에 정은호가 눈살을 찌푸렸다.“내 주변에 여자가 몇 명 있든 내 마음속에서 당신이 가장 중요해. 당신의 지위는 변하지 않을 거야.”그리고 그의 말에 답해주는 엄수지의 목소리는 조금 나른하면서도 허스키했다.“몸에 뭐가 더 나왔다고 정말 황제라도 된 줄 아는 거예요? 다리 세 개 달린 개구리는 찾기가 쉽지 않다지만 다리 두 개 달린 남자는 거리에 널려 있어요. 그리고 저도 당신의 것만 필요한 게 아니고요.”여기까지 말하자 엄수지의 얼굴은 더욱 싸늘하게 굳어졌다.“정은호 씨, 오늘 밤, 일은 그저 남녀 사이의 실수로 넘겨요. 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저도 필요 없고요... 제 나이가 되면 원래 욕구가 있는 거고 고정된 남자친구도 없으니 비싼 남자 한 명 불렀다고 생각할게요.”곧이어 그녀는 옆에 있던 지갑을 꺼내더니 안에서 돈다발을 꺼냈다.“기술이 좋더군요. 만족해요.”...정은호는 눈앞의 돈다발을 바라보았는데 대략 40만 정도였다.순간,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그러나 엄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시작했다.“돈을 받으면 이만 꺼지세요. 다시는 오지 말고요. 이 집은 은호 씨를 환영하지 않습니다.”정은호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눈앞의 전 와이프를 바라보며 무거
그러나 엄수지의 생각과 수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하여 엄수지가 몰래 바람을 피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차에 탈 때 추 비서를 시켜 이태훈을 조사하도록 했다. 추 비서는 유능한 사람인지라 곧 이태훈의 모든 과거와 현재를 낱낱이 조사하여 보고했다.“명문 출신이고 전 와이프는 세상을 떴으며 아들은 유학 중입니다.”그 말을 듣고 정은호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그는 바짓가랑이를 툭툭 치며 추 비서에게 또 말을 건넸다.“엄수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꼴은 보기 싫으니까 이태훈에게 전화를 걸어 엄수지는 내 와이프라고 전해... 이 바닥이라면 이익을 중히 여기니 이태훈도 바로 이해할 거야.”그러나 추 비서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비록 정은호의 비서이지만 요 몇 년 동안 엄수지와 교류해온바 엄수지는 좋은 여자이다. 오히려 엄수지와 결혼한 정은호가 운이 좋은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니 정은호는 이렇게 처자를 박대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추 비서가 되물었다.“대표님께서는 여자 친구가 생기셨잖아요. 대표님은 예린 씨와 함께하기 위해 특별히 며칠 더 B시에 머무를 정도로 예린 씨에게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또 사모님에게 집착하시는 겁니까?”...예린?사실 방금 정은호는 예린이라는 존재를 거의 잊고 있었다.예린은 확실히 아름답고 영롱한 미모를 자랑했지만 그녀는 단지 남자의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노리개일 뿐이다. 마음을 준 적은 없지만 동시에 엄수지 때문에 다른 여자들과의 왕래를 끊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엄수지만 이득을 보는 꼴 아니겠는가.“단지 엄수지가 기뻐하는 꼴을 보기 싫은 것뿐이야.”이에 추 비서도 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하지만 추 비서는 워낙 일을 시원시원하게 잘 처리하는 스타일이기에 아니나 다를까, 이태훈은 눈앞의 이익을 보고 즉시 엄수지와의 관계를 포기했고 심지어 전화 한 통으로 두 사람 사이의 만남을 끝냈다.엄수지는 이에 이상해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았다.그녀는 일찌감치 예상했다.그
정은호의 아내, 그러니까 엄수지가 사무실에 앉아 여자 연예인 몇 명의 자료를 뒤적거리고 있었다.이윽고 그녀도 박예린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그러자 그녀의 비서가 다가와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사장님, 박예린 씨는 뒷배경이 있는 분입니다. 진아 말로는 어떤 큰 인물의 여자 친구라던데... 요즘 엄청 핫하게 치고 올라오는 중이라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큰 인물?엄수지가 냉소를 터뜨렸다.큰 인물은 결국 정은호 아닌가. 상위는 무슨 그저 남자 하나 잘 만난 것 뿐인데. 엄수지는 정은호의 거지 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어렵게 얻은 싱글인데 어떻게 다시 결혼 지옥에 뛰어들겠는가? 어차피 엄수지는 이미 포기했기에 정은호의 재혼 자리는 아마 정략결혼으로 이루어질 것이다.엄수지는 다시 한번 그 사진들을 훑어보았다.“전 김진희 씨가 마음에 드네요.”비서는 깜짝 놀랐지만 어쨌든 엄수지는 그녀의 직계 상사이고 게다가 조 대표님 와이프 분과 친자매처럼 사이가 좋기에 회사에서 엄수지의 지위는 상당히 높았다. 그러니 이 정도 결정은 충분히 그녀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그 거물급 인사는 엄수지가 알아서 할 것이라 믿었다.비서가 사무실을 떠나고 엄수지는 보고 있던 자료를 덮어두었다. 그렇게 다른 일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박예린의 일도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엄수지는 확실히 김진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좋은 이미지에 집안 출신도 나쁘지 않아 명품 브랜드를 홍보하기에 능력이 충분했다.며칠이 지나 엄수지는 조은혁과 함께 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다.홍보담당 부사장이라고는 하지만 술자리에서는 조은혁을 대신하여 술을 마셔야 했다. 물론 조은혁도 그녀를 특수하게 대하지 않았고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했다... 다행히 JH 그룹은 대기업이기에 주변 사람들도 많은 술을 권하지는 않았다.게다가 엄수지는 확실히 유능한 인재였다.그녀가 홍보담당 부사장을 맡은 후, 기업의 업무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고 조은혁은 이제 매우 만족스러웠다.식사 자리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우린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엄수지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핸드백을 지닌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런데 밖에는 정은호가 서 있었고 심지어 그 옆에는 박예린도 서 있었는데 두 사람은 매우 다정한 커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수지야.”정은호가 진심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오늘 저녁은 비즈니스 접대가 있는 날이다.엄수지는 프로페셔널 검은 드레스를 입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운전기사가 도착하지 않은 것을 보고 엄수지는 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 뒤,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다시 시선을 정은호에게 돌리고 부드럽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의 이혼 수속은 잘 처리되었던 것 같은데요.”정은호의 태도도 나쁘지는 않았다.“수지야, 우리 얘기 좀 해.”옆에 있는 박예린은 왠지 자신이 남이 된 것만 같았지만 워낙 이번 모델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꾹 참고 얌전히 정은호의 곁에 서서 그가 자신을 위해 나서주기만을 기다렸다.그러나 엄수지는 그런 수법에 넘어가지 않는다.엄수지는 이제 조은혁이라는 하늘을 찌를 듯한 큰 나무에 기대어 있기에 더 이상 정은호의 체면을 살필 필요가 없다. 게다가 그녀 역시 진심으로 그들을 원망하고 있다...“홍보 모델 일이라면 이미 결정을 마쳤습니다. 게다가 조 대표님도 제 제안에 동의하셨습니다... 김진희 씨야말로 제가 원하던 분이셨고요.”이 말을 꺼내고 나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후련했다.그들의 생사가 달린 권리를 손에 쥐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원하는 삶이고 그녀가 살아가야 하는 모습이다.“수지야, 이제 내 체면도 안 세워주는 거야?”그때, 마침 기사가 차를 몰고 그들에게 다가왔고 엄수지는 핸드백을 들고 하이힐을 신은 채 경쾌하게 뒷좌석으로 들어갔다.반쯤 내려온 차창으로부터 그녀의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모습이 보였다.사실 엄수지는 얼굴이나 기질을 막론하고 모두 박예린을
[정은호 대표와 박예린의 결혼이라니 정말 선남선녀가 따로 없군.][연예계에도 찐 사랑이 있구나.][정은호 대표의 프러포즈 다이아몬드 반지가 무려 8캐럿이라고.]...5월 말, 전 세계가 정은호의 재혼 소식에 들끓었고 엄수지도 자연스럽게 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그러나 엄수지는 이상할 정도로 매우 태연했다.그녀는 이미 정은호와 이혼했고 두 사람의 사이도 완전히 틀어져 버렸기에 재혼을 하든 말든 이제 상관없는 일이었다.축복하진 않지만 짜증도 나지 않았다.엄수지는 줄곧 자기 일로 바삐 보내며 연경이를 돌보고 있다, 그녀 역시 일찍이 연경이를 호적에 올려두었고 아이의 이름도 이제 엄경이가 되었다... 경이가 조금 더 크면 잔디밭이 있는 별장으로 바꾸고 경이가 좋아하는 강아지도 키울 생각이었다.물론 엄수지의 곁에도 그녀에게 구애하는 사람이 있었다.이제 그녀 역시 경이에게 아버지를 찾아주겠다는 생각은 버렸고 엄수지 같은 성숙한 여자의 곁에는 연하남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키도 크고 조건도 나쁘지 않으며... 그중에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엄수지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그런데도 엄수지도 가볍게 연애 생활을 즐겼고 상대는 심지어 그 김진희의 동생이다.26살에 키가 무려 188cm이고 호주에서 유학하고 돌아왔다.건강한 구릿빛 피부에 웃을 때 드러나는 하얀 치아가 유독 눈이 부셨다.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다.6월 1일.저녁 식사 자리에서 술을 조금 마신 탓에 엄수지는 룸에서 나오니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그때, 김준호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수지는 전화를 받고 조금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왔어.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그러자 전화 건너편의 김준호는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엄수지는 줄곧 그들은 연애만 할 뿐 미래를 논하지 않는다며 그들의 관계를 공개하기를 꺼렸다.김준호는 마음이 괴로웠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한편, 엄수지는 전화를 끊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더 많은 것은 걱정
“그래요.”엄수지는 단호하게 답하고 한 번 더 강조해주기까지 했다.“그래요, 지금은 젊은 남자가 좋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당신 정은호 씨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나요? 우리는 진작에 이혼했고 결혼과 연애는 이제 서로 무관할 텐데요. 당신이 예린 씨를 만날 때도 전 방해한 적 없으니 당신도 제 연애 생활에 간섭하지 마시죠.”“연애 생활?”정은호가 냉소를 지었다.“엄수지, 이런 어린놈과 사랑을 논해? 네가? 저 애가 여자를 알기나 해? 네 나이 또래 여자의 생리적 요구를 만족시켜줄 순 있어?”“그건 제 사생활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더러운 입 함부로 놀리지 마요, 정은호 씨.”...엄수지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기 귀찮았다.그녀의 마음속 그들의 과거는 좋은 것도,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 멀리 흘러갔고 아마도 가끔 그 과거를 돌이켜보며 음미할 순 있겠지만 절대 되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B시에 온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엄수지는 다시 몸을 돌려 김준호에게로 향했다.깊은 밤, 젊은 남자는 심플한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어 늘씬하고 다부진 몸매를 뽐냈다.나란히 선 두 사람은 분명 한 명은 정장 차림이고 다른 한 명은 캐주얼 차림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조화로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냈다. 마치 인터넷 소설에서 보던 누나와 강아지 연하남 같았다.그때, 김준호가 고개를 돌려 정은호를 바라보았다.그는 자연히 정은호를 알게 되었다. 엄수지의 전 남편이자 H시에서 꽤 유명한 정 대표.남자는 남자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김준호는 정은호의 눈에 남아있는 미련 덩어리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수지의 가는 허리를 감싸 안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다른 약속이 없으면 제가 데려다줄게요.”엄수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미간을 주물럭거렸다.“술을 두어 잔 마시니 머리가 좀 어지럽네. 당장 침대에 엎드려 푹 자고 싶어... 돌이켜보니 이번 주는
펑!엄청난 굉음과 함께 자동차 보닛이 움푹 패어 들어가며 구멍이 하나 생겼다.그리고 차 안에 있던 커플은 어쩔 수 없이 애정 행위를 멈춰야 했다.차 앞에는 정은호가 해머를 들고 또 두 번 세게 내리쳤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다가와 조수석의 차 문을 열었고 엄수지를 잡아당기며 호통쳤다.“당장 내려.”옷이 조금 흐트러져있었지만 엄수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정은호에게 욕을 퍼부었다.“정은호, 당신 미쳤어? 우리는 이미 끝난 사이라고요. 당신도 곧 결혼할 거면서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정말 정신병이라도 있는 거예요?”만약 김준호가 자리에 없었다면 그녀는 분명 “내가 누구와 자든 당신과 상관없어.”라고 말했을 것이다.그러나 정은호는 계속하여 그녀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어당겼다.“엄수지, 넌 내 와이프라고.”“미친놈.”...엄수지가 그를 발로 걷어찼지만 정은호는 완전히 미쳐버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방금 본 장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가 오지 않았다면 엄수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만져대는데 오늘 뜨거운 밤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그런데 그걸 어떻게 가만히 내버려 둔단 말인가?엄수지는 엄연히 그의 아내이고 그의 여자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단 말인가?김준호도 차에서 내리며 당장이라도 정은호와 싸울 준비를 했다.그런데 그때, 주차장 경비원 여러 명이 전기봉을 들고 달려와 그들 양쪽을 잡아당겼고 곧이어 그들은 정은호를 알아보고 그더러 진정하라며 뜯어말렸다.“그만하십시오. 대표님도 유명인이신데 이런 스캔들이 퍼지는 것은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차를 물러내고 아무리 큰일이라도 작은 일로 소화하세요.”...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정은호를 붙잡을 수 있겠는가. 정은호는 이미 이성을 잃었고 또다시 차를 부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그러나 다행히도 추 비서가 급히 달려왔고 엄수지가 김준호를 끌고 그 자리를 떴다.택시에 올라타고 나니 뜨거웠던
그와 함께 한 사람은 예린이지만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사람은 엄수지이다.정은호의 아내 엄 사모님.밤이 깊어 오고 정은호는 와인 두 병을 통째로 들이붓고 나서야 마침내 반쯤 취할 수 있었다.그는 술에 취한 틈을 타 차를 몰고 엄수지가 사는 작은 양옥에 도착했는데 경비원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대문을 부수어 강제로 열었고 어두운 밤을 뒤덮은 굉음이 들려왔다.정은호는 권세가 높은지라 정말 미쳐버리면 아무도 감히 말릴 수 없다.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한판 붙을 것이다.한밤중에 정은호는 약간의 분노와 억울한 감정을 가지고 엄수지의 안방으로 달려가 그녀를 이불에서 끌어냈다. 아마도 아이가 깰까 봐 걱정되어서인지 정은호는 엄수지를 욕실로 데려갔고 실크 가운만 입은 여인의 옷이 벗겨지며 희고 고운 몸이 드러났다.화들짝 놀란 엄수지가 분노어린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정은호, 당신 정말 미쳤어? 당신 곧 결혼할 몸이야. 나도 이제 남자친구가 생겼고. 당신 이러는 거 강간이야. 감옥 갈 거라고.”...크리스탈등불 아래 정은호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그런데도 정은호는 엄수지의 말에 설득되지 않았다.정은호는 여자의 가느다란 다리를 움켜쥐었고 그의 몸은 일촉즉발의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굳어있었다. 참을 생각도 없었다. 지금 당장 엄수지의 몸을 점하고 그녀가 진정으로 누구의 여인인지 똑똑하게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그 순간, 엄수지가 정은호의 뺨을 거세게 내리쳤다.갑작스러운 충격에 정은호의 얼굴이 한쪽으로 쏠렸다.정은호는 천천히 얼굴을 돌려 과거의 아내를 매섭게 노려보았는데 그의 눈은 마치 당장이라도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려는 것처럼 온통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 순간, 명예에 목숨을 거는 정은호에게 원망이라는 감정이 생겼다.그렇다. 이건 원망이다.엄수지가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을 원망하고 그녀가 젊은 남자를 데려와 그의 앞에서 자랑하는 것을 원망하고... 엄수지의 마음속은 더 이상 정은호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원망했다.하지만 그의 원망은 그뿐만이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