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취한 모양이다.그리고 어쩌면 너무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다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은호는 여자의 뺨을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엄수지, 넌 지금 나한테 복수하고 있는 것 같아서 속이 시원하고 통쾌하지?”정은호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런데 이를 어쩌나. 네가 틀렸어. 난 그저 널 보러 오는 김에 청첩장을 주러 찾아온 것 뿐이야. 난 곧 예린이와 결혼할 거든. 예린은 너와 다르게 젊고 예쁘고 영리하고 철이 들었으니 내가 얼마나 행복하겠어. 그러니 내가 왜 과거에 미련을 둘 수 있겠어? 더 이상 젊지 않은 네 얼굴에 미련을 둘까, 아니면 남자 의사가 엉덩이 검사해 주는 걸 좋아하겠나... 내가 미친것도 아니고. 안 그래? 엄수지.”...엄수지는 애써 눈가에 고인 눈물을 숨기며 꿋꿋하게 입을 열었다.“당신을 아무리 사랑해도 인정받을 수 없는 것처럼 앞으로 당신이 술과 여자에 미쳐 살아도 찍소리 한번 못하겠죠. 예전의 저처럼. 정은호 씨, 우리는 그래도 평화롭게 헤어진 셈인데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울 필요 없어요... 청첩장을 보내준다면 당신과 예린 씨가 백년해로하기를 축복할게요.”대범한 엄수지의 태도에 정은호는 오히려 마음이 더 답답해졌고 손을 뻗어 주머니를 한참 동안 뒤적였지만 청첩장은 찾을 수 없었다.어둠 속에서 정은호는 마지막으로 엄수지를 한 번 보았다.만약 불빛이 밝았다면, 만약 엄수지의 눈물을 보았다면, 아마도 그들 사이는 그러한 결말로 끝을 맺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이 약하고 그녀를 수지라고 불러주며 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해줄 것이다.하지만 날은 너무 어두웠고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다년간 함께했던 마음마저 잊은 채 오직 마음속의 쾌락만 생각했다.결국, 정은호는 자리를 떴다.그는 화장실을 나와 침실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갔고 침실 안 경이는 여전히 편한 자세로 단잠에 빠져 있었다. 어린 아기의 몸에 밴 젖 냄새는 성인의 마음속 건조
김준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지금 당신을 찾으러 가고 싶은데 괜찮겠어요?”늦은 밤이었기에 당돌한 것은 맞았다.하지만 김준호는 엄수지가 혼자 우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엄수지는 여전히 화장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가장 연약할 때 이렇게 포근한 말을 들으면 설렐 수밖에 없다. 하여 그녀는 별생각 없이 바로 수긍했다.김준호는 즉시 차 키를 가지고 아파트 밖으로 나가면서 말을 건넸다.“전화 끊지 마요. 계속 곁에 있어 줄게요.”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에 김준호는 매우 빠른 속도로 운전했다.초여름의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는데 사랑의 향기였다.30분 후, 검은색 랜드로버 한 대가 천천히 대문에 들어섰고 차체는 밖에 있는 검은색 벤틀리와 스쳐 지나갔다. 김준호는 정은호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정은호는 그를 보았다.한없이 고요한 깊은 밤, 운전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정은호는 작은 양옥에 불빛이 켜지고 젊은 남자가 방으로 들어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정은호는 그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차 안에 앉아 있었지만 흰 셔츠가 밤바람에 하염없이 흩날렸다...정은호는 마침내 김준호가 그를 대체하고 엄수지의 생활에 개입하였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하지만 엄수지는 분명 그의 아내이다.이혼할 때, 쿨하게 손을 놓긴 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줄곧 그녀가 돌아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음력 정월 이튿날, 엄수지가 초대장을 써서 그를 초청했을 때도 그는 속으로 분명히 기뻐하면서도 그녀의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은호는 엄수지처럼 서른이 넘은 이혼녀에게 그보다 더 나은 선택이 없으리라 생각했다.정은호가 재혼하더라도 엄수지는 항상 그 자리에서 그를 기다려 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모두 그의 착각이었다.엄수지도 정말 포기하고 다시 새로운 감정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눈가에서 통증이 밀려왔다.눈시울도 서서히 붉어졌다......정은호는 마음속으로 뼈저리게 후회했다.하지만 그는 이미 박예린과 혼약을 발표했고 게다가
이윽고 그는 눈을 들자마자 한눈에 엄수지를 보게 되었다.연보라색 긴 드레스를 입고 테라스에 선 그녀는 풍만한 검은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있어 밤바람에 흔들리는 장미처럼 보였다.정말 말로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김준호는 그렇게 한참을 보다가 비로소 허리를 굽혀 차에서 하얀 장미 한 송이를 꺼냈지만 그는 엄수지가 이 장미꽃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는 그녀와 몇 달 동안 사귀면서 점점 더 사랑에 빠졌다.사귀는 커플은 항상 오그라들 정도로 애정행각을 하기 마련이다.게다가 김준호는 열정적인 연인이다. 물론 엄수지 또한 그에게 답을 해주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10살이라는 나이 차이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오히려 매우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그리고 현재 두 사람은 모두 이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오늘 밤, 엄수지는 그에게 가장 원하던 이 감정을 공개할 것이다....스카이 호텔.조은혁은 한창 사업의 절정기를 맞이하고 있어 B시에서는 모두가 그와 친해지고 싶어 안달이다. 원래는 100 테이블을 준비했는데 인원이 초과하여 120 테이블까지 억지로 추가할 정도였다... 하여 조은혁도 어떤 사람들은 만나도 누군지 기억나지 않았다.그리고 조우현이 받은 생일 선물을 더 말할 것도 없었다.휴게실에 선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박연희는 김 비서를 데리고 일일이 세어 보기 시작했다. 이 신세들은 나중에 갚아야 하므로 누가 보냈는지, 가격은 어떤지 마음속에 새겨두어야 한다.수첩은 꼬박 10여 페이지를 기록했고 모든 기록을 끝내고 박연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김 비서에게 말을 건넸다.“나중에 조 대표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아이는 아직 어리니까 이렇게 크게 연회를 열 필요가 없는데 말이에요.”김 비서 역시 그녀의 말에 찬성했다.이윽고 박연희는 공책을 덮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사실 은혁 씨도 그저 아들을 자랑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매일 집에 돌아오면 튼튼이, 튼튼이라고 부르는데... 우현이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도
박연희는 조은혁의 어깨에 기대어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았다.그때, 폭죽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화려한 불꽃이 활짝 피어올랐다.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빛은 눈부시게 찬란했다.박연희는 마음속으로 슬픔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녀의 곁에는 조은혁이 지켜주고 있다. 내년에도 꽃은 필 것이라고 말해주고 또 매년 그녀와 함께 다양한 명절과 아이들의 모든 생일을 함께 보낼 것이라고 약속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할 것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그들은 창가에 기대어 함께 불꽃놀이를 감상했는데 짧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한참이 지나 문 앞에서 김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연회 준비를 모두 끝마쳤습니. 이제 대표님과 사모님께서 우현 도련님을 데리고 귀빈들을 만나 뵙기만 하면 됩니다.”김 비서의 말에 조은혁이 고개를 숙이자 박연희의 눈가에 아직 촉촉이 남아있는 눈물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하여 조은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연희 넌 간단히 준비하고 있어. 내가 우현이 데리고 나올게.”박연희도 가볍게 응했다.조은혁은 입구로 가 우현이를 안아 들었고 박연희가 마음을 추스른 후 한 손으로 아들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아내의 손을 잡은 채 연회장 쪽으로 걸어갔다.붉은 카펫이 마치 꽃길처럼 그들의 앞길을 장식해주었다....연회장은 순식간에 들끓어 올랐고 엄수지와 정은호는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심지어 두 사람 모두 새로운 배우자를 데려왔고 그 장면은 그야말로 수라장이 따로 없었다.물론 가장 반전인 것은 박예린이 김준한에게 구애를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김준한은 집안이 국경 무역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지라 집안 형편이 매우 좋은 편이다. 언니 김진희도 연예계에서 손에 꼽히는 대스타이고 김준한은 젊고 유능한 건축가이다. 하여 당시 예린이 반년 넘게 그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지만 김준호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그런데 그랬던 김준한이 지금은 웬 늙은 여자와 사귀게 됐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정은호가 조건이 좋은 사람인 건
그와 예린은 한동안 보지 못했고관계도 맺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요염한 약혼녀를 보고도 흥미가 돌지 않았고 머릿속에 온통 엄수지가 김준호의 어깨에 기댄 모습만 떠올랐다. 그는 심지어 그들이 지금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상상까지 했다. 그런 상상만 해도 정은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예린은 샤워 가운을 몸에 두른 채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마음이 아팠지만 정은호와 충돌이 발생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건 여자로서의 육감이었다.정은호의 마음속에 엄수지가 있었다. 정은호의 아내가 되고 싶다면 그녀는 참아야만 했다. 그녀는 남자가 욕망을 참지 못하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좋은 향기를 풍기며 정은호의 품속으로 다가와 그의 목 언저리에 기대 키스를 퍼부었다. 정은호는 그녀의 몸짓에 피던 담배를 끊어 버리고 그녀의 샤워 가운을 벗어 던졌다. 그렇게 그들은 한순간에 달아올랐다. 예린은 얼굴이 빨개져 끊임없이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은호씨, 정은호씨…”정은호도 매우 흥분했다. 그는 눈이 벌개져 여인의 가녀린 허리를 감싸 안으며 자신이 몸쪽으로 당겼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은호 씨, 우리 계속 부부로 살 수 있어요.” 그건 엄수지의 목소리였다.엄수지는 그의 아내다. 정은호의 눈빛은 갑자기 빛을 잃었다. 그는 멍해진 눈빛으로 약혼녀에게도 흥미를 잃었다. 예린은 한참이나 기다려도 남자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자 고개를 들어 멍때리는 정은호를 바라보았다. 예린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은호씨, 정말 너무해요. 지금 다른 여자 생각하고 있는 거 맞죠? 하지만 그 사람은 지금 다른 사람 품에서 밤을 보내고 있어요. 그 사람은 김준호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고요. 당신 이름이 아니라…” 정은호는 그녀에게 입을 닥치라고 했다. 하지만 예린은 아직도 화가 났는지 그만두지 않았다.“김준호에게 망가질 대로 망가진 여자에게 미련이 그렇게 남아요? 정은호씨 철 좀 들어요. 제발.” 정은호는 예린의 얼굴에
정은호는 편지를 보낸 후 매일 밥도 먹지 않고 편지를 기다렸다. 추비서가 떠난 지 이틀이나 되었다. 엄수지는 화원에서 추비서를 맞이했다. 여름 끝자락에 엄수지는 낮잠을 자고 편한 옷차림과 함께 나른한 모습으로 그를 만나러 나왔다. 엄수지의 낯빛은 꽤 괜찮아 보였다. 추비서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지만 정은호에게 결과를 들고 가야 했었기에 정신을 차리고 엄수지를 맞았다. 엄수지가 선물 박스를 열자 안에는 여러 가지 낙엽들이 깔려 있었고 금은보화도 함께 놓여 있었다. 언뜻 보아도 가격이 상당한 주얼리들이었다. 아마 수백억가량 할 것이다. 그녀는 낮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은호가 이걸 왜 주는 거죠? 돈을 모아서 아내를 맞이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추비서는 솔직하게 얘기했다. “제가 보기엔 대표님과 예린 씨의 혼사는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건 저랑 상관없어요. 그리고 이것도 저는 받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이랑 인사도 하지 않을 거예요.” …엄수지의 입가에 미소가 점차 걷어졌다. 추비서는 급히 화재를 전환하며 정은호가 쓴 편지를 건네며 엄수지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엄수지는 그 편지를 받아들었다. [수지야, 참 오랜만이야.] … 그리고 마지막 글자까지. [정은호가.] 엄수지는 정은호의 사랑의 편지를 두 번이나 읽어보며 살짝 놀랐다. 그녀는 정은호를 사랑했었다.그래서 오늘처럼 떨어져 있어도 이런 사랑의 편지를 읽은 후에 마음이 이상했다. 그녀도 옛일이 조금 생각났다. 좋았던 기억, 안 좋았던 기억들이 밀려와 감정이 복잡했다. 엄수지는 천천히 편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추비서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의 눈가엔 저절로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물건들과 편지를 그 사람에게 다시 돌려줘요. 그리고 이 말을 대신 전달해 줘요. 나는 그 사람과의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않아요. 하지만 그 사람과의 미래도 앞으론 없을 거예요.” 엄수지는 마음이 아팠지만 마지막까지 이성을
정은호가 물러난 것이다. 예린도 여자로서 정은호의 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예린과 모든 일을 끝맺고 엄수지와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고 싶은 것이다. 예린이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데 그 사람은 다른 쪽을 바라보네요. 당신이 아무리 재결합하고 싶다 해도 그 사람의 의사도 고려해야죠. 그 사람이 연하를 포기하고 당신 같은 중년 남성에게 돌아갈까요?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당신한테 돌아간다고 믿는 거죠?” …예린은 통쾌하게 속마음을 다 내비쳤다. 그녀의 말에 정은호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죽일 듯이 예린을 노려보았다.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랑했었던 애인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한참 후 정은호는 불빛을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린아, 이미 이렇게까지 됐으니 너한테도 숨기지 않을게. 우리 여기까지만 하자. 수지랑 잘되지 않는다 해도 너랑 너와 나는 아니야. 당연히 너한테도 적절한 피해 보상은 줄 거야. 집을 줄까 아니면 현금을 줄까? 네가 골라.” 정은호의 옆으로 베개 하나가 던져졌다. 예린은 여자 연예인의 이미지를 다 던져버리고 울부짖었다. “정은호, 이 개자식! 나한테 프로포즈 했을 때 어떻게 말했어? 당신이랑 엄수지는 애초에 사랑은 없었다고 했었잖아. 내가 진짜 사랑이라며! 일 년밖에 안 지났는데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 거야?” 그녀는 점점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은호는 이미 마음을 굳게 먹었기에 그 모습이 결코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그는 그녀를 다독이지 않고 그녀가 울게 내버려두었다.한 면으로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한 면으로는 몸이 많이 허약했기에 위로할 힘도 없었다. 예린이 다 울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정은호는 그녀에게 열 자릿수의 수표를 던져 이로써 그들의 마지막을 기약했다.정은호가 던진 수표에 예린은 화가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던 그녀였지만 그 수표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독한 말도 함께 그에게 남겼다. “정은호 씨, 우리는
정은호는 헬스장에서 하루를 꼴딱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스님처럼 여자를 건드리지 않았다. 2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 그는 몇 살이나 어려 보이는 모습이었다. 정은호는 10월에 B 시로 업무를 보러 갔다. 업무를 마치고 그는 3일의 휴가를 빌어 엄수지를 보러 갔다. 하지만 엄수지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집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정은호는 엄수지의 일정을 캘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저녁, 엄수지는 중요한 저녁 약속이 있었다. 그건 JH 그룹과 관련된 건으로 잘되면 그룹에게 수천억의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많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엄수지는 이 저녁 자리를 아주 중요시했다. 그녀는 비록 두 명의 비서를 거느렸지만 상대방은 엄수지에게 술을 마시라고 계속 권하는 바람에 엄수지는 반쯤이나 취해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 측에선 만족이 되지 않았는지 2차로 가서 더 마시기를 원했다. 더 마시다간 엄수지는 토할 지경이었다.임 대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JH 그룹이 체면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을 때 룸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임 대표가 화를 내려든 찰나 들어오는 사람에 그는 웃음을 지으며 손 인사를 했다. “정 대표, B 시는 어쩐 일인가? 일 보러 온 건가요?” 불빛 아래서 정은호는 하얀색 셔츠를 입고 꽤 단정한 모양새였다. 그는 진지하게 임 대표와 악수를 하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입을 열었다. “임 대표님과 제 아내가 아시는 사이인가요?” 아내? 임 대표는 정은호의 말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그는 정은호를 바라보다가 다시 엄수지를 바라보며 물었다.“엄 대표가 아내라고요?” 정은호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항상 그랬었죠. 요즘에 이 사람이 사업을 하겠다고 JH 그룹과 협업 중이에요. 그럼 지금 사업을 얘기하고 있는 거죠? 제가 방해한 건가요?” 임 대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조은혁에게 밉보일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