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예린은 한동안 보지 못했고관계도 맺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요염한 약혼녀를 보고도 흥미가 돌지 않았고 머릿속에 온통 엄수지가 김준호의 어깨에 기댄 모습만 떠올랐다. 그는 심지어 그들이 지금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상상까지 했다. 그런 상상만 해도 정은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예린은 샤워 가운을 몸에 두른 채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마음이 아팠지만 정은호와 충돌이 발생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건 여자로서의 육감이었다.정은호의 마음속에 엄수지가 있었다. 정은호의 아내가 되고 싶다면 그녀는 참아야만 했다. 그녀는 남자가 욕망을 참지 못하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좋은 향기를 풍기며 정은호의 품속으로 다가와 그의 목 언저리에 기대 키스를 퍼부었다. 정은호는 그녀의 몸짓에 피던 담배를 끊어 버리고 그녀의 샤워 가운을 벗어 던졌다. 그렇게 그들은 한순간에 달아올랐다. 예린은 얼굴이 빨개져 끊임없이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은호씨, 정은호씨…”정은호도 매우 흥분했다. 그는 눈이 벌개져 여인의 가녀린 허리를 감싸 안으며 자신이 몸쪽으로 당겼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은호 씨, 우리 계속 부부로 살 수 있어요.” 그건 엄수지의 목소리였다.엄수지는 그의 아내다. 정은호의 눈빛은 갑자기 빛을 잃었다. 그는 멍해진 눈빛으로 약혼녀에게도 흥미를 잃었다. 예린은 한참이나 기다려도 남자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자 고개를 들어 멍때리는 정은호를 바라보았다. 예린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은호씨, 정말 너무해요. 지금 다른 여자 생각하고 있는 거 맞죠? 하지만 그 사람은 지금 다른 사람 품에서 밤을 보내고 있어요. 그 사람은 김준호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고요. 당신 이름이 아니라…” 정은호는 그녀에게 입을 닥치라고 했다. 하지만 예린은 아직도 화가 났는지 그만두지 않았다.“김준호에게 망가질 대로 망가진 여자에게 미련이 그렇게 남아요? 정은호씨 철 좀 들어요. 제발.” 정은호는 예린의 얼굴에
정은호는 편지를 보낸 후 매일 밥도 먹지 않고 편지를 기다렸다. 추비서가 떠난 지 이틀이나 되었다. 엄수지는 화원에서 추비서를 맞이했다. 여름 끝자락에 엄수지는 낮잠을 자고 편한 옷차림과 함께 나른한 모습으로 그를 만나러 나왔다. 엄수지의 낯빛은 꽤 괜찮아 보였다. 추비서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지만 정은호에게 결과를 들고 가야 했었기에 정신을 차리고 엄수지를 맞았다. 엄수지가 선물 박스를 열자 안에는 여러 가지 낙엽들이 깔려 있었고 금은보화도 함께 놓여 있었다. 언뜻 보아도 가격이 상당한 주얼리들이었다. 아마 수백억가량 할 것이다. 그녀는 낮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은호가 이걸 왜 주는 거죠? 돈을 모아서 아내를 맞이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추비서는 솔직하게 얘기했다. “제가 보기엔 대표님과 예린 씨의 혼사는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건 저랑 상관없어요. 그리고 이것도 저는 받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이랑 인사도 하지 않을 거예요.” …엄수지의 입가에 미소가 점차 걷어졌다. 추비서는 급히 화재를 전환하며 정은호가 쓴 편지를 건네며 엄수지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엄수지는 그 편지를 받아들었다. [수지야, 참 오랜만이야.] … 그리고 마지막 글자까지. [정은호가.] 엄수지는 정은호의 사랑의 편지를 두 번이나 읽어보며 살짝 놀랐다. 그녀는 정은호를 사랑했었다.그래서 오늘처럼 떨어져 있어도 이런 사랑의 편지를 읽은 후에 마음이 이상했다. 그녀도 옛일이 조금 생각났다. 좋았던 기억, 안 좋았던 기억들이 밀려와 감정이 복잡했다. 엄수지는 천천히 편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추비서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의 눈가엔 저절로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물건들과 편지를 그 사람에게 다시 돌려줘요. 그리고 이 말을 대신 전달해 줘요. 나는 그 사람과의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않아요. 하지만 그 사람과의 미래도 앞으론 없을 거예요.” 엄수지는 마음이 아팠지만 마지막까지 이성을
정은호가 물러난 것이다. 예린도 여자로서 정은호의 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예린과 모든 일을 끝맺고 엄수지와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고 싶은 것이다. 예린이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데 그 사람은 다른 쪽을 바라보네요. 당신이 아무리 재결합하고 싶다 해도 그 사람의 의사도 고려해야죠. 그 사람이 연하를 포기하고 당신 같은 중년 남성에게 돌아갈까요?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당신한테 돌아간다고 믿는 거죠?” …예린은 통쾌하게 속마음을 다 내비쳤다. 그녀의 말에 정은호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죽일 듯이 예린을 노려보았다.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랑했었던 애인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한참 후 정은호는 불빛을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린아, 이미 이렇게까지 됐으니 너한테도 숨기지 않을게. 우리 여기까지만 하자. 수지랑 잘되지 않는다 해도 너랑 너와 나는 아니야. 당연히 너한테도 적절한 피해 보상은 줄 거야. 집을 줄까 아니면 현금을 줄까? 네가 골라.” 정은호의 옆으로 베개 하나가 던져졌다. 예린은 여자 연예인의 이미지를 다 던져버리고 울부짖었다. “정은호, 이 개자식! 나한테 프로포즈 했을 때 어떻게 말했어? 당신이랑 엄수지는 애초에 사랑은 없었다고 했었잖아. 내가 진짜 사랑이라며! 일 년밖에 안 지났는데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 거야?” 그녀는 점점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은호는 이미 마음을 굳게 먹었기에 그 모습이 결코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그는 그녀를 다독이지 않고 그녀가 울게 내버려두었다.한 면으로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한 면으로는 몸이 많이 허약했기에 위로할 힘도 없었다. 예린이 다 울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정은호는 그녀에게 열 자릿수의 수표를 던져 이로써 그들의 마지막을 기약했다.정은호가 던진 수표에 예린은 화가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던 그녀였지만 그 수표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독한 말도 함께 그에게 남겼다. “정은호 씨, 우리는
정은호는 헬스장에서 하루를 꼴딱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스님처럼 여자를 건드리지 않았다. 2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 그는 몇 살이나 어려 보이는 모습이었다. 정은호는 10월에 B 시로 업무를 보러 갔다. 업무를 마치고 그는 3일의 휴가를 빌어 엄수지를 보러 갔다. 하지만 엄수지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집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정은호는 엄수지의 일정을 캘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저녁, 엄수지는 중요한 저녁 약속이 있었다. 그건 JH 그룹과 관련된 건으로 잘되면 그룹에게 수천억의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많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엄수지는 이 저녁 자리를 아주 중요시했다. 그녀는 비록 두 명의 비서를 거느렸지만 상대방은 엄수지에게 술을 마시라고 계속 권하는 바람에 엄수지는 반쯤이나 취해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 측에선 만족이 되지 않았는지 2차로 가서 더 마시기를 원했다. 더 마시다간 엄수지는 토할 지경이었다.임 대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JH 그룹이 체면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을 때 룸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임 대표가 화를 내려든 찰나 들어오는 사람에 그는 웃음을 지으며 손 인사를 했다. “정 대표, B 시는 어쩐 일인가? 일 보러 온 건가요?” 불빛 아래서 정은호는 하얀색 셔츠를 입고 꽤 단정한 모양새였다. 그는 진지하게 임 대표와 악수를 하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입을 열었다. “임 대표님과 제 아내가 아시는 사이인가요?” 아내? 임 대표는 정은호의 말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그는 정은호를 바라보다가 다시 엄수지를 바라보며 물었다.“엄 대표가 아내라고요?” 정은호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항상 그랬었죠. 요즘에 이 사람이 사업을 하겠다고 JH 그룹과 협업 중이에요. 그럼 지금 사업을 얘기하고 있는 거죠? 제가 방해한 건가요?” 임 대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조은혁에게 밉보일
밤이 되어 모든 곳은 조용해졌다. 클럽 아니었지만 술은 그들과 멀리 떨어져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곳엔 정은호의 뒷모습만 남겨졌다. 엄수지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창밖으로 달이 사라지는 모습은 마치 그들이 과거 감정 같았다. 그녀는 마음이 쓰라려 입술을 움직여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했지만 결국 내뱉지 못했다. 경직된 몸으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수지야.” 정은호가 그녀를 불렀다. 그는 빠르게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가느다란 팔목을 붙잡았다. 그녀가 떠나는 걸 그는 원치 않았다. 그에게서 멀어져 다른 남자에게로 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때 정은호의 마음은 이미 상처로 가득했고 그녀가 돌아와야만 그 상처는 아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못했다. 엄수지는 고개를 속이고 자신의 팔목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발버둥을 쳤지만 그의 손길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정은호는 그녀가 발버둥 칠수록 더 큰 힘으로 잡았다. 한참 후에 그녀는 낮게 입을 열었다. “놓아줘요.” 정은호는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엄수지는 힘껏 손을 빼내느라 피부가 쓸려 아팠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아무리 아파도 그녀는 떠나야 했다. 이미 칼을 뺀 이상 뭐라도 썰어야 했다. 그들의 결말은 이미 이별로 낙인 지어졌다.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그들은 함께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엄수지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갔을 때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졌다. 하지만 그녀는 정은호에게 자신의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얼만큼 결혼 생활에 대해 기대를 했는지, 얼만큼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를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이미 모든 건 지나갔다. 그들의 과거는 모두 지나갔다. 엄수지는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 안의 숫자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건 아마 그녀가 정은호를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일 것이다. 이후로 그들은 남남이다. 정은호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은호는 익숙하던 화려한 장소에 서 있었지만 지금 이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정은호, 당신 미친 거 아니야?” 엄수지는 차 손잡이를 붙잡고 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했으나 안에서 잠긴 바람에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비틀어 정은호를 째려보았다. “정은호, 뭐하는 거에요?” 차 안은 조용했다. 정은호는 하얀 셔츠를 입은 말끔한 차림이었다. 그는 깊고도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엔 성숙한 남자 특유의 사람을 빨아당기는 엄격함 기품이 풍겼다. “내가 뭘 하고 싶냐고?” 정은호가 자신의 셔츠 소매를 거두자 그의 건실한 팔뚝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는 뒷좌석의 가림판을 내려 사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엄수지는 그의 품속에 안기게 되었다. 마치 그녀에게 치욕을 남겨주고 싶기라도 하듯 그는 불을 켰다. 불빛은 매우 환했다. 엄수지는 그렇게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자신의 전 남편의 품 안에 안겼고 얇은 스타킹이 아래로 끌어내려져 가느다란 다리가 드러났다. 남자는 한치 부드러움도 없이 그녀를 다뤘다. 엄수지는 온몸이 긴장된 채로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미친 듯이 몸을 피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힘 차이는 꽤 컸기에 그녀는 도저히 숨을 수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남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정은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우수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의 몸을 잘 알았다. 아주 손쉽게 그녀를 망가뜨릴 수 있었고 만족시킬 수 있었다. 정은호는 그녀의 귓가에 차갑게 물었다. “그 사람이랑 결혼 준비를 끝냈어? 오늘 부모님을 만난 거야?” “당신이랑 상관없어.” 그녀의 이마엔 온통 땀으로 가득했고 엄수지는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 엄수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만약 정은호에게 더럽혀지면 그녀는 김준호와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주 강한 정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가장 기본적인 예의는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정은호가 너무 미웠다. 엄수지는 그의 어깨를 힘껏 물었다. 그녀가 깊
차 안은 어수선했다.엄수지의 얼굴은 땀방울로 가득했고 검은 머리카락이 땀에 흠뻑 젖어 이마에 붙어 있었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정은호와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찌 원할 수 있으랴. 엄수지가 어렵게 새로운 인생을 살려 하는데 그가 다시 끌어내리는 것이다. 엄수지가 만약 젊은 아가씨였다면 그녀는 정은호를 잊고 김준호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정은호와 결혼 생활을 보냈고 다른 사람이 볼 때 그들의 관계는 너무 복잡했다. 게다가 정은호와 엮인 사람도 많았고 그중 조 대표는 누구보다 더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 희생은 가장 큰 사랑이다. 이 점을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엄수지는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옷가지를 안아 들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런 소리도 없이 눈물만 흘렸다. 정은호는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바지 지퍼를 올렸다. 그의 얼굴엔 급박한 표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불쌍한 눈빛으로 엄수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아팠어?" 엄수지가 그의 손을 내리쳤다.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 정은호 씨, 날 건드리지 말아요." 그녀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두 팔로 자신을 안고 안정감을 취하려는 듯 했다. 엄수지는 종래로 남녀 사이의 일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너무 아파 죽을 힘으로 거절했지만 눈앞의 남자를 밀어낼 수 없었다. 정은호는 너무 큰 힘으로 그녀를 내리눌렀다. 그녀는 너무 아파 몇 번이나 그를 밀쳐냈고 엄수지의 몸은 메마른 우물마냥 젖지 않았다. 그녀의 가느다란 몸은 남자가 남긴 흔적들로 얼룩이 졌다. 엄수지는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정은호가 그녀를 몇 번 불렀지만 엄수지는 미동도 없었다. 결국 정은호는 자신이 외투로 그녀의 몸을 감싸고 세심하게 단추를 잠가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를 차에서 안고 내려왔다. 하늘
“정은호 씨, 나는 사람이에요. 고양이나 강아지가 아니에요. 나는 감정이 있는 사람이에요. 나도 나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어요.” 엄수지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녀의 얼굴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당신은 직접 내 마음을 말살했어요. 당신이 내 행복을 말살했어요. 정은호 씨, 당신이 내 모든 걸 망가뜨렸어요. 지금 만족해요? 내가 앞으로 김준호와 헤어진다고 해도 당신을 선택할 일은 없어요.” 엄수진은 몸을 일으켜 떠났다. 그녀는 자신에게 약속했다. 죽는다 하더라도 다시 그 이 사람 곁에 가지 않겠다고. 이 사람의 아내로 다시 되지 않겠다고. 정은호는 그런 그녀를 다시 잡아당겨 둘은 부드러운 침대에 함께 누워있었다. 정은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붙들고 낮게 말했다. “니가 좋아하지 않으면 이 사진을 삭제하면 그만이야. 수지야, 나는 이걸 김준호에게 보여줄 생각이 없었어. 내가 어떻게 이런 걸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겠어.” 여기까지 말하자 정은호는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경험이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마음속으론 불편했지만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헤어진 시간 동안 그도 다른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수지는 떠나려고 했지만 그는 그런 그녀를 붙잡았다. 그는 그녀의 몸을 붙들고 침대맡에서 줄을 가져와 그녀의 팔을 감쌌다. 그 모습에 엄수지는 깜짝 놀랐다. 정신이 돌아온 후 그녀는 두 다리를 뻗으며 소리쳤다. “지금 뭐하는 거에요? 정은호 씨, 나를 놓아줘요. 나를 놓아줘요...” “약을 발라줄게.” 그의 목소리는 너무 낮았다. 그리고 엄수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더욱 아팠다. 아까까지 환희에 차넘치던 그 모습은 이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엄수지가 그를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젊은 사내에게 갈지언정 그에게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정은호가 그녀에게 약을 발라줄 때 한참이나 여자와 관계가 없었는지 그는 많은 자극을 받았다. 분위기가 갑자기 묘해졌다. 그녀는 차갑게 그를 바라보며 눈빛은 멸시와 불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