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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2화

아마 취한 모양이다.

그리고 어쩌면 너무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다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은호는 여자의 뺨을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엄수지, 넌 지금 나한테 복수하고 있는 것 같아서 속이 시원하고 통쾌하지?”

정은호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네가 틀렸어. 난 그저 널 보러 오는 김에 청첩장을 주러 찾아온 것 뿐이야. 난 곧 예린이와 결혼할 거든. 예린은 너와 다르게 젊고 예쁘고 영리하고 철이 들었으니 내가 얼마나 행복하겠어. 그러니 내가 왜 과거에 미련을 둘 수 있겠어? 더 이상 젊지 않은 네 얼굴에 미련을 둘까, 아니면 남자 의사가 엉덩이 검사해 주는 걸 좋아하겠나... 내가 미친것도 아니고. 안 그래? 엄수지.”

...

엄수지는 애써 눈가에 고인 눈물을 숨기며 꿋꿋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을 아무리 사랑해도 인정받을 수 없는 것처럼 앞으로 당신이 술과 여자에 미쳐 살아도 찍소리 한번 못하겠죠. 예전의 저처럼. 정은호 씨, 우리는 그래도 평화롭게 헤어진 셈인데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울 필요 없어요... 청첩장을 보내준다면 당신과 예린 씨가 백년해로하기를 축복할게요.”

대범한 엄수지의 태도에 정은호는 오히려 마음이 더 답답해졌고 손을 뻗어 주머니를 한참 동안 뒤적였지만 청첩장은 찾을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정은호는 마지막으로 엄수지를 한 번 보았다.

만약 불빛이 밝았다면, 만약 엄수지의 눈물을 보았다면, 아마도 그들 사이는 그러한 결말로 끝을 맺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이 약하고 그녀를 수지라고 불러주며 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날은 너무 어두웠고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다년간 함께했던 마음마저 잊은 채 오직 마음속의 쾌락만 생각했다.

결국, 정은호는 자리를 떴다.

그는 화장실을 나와 침실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갔고 침실 안 경이는 여전히 편한 자세로 단잠에 빠져 있었다. 어린 아기의 몸에 밴 젖 냄새는 성인의 마음속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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