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이상한 소리에서 비롯되었다.우리 쪽에서는 약혼식이 막 끝나서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고 있고 차홍기도 배현우에게 요구를 제시하고 있어 가족들 모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나의 그런 ‘대단한’ 과거를 조용히 수군거리고 있었다.이런 때아닌 말을 들은 도혜선은 너무 못마땅한 말 때문에 노발대발했다. 그 결과, 말 한마디 없이 도혜선이 맞았다.그 여자는 날뛰며 도혜선을 가리키며 노여움을 표했다“너는 뭔데 감히 나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거야?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거울에 똑똑히 비춰 봐. 당신은 헌 신발일 뿐이야. 심지어 버려진 헌 신발! 감히 이런 고급스러운 자리에서 입을 열다니 네가 아직도 옛날 같은 줄 알아? 정말 근주자적, 근묵자흑이네. 퉤!”그 여자의 말은 매우 듣기 거북했다. 도혜선은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얼굴은 이미 창백해졌다.이미연은 재빨리 도혜선에게 달려가 때린 사람을 노려보았다. “닥쳐! 다시 한번 말해 봐. 내가 너의 입을 찢어버릴 줄 알아.”“내가 몇 번을 말해도 그녀는 헌신짝이야! 자기가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감히 우리가 대화하는데 끼어들다니.”그 여자는 간사한 얼굴로 이미연을 흘겨보더니 판을 깨뜨리듯 큰 소리로 떠들어대며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나는 이미연이 순간적으로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막 돌진하려고 하는데 도혜선이 말리는 것을 보았다.그 여자와 한패인 다른 여자도 허리를 짚고 도혜선을 바라보았다.“염치가 있어야지. 불륜녀는 장례식에 참석할 자격도 없는데 감히 여기에 와서 횡포를 부리다니. 너는 아직도 네가 옛날의 사교계의 꽃이라고 생각해? 여기저기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뻔뻔스럽게 여기서 거드름을 피우다니!”나는 이 사람들은 정말 너무 악랄해서 깜짝 놀랐다. 일부러 아픈 곳을 찾아서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정말 사모님 감이라고 생각해? 당신을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스꺼워! 헌신짝!”이런 날카로운 말들은 금세 모두의 이목을 끌었고, 모든 시선이 도혜선을 향
우리가 떠나려는 것을 보고 그 키 큰 사람이 뜻밖에도 날뛰며 앞으로 한발짝 다가와 도발적으로 우리의 갈 길을 막았다.“무서워? 우리 말이 틀렸어? 까치 둥지를 차지려다가 허탕친 비둘기 꼴이지? “그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말했다.“염치없이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기다리다가 김칫국만 마신 격이 됐잖아? 거울 좀 봐봐. 당신은 방을 채울 자격조차 없어! 그냥 공짜 도구야!”이 말이 나오자 나는 도혜선의 몸이 흔들리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나를 잡고있는 손을 심하게 떨었다.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막 화를 내려고 했다.이때, 군중 속에서 분노에 차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 서강민이 아직 있는 이상, 너희들이 이러쿵저러쿵 그녀를 모독할 자격이 없어.”우리는 모두 말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서강민은 얼굴 가득 노기가 가득해서마치 발광한 사자처럼 그 분노에 찬 눈을 부릅뜨고 뒷담화를 하던 몇 명을 똑바로 쳐다보았다!“이년들이 누구네 수다쟁이들이야, 모두 나와 봐!”서강민의 표정은 음산하고 무서웠고 말투도 상당히 위압감이 있었다.그는 곧바로 도혜선 곁으로 가서 한 손으로 도혜선을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화가 나서 몇몇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당신 남자들은?”도혜선은 멍해 있다가 등을 곧게 펴고 서강민을 바라보았다!나는 서둘러 도혜선의 곁에 다가가 손을 뻗어 그녀를 눌렀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다. 도혜선은 서강민에게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대중 앞에서 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상처에서 피를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사과해! 그리고 꺼져! 당장!”나는 그 몇 명을 매서운 표정으로 봤다. 이때 그들 몇 명은 서강민의 고함을 들을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강민은 아직 그녀들이 미움을 살 수도, 미움을 사서도 안 되는 인물이다. 그녀들은이때 서강민이 현장에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게다가 이렇게 대중 앞에서 나서서 도혜선을 보호할 줄은
나는 차갑게 그 여자들을 쳐다봤다.“사과해! 당장!”보아하니, 그 키 큰 여자는 정말 전희와 견줄만할 정도로 교활하고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녀는 상황이 좋지 않은 것과 내가 여전히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갑자기 옆에 사람을 뿌리치고 앞으로 나왔다.“협력을 취소한 판에 무슨 사과를 해? 네가 뭐가 대단해! 내 말이 틀렸어?”나는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사과 안 한다 그거지?”아첨을 하며 사정하던 한 남자가 뒤돌아보며 호통쳤다. “백슬기, 빨리 사과해!”그 여자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내가 왜...”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후려갈긴 뒤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사과하지 않는다면 따귀는 반드시 돌려줘야겠어. 앞으로 때와 장소를 가려서 나대. 어떤 사람들은 네가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야! 이제 여기서 꺼져도 돼!”나는 도혜선 곁으로 돌아갔다. “언니, 다음에 봐줄 필요 없어. 누가 도발하면 때려눕혀!”그 몇 명의 남자들은 울상을 지으며 자꾸 읍소하였는데 아무리 사정해도 결국 보내졌다.나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속삭이며 그녀를 위로했다.“마음에 담아두지 마.”도혜선은 애처로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괜찮아. 이런 일은 많이 봐서 익숙해졌어. 내 존엄성을 지키고 살려면 반드시 이것들을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난 잘 알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내 마음은 매우 아팠고 이미연도 분개한 얼굴이었다.도혜선은 서강민을 돌아보고는 입꼬리를 떨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서 대표님.”안색이 좋지 않은 서강민은 도혜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혜선아, 꼭 이렇게 거리를 둬야겠어?”이미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나는 그녀가 화를 누르지 못할까 봐 그녀를 붙잡았다.방금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슬그머니 지나갔다. 비록 여기에 큰 가십거리가 있지만 관심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사실, 지난 반년 동안 서울의 업계에는
나는 얼른 쫓아가려고 했다. 배현우는 나를 덥석 잡아당기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배현우는 내가 쫓아가면 도혜선이 더 난처한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러는 거라는 걸 난 알았다. 그 후 내 눈은 때때로 도혜선 쪽을 바라보았는데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도혜선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도혜선 마음속 깊은 곳의 고통을 나만 안다.반년 동안, 그녀 혼자 밖에서 혈혈단신으로 위험에 직면하고 고독하고 심지어는 총알이 빗발치기도 하는 곳을 떠돌아다녔다. 이제 돌아왔는데 그녀는 또 악의적인 욕설에도 직면해야 했다. 그녀의 웃음 아래서 어찌 피 한 방울 안 흘릴 수 있겠는가?이 세상, 인간성은 정말 추악하다!왜 길을 잘못 든 사람에게 집으로 가는 길을 하나도 주지 않는가?파티가 끝났을 때 서강민은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셨다. 배현우는 사람을 시켜 그를 돌려보냈다. 반면 도혜선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태연히 떠났다.손님을 떠나보내고 집에 돌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도혜선이 마음에 걸려 배현우에게 말하고 돌아서서 다시 도혜선의 집으로 갔다.나는 열쇠를 꺼내 직접 문을 열었다. 역시나, 도혜선이 불을 켜지 않아서 방 안이 어두웠지만 그녀가 돌아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내가 손을 뻗어 스위치를 누르자, 순간 밝은 불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적응하고 나니 소파에 앉아 술 마시고 있는 도혜선이 보였다.얼굴이 온통 눈물투성이였다.내가 불을 켜는 순간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웅얼웅얼 말했다.“왜 왔어? 오늘은 네 약혼식 날인데 귀한 시간을 보내야지.”말을 마친 그녀는 코를 한 번 들이마시고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나는 그녀의 곁으로 가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에 든 술병을 가져왔다. “또 예전처럼 반쯤 죽을 때까지 마시고 싶다고 말하지 마.”그녀는 손을 놓고 창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내가 정말 바보인 줄 알아?”“바보 아니야?”내가 더 가슴 아프고 화
나는 이런 일들이 그녀에게 엄청나게 큰 상처로 가슴에 못 박힌 건 알고 있다.“사실 나를 빛 좋은 개살구라고 말한 건 나에 대한 과찬이야. 그 사람들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어. 난 ‘죽은 그녀를 계승할’ 자격조차 없어. 그러니까 더 이상 환상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마쳤다.“꼭 그렇게 자신을 비하해야 해?”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목이 멨다.“이건 비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야! 난 예전부터 이런 마인드로 살아왔어.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 자연스럽게 내가 서강민 옆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라고. 오랜 세월 동안 서강민은 사람들이 나에게 퍼부었던 모든 모욕과 조롱을 생생하게 목격해 왔어. 나도 내가 서강민의 아내가 되었을 때 그동안 겪었던 이 모든 고통을 가뿐하게 훌훌 털어내고 웃어넘길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살아왔어.”도혜선은 눈물을 훔치며 나에게 하소연을 털어놨다. 나는 그녀의 하소연이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진심일 거라고 확신했다.그녀는 지금 나에게 진심을 보여주고 있다.“사실 난 서강민을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아. 단지 한 사람을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참고 견디다 보니까 그게 습관이 되고 또 욕망의 씨가 되어 빠져나올 수 없는 진흙탕에 빠져 허덕이게 되었을 뿐이야...” 도혜선은 내 다리를 톡톡 치며 가까스로 웃었지만 눈물은 끊어진 실로 꿰맨 구슬처럼 뚝뚝 떨어졌다.나는 서둘러 그녀를 위로했다.“네 말이 맞아. 이 세상 그 누구라 해도 너와 똑같은 생각일 거야.” “왜냐하면 나도 체면이란 게 있기 때문이야.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나에게 퍼부은 욕설을 들으며 난 점점 더 확신이 들었어. 나중에 꼭 내가 원했던 결과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거라고 말이야.”“그리고 이 확신이 나를 점점 더 절박한 사람으로 바꾸어놨어. 그 절박함이 나를 이 결과는 사실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정도까지 끌고 가게 된 거야. 내가 생각했던 결과는 서강민의 집이 곧 내 집이고 그의 가족이 곧 내
“지아야, 이게 사실이야. 서강민이 내 곁에 있어주고 내 편이 되어주고 지금 당장 나와 결혼해 남편이 되어준다고 약속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어. 그 말 한마디, 그 동작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되었고 내 모든 자존심을 무너뜨리게 했어.”“네 말을 충분히 이해해.” 나는 담담하게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서강민의 앞에서 내가 그의 동정 어린 호의를 받아들이면 내 인생엔 더 이상 자존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난 반드시 그의 지옥 속에서 기어 나와야만 해. 그래야만 더 이상 비천하고 하찮은 남의 등만 쳐 먹는 여자가 아닌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을 거야.”그녀의 입에서 주옥같은 멘트가 줄줄이 흘러나왔다.“내가 네 곁에 있어줄게.”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내 진심을 전했다.“그러니까 날 이해하는 너라면 나를 돌아서라고 더 이상 설득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도움만 줘. 나에겐 돌아설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내가 서강민을 해치고 싶거나 복수하고 싶은 게 아니야. 그렇다고 그를 버리고 사라지고 싶은 건 더욱 아니야...” 도혜선은 내가 그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두려운 듯이 속마음을 다 꺼내서 내게 보여주며 애절하게 말했다.그녀는 두 손을 내밀고 나를 바라보며 흥분한 목소리로 절규했다. “서강민이 나를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으로 밀어 넣었고 내 모든 자존심을 가차 없이 빼앗아 갔어. 그러고 나서 그는 나를 도덕의 고지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 주저없이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엄연히 선포했어.”그녀는 갑자기 소름 끼치는 웃음을 터뜨렸다.“놀고 있네! 내 입장 같은 건 개나 주라 이거야? 난 완전 그에게 놀아난 거잖아!”그녀는 돌연 뒤쪽 소파에 몸을 기대더니 주체할 수 없이 흐느꼈다.잠시 후, 그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몸을 가누며 천천히 말했다.“난 더 이상 죽은 사람과 화내며 따지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은 차원이 너무 높은 강적이야. 그녀에게 진 게 하나도 억울하지 않아.”“네 생각이 맞아. 네가 그 길
담황색 가로등 아래서 배현우가 성큼성큼 다가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안고 그에게 달려갔다. “왜 아직도 안 잤어요?”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조각같이 잘생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나와 거의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얼굴은 가로등 불빛 아래서 평소보다 더 온화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그의 눈동자에는 나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 숨겨져 있었다.“지아 씨가 돌아오지 않았잖아요. 내가 어떻게 잠이 올 수 있겠어요?”배현우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나의 입술에 살포시 키스하고 기분 좋게 말했다.“집에 가죠!”원인은 잘 모르겠으나 매번 이 네 글자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올 때 나는 마음이 감동에 젖어 따뜻해졌다.배현우는 곰처럼 우직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비비며 물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도혜선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풀어주느라 좀 늦었어요.” 나는 미안한 마음에 멋쩍게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기다리다 지쳤어요?”“다른 사람을 돌보기 위해 약혼자를 내버려두고 뛰쳐나간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더군다나 오늘은 모처럼 특별한 날이잖아요.” 배현우는 나에게 불만 아닌 불만을 털어놓는 것 같았다.“나도 이렇게까지 늦을 줄은 몰랐어요... 에휴.”나도 피곤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내 애인은 세상에서 제일 착한 선녀예요.”그는 여자들을 홀릴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세상을 구해야 해요!”나는 배를 끌어안고 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가볍게 한 대 때렸다.“그렇게 비꼬지 마세요! 이 모든 건 다 서강민이 도혜선에게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에요. 도혜선은 그의 곁에 머물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납득할 만한 결과를 보여주길 기다렸지만 하필이면 서강민이 그녀와 통하는 유일한 대화창을 닫아버렸잖아요. 그래서 도혜선의 세계는 균형을 잃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추락하게 된 거예요.”방금 전 도혜선의 모습을 생각하니 나는 마
제일 먼저 나를 찾아온 사람이 이세림이라는 사실이 나는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녀가 겨울바람처럼 매서운 분위기로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내 사무실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이세림은 내 책상으로 다가와서 자태를 높여 한참 동안 나를 노려보더니 경멸하는 듯한 어조로 한마디를 날렸다. “나랑 얘기해."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착하게 의자를 향해 손짓했다.“앉아.”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내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더니 거만한 표정으로 나에게 일침을 날렸다. “내가 너를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 같네.”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고 여유롭게 말했다. “애초에 나를 과소평가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았어야지.”“난 너를 그냥 제2의 임윤아 정도로만 생각했거든.” 그녀는 빙빙 에둘러 말하지 않고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나는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겨우 억누르며 이세림을 빤히 쳐다봤다.“그래서 네가 지속적으로 나에게 손을 썼던 거구나. 임윤아가 당해왔던 짓거리를 나도 똑같이 당해봐라 이거지? 그녀를 절벽에서 밀어 떨어지게 하고 나를 바다에 밀어 물에 빠지게 하고 참 가지가지 악랄한 짓거리를 많이 했지. 그러나 네 그 미친 짓은 그냥 삼류 수법에 불과했어.”나는 전혀 흥분하지 않고 이세림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말했다.그녀는 내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얘기할 줄 예상하지 못했던지 한참 동안 말없이 침묵을 지키다가 돌연 홀가분한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녀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안 돼. 증거도 없이 이렇게 생사람을 잡으면 되겠냐? 그것보다 난 이것만은 확신해. 네가 앞으로 가시밭길만 걷게 될 것을. 현우 오빠의 옆자리는 그렇게 쉬운 자리가 아니거든. 딱 보면 알아. 너희는 무조건 헤어지는 결말이거든.”“그렇게 허겁지겁 찾아와서 하고 싶었던 말이 고작 이거야? 할 말이 끝났으면 얼른 돌아가.” 나는 찔리는 게 하나도 없이 떳떳했다.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