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튿날 아침까지 줄곧 잤다.만약 배가 고파서 깨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계속 잤을 것이다.휴대폰을 만졌지만 찾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잠이 든 후에 날 방해할까 봐 가져간 게 틀림없다. 나는 또 게으름을 피웠다. 두 눈을 부릅뜨고 천장을 봤는데 너무 배고팠다. 나는 얼른 일어나서 씻고 밥 먹으러 내려갔다.김향옥은 조용히 내 곁으로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물었다.“널 왜 때렸어?”“별일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당신 아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미쳐 날뛰어요.”나는 그녀가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그럼 무시해. 심보가 고약한 놈은 조만간 업보를 당할 거야. 하느님이 천벌을 내릴 거야. 내 아들이 복이 없는 거지.”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엌으로 들어갔다.나는 밥을 먹으며 어제 일을 생각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신연아의 따귀에 나는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손을 써야 할 때인 것 같다. 지금 한신로얄을 가져가는 것은 전희에게 큰 타격일 것이다. 코앞까지 온 고기가 이렇게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분명 충격을 받을 것이다.나는 그들과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아침 식사 후, 나는 위층으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가는 길에 우리 집에 있는 두 공주에게 뽀뽀하고 바로 운전해서 회사로 갔다. 가는 길에 이동철에게 직접 전화해서 이따가 내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나는 내 계획을 앞당겨 시작할 거야!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이해원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내가 이렇게 일찍 온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 나를 따라 사무실로 와서 물었다. “한 대표님,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처리할 일이 있어요. 어제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나는 앉으면서 물었다. “어제 세상모르고 잤어요.”“특별한 일은 없고 장 대표님이 다 처리해 주셨어요. 너무 피곤했을텐데 긴장을 풀고 푹 쉬어야 해요.”이해월이 나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그런데 오늘은 특별한 일이
마침 장영식도 도착했다. 내가 내 생각을 짧게 말하자 그는 고민했다. “문제없어. 하지만 이전에 우리가 자발적으로 경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해야 해.”장영식은 일을 할 때 항상 원칙이 있고 모든 것에 이유가 필요했다.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그에게 말했다. “이렇게 해. 만약 필요하다면 판도를 바꿀 방법을 생각해 볼게. 프로젝트 팀을 재편성하고 이청원에게 그의 인맥을 철수하라고 요청하면 우리는 정당하게 경쟁할 수 있어.”나는 장영식에게 나의 이유와 계획을 충분히 말했는데 이것은 가장 자신 있는 방법이다.장영식은 조이스와 소통한 뒤 내 방식을 취했다.나는 바로 이청원과 약속을 잡았고 비밀리에 논의한 후에 협의도 이루어졌다! 이청원이 방법을 마련하여 이 판을 뒤집을 거다.이청원과 조이스는 안팎으로 현재 한신로얄 2기 계약 확정을 뒤집고 다시 판을 깔았다.그리고 이동철은 인천의 일을 준비하러 갔다. 이쪽이 한신로얄을 손에 넣은 후에 인천을 폭로해야 한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나는 한신로얄 프로젝트 팀의 소식만 기다리고 있다!그리고 이 시간 동안 배현우는 내가 내 계획을 잘 실행할 수 있도록 신흥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천우 그룹은 공식적으로 모든 건축 공사 및 건축 설계원의 관리를 신흥 건축 개발 유한회사에 위임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신흥이 천우 그룹 산하의 건축 개발 유한회사가 된 것과 같다.하지만 우리 회사는 독립적으로 회계 처리되어 원래 운영과 동일하며 업무적으로 천우 그룹과 어떠한 충돌도 없을 것이다.계약 당일 이 소식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작고 이름 없는 신흥이 이렇게 단숨에 서울 업계의 리더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기가 막히기도 하고 불복하기도 했다.온갖 의논이 산더미처럼 나를 향해 쏟아졌다.물론 어떤 이는 쌍욕하고, 어떤 이는 비꼬고, 어떤 이는 심지어 저주까지 했다.하지만 나는 천우 그룹의 건축 설계원을 얻었다. 이는 신흥 건축 개발 유한회
사건은 이상한 소리에서 비롯되었다.우리 쪽에서는 약혼식이 막 끝나서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고 있고 차홍기도 배현우에게 요구를 제시하고 있어 가족들 모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나의 그런 ‘대단한’ 과거를 조용히 수군거리고 있었다.이런 때아닌 말을 들은 도혜선은 너무 못마땅한 말 때문에 노발대발했다. 그 결과, 말 한마디 없이 도혜선이 맞았다.그 여자는 날뛰며 도혜선을 가리키며 노여움을 표했다“너는 뭔데 감히 나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거야?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거울에 똑똑히 비춰 봐. 당신은 헌 신발일 뿐이야. 심지어 버려진 헌 신발! 감히 이런 고급스러운 자리에서 입을 열다니 네가 아직도 옛날 같은 줄 알아? 정말 근주자적, 근묵자흑이네. 퉤!”그 여자의 말은 매우 듣기 거북했다. 도혜선은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얼굴은 이미 창백해졌다.이미연은 재빨리 도혜선에게 달려가 때린 사람을 노려보았다. “닥쳐! 다시 한번 말해 봐. 내가 너의 입을 찢어버릴 줄 알아.”“내가 몇 번을 말해도 그녀는 헌신짝이야! 자기가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감히 우리가 대화하는데 끼어들다니.”그 여자는 간사한 얼굴로 이미연을 흘겨보더니 판을 깨뜨리듯 큰 소리로 떠들어대며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나는 이미연이 순간적으로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막 돌진하려고 하는데 도혜선이 말리는 것을 보았다.그 여자와 한패인 다른 여자도 허리를 짚고 도혜선을 바라보았다.“염치가 있어야지. 불륜녀는 장례식에 참석할 자격도 없는데 감히 여기에 와서 횡포를 부리다니. 너는 아직도 네가 옛날의 사교계의 꽃이라고 생각해? 여기저기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뻔뻔스럽게 여기서 거드름을 피우다니!”나는 이 사람들은 정말 너무 악랄해서 깜짝 놀랐다. 일부러 아픈 곳을 찾아서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정말 사모님 감이라고 생각해? 당신을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스꺼워! 헌신짝!”이런 날카로운 말들은 금세 모두의 이목을 끌었고, 모든 시선이 도혜선을 향
우리가 떠나려는 것을 보고 그 키 큰 사람이 뜻밖에도 날뛰며 앞으로 한발짝 다가와 도발적으로 우리의 갈 길을 막았다.“무서워? 우리 말이 틀렸어? 까치 둥지를 차지려다가 허탕친 비둘기 꼴이지? “그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말했다.“염치없이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기다리다가 김칫국만 마신 격이 됐잖아? 거울 좀 봐봐. 당신은 방을 채울 자격조차 없어! 그냥 공짜 도구야!”이 말이 나오자 나는 도혜선의 몸이 흔들리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나를 잡고있는 손을 심하게 떨었다.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막 화를 내려고 했다.이때, 군중 속에서 분노에 차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 서강민이 아직 있는 이상, 너희들이 이러쿵저러쿵 그녀를 모독할 자격이 없어.”우리는 모두 말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서강민은 얼굴 가득 노기가 가득해서마치 발광한 사자처럼 그 분노에 찬 눈을 부릅뜨고 뒷담화를 하던 몇 명을 똑바로 쳐다보았다!“이년들이 누구네 수다쟁이들이야, 모두 나와 봐!”서강민의 표정은 음산하고 무서웠고 말투도 상당히 위압감이 있었다.그는 곧바로 도혜선 곁으로 가서 한 손으로 도혜선을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화가 나서 몇몇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당신 남자들은?”도혜선은 멍해 있다가 등을 곧게 펴고 서강민을 바라보았다!나는 서둘러 도혜선의 곁에 다가가 손을 뻗어 그녀를 눌렀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다. 도혜선은 서강민에게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대중 앞에서 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상처에서 피를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사과해! 그리고 꺼져! 당장!”나는 그 몇 명을 매서운 표정으로 봤다. 이때 그들 몇 명은 서강민의 고함을 들을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강민은 아직 그녀들이 미움을 살 수도, 미움을 사서도 안 되는 인물이다. 그녀들은이때 서강민이 현장에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게다가 이렇게 대중 앞에서 나서서 도혜선을 보호할 줄은
나는 차갑게 그 여자들을 쳐다봤다.“사과해! 당장!”보아하니, 그 키 큰 여자는 정말 전희와 견줄만할 정도로 교활하고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녀는 상황이 좋지 않은 것과 내가 여전히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갑자기 옆에 사람을 뿌리치고 앞으로 나왔다.“협력을 취소한 판에 무슨 사과를 해? 네가 뭐가 대단해! 내 말이 틀렸어?”나는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사과 안 한다 그거지?”아첨을 하며 사정하던 한 남자가 뒤돌아보며 호통쳤다. “백슬기, 빨리 사과해!”그 여자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내가 왜...”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후려갈긴 뒤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사과하지 않는다면 따귀는 반드시 돌려줘야겠어. 앞으로 때와 장소를 가려서 나대. 어떤 사람들은 네가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야! 이제 여기서 꺼져도 돼!”나는 도혜선 곁으로 돌아갔다. “언니, 다음에 봐줄 필요 없어. 누가 도발하면 때려눕혀!”그 몇 명의 남자들은 울상을 지으며 자꾸 읍소하였는데 아무리 사정해도 결국 보내졌다.나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속삭이며 그녀를 위로했다.“마음에 담아두지 마.”도혜선은 애처로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괜찮아. 이런 일은 많이 봐서 익숙해졌어. 내 존엄성을 지키고 살려면 반드시 이것들을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난 잘 알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내 마음은 매우 아팠고 이미연도 분개한 얼굴이었다.도혜선은 서강민을 돌아보고는 입꼬리를 떨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서 대표님.”안색이 좋지 않은 서강민은 도혜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혜선아, 꼭 이렇게 거리를 둬야겠어?”이미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나는 그녀가 화를 누르지 못할까 봐 그녀를 붙잡았다.방금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슬그머니 지나갔다. 비록 여기에 큰 가십거리가 있지만 관심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사실, 지난 반년 동안 서울의 업계에는
나는 얼른 쫓아가려고 했다. 배현우는 나를 덥석 잡아당기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배현우는 내가 쫓아가면 도혜선이 더 난처한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러는 거라는 걸 난 알았다. 그 후 내 눈은 때때로 도혜선 쪽을 바라보았는데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도혜선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도혜선 마음속 깊은 곳의 고통을 나만 안다.반년 동안, 그녀 혼자 밖에서 혈혈단신으로 위험에 직면하고 고독하고 심지어는 총알이 빗발치기도 하는 곳을 떠돌아다녔다. 이제 돌아왔는데 그녀는 또 악의적인 욕설에도 직면해야 했다. 그녀의 웃음 아래서 어찌 피 한 방울 안 흘릴 수 있겠는가?이 세상, 인간성은 정말 추악하다!왜 길을 잘못 든 사람에게 집으로 가는 길을 하나도 주지 않는가?파티가 끝났을 때 서강민은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셨다. 배현우는 사람을 시켜 그를 돌려보냈다. 반면 도혜선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태연히 떠났다.손님을 떠나보내고 집에 돌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도혜선이 마음에 걸려 배현우에게 말하고 돌아서서 다시 도혜선의 집으로 갔다.나는 열쇠를 꺼내 직접 문을 열었다. 역시나, 도혜선이 불을 켜지 않아서 방 안이 어두웠지만 그녀가 돌아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내가 손을 뻗어 스위치를 누르자, 순간 밝은 불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적응하고 나니 소파에 앉아 술 마시고 있는 도혜선이 보였다.얼굴이 온통 눈물투성이였다.내가 불을 켜는 순간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웅얼웅얼 말했다.“왜 왔어? 오늘은 네 약혼식 날인데 귀한 시간을 보내야지.”말을 마친 그녀는 코를 한 번 들이마시고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나는 그녀의 곁으로 가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에 든 술병을 가져왔다. “또 예전처럼 반쯤 죽을 때까지 마시고 싶다고 말하지 마.”그녀는 손을 놓고 창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내가 정말 바보인 줄 알아?”“바보 아니야?”내가 더 가슴 아프고 화
나는 이런 일들이 그녀에게 엄청나게 큰 상처로 가슴에 못 박힌 건 알고 있다.“사실 나를 빛 좋은 개살구라고 말한 건 나에 대한 과찬이야. 그 사람들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어. 난 ‘죽은 그녀를 계승할’ 자격조차 없어. 그러니까 더 이상 환상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마쳤다.“꼭 그렇게 자신을 비하해야 해?”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목이 멨다.“이건 비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야! 난 예전부터 이런 마인드로 살아왔어.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 자연스럽게 내가 서강민 옆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라고. 오랜 세월 동안 서강민은 사람들이 나에게 퍼부었던 모든 모욕과 조롱을 생생하게 목격해 왔어. 나도 내가 서강민의 아내가 되었을 때 그동안 겪었던 이 모든 고통을 가뿐하게 훌훌 털어내고 웃어넘길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살아왔어.”도혜선은 눈물을 훔치며 나에게 하소연을 털어놨다. 나는 그녀의 하소연이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진심일 거라고 확신했다.그녀는 지금 나에게 진심을 보여주고 있다.“사실 난 서강민을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아. 단지 한 사람을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참고 견디다 보니까 그게 습관이 되고 또 욕망의 씨가 되어 빠져나올 수 없는 진흙탕에 빠져 허덕이게 되었을 뿐이야...” 도혜선은 내 다리를 톡톡 치며 가까스로 웃었지만 눈물은 끊어진 실로 꿰맨 구슬처럼 뚝뚝 떨어졌다.나는 서둘러 그녀를 위로했다.“네 말이 맞아. 이 세상 그 누구라 해도 너와 똑같은 생각일 거야.” “왜냐하면 나도 체면이란 게 있기 때문이야.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나에게 퍼부은 욕설을 들으며 난 점점 더 확신이 들었어. 나중에 꼭 내가 원했던 결과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거라고 말이야.”“그리고 이 확신이 나를 점점 더 절박한 사람으로 바꾸어놨어. 그 절박함이 나를 이 결과는 사실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정도까지 끌고 가게 된 거야. 내가 생각했던 결과는 서강민의 집이 곧 내 집이고 그의 가족이 곧 내
“지아야, 이게 사실이야. 서강민이 내 곁에 있어주고 내 편이 되어주고 지금 당장 나와 결혼해 남편이 되어준다고 약속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어. 그 말 한마디, 그 동작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되었고 내 모든 자존심을 무너뜨리게 했어.”“네 말을 충분히 이해해.” 나는 담담하게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서강민의 앞에서 내가 그의 동정 어린 호의를 받아들이면 내 인생엔 더 이상 자존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난 반드시 그의 지옥 속에서 기어 나와야만 해. 그래야만 더 이상 비천하고 하찮은 남의 등만 쳐 먹는 여자가 아닌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을 거야.”그녀의 입에서 주옥같은 멘트가 줄줄이 흘러나왔다.“내가 네 곁에 있어줄게.”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내 진심을 전했다.“그러니까 날 이해하는 너라면 나를 돌아서라고 더 이상 설득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도움만 줘. 나에겐 돌아설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내가 서강민을 해치고 싶거나 복수하고 싶은 게 아니야. 그렇다고 그를 버리고 사라지고 싶은 건 더욱 아니야...” 도혜선은 내가 그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두려운 듯이 속마음을 다 꺼내서 내게 보여주며 애절하게 말했다.그녀는 두 손을 내밀고 나를 바라보며 흥분한 목소리로 절규했다. “서강민이 나를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으로 밀어 넣었고 내 모든 자존심을 가차 없이 빼앗아 갔어. 그러고 나서 그는 나를 도덕의 고지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 주저없이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엄연히 선포했어.”그녀는 갑자기 소름 끼치는 웃음을 터뜨렸다.“놀고 있네! 내 입장 같은 건 개나 주라 이거야? 난 완전 그에게 놀아난 거잖아!”그녀는 돌연 뒤쪽 소파에 몸을 기대더니 주체할 수 없이 흐느꼈다.잠시 후, 그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몸을 가누며 천천히 말했다.“난 더 이상 죽은 사람과 화내며 따지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은 차원이 너무 높은 강적이야. 그녀에게 진 게 하나도 억울하지 않아.”“네 생각이 맞아. 네가 그 길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